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을 본 소감
ㅡ 신대식 서양화가 (2019.06.02)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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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스토리는 단순한 전개를 끝까지 끌어가면서도 웃음과 비참한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런데 영화 제목을 "기생충"이 아니라, "존재의 공간" 또는 "존재의 방식"이라 했으면 한다.
이 영화의 존재의 공간에는 유명 건축가의 아름답고 안락한 주거환경 공간과 비밀지하실과 반지하 월세방이 있다.
이 공간들은 기생하는 벌레들이 아니라, 사회구조에서 희망과 노력의 성과에 기대가 없는 각기 단순하고 무계획한 생존의 공간과 존재의 방식들이다.
약간의 한국정치 상황과 남북관계의 배경이 등장하는데, 서민층이 기생충인지 중산층이 기생충인지, 곤란한 제목이라 생각되었다.
제목이 기생충이라면 자본에 기생하여 갑질하는 자들을 기생충이라함이 더 정확하지 않았을까?
부자는 심플하고 선하고 착하고 여유있는 사람으로 묘사하고, 서민을 그런 부자들에게 생명걸고 기생하는 기생충으로 묘사했다는 그런 설정이 더럽게 기분나쁘게 설정됀 제목입니다.
그 제목이 그런 설정인걸 보면 봉준호란 감독의 사고체계가 보수론리로 세뇌됀 갑질자본가의 시각이 몸에 배어서 바라본 거라고 보인다.
제목처럼 남의 집에 숨어 사는 인간에게 기생충이라 한다면 주제로 설정하는 감독의 시각도 심각히 변질됀 시각이고 그걸 그대로 받아들인 우리국민이나 한국말을 모른 칸느황금종려상 축하의 서계인의 정신도 걱정스럽다.
이 영화제목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서민층이나 중산층이라면, 앞으로도 스스로의 자존감 잃은 기생충으로 수용됀 친일친미의 사관과 일맥상통하는 사이비보수 자한당의 시각과도 같아서 변화를 기대할 수는 없다.
자본가의 갑질시각에서 바라본 제목의 기생충은 바껴야 한다고 본다.
존재의 현실에 미래의 기약도 희망도 불가능한 사회적 양극화의 고발이 영화의 핵심 내용이라면, 한국사회를 바라본 뒤틀린 보수와 진보의 시각이 바껴야 하는 것과 같다.
자본가에 기생하여 대다수의 서민층이나 중산층에 갑질하는 자들을 기생충이란 주제로 스토리에 약간이라도 대비시키는 내용이 필요했다고 본다.
결말부분에는 돈벌어 그 재벌의 집을 사야만 아버지를 구할 수 있는 반지하의 가족 아들에게 주어진 무거운 짐. 거기는 헛웃음만 나오는 현실이다. 무직자에게 어떤 확실한 직업이라도 전개되었더라면 한다.
영화의 고발은 좋았으나 구조적 변화와 상황의 기대는 무한정 무계획하고 답답한 것이 깐느황금종려상이 주는 기대의 아쉬움이었다.
내가 봉준호였더라면 영화개봉 전에 시나리오 보충하여 반지하방 아들에게 아버지처럼 운전기사로 취직되는 설정에서 엔딩을 보였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셰익스피어의 비극문학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poetica에서 문학적 비극이 가져다주는 카타르시스catharsis가 컸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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