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 지나 찾아간 여름이
올여름은 유난히도 더웠다.
40도를 오르내리는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무더위에, 사람들은 재앙(특정 인물)이가 잘못해서 찾아온 재앙(災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긴 오랜 가뭄이나 폭염도 천재(天災)중의 하나인데, 올해의 폭염은 111년만의 초특급이라니, 그렇게 입에 오를 내릴 만도 하다.
올 여름은 바다나 계곡 한번 찾아보지 못하고, 여름 한철을 보내기도 했다.
나는 원로들 모임에서 어디 계곡이라도 한번 갖다 오자고 제안했더니, 장로 한분이 하시는 말씀이 어느 계곡을 찾아 갔는데, 자동차가 1대도 보이지 않더란다.
까닭은 계곡 안쪽에 올라가보니, 물이 전혀 흐르지 않고 있더라는 것이다.
얼마나 지독한 가뭄이었나를 실감나게 느껴보았다.
나는 가뭄이나 폭염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고, “여름”이라는 애견에 얽힌 글을 써보려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여름”이는 우리 고명딸이 애지중지 기르던 애견 이름이다.
딸내미는 서른도 훌쩍 지난 애기 엄마가 되었지만, 동물들을 어찌나 좋아하는지 언제나 개나 고양이를 품에 안고 사는 지독한(?) 취미의 동물애호가이다.
어렸을 적에 집에서 키우던 진돗개를 이사하면서, 다른 분께 주고 왔더니 사흘이나 울면서 그 개를 못 잊어 했는가 하면, 어느 해 추석날 저녁에는, 커다란 개한마리를 집으로 데려온 에피소드도 있었다.
데려온 개는 썰매를 끄는 유명한 명견인데, 그 개가 주인이 잠시 줄을 풀어 놓은 사이 밖으로 뛰쳐나와, 비오는 거리를 방황하다 만났던 모양이다.
덩치 큰 무서워 보이는 개이련만, 손짓을 하니 졸졸 따라왔다며 현관문을 들어서는데, 우리는 기절할 번 하기도 했다.
파출소로 연락을 취해 다음 날에 주인을 찾아주긴 했지만, 그만큼 딸내미는 무서운 줄도 모르고 겁 없이 동물들에 친절을 베풀며 다가가는 통 큰 기질도 있다.
취미나 기질은 그렇다 치더라도, 근자에는 자기 집을 아주 동물원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단독주택이나 정원이 있는 집 같으면, 무어라 하겠는가!
집은 코딱지만큼 비좁은 지하빌라에서, 고양이와 개를 기르고 있으니 복장 터질 노릇...
처녀시절 서울 상봉동 옥탑 방에서, 고양이 두 마리를 기르다가, 결혼을 하고 애기를 낳고선 정릉으로 이사를 하면서, 우리가 하도 없애 달라 간청하니 정리가 됐었다.
그러다가 어느 샌가 고양이 한 마리를 다시 키우기 시작했다.
그런가 하면 사위가 길가에 불쌍해 보이는 고양이가 있더라며 두 마리를 주어왔다.
그렇게 하여 세 마리로 늘어났고, 거기에 덧붙여 시댁에서 가져왔다며 개한마리가 추가된 것이다.
개한마리에 고양이 세 마리면, 어린애 하나 키우는 것보다 더 벅찬 일이다.
말썽부리는 놈 뒤치다꺼리에다, 사료 대와 부수적인 비용까지 만만치가 않기 때문이다.
딸과 사위는 맞벌이 부부로써, 새벽 일찍 직장에 나가야만하고, 저녁 늦게 집에 돌아오다 보니, 자식 하나 돌보기도 힘에 겨운 일인데, 네 마리나 되는 그놈들까지 보살핀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싫은 소릴 해도 마이동풍으로 흘려버렸다.
하지만 나의 끈질긴 설득에, 마지못해 개를 나에게 넘겨주었다.
개는 너무 예쁘고 영리한 놈이라서 절대 안 된다고 했었지만, 그래도 내가 길러준다니 양보를 해준 것이다.
우선 내가 데려오긴 했지만, 막상 키울 장소가 마땅치 않아, 성거라는 곳에 사는 고향 아는 동생 집에 갖다놓고 돌보기로 하였다.
그러다가 드디어 대형사고가 터졌다.
고양이 한 마리가 세끼 두 마리를 낳더니, 그 다음 날에는 다른 놈이 무려 여섯 마리를 낳더란다.
누굴 세끼를 주고 싶어도, 쉽게 가져가겠다는 임자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다가 세끼 한 마리는 죽었다고 하며, 한 쌍은 임자를 만나 분양해 주었단다.
그렇다 하더라도 고양이 여덟 마리를 키운다는 것은 끔직한 일이다.
상황이 이 지경이 되다보니, 내가 발 벗고 나서서 정리해주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양이 여덟 마리를 몽땅 천안으로 데려올 작정을 하고 서울로 올라갔다.
그러나 한꺼번에 전부를 데려올 수도 없었다.
세끼가 분양할 만큼 컸으니, 가방 하나로는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불가피 두 차례로 나누어 가져오게 되었는데, 더운 여름 날 무거운 가방을 울러 매고 끙끙거리며, 지하철로 오토바이로 옮겨 다닌 그 사연을 시시콜콜 다 말할 수는 없다.
아무튼 고양이를 데려다가, 전에 개를 맡긴 동생 집에 가져가니, 그곳에서도 개와 고양이를 맡아주기는 너무도 벅찬 일이 되었다.
인정많은 동생이라 이해는 해주었지만, 이미 그집에도 개와 고양이 닭들까지 초만원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가피 단안을 내렸다.
개는 잘 길러줄 분에게 양도해주기로....
물색해보니, 고 종원 교수가 제일 마음에 들어 낙점을 했다.
고 교수는 부부가 동물을 지극히 사랑하고, 닭과 토끼등을 기르고 있는데다,전에도 내가 개를 맡긴 적이 있는데, 알뜰히 보살펴 준 전력이 있어, 사전에 허락을 득하고 개를 데려갔다.
부부는 가져간 개를 보면서, 마음에 흡족한지 반색을 하며 환영해 주었다.
그러면서 개 이름이 뭐냐고 물어왔다.
“여름”이라고 개 이름을 일러 주었더니,아니 여름 지나 어제가 입추인데, 또 여름이 왔다고??
공교롭게도 “여름”이는 입추를 지난 다음 날,새 주인을 찾아간 셈이다.
여름이라는 이름이 진짜냐고 거듭 확인 하면서, 가을이 오는 줄 알았는데, “여름”이가 우리 집에 다시 왔다며 한바탕 박장대소를 했다.
새 주인을 만난 여름이가, 많은 사랑 받으며 잘 지내주길 바란다.
나도 종종 너를 만나러, 가을 이고 겨울이고 찾아가 “여름아!” 하고 너를 쓰다듬어 주리라.
또 너의 엄마 아빠, 그리고 서준(손자)이도, 여름이 너를 보러 오는 날 있을 것이다.
2018년, 8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