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이룡이 1801년 생원시에서 작성한 시권이다.
본 시권에서는 안이룡의 등수가 ‘一之四’로 전체 4등을 하였음과 그 자호가 ‘五岡’으로 岡軸의 다섯번째 시권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본 시권에서는 그의 성적을 주묵으로 ‘次上’이라 표시하였으며, 중요한 부분은 주묵으로 점을 찍은 것을 볼 수 있다.
순흥안씨 고문서중 ‘시권7’은 본 시권의 시험을 보기 전에 이미 작성된 그것으로 보인다. 五岡중간 좌우 一之四 양쪽 이에 대한 설명으로, ‘生員一等第四人’이라 나중에 붙인 종이가 있다.
과거의 종류와 과목이 다양했듯이 시권도 시험 과목과 방식에 따라 여러 가지 종류가 있을 수 있다.
우리가 흔히 보는 제술 시험의 시권 이외에 문·무과와 역과의 강서 시권과 사자 시권이 바로 이것들이다.
강서는 사서삼경 등 경전의 임문(臨文 : 책을 눈앞에 펴 놓고 읽는 일) 또는 배강(背講)·배송(背誦)을 통해 시취(試取)하는 방법이므로 답안 작성을 위해 시권이 필요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시험 절차상 시험문제를 내고, 채점내용을 기록해야 했기 때문에 시권이 필요했다. 이러한 필요성에 의해 작성된 시권이 바로 강서 시권이다. 즉 강서 시권이란 창작한 글을 쓴 답안지가 아니라 시험출제 과목(주로 사서삼경)과 그 점수를 기록한 일종의 구두(口頭)시험의 채점표인 셈이다. 따라서 시권의 양식도 제술 시험과는 다르다.
해남윤씨 윤이석(尹爾錫, 1626∼1694)의 시권의 경우 시험 과목으로는 ≪주역 周易≫≪시전 詩傳≫·≪서전 書傳≫·≪논어 論語≫·≪맹자 孟子≫·≪중용 中庸≫·≪대학 大學≫ 등 삼경 사서가 치러졌다.
그리고 과목 아래로 그 과목의 시험문제, 점수(純通·通·略·粗), 시관의 서명(署名)이 있다. 시험문제 오른쪽에는 채점된 점수를 합한 종합점수(十一分半), 그리고 천자문의 자호가 있다. 잡과의 사자(寫字) 시권도 시험명을 명시한 점, 문제와 답안을 함께 기록한 점, 사조(四祖)를 모두 기록한 점 등은 제술 시권과 같다.
다만 시험문제에서 사자할 부분을 자(自)∼지(止)로 표시해 주었고, 답안 내용이 제술 답안처럼 창안하는 것이 아니라 출제한 책의 일부를 베꼈다는 점에서 제술 시권과 다르다.
幼學安爾龍年三十八本順興居安東
父學生 敏修
祖學生 井瑞
曾祖學生 必昌
外祖道德郞柳潝本豐山
問云云
生員一等第四人
對於戱中庸有自誠明自明誠之訓而先儒以自誠明當之以夫
子之不惑以自明誠當之以孟子之不動心是知夫子之不惑亞聖之不
動心固是一事而亦不無誠而明明而誠之差異耳噫知明見澈無所
滯碍者夫子之不惑也盡心知性無所疑懼聖之不動心也則是
知其不惑卽是不動心之謂也而德立而道明則夫子之不惑吾知其自誠
而明也道明而德立則亞聖之不動心吾知其自明而誠也不惑與不動
雖無同異之可論而自誠與自明豈無地位之差別乎而況生知安
行之聖固無積累之漸而循序漸進之訓自是夫子之謙辭則
尤不可以夫子之不惑同於亞聖之不動心矣倘所謂同而者非耶
嗟夫朱夫子嘗論大舜用中成湯執中而曰執中則同而其所以執中則亦
不無彼此之別愚於夫子之不惑孟子之不動心亦云爾請申之行年
四十是道明德立之時故知極其明見無不澈而事物之理皆無所疑於心
則夫子所謂不惑者此也見道分明遇事無疑而天下之物不足以動其中
則亞聖所謂不動心者此也噫知明見澈者夫子之不惑盡心知性者亞
聖之不動心則不惑與不動心固是一事而亦豈無誠而明明而誠之差
異耶何明之不惑旣是無所疑懼之謂也不動心又是無所疑懼之謂也
故先儒論不惑曰於事理之所當然者無所疑釋不動心亦曰於事之所
當然者無所疑此可見不惑與不動心無同異之可言而若言其所以不惑
所以不動心則孔子之不惑無所事於不惑也孟子之不動心猶未免有意
於不動心□…□有異者耶嗚呼孔子之不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