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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무왕 ‘오성취합’ 보고 4만5000군사로 70만 대군 맞서
일러스트=박한규
<별보는 어른아이>
고현정이 주연을 맡았던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은 최고 권력에 도전할 뜻을 비치며 “하늘의 뜻이 조금 필요합니다”란 명대사를 남겼다. 여기서 말하는 하늘의 도움이란 천명을 말한다. 천명을 얻지 못하고는 천하를 얻을 수 없다는 말이다.
옛날 우리나라와 중국에서는 왕이나 천자가 되기 위해서는 하늘의 명령, ‘천명(天命)’을 얻어야 한다고 믿었다. 광대한 나라를 다스리는 자의 권위와 사명을 나타내기 위한 추상적 개념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별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세계 어느 민족의 신화를 보더라도 하늘, 하느님은 모든 신들의 우두머리다. 비도 하늘에서 내리고 비를 몰고 오는 비구름도 하늘에 떠 있고 무서운 천둥 번개도 하늘에서 떨어지니 공경하는 마음과 두려운 마음을 함께 갖는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하늘을 섬긴다거나 ‘천명’이라는 말이 단순히 미사여구였을까? 아니면 실체가 있는 것이었을까? ‘천명’은 실제 하늘과 별자리를 관측해 얻은 결과를 바탕으로 사상적으로 승화시킨 개념이었다.
천하를 얻기 위해서는 ‘천명’을 얻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천명’이라고 부를만한 천문현상이 실제 있었다는 말인가? 또 천문현상이야 누구나 관측이 가능하거늘 콕 집어 ‘아무개’에게 천명이 내린다고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나아가 동시대인 모두가 천명이 ‘아무개’에게 내린 사실을 거리낌 없이 인정한다는 말인가? 이 문제에 대한 역사적이고 실제적인 답을 얻는다면 고대인들이 생각한 하늘 개념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듯하다.
주나라 무왕은 상나라의 마지막 임금이었던 폭군 주왕을 물리치고 천하를 얻었다. 주나라와 상나라의 한판 싸움을 ‘목야전투’라 부른다. 당시 상나라는 70만 대군이었고 주나라 무왕은 4만5000 군사들뿐이었지만, 전쟁이 일어나자 상나라 군대와 모든 상나라 제후들이 주 무왕의 편으로 돌아서서 상나라 주왕을 공격했다. 상나라 주왕은 궁궐에 붙은 불에 타 죽었다. 적은 군대에도 불구하고 주 무왕은 승리를 장담할 수 있었을까? 왜 상나라 군대와 제후들은 주 무왕의 편을 들었던 것일까?
주 무왕의 아버지 문왕은 기원전 1059년 5월말, 서쪽 지평선 위에서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이 뭉쳐있는 ‘오성취합’ 현상을 목격한다. 동양 별자리 28수 가운데, 정수(井宿) 바로 위에서 오성취합이 일어난 것이다. 정수는 남방주작7수의 으뜸자리이며 동시에 목성의 12년 주기 운행자리 가운데 하나인 ‘순화’를 가리킨다.
정수와 순화는 모두 주나라를 상징하는 하늘 별자리에 해당한다. 주 문왕은 정수에 발생한 오성취합을 보고 천명이 내렸다고 판단하고, 왕의 자리에 앉는 동시에 달력을 새로 개창한다. 달력을 개창하는 일은 새로운 왕조의 탄생을 알리는 일이었다. 주 문왕이 죽고 주 무왕의 삼년상이 끝난 뒤, 오성취합이 있던 해로부터 12년 뒤인 기원전 1057년, 목성이 다시 정수·순화 별자리에 들어온다. 주 무왕은 천명의 도래로 여기고 상나라 정벌에 적은 군대로 나섰고 마침내 천하를 얻게 된다.
주 무왕의 고사를 통해 천명에 대한 궁금증에 답을 얻을 수 있다. 첫째, 천명이란 목성이 반드시 포함된 행성들의 모임을 의미한다. 둘째, 하늘 별자리는 지상의 나라에 해당하는 별자리가 있어 미래의 일을 미리 알려준다고 믿었다. 정수·순화 별자리가 주나라를 의미하였기 때문에 주나라(정수·순화)에 천명(오성취합)이 내렸다고 생각했다. 셋째, 상나라 말년에는 주왕의 폭정이 극에 달했기에 모두가 새로운 세상을 열망하고 있었으며, 천명이 주나라에 내린 사실을 모두 인지하고 있었기에 상나라 군대와 제후들은 배신이 아니라 오히려 폭군을 멸하라는 하늘의 명을 따른다는 명분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천명에 대한 주 무왕의 고사와 함께 오성취합을 천명으로 여기는 사고체계는 유방의 한나라 건국에서도 나타난다. 기원전 205년 5월말, 해질녘 서쪽 하늘에 오성취합이 발생한다. 한나라 유방은 이를 천명이 내린 것으로 해석했고 항우와 전쟁을 벌여 마침내 기원전 202년 장강남북을 아우르는 천하통일을 이룩한다.
이밖에도 전국시대 진나라 문공이 천명을 얻어 싸우지 않고 초나라를 물리친 사건도 유명하다. 한나라의 경우는 건국의 정당성을 위해 나중에 기록된 내용으로 보이지만 오성취합과 천명이 얼마나 긴밀하게 고대인들의 사상체계에 뿌리내려 있는지를 보여준다.
농경사회로 접어들면서 날씨와 절기를 미리 아는 일은 이전에 비해 극히 중요해졌다. 하늘을 관측하여 때를 백성들에게 알려준다는 관상수시(觀上授時)는 제왕이 지녀야 할 으뜸가는 덕목이기에 천문관측을 ‘제왕학’이라 여겼다. 농경사회에서는 하늘이 생사여탈권을 움켜쥔 ‘절대신’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한 하늘을 의지를 지닌 인격체로 여기는 것은 당연하다.
폭군이 나타나면 하늘을 보고 새로운 세상을 향한 열망을 투영하고자 하였을 것이다. 수많은 폭군이 있었을 것이고 또 많은 항거가 있었을 것이다. 천명을 얻지 못한 항거는 외로웠을 것이고 천명을 얻은 항거는 무수한 동지와 함께 성공의 열매를 맛보았으리라 생각하니 집단이 공유하는 묵시적 동의란 참으로 무섭다.
어렸을 적 군인정권이 연이어 들어설 때 신문지상에, 온갖 찌라시에 하늘이 낸 사람이라니 어릴 때부터 남달랐느니 하는 요설들이 잠꼬대처럼 바람을 타고 뒷골목을 돌아다녔다. 우주 비행선을 타고 달나라를 왔다 갔다 하는 세상에도 죽은 ‘천명’이 제갈량처럼 살아 활개를 쳤던 것이다. 천명이 꿈틀대는 세상은 어지러운 세상임을 하늘을 보며, 별을 보며 깨닫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