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검정회 대사범 자격시험을 치러 갔다. 원서 접수는 한 달 전에 인터넷으로 했다. 응시료는 5만 4천 원인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결과는 한 달 뒤에 발표가 된다고 한다.
한자능력검정 시험은 공인 급수 발급 기관이 7개 정도다. 국가가 급수 자격증을 인정해 주는 기관이다. 시험의 난이도는 기관마다 차이가 난다. 나는 한국어문회 1급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1급 위에 특급이 있는데 시험 문제가 준비하는데 너무 까다롭고 귀찮을 정도로 독음과 훈음 문제가 많아서 짜증도 나고 잘 외워지지 않는 나이가 되어 버려서 포기했다. 그러다 검정회 대사범급을 보니 이건 한문 해석 시험이었다. 한자의 훈음을 많이 알고 독음을 외우고 한자를 쓰는 유형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에겐 아주 유리하거나 적합한 시험이 검정회 대사범급 시험이었다.
고사장은 20분 일찍 입실을 하라고 한다. 검은색 볼펜이다. 컴퓨터용 싸인펜이 아니다. 수정테이프, 수험표, 신분증을 지참하라고 한다.
이번 시험은 104회였다. 생각보다 응시생이 적었다. 대사범급에 응시한 사람은 나 혼자였다. 이런 생소함과 낯선 느낌. 게다가 결시생도 있어서 내가 친 고사장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대구 지역 검정회 시험 분위기가 원래 이런가 싶다. 어문회는 몇 년 전에 시험 봤는데 1급 시험에도 사람들이 고사실을 가득 메웠던 기억이 있다. 그만큼 어문회 도전자들이 많고 어문회가 더 공신력이 있다는 걸까. 어문회 1급 시험도 굉장히 어렵다고 본다. 3500자를 다 외워야 하는데 거기에다가 한자어 쓰기 문제는 혀를 내두를 정도로 연습을 해야 한다.
검정회는 1급 위에 사범급, 사범급 위에 대사범급이 있다. 시험 준비를 위해서는 기출 자료를 다운로드했다. 최근 기출 시험지에서 30회 이전 분량의 자료를 풀어 보면서 준비를 했다. 눈으로 보고 읽고 때론 적기도 하면서 한 달 동안 준비를 했다. 결과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100문제 60분. 70점 이상이면 합격이다. 100문항 거의 해석 문제이고 단답형이나 한자 쓰기가 몇 문제 나온다. 1시간 동안 그냥 머리에서 해석되는 대로 써 내려가야 한다. 100문제를 다 쓰고 나니 팔이 후들후들 거린다. 빨리 쓰지 않으면 시간이 부족할지도 모르겠다. 글씨체에 신경 쓸 여가는 없는 것 같다. 나름 시간이 남을 줄 알았는데 준비하면서 답을 100문제 다 써 보는 걸 해 보지 않았더니 정확한 시간 계산이 없었다.
거의 기출문제에서 시험 문제 나왔다. 처음 보는 지문이 없었다는 점이 나름 행운이다. 그래도 정확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고 정답지의 말들이 떠오르지 않는다. 나의 해석 실력으로 답을 써 내려갈 수밖에 없다.
기출문제를 30회 분량을 한 번은 정독해 보았고, 그다음은 다시 20회 분량 정독을 하고, 하루에 한 번은 꼭 기출문제를 풀었다. 문제만 보고 눈으로 풀고, 정답지만 보고 풀기도 했다. 기출문제 푸는데 걸린 시간은 보통 하루에 한 번 30분 정도였다. 나 경우에는 어문회 1급 수준의 실력이 있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대사범급은 한문을 해석하는 문제다. 한자를 물어보거나 한자어, 사자성어, 유의자, 상대자, 부수, 약자 문제가 아니다. 한문 문장 번역문제다. 논어, 맹자, 대학, 중용에서 문제가 출제되고 다른 책에서도 인용된 문제가 나온다. 한문 문리가 틔였거나 한문 해석을 많이 해 본 사람이 접근 가능한 문제다. 대사범급이 한자능력시험의 제일 높은 수준의 급수시험이다. 검정회는 한자 실력에서 한문 실력으로 끌어올리려는 의도가 확실히 느껴진다. 어문회도 특급 문제는 한문 해석 문제가 상당 분량 나오지만 독음과 훈/음 문제가 꽤 많다.
시험이 끝나니 그래도 마음이 홀가분하다. 매일 외우고 공부하던 짐을 벗은 느낌이다. 뭐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공부를 또 해야겠지만 시험 부담감은 없으니 설렁설렁하겠지.
한 번 자격증을 취득하면 평생 효력이 있다고 하니 꼭 합격했으면 좋겠다. 답안지를 따로 주지만 수험 번호와 생년월일, 이름만 적고 번역과 답은 문제지에 적는다. 답안지는 시험 후 회수해 간다. 다른 급수도 똑같이 회수해 간다. 빼곡히 적은 답을 두 번 볼 시간이 없을 정도로 시간이 빠듯했다는 경험이 짜릿했다. 전국 단위로 대사범급 시험 응시생이 몇 명인지 궁금해진다. 오늘 하루도 무척 더웠는데 고사실은 에어컨을 틀어 시원하게 해 두었다. 주차장을 무료로 이용할 수 없었던 점이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