음 언제 부터인가 경을 소리내서 읽다 보면 한박자 늦게 따라 읽는 목소리가 들린다.
경을 읽지 않으면 아무소리 없다가 다시 읽으면 따라 읽는다.
소리를 제대로 듣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경 읽는 소리 같으다.
스승님께 말씀드렷더니.. "원신" 이 읽는 소리란다.
웬만하면 박자좀 맞춰서 읽어 주면 헷갈리지 않으련만..
박자좀 맞차주소..원신 아...
===============================================
원신은 불멸하고 선악에는 반드시 보응이 있다.
글 / 전이(陣意)
【명혜망 2004년 5월 29일】AD 5세기 형신(形神) 이론의 풍파 속에 북조(北朝)시기 남북이 대립하고 있었다. 영명(永明) 7년(489년)에,경릉왕(竟陵王) 소자량(蕭子良)이 대연회를 열어 손님들을 맞았는데, 연회에서 범진(范縝 450~515)은 불교의 신(神) 불멸(不滅)과 인과응보를 받대하는 발언을 하여 “신멸론(神滅論)”이라는 글을 적었다. 범진이 말하는 신(神)은 사람의 영혼이나 원신을 지칭하는 것으로 “신멸론(神滅論)”의 핵심 논점은 사람의 형체를 칼에 비유하고 사람의 원신을 칼날에 비유하고 칼이 없으면 칼날도 없듯이 형체가 없으면 원신도 없다는 것이다. 이로써 사람이 죽으면 일체가 모두 결속되며 인과응보란 아예 존재하지 않음을 증명한 것이다.
“신멸론(神滅論)”이란 이런 사이비 논점은 부처를 믿고 선을 향하는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훼손시켰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선악에는 보응이 있음을 믿지 않고 하고 싶은대로 마음대로 하게 만들었는가? 오늘날 사회는 변천되어 황금만능사상, 폭력, 색정, 도박, 마약, 거짓이 판치며, 자신의 사욕(私慾)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나쁜 짓이라도 다 하며, 돈을 위해서는 목숨마저 바치고 사람을 죽이고 생명을 해치는 것을 너무 자주 보아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일이 되어 버렸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진실한 믿음이 없어졌고 사회 도덕은 끊임없이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으며 허다한 사람들은 이미 자신에게 유리한지 불리한지를 선악의 표준이자 행동의 준칙으로 삼았다.
“신멸론(神滅論)”은 하우가 물을 다스릴 때부터 “5.4운동”에 이르기까지 중국에 영향을 끼친 100가지 사건 중의 하나로 꼽힐 만큼 중국 역사상 심대한 영향을 끼쳤고 역사상 매우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인과응보를 믿지 않는 이론 근거로 삼아 널리 선전하였다. 장쩌민 사악집단은 더욱이 “미신”이라는 구실로 파룬궁을 탄압하면서 “무신론“과 “신멸론(神滅論)”을 사용하여 파룬궁을 공격하는 큰 몽둥이로 만들었으며 또한 파룬궁에 반대하는 전문적인 사이트를 만들었다. 그러므로 “신멸론(神滅論)”을 반박하는 것은 진상을 알리는 것이자, 장씨 사악집단이 파룬궁을 박해하는 험악한 마음씀을 폭로하는 것으로서 또한 사람들에게 양심을 환기시켜 세인들을 구도하는 한가지 중요한 방면이다.
1. 사람의 원신과 신체 양자는 서로 의존적인 관계가 아니다
범진 이 비유한 첫 번째 착오는 원신과 신체의 관계를 칼과 칼날에 비유한 것인데 왜냐하면 칼과 칼날의 관계는 서로 의존하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사실 범진은 또한 이런 의존관계를 증명하지 않았으며 단지 비유했을 뿐이다. 만약 자동차와 운전사로 신체와 원신을 비유한다면 칼고 칼날로 비유한 것보다 훨씬 더 적합하다. 겉으로 보면 단지 자동차만 보이고 차 안의 운전사는 보이지 않는 것은 마치 사람을 볼 때 형체만 보이고 형체 안에 있는 원신을 볼 수 없는 것과 같다. 사람이 사람으로서 완성될 수 있는 것은 사람의 원신, 사유하고 학습하고 창조할 능력이 있기 때문이며 언어를 사용하고 희로애락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형체는 단지 원신의 명령을 집행하는 것에 불과하다. 자동차가 움직이는 것은 운전사가 조종하여 자동차의 각종 공능을 완성시켰기 때문이다. 자동차 엔진이 고장났다고 하여 운전사가 죽은 것은 아니며 반대로 운전사가 죽었다고 하여 자동차가 고장난 것도 아니다. 자동차와 운전사는 서로 의존하는 관계가 없으며 그들 사이의 생명도 아무런 직접적 관계가 없다.
왜 원신과 신체는 서로 의존하는 관계가 아닌가? 범진은 칼과 칼날로 형체와 원신의 관계를 비유하였다. 신체가 없다면 원신도 곧 없게 되는데 그렇다면 수련한 고승의 육신이 부패하지 않고 몇백 년을 가는 것을 생각해보자. 범진의 말대로 칼이 있으면 칼날도 있다는 논리를 따른다면 육신이 남은 고승의 원신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어떤 사람은 고승은 비록 육신은 있지만 심장이 뛰지 않으므로 원신도 없다고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식물인간은 심장이 여전히 뛰지만 일어나서 사람이 마땅히 있어야 할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지 않는가? 만약 원신이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면 “신멸론”에 따를 때 신체가 여전히 존재하므로 원신도 존재해야 하는데 원신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인가? 그러므로 범진이 칼과 칼날을 가지고 사람의 신체와 원신을 비유한 것은 착오적이다.
2. 원신은 완전히 인체를 떠날 수 있다
현 실과 과학연구가 증명하다시피 원신은 완전히 인체를 떠날 수 있다. 상하이 과학기술 출판사에서 출판된 《대중의학》 1993년 제 5 월 호에는 탕산 지진 후를 소개하고 있다. 중국 의료인들이 일찍이 1976년에 있었던 탕산 대 지진 중에 난(難)을 만났다가 어렵게 탈출한 사람들에 대해 조사한 것에 따르면 지진현장에서는 24만여 명이 사망하고 16만여 명이 중상을 입었는데 피조사자 다수는 실내에 있다가 매몰된 후에 나중에 운좋게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조사 중에서 근 반수의 사람들이 의식 또는 영혼이 자신에게서 분리된 느낌을 받았는데 자신의 형상(形象)이 자신의 신체를 벗어나는 느낌이 있었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를 “영혼이 껍질을 벗는다“고 비유하였다. 그들은 자신의 공능이 느끼기에 신체 밖의 어떤 공간에 있었고 대뇌가 아니었으며, 아울러 생리적인 신체는 활력도 사유도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고 강조하였다.
심지어 어떤 보고자는 자신의 신체 밖 공중이나 천장에서 자신의 형상을 “보았다”고 했다. 이런 신체 밖의 자신 형상도 또한 모종의 생명 지표들이 있었는데 가령 맥박, 호흡 등이 있었고 어떨 때는 자신의 신체 속으로 되돌아가기도 했으며 혹은 모종의 방식으로 서로 연계되었는데 신체보다 비중이 가볍고 단지 신장과 연령이 서로 같다고 보고하였다. 어떤 피 조사자는 다음과 같이 상세하게 묘사하였다. “당시에 내 신체가 두개로 나뉘어짐을 느꼈다. 하나는 침대 위에 누워있었는데 그것은 빈 껍데기에 불과했으며 다른 하나는 자신의 형상으로서 공기보다 가벼워 공중으로 날아 올랐으며 비할 바 없이 편안했다.” 이런 대량의 조사는 원신이 신체를 이탈해서도 생존할 수 있음을 증명할 수 있다.
이런 종류의 빈사체험(瀕死體驗, 역주 : 임사체험이라고도 하며 영어로는 Near Death Experience라고 한다)은 역사적인 기재에도 있는데, 《사기 편작창공 열전》중에 한 단락이 있다. 진나라 소공(晋 昭公) 시절에 조간자라는 이름의 대부가 국정을 담당하고 있었다. 어느 날 조간자가 병이 나서 5일 간 인사불성에 빠져 여러 대부들이 매우 두려워 했는데 이에 편작을 불러 병을 보게 했다. 편작이 나아가 진찰한 후에 동안우가 조간자의 병세를 묻자 편작은 “혈맥이 고르니 어찌 이상이 있겠습니까? 지난날 진목공도 일찍이 이와 같았습니다. 7일간 혼수상태에 있었는데 혼수상태에 있을 때에 대하여 공손지와 자여에게 이르기를 “나는 천제에게 가서 매우 즐거웠다. 내가 오래 있으면서 마침 배운 것이 있으니, 천제가 내게 이르기를 ‘진나라는 큰 난리가 있을 것이며, 다섯 세대 동안 불안할 것이다. 그 뒤에 장차 제패하게 되겠지만 늙기 전에 죽을 것이다. 패자의 아들이 다스리게 되면 나라 남녀들의 분별이 없어질 것이다.’”라고 하였다. 공손지가 기록하여 갈무려 두었는데 진책에 나타나 있습니다. 대개 헌공의 난리와 문공이 재패한 일, 그리고 양공이 진군을 표에서 이기고 돌아와 음란하게 된 것, 이런 일들은 그대도 들어서 알 것입니다. 지금 주군의 병은 이와 같으니 삼일을 넘기지 않아 반드시 나을 것이며, 나으면 말씀이 있을 것입니다.”동안우가 편작의 이 말을 적어 조간자에게 알리닌 조간자가 편작에게 4만 무의 토지를 하사하였다. 조간자의 원신이 육신을 떠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하늘에 가서 놀며 또한 진(晋)나라가 멸망하고 진(秦)나라가 흥성함을 예측할 수 있었겠는가?
빈 사체험은 외국에도 예가 있는데 고대 그리스의 저명한 철학자 플라톤은 자신의 저서 “공화국”에서 빈사체험에 관한 예를 하나 기록하고 있다. 고대 그리스의 한 병사가 전쟁 중에 사망했는데 마을 사람이 그의 시신을 가져다 화장하려고 할 때 갑자기 깨어났다. 깨어난 후에 친인들에게 자신이 죽은 후에 영혼이 육신을 이탈하였으며 육신을 이탈한 후에 어떤 지방을 가게 되었는 데 이 곳은 마치 하나의 통로와 같아서 지구 밖의 다른 세계에 도달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 후에 통로 입구에서 지나가는 영혼을 맞이하여 신(神)의 심판을 받았는데 그들이 지구에서 생전에 했던 좋고 나쁨에 따라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이 병사는 심판을 받지 않았으며 신은 그에게 아직 사망할 시간이 되지 않았으니 돌아가라고 하여 곧 돌아왔다는 것이다. 그는 잠시 후에 깨어났다.
빈 사체험에 관하여 미국 갤럽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미국에는 천 삼백만 명의 성인이 빈사체험을 경험했다(아동의 빈사체험은 제외)고 한다. 빈사체험에 대한 연구는 현재 이미 주류 과학이 되어 매우 많은 과학연구 논문들이 발표되는데 《Lancet》과 같은 국제적으로 권위있는 잡지에도 논문이 실렸다. 빈사 상태에 있는 환자는 이미 사망 상태를 나타내는데 곧 뇌파가 직선을 이루어 아무런 대뇌활동이 없고 심장도 정지한다. 이런 환자들은 어떻게 다른 공간을 경험했을까? 워싱톤 대학의 멜빈 모스(Melvin Morse) 교수를 중심으로 한 연구팀은 사람의 대뇌는 가공 공장에 불과하다고 본다. 이 사람이 경험하는 것은 다른 공간에서 겪어 받아들인 것으로 우리 이 공간의 사람을 거쳐 표현되어 나온다. 빈사체험에 관한 대량의 예들과 과학연구에서 증명하다시피 원신은 형체를 떠나서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
사실은 빈사체험을 해야만 원신이체(元神離體)의 정황를 체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일정한 층차에 도달한 수련인도 가부좌 중에서 원신이체에 도달할 수 있다. 불교 중에는 《서방 극락 세계 유람기(西方极乐世界游记)》라는 소책자가 있는데 관정(寬淨)화상이 서방 극락세계에 가서 주유한 정황을 기록한 것이다. 1967년 푸젠성 쥬센산(九仙山) 미륵동(弥勒洞) 안에서 가부좌 하던 관정 화상은 원신이 육체를 떠나 서방 극락 세계에 가서 하루 밤낮을 놀다가 인간 세상으로 돌아 왔는데 이미 6년이 지난 후였다(원신이 6년을 떠나 있는 것은 빈사체험에 비하면 훨씬 긴 시간이다). 이는 또한 원신과 형체의 관계가 칼과 칼날의 관계와는 다름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는 《서방 극락 세계 유람기》에서 “가는 길에 나는 원관(圓觀)이라는 법호를 가진 법사를 만났는데 그는 마치 내 과거의 매우 자세한 것까지 투시하는 것 같았다. 매우 많은 인과에 관한 말을 했으며 아울러 신화처럼 나의 전생을 말했는데 어느 생에는 어디에 출생하였으며 어느 지방 어느 시간까지 몽땅 말해냈다. 칠 년 후에 관정화상이 그의 말대로 각처를 다니면서 실제로 그런 사람이 있었는지 조사한 결과 시간과 장소가 모두 정확하였다. 예를 들면 어느 한 생에서 그는 청나라 강희 연간에 상용방 계격촌(上涌方 桂格村)의 재가 거사(居士)였는데 이름은 정원사였고 6남 2녀를 두었는데 그 중 한 명이 진사라고 했다. 조사결과 장소, 시간 및 묘지가 모두 정확했으며 현재 자손이 121가 450여 인이 살고 있었다.” 이와 같이 원관법사가 관정화상에게 말한 것은 생생세세 모두 진실하고 조금도 차이가 없었다. 만약 원신이 이체한 것이 아니라면 미륵동 속에 가부좌하던 관정화상이 어떻게 자신의 전생을 생생세세로 정확하게 알 수 있었겠는가?
3. 원신 귀숙(歸宿)
원신이 이미 인체를 떠났다면 어쨌든 거처가 있어야 하는데 이를 귀숙이라고 하며 수련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 말하자면 이 귀숙은 바로 윤회에 진입하는 것으로 불교에서는 육도윤회라고 한다. 만약 윤회가 없다면 관정화상의 생생세세(生生世世)를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과학이 발달한 북미(北美)에서 윤회전생 현상에 대해 이미 대량의 연구가 진행되어 설득력 있게 전생의 가능성을 설명하고 있다. 이런 연구는 두가지 종류의 유형이 있다.
하나 는 이안 스티븐슨 박사를 대표로 하는 전생을 기억하는 아동의 사례를 구체적으로 검증하여 전생의 가능성과 관련현상을 연구 수집하는 것이다. 스티븐슨은 버지니아 대학의 교수로 그는 40년 간 2600~2700 개의 2세~7세 아동에 관한 사례를 수집했는데 이 아이들은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그들은 천백리 밖에 있는 마을의 구체적인 정황과 십수 년 내지 심지어 더 오래 전에 발생한 일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알고 있었다. 매우 많은 아이들은 심지어 다른 종족의 언어을 말할 수 있었다. 이런 사례는 매우 많은 상세한 부분이 스티븐슨 교수의 연구팀에서 자세히 기록하였다. 그 중의 일부가 그의 저작 《전생을 기억하는 아이들 : 전생문제에 관하여》에 기술되어 있다.
다른 한 종류의 연구는 실험자를 대상으로 정신과 의사의 지도하에 최면상태 하에서 전생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최면”은 사람이 잠 든 것도 아니며 뇌파도 수면상태와 다른 데 불교나 도가에서 가부좌하여 입정한 상태와 유사하다. 피실험자는 자신의 보다 깊은 심층 의식을 접촉할 수 있으며 오랜 과거를 경험한다. 입정하여 회귀하는 연구(역주: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전생퇴행이라고 한다)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브라이언 와이스(BRIAN WEISS) 박사인데 그의 첫 번째 저서 《나는 환생을 믿지 않았다(Many Lives, Many Masters)》는 이미 이백만 권이 발행되었고 20여 종류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중문으로는 《전생과 현생(前世今生)》이라고 번역되어 일찍이 대만에서 베스트 셀러가 되기도 했다. 바이스 박사는 미국의 정신과의사이다. 컬럼비아 대학교와 예일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였다. 졸업 후 뉴욕 대학교 부속병원 인턴 과정을 거쳐 예일대학교에서 정신과 레지던트 과정을 수료하였다. 피츠버그대학교와 마이애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를 거쳐, 11년동안 마운트사이나이 의료센터의 정신과 과장을 지냈다. 정규 의대 교육을 받은 학자로서 그도 처음에는 초심리적인 현상을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으로 생각했으나 30여 세의 캐슬린이라는 환자를 치료하고 나서 자신의 관점을 바꿨다.
캐 슬인은 1년간 전통적인 심리치료를 받았으나 효과가 없었다. 와이스는 만약 입정상태하에서 환자가 억눌린 기억을 회상하고 당시의 나쁜 감정들을 석방시킨다면 심리적인 질병이 곧 치유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였다. 뒤이어 발생한 일은 와이스도 애초에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캐슬린을 최면 치료할 때 그녀는 적어도 십수 차례의 전생을 기억해 냈으며 그녀가 현생(現生)에 겪었던 각종 공포의 오래 전 원인을 새롭게 찾아낼 수 있었다. 이런 고층차의 이해는 그녀를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캐슬린은 입정상태에서 오래 전 한 생(生)을 경험한 후에 자신의 신체를 떠나서 그녀가 이전에 잘 알고 있던 정신의 빛으로 이끌려 갔다. 그녀는 와이스에게 "와이스 박사님 당신은 전에 제 선생님이었습니다. 당신의 부친도 여기에 있고 또 당신의 아이가 있는데 아이는 아주 어리군요. 당신의 부친이 “그의 이름은 아브롬(AVROM)이며 심장병으로 죽었는데 당신 딸의 이름은 그를 따라 지었다고 하네요. 당신의 아이는 심장이 거꾸로 되어 닭의 심장 같네요. 그는 당신을 사랑하여 당신을 위해 매우 큰 희생을 했습니다. 그의 영혼은 아주 고급적인데 그는 죽음으로 부모의 빚을 대신 갚았어요. 그도 당신이 의학이란 단지 그런 정도밖에는 안되며 범위가 아주 제한되어 있음을 알기를 바라는 군요.”
와이스는 캐슬린의 서술에 매우 놀랐는데 그녀는 원래 그와 잘 아는 사이가 아니었으며 자기 식구들에 대해서는 더더군다나 몰랐기 때문이다. 와이스는 생후 10일에 심장병을 진단받아 23일 만에 세상을 떠난 아이가 있었다. 와이스의 부친은 심근경색으로 사망했으며 그의 유대명은 아브롬(Avrom))이었다. 와이스의 딸은 와이스의 부친이 세상을 떠난 지 4개월 후에 출생했으며 부친의 이름을 따서 에미미(Amy)라고 지었다. 이것은 모두 캐슬린이 알아낼 방법이 없는 것들이었다. 놀란 와이스는 캐슬린에게 “거기에 누가 있었나요? 누가 당신에게 이런 일을 알려주었지요?” 그녀는 부드럽게 “많은 사부님들이에요.”라고 말했다. “많은 정신 대사들(Masters)이 내게 알려주었어요. 그들은 내게 나는 이미 인간세상에 86차례나 왔었다고 말했주었어요.”라고 했다.
캐슬린을 치료한 후에 와이스는 심리치료 관념에 극히 거대한 개변을 가져왔고 우리 현생의 매우 많은 공포와 고통의 근원은 모두 오래 전 과거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4년 후 와이스는 끝내 용기를 내어 학술적인 풍파를 무릎쓰고 그의 윤회 전생에 관한 책을 저술하여 사람들에게 생명의 불후(不朽)와 의의를 알렸다. 그는 나중에 이런 방법으로 수백명의 환자들을 치료했는데 이런 환자들은 사회 각계각층에서 모두 있었으며 서로 다른 종교신앙을 갖고 있었다.(무신론도 포함) 이런 사례들은 그의 다른 저서《전생요법(追昔抚今)》에 기록되어 있다. 또한 이런 방식을 채용하여 연구한 학자들이 출간한 저작들도 적지 않다.
어떤 사람은 이런 것을 나는 믿지 않는데 세상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은 어째서 전생의 일을 모르는가?라고 할 것이다. 그렇다, 모든 사람들이 전생의 정황을 아는 것은 아니다. 마치 체육운동과 같이 어떤 사람이 세계기록을 창조했다면 당신은 나는 어째서 그런 기록을 낼 수 없는가 하면서 믿지 않으며 이 세계기록은 승인할 수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당신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가 창조한 세계 기록은 당신이 볼 수 있는 것이므로 승인한다면 어째서 그렇게 많은 원신이체의 사례들이 여기에 있는데 당신은 믿지 못한단 말인가?
4. 선악에는 반드시 보응이 있다.
범 진이 “신멸론”을 주장하며 인과응보를 믿지 않자 경릉왕 소자량이 묻기를 “그대가 인과를 믿지 않는다면 어떻게 빈부와 귀천이 생기는가?” 이에 범진은 “인생은 나무의 꽃이 동시에 피는 것과 같아서 바람이 불면 떨어집니다. 방석에 떨어지는 것도 있고 똥통에 떨어지는 것도 있습니다. 방석위에 떨어진 것이 전하이며 똥통에 떨어진 것은 하급관리입니다. 귀천이 비록 복잡하다고 하나 길이 다를 뿐 인과가 어디에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범진은 신체가 사망하면 원신도 사망하므로 어떻게 인과가 있겠는가 하는 관점이다. 그는 인생의 부귀와 빈천은 단지 일종 우연한 현상에 불과할 뿐이라고 여겼다. 앞에서 우리가 이이 증명한 것처럼 원신과 신체가 서로 의존관계가 없다면 신체가 죽어도 원신은 죽지 않는다. 그렇다면 부귀와 빈천은 어떻게 전생의 인과가 없겠는가? 보기에는 우연한 현상이라도 배후에는 반드시 이런 현상을 생기게 한 원인이 있다. 마치 와이스 박사가 환자를 치료한 경험 중에 “우리 현생의 매우 많은 공포와 고통의 원인은 모두 오래 전 과거에 있다.”라고 말한 것과 같이, 겉으로 보기에 현생의 고통은 아주 우연으로 보이지만 그러나 이것은 과거 생에 한 일이 금생에 표현된 결과에 불과하며 선악은 반드시 보응을 받는 것이다. 이 표준이 바로 진선인이며 속인 사회에 반영되면 곧 선을 행하고 덕(德)을 쌓거나 악을 행하고 업(業)을 쌓는 것이다.
당나라의 현장(玄奘)은 역사상 유명한 법사로서 “인광대사문초전집(印光大師文鈔全集)” 중에 현장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당나라 때에 서역 천축국에 계현(戒賢)법사가 있어서 덕이 높고 성망이 커서 명성이 사(四) 천축국을 울렸다. 어느 해 몸에 병이 들어 고통이 극렬하여 참을 수 없자 마침 자살로 해탈하고자 생각했는데 갑자기 문수, 보현, 관세음 세 보살이 강림하여 그에게 알려주기를 “너는 오래 전에 여러 차례 국왕(國王)을 했으며 갖은 박해와 백성들을 괴롭히는 악행을 하여 본래는 응당 악도(惡道, 여기서는 지옥, 아귀, 축생을 말한다)에 추락하여 오래 동안 큰 고통의 응보를 받아야 했으나 네가 불법을 널리 전한 이유로 장래 지옥의 대 고난을 면제하고 지금 인간의 작은 병고로 변하게 하였으니 너는 마땅히 참아야한다. 다시 삼년이 지나면 대당(大唐)의 승려 현장이 여기에 와서 너를 스승으로 삼고 불법을 구할 것이다.”
계현법사는 이에 억지로 병고를 참고 힘써 참회하며 오랜 시간을 경과하자 끝내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다. 3년이 지나자 과연 현장법사가 와서 그를 스승으로 삼고 법을 구했다. 계현법사가 제자에게 병고(病苦)의 정황을 설명하게 하자 제자가 한편으로는 울면서 한편으로 말을 했으니 병고의 참상을 가히 엿볼 수 있다. 당 현장은 저명한 고승이며 계현법사는 현장의 사부이다. 출가인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 당 현장이 당신을 속일 리는 만무하다. 만약 이렇게 크게 수행한 고승인 계현 법사도 일찍이 이렇게 참혹한 병의 응보를 받았는데 누가 인과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단지 보응이 빨리 오는가 아니면 늦게 오는가의 차이일 따름이다.
펑카이파(彭开发)는 후난성(湖南省) 치양현(祁阳县) 현위원회 부서기이다. 그는 2001년 8월 전현(全縣) 정법(政法)공작회의에서 강화 중에 앞에 많은 말을 할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나 세 번째로 “파룬궁에 대하여 투쟁을 진행하는 데 대하여……”를 말하다가 갑자기 두 눈이 뒤집어 지면서 땅바닥에 쓰러졌다. 결국 그는 살아도 죽은 것과 같은 식물인간이 되었다. 당시 현장에 있던 각 현(縣)과 진의 부서기들은 대단히 놀라서 모두 의론이 분분했는데 펑카이파가 파룬궁에 대해 심하고 사납게 대한 까닭에 현세현보로 식물인간이 되었다고들 했다.
장씨 집단은 “진선인” 파룬궁에 대해 미친듯한 탄압을 하고 있다. 파룬궁 수련생들에 대해서는 “명예를 더럽히고, 경제적으로 파탄시키며, 육체를 소멸시키”라는 명령을 내리고 “때려 죽이면 죽인 것으로 자살로 처리하며”, “신원을 확인하지 말고 화장시키라”고 하는 국가공포주의를 실시하고 있다. 파룬궁에 대한 탄압이 4년 넘게 진행되면서 불완전한 통계에 의하면 파룬궁 수련생 중에 박해로 사망한 사람들이 천 명에 가깝고 10만여 명이 잡혀가서 감금당했으며 2만여 명이 노동교양을 받았고 수천 명이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 당해 중추신경을 파괴하는 약물을 대량으로 투입당하는 고초를 겪었다. 장쩌민은 파룬궁을 박해하는 동시에 모든 세인(世人)들을 파룬궁 박해에 끌어들여 공범을 만들게 하였는 바 장씨 집단이 시켜서 사람을 구타하고 잡아가고 죽였다고 하여 보응을 받지 않는 것은 아니다. 선악을 가늠하는 표준은 眞善忍이므로 眞善忍 파룬궁을 박해하는 것은 가장 나쁜 일을 하는 것이다. 누가 나쁜 일을 했다면 그가 보응을 받아야 하는데 단지 이 세상에서만 보응받는 것이 아니라 생생세세토록 당신이 진 빚을 모두 다 갚아야한다. 역사를 거울로 삼는다면 역사의 교훈은 아주 심각한 것이다.
캉성 (康生)은 줄곧 극좌(極左) 성향을 띠어 옌안(延安)에 있을 때 마오쩌둥을 도와 이색분자들을 배제하면서 얼마나 많은 좋은 사람들을 해쳤는지 모른다. 정풍(整風)과 숙반(肅反) 시에 그는 직접 다른 사람의 몸을 불로 지지는 혹형을 가했고 범인들을 학대하였다. 문화대혁명 중에는 중앙문역소조의 고문으로 생사의 대권을 쥐고 죄명을 날조하여 당, 정부, 군부의 지도자들을 박해했다. 캉성이 죽기 직전 베이징 301병원에 입원했을 당시 천겅(陈赓) 대장의 딸인 천즈진(陈知進)이 마침 병원 마취과 간호사로 있었다. 천소저는 “캉성이 죽기 직전 공포증을 앓았는데 매일 24시간 무장 경찰이 호위했으며 병실 안에는 끊임없이 텔레비전을 틀었는데 병실에 아무도 없으면 두려움에 소리를 질렀다. 누구누구가 찾아와 목숨을 갚으라고 하거나 누구누구의 온 몸에 혈흔이 낭자하다거나 누구누구가 족쇄와 수갑을 차고 소리를 낸다거나 했는데 고함소리와 표정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모골이 송연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캉성은 유물론자로 아예 선악에 보응이 있다거나 무슨 신(神)과 귀신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지만 그러나 죽기 전에 그가 박해하여 죽게 만든 원혼들이 찾아와 목숨을 갚으라고 했다. 그가 귀신이니 원귀(寃鬼) 따위를 믿지 않는다고 하여 명(命)을 갚지 않는단 말인가? 캉성은 죽기 전에 원귀들이 와서 목숨을 독촉했으면 사후에는 모든 것이 끝인가? 그렇게 많은 원귀와 원혼들이 어딘들 그의 명을 독촉하지 않겠는가, 한 생에 다 갚지 못하면 생생세세에 갚아야 하는데 모든 빚을 다 갚을 때 까지 줄곧 그렇다.
불가의 《열반경(涅槃經)》에는 “선악에는 보응이 있는데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는 것과 같으며 삼세의 인과는 순환하며 조금도 어긋남이 없다[善惡之報,如影随形;三世因果,循環不失].”라고 하였다. 보응은 돈을 빌려주는 것과 같은데 비록 단기(短期)와 장기(長期) 대부가 있지만 그러나 단기이건 장기인건 간에 기간이 되면 모두 갚아야하고 빌린 만큼 그대로 갚아야한다. 단지 갚는 시간과 이자가 다를 따름이다. 선악의 보응도 이와 같아서 보응이 없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아직 도래하지 않았을 뿐이며 시간이 도래하면 모든 것을 갚아야 한다. 캉성은 보응을 믿지 않았지만 그러나 원귀들은 마찬가지로 그를 찾아와서 목숨을 요구하였다. 인과의 보응은 당신이 믿든지 믿지 않든지 상관 없으며 또한 당신이 제왕이나 재상이건 평민 백성이건 상관이 없는데 선악의 보응이라는 이 진리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며 아무런 차이가 없다. 도가의 《태상감응편》에 “화복(禍福)은 문이 없지만 오직 사람이 스스로 자초한 것이며 선악의 보응은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는 것 같다”는 말이 있다. 세상에은 선악에 보응이 있다는 사례가 이렇게 많아서 세인들을 일깨우고 있으며 이렇게 많은 성현(聖賢)들이 모두 선악에는 보응이 있음을 세인들에게 알려주었다. 세인들이여 절대로 자신의 미래를 웃음거리로 만들지 말라. 선과(善果)와 악과(惡果)는 모두 자신에게 달렸다.
원신은 불멸하고 선악에는 반드시 보응이 있다. “신멸론”은 끝장날 때가 되었다.
문장완성:2004년 5월 28일 문장발표:2004년 5월 29일 문장갱신:2004년 5월 29일 오후 2시 31분 15초 원문위치 :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4/5/29/75858.html
|
그러고보니까 저도 몇 년전에 서서 호흡을 하는데 옆에서 씩씩 거리는 소리가 들려서 눈을 살며시 떠서 보곤 하였거든요... 꼭 한박자씩 틀린 숨소리... 사람은 없고... 무서웠는데 ^ ^ 07.01.29 1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