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개혁주의를 지향한다는 교단의 목사·신학자들 간에 그리스도의 능동 순종 문제로 때늦은 논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의견을 달리 하는 상대방에게 그리스도인답지 않은 칼과 가시가 담긴 말로 공격을 하고 심지어는 이단으로 정죄하려는 시도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불필요하게 날카로운 말과 이단 정죄를, 개혁주의 내부의 총질과 분열에 사용하지 말고, 신촌쥐 안중회 베리야 구원파 신사도 신비주의 등 진짜 이단과 사이비 등에게 사용하여 초신자와 연약한 성도들을 보호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은 초신자나 평신도에게 쉬운 교리는 아닙니다. 그러나 자꾸 거론은 되니까 조금 설명은 해야 해서 서민들의 백과사전인 위키백과를 인용하니 그것을 한번 살펴봐 주십시오. 위키백과의 서민적이고 간략한 설명조차도 이해되지 않는 평신도들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정도만 열심히 학습해도 됩니다. 직장생활로 가정살림으로 바쁜 평신도들이 성경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정도만 읽기에도 바쁘실 겁니다.
서민적인 백과사전(위키백과)이라고 해도 쉽지 않을 분을 위해, 그것의 중요내용을 네모박스 안에 먼저 보여 드리고, 박스 밑에 위키백과 내용을 링크로 첨부합니다.
- 개신교 기독교 신학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the active obedience of Jesus Christ)은 그의 의식적 순종 (preceptive obedience)이라고 불린다.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에 있어서 그의 행위 전체를 포함하고 있다고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것이다. 개혁 신학에서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은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의 칭의의 일부로 그들에게 그의 의의 전가가 되는 것으로 믿는 것이다.
- 그리스도의 능동적인 순종은 초기 종교개혁부터 핵심 교리의 일부분이었습니다. 우르시누스(Zacharias Ursinus)가 1561년에 작성한 대요리 문답을 통해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작성할 당시에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전가를 고수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알미니안주의는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전가를 반대한다. 루이스 벌꼽에 따르면 아르미니안주의는 칭의를 단순히 타락전 아담의 상태에 인간을 둔다고 한다.
- 미국 장로교 신학자이며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설립자인 존 그레섬 메이천은 그의 친구인 존 머레이에게 마지막 전보에서 "나는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에 대하여 대단히 감사한다"라고 썼다. 그것없이는 희망이 없다고 했다.
아래는 위키백과 내용 전문입니다. 장황하지 않고 그나마 초신자와 평신도들이 보시기에 편하실 겁니다. 이것마저도 이해하기 어려우시면 그냥 넘어가시고, 성경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보세요.
첫댓글위의 간략하고 서민적인 설명으로 부족한 분은, 번역서가 아닌 국내단행본인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언약)의 저자 김재성 교수님이 책 머리에 쓰신, 아래의 설명을 참고하시면 도움이 되실 겁니다. ------------------------------------------------
칭의교리의 정립과 발전과정에서, 후기 종교개혁자들과 청교도들이 두 가지 순종의 개념을 전가의 근거로 강조했다. 종교개혁 후기 신학자들과 17세기 정통 개혁주의 신학자들이 거듭되는 로마 가톨릭과의 논쟁 속에서 그리스도의 속죄론을 정교하고 세밀하게 재정립하였다. 그리스도가 감당했던 지상에서의 속죄 사역은 그리스도의 온전한 순종을 근간으로 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그리스도의 순종은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으로 구성되었음을 제시하였다.
필자가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이라는 신학 용어의 출처에 대해서 지금까지 나와 있는 저서들을 조사해 본 결과, 이 용어의 근원에 해당하는 개념을 가장 먼저 사용한 신학자는 마틴 루터였다. 하지만, 루터파 신학자 메니누스가 그리스도의 능동적, 수동적 순종이라는 개념을 정확하게 구별했고, 루터파 신학총론인 『일치신조』
기본적으로는 성경에 근거한 것이고, 초기 종교개혁자들의 저술에서 발전시킨 것이다. 칭의교리의 핵심에 해당하는 그리스도의 의로움을 좀 더 깊이 이해하려고 할 때, 그리스도가 자기 백성들을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대속적이며 형벌적 속죄의 죽임을 당하셨다는 점을 성경이 기본사항으로 증거 한다.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우리의 죄를 위해서 죽으셨다” (고전 15:3). 개혁주의 정통신학자들은 칭의의 기초가 되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이란 결국 온전한 순종이라고 증거를 제시했다. 이를 입증하는 성경 본문들을 철저히 분석하면서,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으로 구분해서 설명했다.
베자에서부터 우르시누스, 올레비아누스, 무스쿨루스, 잔키우스, 토마스 카트라?, 퍼킨스, 더들리 펜너, 로버트 롤록, 로버트 하위, 삐에르 두 물랭(Pierre Du MuMoulin, 1568-1658), 크레이그, 월터 트레버스, 그리고 17세기 개혁주의 정통신학자들로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작성했던 신학자들 대부분과 폴라누스, 볼레비우스, 뛰르땡, 보에티우스(Gisbert Voetius, 1589-1676),
보에티우스(Gisbert Voetius, 1589-1676), 코케이우스(Johnnes Cocceius, 1603-1669), 사무엘 러더포드(Samuel Rutherford, 1600-1661), 존 오웬, 토마스 굳윈, 챠르녹, 암브로스, 존 번연(John Bunyan, 1628-1688), 토마스 보스톤(Thomas Boston, 1676-1732) 등이 이중 전가의 교리를 지키면서, 역사적 상황의 변화와 새로운 신학적 쟁점들에 대처해야만 했었다.
이들 후기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칭의론과 전가교리를 더욱 정교하게 체계화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순종을 기초로 하는 의로움의 전가교리를 구성하기에 이르렀다. 루터와 칼빈의 시대에는 사용하지 않았던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이라는 개념을 내세우게 된 것은 그것이 칭의교리의 왜곡과 회의론자들의 의구심을 해소하는 데 유익했기 때문이다. 칭의론과 의로움의 전가교리를 확고히 정립하는데 더 확고한 근거가 필요했다. 만일 개혁주의 정통신학이 무너지게 된다면, 교회는 혼란과 변질된 상태에서 벗어날 길이 없었다. 17세기 개혁주의 교회와 신학자들은 온갖 정치적인 압박 속에서 분투하고 노력했다. (김재성)
그리스도께서 능동적으로 자발적으로 온전하게 하나님께 순종하셨고, 모든 율법을 순종하심으로 그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어 우리가 의롭다함을 받게 되었다는 칭의 교리는 우리가 잘 고수해야 할 핵심교리라고 생각합니다. 추후 능동 순종과 수동 순종에 대해서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첫댓글 위의 간략하고 서민적인 설명으로 부족한 분은, 번역서가 아닌 국내단행본인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언약)의 저자 김재성 교수님이 책 머리에 쓰신, 아래의 설명을 참고하시면 도움이 되실 겁니다.
------------------------------------------------
칭의교리의 정립과 발전과정에서, 후기 종교개혁자들과 청교도들이 두 가지 순종의 개념을 전가의 근거로 강조했다. 종교개혁 후기 신학자들과 17세기 정통 개혁주의 신학자들이 거듭되는 로마 가톨릭과의 논쟁 속에서 그리스도의 속죄론을 정교하고 세밀하게 재정립하였다. 그리스도가 감당했던 지상에서의 속죄 사역은 그리스도의 온전한 순종을 근간으로 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그리스도의 순종은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으로 구성되었음을 제시하였다.
필자가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이라는 신학 용어의 출처에 대해서 지금까지 나와 있는 저서들을 조사해 본 결과, 이 용어의 근원에 해당하는 개념을 가장 먼저 사용한 신학자는 마틴 루터였다. 하지만, 루터파 신학자 메니누스가 그리스도의 능동적, 수동적 순종이라는 개념을 정확하게 구별했고, 루터파 신학총론인 『일치신조』
루터파 신학총론인 『일치신조』(1577)에서 보다 더 정확하게 표현되었다.
기본적으로는 성경에 근거한 것이고, 초기 종교개혁자들의 저술에서 발전시킨 것이다. 칭의교리의 핵심에 해당하는 그리스도의 의로움을 좀 더 깊이 이해하려고 할 때, 그리스도가 자기 백성들을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대속적이며 형벌적 속죄의 죽임을 당하셨다는 점을 성경이 기본사항으로 증거 한다.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우리의 죄를 위해서 죽으셨다” (고전 15:3). 개혁주의 정통신학자들은 칭의의 기초가 되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이란 결국 온전한 순종이라고 증거를 제시했다. 이를 입증하는 성경 본문들을 철저히 분석하면서,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으로 구분해서 설명했다.
베자에서부터 우르시누스, 올레비아누스, 무스쿨루스, 잔키우스, 토마스 카트라?, 퍼킨스, 더들리 펜너, 로버트 롤록, 로버트 하위, 삐에르 두 물랭(Pierre Du MuMoulin, 1568-1658), 크레이그, 월터 트레버스, 그리고 17세기 개혁주의 정통신학자들로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작성했던 신학자들 대부분과 폴라누스, 볼레비우스, 뛰르땡, 보에티우스(Gisbert Voetius, 1589-1676),
보에티우스(Gisbert Voetius, 1589-1676), 코케이우스(Johnnes Cocceius, 1603-1669), 사무엘 러더포드(Samuel Rutherford, 1600-1661), 존 오웬, 토마스 굳윈, 챠르녹, 암브로스, 존 번연(John Bunyan, 1628-1688), 토마스 보스톤(Thomas Boston, 1676-1732) 등이 이중 전가의 교리를 지키면서, 역사적 상황의 변화와 새로운 신학적 쟁점들에 대처해야만 했었다.
이들 후기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칭의론과 전가교리를 더욱 정교하게 체계화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순종을 기초로 하는 의로움의 전가교리를 구성하기에 이르렀다. 루터와 칼빈의 시대에는 사용하지 않았던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이라는 개념을 내세우게 된 것은 그것이 칭의교리의 왜곡과 회의론자들의 의구심을 해소하는 데 유익했기 때문이다. 칭의론과 의로움의 전가교리를 확고히 정립하는데 더 확고한 근거가 필요했다. 만일 개혁주의 정통신학이 무너지게 된다면, 교회는 혼란과 변질된 상태에서 벗어날 길이 없었다. 17세기 개혁주의 교회와 신학자들은 온갖 정치적인 압박 속에서 분투하고 노력했다. (김재성)
위의 댓글을 본문에 집어 넣지 않은 이유는 본문의 내용이 장황하고 복잡해져서 초신자나 평신도가 아예 읽기 싫은 마음이 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보실 분만 참고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능동적으로 자발적으로 온전하게 하나님께 순종하셨고, 모든 율법을 순종하심으로 그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어 우리가 의롭다함을 받게 되었다는 칭의 교리는 우리가 잘 고수해야 할 핵심교리라고 생각합니다. 추후 능동 순종과 수동 순종에 대해서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네, 그렇습니다. 교리가 개념의 명칭을 붙인 것이지만 이미 성경에 나오는 내용이고 개혁주의 선진들이 가르친 것이므로 인정하고 존중해야할 것이 능동 순종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설명 잘 들었습니다. 어느 정도 이해가 되네요.
그로세요? 다행입니다. 다음에 도 쉽고 체계적인 글 시도 해볼게요.
능동 순종이 핫 이슈가 되어 있는 것 같더군요. 다른 정통교단의 목사, 신학자를 향하여 이단 운운한다면 어불성설이고 이상한 사람입니다.
네, 이단이 아닌 다른 정통교단을, 그것도 개혁주의를 지향하는 교단을 이단으로까지 얘기하면 이건 뭐 막나간다는 이야기이죠ㅠㅠ
능동적 순종 교리를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스프로울 목사님, 존파이퍼 목사님 등의 영상과 서적을 통해 잠깐 접해본 바가 있습니다.
그리고 제 개인적으로 로마서를 묵상 연구하면서도
이 능동적 순종의 교리가 당연하고 전혀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능동적 순종에 대해 그렇게 반대하시는 분들의 논리가 무엇인가요 도대체?
그분들이 왜 이 능동적 순종의 교리를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으시는지...
형제님은 지혜와 겸손을 가지셨기에 이해하신 거고요. 또 성경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진영논리•편 가르기를 버리고 솔직하게 상대방의 주장을 인정하는 지혜와 겸손이 있다면... 능동순종을 이해하거나 이해하려고 노력할 것 같습니다.
이른 새벽이 오셨는데, 컨디션 관리 잘 하시고 오늘 하루도 좋은 날 되시길 기원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