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자네는 필수 요원일세
나의 무등산에서의 근무가 길어졌다.
당시에, TV 중계소는 직제상으로 '중앙방송국 기술부 중계과 지방계'
소속이었다.
중앙방송국 기술부장은 직급이 2급 을인 부이사관에 해당하는 부기감
(副技監)이고, 중계 과장은 서기관에 해당하는 기정(技正), 지방 계장은
사무관에 해당하는 기좌(技佐)라고 불렀다.
이어서 4급 갑은 기사(技士), 4급 을은 기사보(技士補), 5급 갑은 기원
(技員), 5급 을은 기원보(技員補)라고 호칭하였다.
비록 직제상으로는 중앙방송국에 속하였지만, 일상 관리 측면에서는
가까운 지역방송국 기술 책임자인 기술 과장이 중계소장 권한을 행사
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광주방송국 기술과 H 과장께서 나를 부르셨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이번에 신설된 무등산 TV 중계소 장비는 국산이
아니고 일본에서 제작한 NEC 사의 제품일세."
그 말씀을 듣고 나는 "네..그렇습니다." 라고 하였다.
이어서 H 과장께서는, "새로 설치한 장비들을 무리 없이 안정되게 운영
하려면 공사 현장에서 처음부터 지켜보고, 준공 후에 가진 장비 인수인계를
위한 현장 교육에서 NEC 회사의 담당자로부터 관련 내용을, 가장 충실하게
전달받은 Mr 구(具)가 꼭 필요하니, 당분간 다른 곳으로 근무지 옮길 생각을
하지 말게."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어, 나는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이 무등산 TV 중계소 운영상의
필수 요원이 되고 말았다. 시설 준공 후에 얼마 되지 않아 제작사에서 직원을
현지에 보내서 장비인계 겸 장비들에 대한 운영 교육을 실시한 바 있었다.
이 일을 맡았던 분이, 30대 중반의 '하세가와(長谷川)' 씨였다.
이분이 우리에게 교육하는데 주로 영어로 하였다. 비록 서툰 영어였지만
중간중간에 내가 질문도 하고, 다른 직원들의 궁금증도 전달하면서, 내 나름
대로 의사소통에 역할을 좀 하였더니, 이분이 하산하여 기술 과장께 결과를
전달하면서, 나에게 모든 것을 잘 인계하였다고 보고 후에 자기 나라로 돌아
간 것이다.
그 덕분(?)에, 나는 필수 요원 아닌 필수 요원이 되어 3년이 넘게 무등산을
지키게 되었다. 취업 초기 미륵산에서 근무 시에는 선배님들께서 나를 보고
'구 박사'라는 애칭으로 부르면서 아껴주시더니, 이곳 무등산에서는 뜻밖에도
'필수 요원'이 되어 내 실력과는 상관없이 사랑과 인정을 받으며 지냈으니, 실로
과분하고도 외람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