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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나침반 18>
1. 자연인이며 자유인으로
촌놈으로 산다
나는 정장차림을 싫어한다. 등산복캐주얼의 작업복을 늘 입는다. 칼날 같은 바지 주름, 반질반질한 구두코, 목을 조르는 넥타이 차림은 질색이다. 매일 머리카락을 면도날로 밀어낸다.
자연에 뒹구는 졸옹卒翁에게 무슨 꾸밈이 필요한가?
나는 86세의 산 꾼이다. 한 가지의 전문 분야로는 인생을 폭넓게 체험할 수 없기 때문에 공학을 전공하고도 인문․사회․과학 등의 나와 다른 남의 분야를 넘나들며 엿본다.
주말에는 두 배의 좋은 시간을 갖기 위해 주말레저농원 캠프를 내 나이 40세 때에 마련하여 46년간을 이어 오고 있다. 주중에는 일에 파묻혀 꼼짝도 못하다 주말에는 농원으로 도망쳐, 산에 오르고 밭을 일구며 자연바람을 쏘인다. 촌놈으로 사는 시간이 왜 이리도 좋은 것인가?
비닐캠프를 적시는 빗소리!! 오래전 사연들 한갓지게 떠돈다.
물소리, 새소리, 호미질이 즐거워 혼자인 나는 둘이 되고 싶어진다.
나는 텐트 속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죽음 전에 고통을 겪어 자유로운 넋을 얻기 위해’ 대지와 함께 먹고 잔다. 나태해지기 쉬운 편리한 집을 버리고 사유思惟와 고독을 즐기는 쪽으로 산다.
이런 생활이 그지없이 좋다. 살아있되 편안함을 찾는 노년의 삶은 사는 것이 아니라, 권태로운 삶이라고 여긴다. 자연이 주는 맑은 공기와 대지의 생명력과 나와 뒤엉켜 캠프에서 한 몸이 된다.
삶의 품격은 여가시간이 주는 선물이며, 품위 있는 교양, 정체성, 세련된 문화생활, 건강도 같은 맥락에서 만들어진다. ‘인생보험’과 ‘노후보험’은 주말레저농원의 머슴살이로 살 일이다.
인간은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속의 순수무구純粹無垢한 섭리攝理에 맞추어 살 때 세상에 더없는 평온平穩을 얻는다. 내게는 달리 길이 없다.
2. 행동하는 사람
나는 어김없이 매주 한 번 이상 등산, 캠핑, 여행, 농사일을 한다.
다듬어진 등산길보다는 장애물 경주 같은 산행이 흥미진진하고, 편리한 집보다는 야생의 캠핑이 찡하다. 숲이 부르는 소리··· 그냥 바람이 좋고 산마루가 그립다.
나무 가지사이로 비쳐드는 봄 햇살··· 실바람 한 자락··· 훌훌 멀리 떠돈다.
가파른 언덕을 마주하고 한판 승부한다. 유일한 무기는 죽고살기로 기어오르는 오기뿐이다.
나의 얼굴은 번데기요, 다리는 후들대지만 한발 한발 옮기는 발끝과 땅의 반력이 천연한 생명이다.
나이들수록 더 열심히 일하고, 더 많이 움직이는 모든 시간은 약이 되고 내가된다.
죽는 날 까지 몸을 혹사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유희로 세상의 숨은 뜻이 조금은 알 것 같다.
교양과 지식, 지성을 통합한 거시가치巨視價値grand theory 행동으로 삶을 경영한다.
격식에 억매이지 않는 그러나 추호도 흐트러짐 없이 세세한 눈으로 낮선 곳을 탐한다.
겉핥기 캠핑, 산행, 농사가 아닌 자연을 통해 삶의 방식을 낚아 올리는 시스템을 구축한다.
시스템은 삶을 자동화시킨다. 산을 통해 철없는 아이들처럼, 사소한 일에 연연하지 않는 의연毅然함으로 지식보다는 감성으로, 꾸밈보다는 내용으로 시스템에 길을 묻는다.
산과 자연은 인간이 정복할 수 없는 숭엄崇嚴한 경지이다. 인간은 자연의 한낱 낙엽에 불과하다는 것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삶’은 말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직접 행동하는 것이다.
우리가 산을 찾고 밭을 가꾸는 이유는 원초적 자연인으로 돌아가려는 인류의 오랜 꿈이다.
3. 삶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다
자연은 치유이다.
자연중심의 삶은 마음이 넉넉해지고 모든 근심걱정이 덜어져 개울물소리에 잠든다.
또한 벅찬 자유와 감성, 열정, 삶의 고마움으로 구름. 산마루, 노을, 숲에 허리 굽혀 절한다.
안개 속을 휘청거리고 호젓한 밤길을 떠돌며 별을 헤아리는 길 떠남이 사람을 만든다.
가정, 학교, 직장의 교육은 그때뿐이며 개인의 행동양식까지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지 못한다.
그 이유는 자연과 단절된 폐쇄적인 주입식 폐단 때문이다. 배우고자 하는 주인 의식이 자연스럽게 우러나와야 한다. 사람은 원초아적 본능 속에 억압을 싫어하고 자연의 품안에 안기려는 본성이 있다.
자연에서 자유롭게 뛰노는 해맑은 순진한 바보로 살 일이다.
노년을 자유롭고 힘차게 살려는 공격적 욕심으로 나는 26년 전부터 홀로 산다.
이와 같이 사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철학을 근본으로 한다.
자연이 사는 방식을 마음속으로 새기고 다듬어서 내가 살아야하는 행동을 그런 쪽으로 모아간다.
저질문화를 멀리하고 상부구조문화와 자연과 연동하는 창조의 삶을 제일로 삼는다.
가족 간에도 서로 소유가 아닌 각자가 스스로 자립하여 반짝이는 초월적 존재로 소통하며, 서로 부담을 주 지 않고 존중하는 개별화의 삶으로 행복을 나눈다.
자연이 스스로 존재하는 생태계의 이치를 功力을 들여 배워내어 인생을 단순화시킨다.
사랑과 행복을 위하여 결혼해 가족을 이루지만, 삶의 근본적 존재아유를 행동으로 옮기지 않은면, 결혼의 상투성에 평생 얽메어 고생한다.
결론은;
자녀를 어렸을 때부터 ‘주말레저농원’의 들판이나 또는 인공시설이 없는 순수자연에서 자유롭게 야생마로 놀게 하는 戱曲 같은 자유의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부모의 의무이며 자격이다.
이런 생활을 위해서는 무모가 앞서가는 선행인지학습을 하여 행위지성의 PD가되는 것이다.
‘부르디외’가 주창한 자연취향문화자산의 ‘구분 짓기’가 상부구조의 인성품격을 만든다는 것!!
늦잠을 자는 사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가족이나 남에게 떠넘기는 사람, 집안일을 하지 않는 것을 당연시하는 남자들, 하루 종일 남편의 퇴근시간만을 기다리는 부인들, 맹목적 자식사랑에 빠져 자아정체성을 잃은 부모, 사회성이 결여된 방황하는 젊은이, 결혼을 앞두고 갈등에 빠져든 젊은이, 상실감에서 허우적대는 중년, 짜증만 부리는 철없는 자녀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지만 그릇된 습관을 가진 사람들은 자연중심의 치유 ‘Hearing 프로그램’을 신주로 모셔야 할일이다.
게으름이 게으름을 낳고, 나쁜 습관이 못된 습관을 돌려막는 악순환의 고리는 무덤까지 같이 간다.
그럴 사한 인생성공 담, T.V에 나오는 기막히게 재미난 재치 넘치는 강의 모두 소용없다.
방법은 오직 한 가지 뿐!!
‘자연은 치유다’ 오직 행동 뿐!!
4. 중고 양복을 사 입고 결혼식 치러
공부 중의 공부는 나의 발견이다.
나는 노년을 살고 있다. 사람은 나이를 먹어 늙어가는 것뿐 아니라 대우받고, 동정 받고, 주저앉아 있는 가운데 더욱 늙어간다. 정년퇴직의 올가미를 벗어나 죽음에 이르기까지 현역으로 뛰어야 한다. 젊은이의 공부는 30, 40년 후의 바람직한 자기 모습을 만들어가는 작업이다. 젊을 때부터 노후준비를 위해 자연중심의 취향문화에 중독되는 길 외는 방법 없다.
산행은 우리 생활을 간결한 삶의 방식으로 바꾸어준다. 실용성, 절약정신을 심어주며 검소한 인간으로 만든다. 그러나 1년에 한번밖에 쓰지 않는 물건을 쌓아둔다던가 외식이나 의복, 치장 등으로 낭비하는 일은 없게 된다. 그런 돈과 시간은 책과 산행, 여행에 유용하게 쓰여 진다.
사업상의 이유로 때로는 하룻밤에 몇 심만 원을 술값으로 허비하던 사람이 산행을 통해 그 습관이 없어졌다. 재미있고 유익한 산행을 두고 다른 오락거리에서 흥미를 느낄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옷, 구두, 레저용품과 생활용품일체를 중고품으로 구입해 쓴다.
나는 결혼 할 때도, 넝마중고시상에서 조금도 부끄럼 없이 당당하게 ‘권색 양복’(속칭, 세비로)을 사 입고 식을 치렀다. 남들은 새 시랑의 새 옷으로 속았을 것이다. 이런 정신은 돈을 아끼는 외에 사치와 거품에 저항하는 유쾌하고도 마음이 가벼워지는 멋스런 반란이다.
남이 아닌 자신과의 경쟁에서 이기려면 절약으로 자신을 낮추는 겸손과 자연에 뒹구는 극기 훈련이 효자이다. 산행은 고생을 사서하는 움직이는 명상이며 무력했던 사람도, 망설이던 사람도, 용기가 부족한 사람도 감성이 넘쳐 활기차게 생활하게 된다. 공허감, 상실감을 들판에서 실험한다.
우리의 인생은 단 한 번뿐이다.
내일보다 오늘이 젊다. 지금이 바로 기회다. 산처럼, 강물처럼, 망망한 바다처럼 제 스스로 그러하듯 우리 일상도 자연에 거슬리는 짓을 자재하여 궁극적으로 자연에 기댄다.
5. 마지막 스승은 나를 산에 버리는 것이다
<생존 놀이>
나는 고된 산행과 캠핑을 통하여 자아에 대한 의식이 싹트면서 내가 나를 살게 하고 내가 나를 믿게 되었다.
사람은 ‘자기애自己愛’에 빠져 자기 자신에 집착한 나머지 자신의 자아에 대하여 길들이고 훈련시키려 하지 않는다. 즉 인간은 자기 자신을 스스로 처벌(채찍질, 노력, 인내 등)하지 않는다.
바로 여기에 함정이 도사리고 있고, 인간의 비애가 자라난다. 인생에 성공한 사람은 항상 스스로를 성찰하고, 처벌하여 죗값을 스스로 치러가며 치열하게 살아간다.
내가 나에게 가혹하리만큼 담금질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담금질은 이제껏 살아온 집이나 직장 내에서는 살아온 습관화된 속성 때문에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속성 화된 틀을 벗어나 넓은 자연에 나가 자연과 맞서 ‘서바이벌 게임survival game’을 하는 것이다. 이 서바이벌 게임은 자연이 우리에게 처벌과 흥미(재미와 고생)를 동시에 갖게 하는 놀이이며 훈련이다.
인생을 긴 안목으로 설계하고 시야를 넓게 폈을 때 종착역은 결국 자연으로 돌아가리라!
삶의 고향은 내가 태어나 자란 강원도나 경상도가 아니고 '자연' 자체이며 또한 삶은 '여행'이다.
사람의 몸은 다리부터 약해진다고 한다. 중병에 걸리면 단 한 걸음도 스스로 걷지 못한다. 걸을 수 있다는 것은 위대한 것이다. 나는 이 교훈을 항상 간직하고 걷지 못하면 기어서라도 산에 간다. 투병이란 병과의 싸움이 아니라 자신과의 싸움이다. 나의 건강법은 육체적인 건강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마음의 평온에서 우러나오는 총체적인 삶의 건강을 의미한다. 근육질만 키우는 것이 건강인가? 자연과 함께하는 건강법, 넓게 더 넓은 세상을 향하여 끊임없이 미래를 꿈꾼다.
사치와 게으름, 고정관념과 형식에 얽매였던 사람이 이 서바이벌게임을 통해 소박한 자연인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인간의 모든 문제는 자연 속에서 치유된다.
캠핑은 삶의 축소판으로 온 식구가 같이 삶을 해결하며 행동하는 소꼽놀이 게임이다.
람보를 방불케 하는 탐험, 공격 식 게릴라 산행을 권한다. 길 없는 길을 가는 것이다.
그 길은 막힐 때도 있지만 가다 보면 결국 그 길은 자신들이 만들어 가는 길이다.
사람은 취미를 먹고산다. 그 취미에 몰입하는 즐거움 속에 건강의 보배는 묻혀 있다.
<자 유 인>
자유의 기본은 자급자족하는 홀로서기이다. 때문에 생활을 각자 스스로 챙겨야한다. 가족의 존재 이유는 맹목적 사랑이 아니라 합리적이며 초월적인 사랑으로 즐거운 나의 집을 만들 일이다.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냉정한 사랑이 진짜의 사랑이다. 나의 조상은 내가족보다도 사회가 먼저라는 공공성公共性 사고로, 내가족에게만 매몰되어 좁고 옹졸한 삶에 구속되지 아니하는 서로 가족의 짐을 내려놓고, 넓은 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간다. 이렇게 될려면 온 식구가 독립적 생산자로 자립하는 근본의 시스템훈련이 필수적이다.
나는 26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누워서 죽을 것인가, 걸어서 살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했다.
눕지 않고 캠핑과 산행을 계속한 끝에 지금 기적같이 살고 있다.
말하자면 스페어 인생이니 그저 고맙기만 하고, 그래 자유인이 된 까닭이기도 하다.
나는 틈만 나면 텐트를 싸 짊어지고 아무데나 발길 닿는 대로 달리고, 걷다가 야영을 한다.
해외 해외여행을 할 때 엉뚱하게도 1인용 텐트를 휴대하고 미국 - 캐나다 - 알라스카, 네팔 - 인도, 유럽, 그리고 일본 등을 캠핑으로 열 배를 더 즐겼다.
물론 죽도록 고생했고 초라한 음식에 몰골은 말이 아니었지만, 모름지기 이게 바로 발로 뛰는 행위문화이다. 그때 사귄 지구촌의 수십 명의 사람들과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편지교류를 하고 있다. 이게 다 캠핑 덕택이었다.
이 모든 것은 자유에의 갈망, 그리고 방랑벽을 채워주는 멋지고, 통쾌하고, 유쾌한 삶의 신선한 충격이 아닐까?
6. 북극곰이 되어 보자
내 생애 이런 밤이 있기에!
우리는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고통을 겪으며 살고 있는데, 그것이 어디로부터 왔는가?
사는 방법이 잘못된 데서 오는 수가 많다. 그동안의 삶이 존재적이었다면 이제는 그 존재를 뛰어넘어 만들어내어 사는 쪽, 즉 생성becoming으로 나아가야 되지 않겠는가?
봄, 여름, 가을, 겨울 종주산행 시 때로는 비박캠핑bivouac camping을 한다든가, 사계절을 통한 ‘오토캠핑’을 하다보면 새까만 하늘에 총총히 빛나는 별, 또한 이보다도 더 큰 매력은 산 속에서 혼자 또는 몇 사람끼리 체험하는 ‘고독과 사유’ 에 있다. 그동안 가정이나 직장 등 번잡한 사회 속에서 요란한 TV 등 매체에 둘러싸여 잊혔던 나의 정체성을 심산유곡深山幽谷에서 새롭게 발견한다.
캠핑은 즐거운 소꿉놀이인 동시에 영혼을 순화시키고 삶을 담금질하는 행동문화이다.
현대인들은 너무나 집안에 갇혀 편안한 생활만을 추구하고 있는 듯하다. 서울을 위시하여 수도권에 있는 사람들은 거의 겨울 내내 눈 없는 겨울을 지낸다. 강원도 백두대간 줄기와 그 언저리의 오지산간에는 지금 1m 안팎의 눈이 쌓여 딴 세상을 이루고 있다.
내게는 다소 고약한 버릇이 있다. 나는 눈이 내릴 때마다 벌써 몇 번이나 미친 듯이 그곳에 달려갔다. 눈 덮인 산은 또 하나의 다른 세계이다. 그 순수하고 신비로운 눈나라에 들어서기 위한 무기는 나의 ‘의지’와 자연을 흠모하는 ‘애정’뿐이다.
어둠이 무섭지 않은 것처럼 추위가 겁나지 않는다. 그 눈더미를 헤치고 텐트를 마련하여 호롱불빛 아래 ‘고독’을 즐기는 자유란! 내 생애 이런 밤이 있기에! 이 밤은 평생을 살아낸 하룻밤같이 절실하게 느끼는 밤이다.
<딴 세상을 만나는 ‘북극곰 캠핑’>
사변적인 말꼬리로 가득 찬 혼탁한 속세를 등지고 북극곰은 이렇게 동화의 나라 눈보라 속에 밤을 지새운다. 아무리 훌륭한 생각이라도 생각만으로 그치는 사고는 갑 속에 든 칼에 불과하다!
겨울밤을 가르는 매서운 찬바람 소리, 눈보라가 스치며 텐트가 흔들리는 소리, ….
그러나 그게 좋은 것이다. 일상의 삶에서 똑같은 삶이 반복되어 습관이 되면 찡하지도 않고 좋은 줄도 모르는 속성이 있기에, 거대한 대자연에 맞서 극한 상황에서 마주친 ‘인간의 실존’을 체험하는 것이다. 정보화시대에 머리가 지끈거리는 나약한 모든 이들에게 이 감동의 파노라마 체험을 권하고 싶다.
우리는 지금까지 여러 매체들에 묻혀 대리만족 또는 간접경험에 기대어 살아왔다.
꽉 막혔던 문을 열어 제치고 내가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 안전하고 편안한 집에서 때로는 떠나자! 참혹하리만큼의 주말등산(캠핑)에 비하면 한주일간의 직장업무는 수월하고, 즐거운 시간이 되는 ‘휴식의 역전’. “고된 직장생활로 주말에 푹 쉬고 재충전한다.”는 그럴싸한 주장에 나는 감히 반론을 제기한다.
오지 탐험가나 빙하 연구가도 아닌 캠퍼들은 왜 추운 겨울에 눈밭에 텐트를 치고 궁상을 떠는가? 묻고 싶은 이들이 많을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마음에 덧씌워졌던 앙금들이 캠핑놀이를 통해 말끔히 걷혀지는 것은 바로 자연의 넉넉한 치유능력 때문이다.
북극곰 캠퍼들은 여러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고통을 마다하지 않고 오히려 그 고통을 즐기는 가운데 웬만한 어려움도 거뜬히 해결하는 습관을 길러낸다. “나는 할 수 없어”가 아니라 “나는 할 수 있어”로 바뀌는 것은, 우리가 책이나 읽고 또는 행동이 따르지 않는 강의나 듣고는 결코 바뀔 수 없었던 속성이, 몸으로 부딪치는 체험을 통해서 변화되는 것이다.
<유연한 사고의 실천>
험준한 대자연 속에서의 ‘담백한 삶simple life’은 인위적인 매체 없이 나를 순수한 자연에 투영, 객관화시켜 내가 나를 발견하게 되는 고귀한 시간인 동시에 내가 나를 버릴 수도 있는 무아의 경지이기도 하다.
왜 이런 일이 가능할까? 그것은 산 속에서 만나는 숲, 계곡의 물소리, 이름 모를 산야초, 이끼 낀 바위, 맑은 새소리, 낙엽 떨어지는 소리, 문명과 동떨어진 눈 덮인 산야, 나의 발자국소리, 이 모든 것이 나를 소스라치게 하는, 놀라운 힘을 지니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을 통해 소중히 여겨왔던 나의 사사로운 일들이 이런 것들에 비하면 하잘것없는 것들이라 여겨지는 여백의 시간. 아! 이것이 바로 우리들을 둘러싸고 있는 하고 많은 허구와 무가치를 깨우치게 하는 힘을 지닌다.
인간은 누구나 어머니로부터 태어났지만 이제 우리는 새롭게 산에서 태어나는 찰나이다. 주5일제 근무가 자리를 잡아가고 여가활동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지만 진정 삶을 사유하고 연습하는 올바른 시스템 마련은 아직 요원하다. 여행을 떠나서도 콘도나 호텔 등 따뜻한 방 안에 갇히는 것이 우리의 일상의 모습이다. 배움은 안다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행동으로 실천함으로써 완성된다.
“왜 일부러 고생하며 텐트에서 사십니까?”
“죽음 전에 죽음의 경지를 만들어 경험하는 사람만이 진정한 자유를 얻는다.”
이것이 내게 자주 던져지는 질문에 내가 줄 수 있는 대답이다. 잡다한 주변을 정리하고 편리하고 나태해지기 쉬운 집을 버리고 아주 불편하고 작은 공간에서 사유와 고독을 즐기며 고생을 만들어 사는 것이 진정 죽음을 받아들이는 길이라 생각한다. 살아 있되 안락만을 찾는 노년의 삶은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 아니다.
나에게는 억척스런 몇 가지의 원칙이 있다. 나는 혼자 살고 있는 86세의 방랑자, 산사람이다. 어떤 경우라도 매주 등산, 캠핑, 여행을 한다.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직접 살림을 스스로 한다. 전철, 버스를 타도 좀처럼 앉지 않는다. 나에게 정년은 없다. 나는 ‘캠프나비교실’을 차려, 자연중심의 레저활동을 통한 ‘행동하는 열린 인재’ 양성에 힘쓰고 있다. 이 외에도 한 가지 일뿐만이 아니라 몇 가지 일을 만들어 하고 있다. 그리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이것은 내가 살아있는 이유이며 철학이다.
나는 목을 조르는 넥타이, 반짝이는 구두와 정장을 싫어하며 자연스런 캐주얼 차림을 선호한다. 머리는 매일 면도날로 빡빡 밀어낸다. 자연에 뒹구는 자에게 무슨 꾸밈이 필요한가? 나의 조상은 사회가 먼저라는 사고를 갖고, 가족이기주의를 배척한다. 교양, 매너, 문화의 생활화와 평생학습과 행동하는 열린 세계인을 지향한다. 감성을 중히 여기는 유연성 사고의 실천자이고자 한다.
자유의 기본은 자립과 건강에 있으므로 가족이나 타인의 힘을 빌리지 않고 모든 일을 내 가 직접 해낸다. 특히 노년을 사는 분들은 자녀나 젊은이에게 잔소리나 설교를 하며 안이한 생활을 할 게 아니라 스스로의 행동으로 모범을 보여주어야 한다.
<가정의 감성지수 높이기 취미 활동>
캠핑 레저와 생활을 절묘하게 접목하여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 한편, 지금까지의 그릇된 습성을 바로잡아 삶의 질을 높여야 한다. 이제 일이냐 가족이냐 식의 이분법적 사고를 버리고 일과 가정이 공존하는 지혜로운 삶을 택하여야 한다. 인생의 1/3 은 여가시간이며 인생을 길게 볼 때 이 여가시간 활용이 삶의 보람을 결정한다. 가족공동체 속에서 가족 간에 감성의 교감이 원활해야 그 가정은 행복해진다.
나는 많은 가정들이 캠핑활동을 통해 가정 내 양성평등과 삶의 질 개선, 그리고 잘못된 습성들이 고쳐지는 것을 보아왔다. 흔히들 ‘삶’은 ‘생활’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생활을 초월하여 ‘삶’은 ‘감성+문화’라고 생각한다. 한 예로 ‘생활 = 40%, 감성 + 문화 = 60%’ 정도는 되어야 균형잡힌 문화생활이 될 것이다. 물론 공인된 기록은 없지만 문화생활의 비중이 생활보다 높아져야 삶의 질이 좋아질 것이다.
근간에 법적으로 양성평등은 점차 이루어지고 있으나 개개인의 가정 내부로 들어가 보면 가부장적 인습이 여전히 상존하고 있다. 가정 내에서의 가부장적 인습이 지속되는 한 제도권에서 이루어지는 양성평등은 사실상 허구에 불과하다. 사회(공적 영역) 안에서 남녀가 서로 공평하게 공생하며 존중하기 위해서는 가정(사적 영역) 안에서 가사노동을 포함한 삶의 일상에서 새로운 평등의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그 문화가 바로 자연주의 레저인 ‘오토캠핑’이다.
텐트를 비롯하여 야외용 생활도구를 야영지로 들고 나가 온 가족이 새 살림을 차리게 되면, 집 안에서는 빗자루도 들지 않던 가장이 앞장서서 텐트를 치고 주방을 꾸미고 환경정리를 하게 될 것이고, 자녀들은 부모 따라 스스로 할 일을 찾아 하게 된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서로 협동하게 되는 이유는 집이라는 틀을 벗어나 새로운 환경을 만남으로써 지금까지의 속성이 새로운 환경에 동화되고, 또한 대자연이 인간에게 베푸는 무언의 ‘치유능력’ 덕분이다.
정부나, 시민․사회단체 등에서 주도하는 양성평등이나 가정발전 운동 등은 사회적인 이슈는 되겠지만 개인적 영역인 가정 안에까지 파고들어 본질적으로 의식을 개선하고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는 없다. 거시적인 부르짖음을 앞세우기보다, 개인적 영역인 가정 안에서 가사노동을 포함한 실질적인 문제들, 즉 ‘가사일 같이하기’, ‘정의롭고 공평한 인간애’, ‘문화와 정보의 공유’, ‘가정 내 인권확립’ 등을 개선하여 하루 속히 삶의 질을 높여야 한다.
이와 같은 주장들은 아직도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 ‘가정문화’에 소홀히 하고, 특히 남성들이 가정에서 가족들에게 감성지수를 높여주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조목조목 강조하는 대목들이다. 결국 문제의 해결 열쇠는 가정 내 부모에게 있지만 그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은 우리 사회에서 아직은 가장인 남자들에게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제 봄기운이 완연해지고 있다. 이제 산으로 들로 떠나자! 그리하여 삶의 보람을 다 함께 만끽하자. 이런 활동들이 무형의 사회재산으로 축적되어 건강하고 활기찬 ‘신사회 공동선’의 이웃으로 넓혀져 나갈 것이다. 내 생애는 이런 캠핑여행을 만나기 위한 준비였다!
7. 오토캠핑에서 찾는 매력
<철학이 담긴 오토캠핑>
우리나라에는 오토캠핑이 아직 보편화되어 있지 않으며 이제 보급단계에 있다. 일본은 이미 오래 전에 오토캠핑(자동차에 캠핑장비를 적재하고 캠핑사이트를 설치하는 캠핑 방식)이 대중화되었으며 오토캠핑과는 구분되는 달리는 콘도격인 캠핑카도 약 100만 대를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규모 있는 공인 캠핑장만 해도 1,300개이며 사업화된 중소 캠핑장은 1만 개 정도라고 한다. 한국에는 공인된 캠핑장이 3개뿐이며 기업화된 캠핑장은 거의 없다.
미국이나 유럽에는 캠핑카, 캐러바닝카가 보편화되어 있으며 캠핑카를 이용한 여행에 인생의 목표를 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이 때 가족과 어린이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려 자연과의 교감과 체험을 통해 삶의 질을 높이고 있다. 나는 미국의 탐험, 여행사에서 제작한 버스형 캠핑카를 이용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캐나다를 거쳐 알래스카 페어뱅크까지 수개월 동안 탐험여행을 한 적이 있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전국 오토캠핑 동호인대회가 개최되기도 하고 연이어 동호인들이 매월 오토캠핑을 개최하고 있다. 오토캠핑의 불모지인 우리나라에서 이와 같은 새로운 문화가 생겨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반가운 소식임에 틀림없다.
오토캠핑엔 자체의 즐거움뿐 아니라 생활패턴을 바꾸고 인성교육을 통해 삶의 질을 높인다는 막중한 철학적 뜻이 있다. 오토캠핑은 단순한 레저가 아니고 삶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할 수 있다. 단순한 기술이나 지식전달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IT시대를 맞아 점차 규격화되어 가는 사람들의 정신적 양식이 되고자 한다.
<오토캠핑의 매력>
가족과 텐트를 치면서 출발 전까지 별것 아닌 것을 가지고 신경전을 벌였던 옛 추억. 행여 눈치 채일까 봐, 가장의 권위에 상처라도 날까 봐 일부러 표정은 굳힌 채 마음속으로만 역시 오길 잘했구나 하면서 눈치를 살폈다. 그 알량했던 자존심은 숲 속에 들자 사람의 힘이 아닌 자연의 힘에 의해 물엿처럼 힘없이 녹아내리고 마음이 마냥 편안하고 즐겁기만 했다. 벌써 40년 전의 일들이다.
나는 젊어서부터 캠핑 생활을 즐기는 가운데 사람의 마음이 자연에서 순화된다는 것을 체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사람들 간에 잔소리와 설교로 악화된 감정의 치유는 가정이나 직장 내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 이러한 갈등은 날이 갈수록 개선되는 것이 아니라 더 꼬이면서 서로를 비난하고 급기야 본마음은 감춘 채 겉으로만 위선을 떨게 된다. 사람이 가르치지 못하는 것을 자연이 가르친다. 그것은 인간의 지식을 뛰어넘는 감성의 영역이다.
캠핑은 그 자체가 이미 여행이지만 여행 중에 캠핑을 하고 캠핑 중에 여행과 레포츠를 함께 즐기는 오묘한 짜릿함을 안겨준다. 캠핑의 이런 매력은 다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감동의 순간이다. 캠핑은 그래서 단순 스포츠나 레저가 아닌 실생활을 축소한 또 다른 영역의 이미지 문화게임이다.
터놓고 말하면 거의 모든 가정에서 주부 혼자 가사를 도맡아 왔다.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다고는 해도 온 식구가 가사를 함께 하는 가정은 매우 드물다. 가정은 단순 생활이 아닌 경영이요, 문화 창작이요, 행복의 보금자리여야 한다. 그러나 여전히 주부들은 고된 가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문화는커녕 오히려 지겨운 일상생활의 연속이라 할 것이다.
이렇게 불합리한 생활구조 역시 같은 집과 같은 생활 방식으로는 고쳐질 수 없다. 자연 속에서 뒹굴며 집을 짓고 다시 해체하는 게임(스스로 일을 만들어 즐기는)을 통해 가족들은 자연스럽게 대화와 감정의 교류를 나누게 된다. 아이는 부모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고 부모는 자연 속에서 아이들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소유가 아닌 존재로 서로를 인식할 수 있다.
오토캠핑의 매력은 기동성에 있다. 집에서 숲으로, 숲속에서 바다로, 계곡으로, 산속 구릉지로 삶의 장소를 바꿀 수 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신천지인가! 우리는 가능하면 집을 버리고 자연에서 방황해야 한다. 그래야 무질서의 에너지를 응축 에너지로 질서 있게 전환시킬 수 있다.
<삶의 담금질>
금속학에 ‘quenching’이란 학술용어가 있다. 즉, 쇠의 담금질을 말한다.
1,000~1,400℃의 불에 철을 녹이면 분자간의 거리가 팽창되며 소용돌이친다. 이때 해머로 반복해 두들겨 불순물slash이 제거되는 과정에서 양질의 철 분자들이 질서를 이루며 거리를 좁혀간다. 그 순간 냉각수에 철을 담가 열을 식히면 분자간의 거리가 좁혀진 상태로 고정된다. 이런 과정을 반복해 얻어진 철이 가장 강하다.
사람도 담금질 훈련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삶이 더욱 견고해지고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자연에서의 오토캠핑이 서바이벌게임이며 그 게임이 바로 우리를 강인하게 만든다. 그 게임을 통해 사치를 즐기고 형식에 얽매였던 사람이 소박한 자연과 어울리는 순수한 사람으로 변하게 된다. 자연에서 뒹구는 무질서가 결국에는 질서로 융합된다는 새로운 해법이 엔트로피Entropy시대를 맞은 우리들에게 삶의 새로운 방식을 제시한다.
옛말에 ‘신선놀음’이란 말이 있다. 등산을 하다 작은 폭포수 밑의 해맑은 소를 보면 어김없이 선녀탕이라고 말한다. 선녀가 목욕을 하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믿기 어려운 전설이 깃들어 있다. 사람들은 신선놀음이니, 선녀탕이니 하면서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들을 잊고 잠재의식 속에서 대리만족하려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누구나 어린 시절 소꿉장난을 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미래에 대한 희망을 걸고 해 지는 줄도 모르며 놀이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어른이 되면 이런 순수한 감정은 사라지고 도시 속에 매몰되어 생활만 우선하고 자연은 외면한 채 기억을 더듬어 보지도 않는다.
이제 우리는 통합된 가치이론Grand theory에 의한 자연 중심의 삶을 지향해야 한다. 그러므로 오토캠핑을 능가하는 삶의 방식은 없다. 오토캠핑은 현대판 신선놀음이나 소꿉놀이로 보일 수 있지만 숙련되기까지는 많은 체험을 필요로 한다. 캠핑은 과정을 즐기는 체험적 게임이다. 이것이 바로 오토캠핑의 실천적 철학이다.
무슨 일을 할 때 기본 원칙과 매뉴얼, 그리고 정신적 지주가 필요하듯이 오토캠핑도 수준급의 캠퍼가 될 때까지는 기능과 기술, 정신교육이 필수적이다. 캠핑에서 노동은 필수적이므로 .노동의 기회를 갖지 못한 도시인들은 스스로 즐기는 캠핑을 통해 땀방울을 쏟으며 노동의 신성함을 몸에 익혀 겸허한 심성을 길러야 한다.
<캠핑은 놀이이자 훈련>
캠핑에서 먹는 즐거움을 빼놓을 수 없다. 야외에서는 훌륭한 요리가 아니라도 왜 그렇게 맛이 있는지? 간혹 소화제 신세를 질 때도 있다. 서툴겠지만 요리와 설거지는 남자들 몫으로 돌리자. 이 훈련 덕택에 집에 돌아가 습관화될 수 있는 성공률은 몇 %인가? 성적표의 채점은 아이들에게 맡기자.
모닥불은 캠핑의 중요한 이벤트이다. 모닥불을 둘러싼 담소는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보이스카우트나 걸스카우트에서의 아득한 옛 기억뿐이라면 부끄러움을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주말에는 흰 파도와 백사장을 끼고 도는 솔밭 해안으로 떠나자. 밤을 지새워 파도소리 들으며 회포를 나누어 보자.
오토캠핑은 놀이가 아니라 새로운 해법의 ‘인성교육’과 ‘감수성 훈련’의 게임장이다. 캠핑의 역사는 인간의 탄생과 함께 시작되었다. 우리 조상은 유목민이 아니었으므로 캠핑문화에 익숙하지 못하다. 집을 떠나면 그저 불편할 따름이다. Education, 즉 교육은 라틴어로 ‘밖으로 나가다’라는 뜻이다. 엉뚱하다고 생각되겠지만 때로는 박제된 삶을 버리고 숲 속 텐트에서 삶의 방황을 치유할 수 있다.
상품화된 콘도나 호텔은 캠핑이 아니다. 아파트에서 또 다른 방에 갇혀 스트레스에서 잠시 피난간 꼴이 된다. 용감해야 하고 도전적이며 극기훈련을 자청해야 한다. 한겨울 눈보라에도 캠핑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온 식구가 각자 자생력을 갖고 감동 어린 삶을 맞게 된다. 이제 오토캠핑은 독립된 레저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오토캠핑은 생활을 즐기는 게임이며 잘못된 습관을 고치는 훈련의 현장이다. 여행이나 출장 중의 숙박은 오토캠핑으로 하자. 그때 비로소 소박한 ‘심플라이프Simple Life’의 신봉자가 된다.
나의 견해로는 세컨 하우스인 전원주택은 나를 구속하는 또 다른 대상이며 근심걱정의 애물단지로 여겨진다. 이는 나의 지속적인 캠핑의 즐거움에서 오는 오만이라고나 할까? 전 국토가 나의 정원이요, 지구 위가 바로 나의 침실이다. 캠핑은 넓게 더 넓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씨앗이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고독의 사색장이다. 나는 해외여행 시에도 오토캠핑이나 유스호스텔만 이용했다. 캠핑, 여행, 등산 등 인생마라톤으로 나의 삶을 이어갈 때 그 비례에 따라 나의 자아Ego는 버려진다. 즉 자연중심의 생활이 우리의 삶의 질을 높여준다.
캠핑을 구태여 구분하자면 산행시의 비박캠핑vivouac camping, 오토캠핑Auto camping, 모빌 홈 캠핑Mobile home camping 등이 있겠으나 우리의 실정은 차량에 캠핑용구를 적재 운반하여 캠핑 사이트를 설치하는 오토캠핑을 말한다.
<캠핑은 새로운 생활양식의 창조>
인간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우리는 겹겹이 제한받으며 살고 있다. 원래 인간의 본성은 자유를 갈망한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푸른 바다로, 들판으로, 산과 계곡으로 자유를 찾아 나서기 마련이다.
캠핑은 자연과 내가 함께되는 시간이다. 캠핑은 철저히 자연의 속살로 파고든다. 흔히 황토 집을 선호하지만 텐트는 황토 집에 비유할 수 없을 만큼 흙과 숲과 열린 하늘에 놓여있다. 자연의 대기를 그대로 마실 수 있는 공간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무엇을 하든 개개인의 열린 마음의 몫이다.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풀벌레 소리와 함께 밤을 지새운다.
이곳에서는 가정에서 미처 몰랐던 나의 자녀와 아내를 새롭게 발견한다. 20년을 살아도 몰랐던 아내의 투정도 이해되고 수용할 수 있다. 이리하여 서로 너와 나로 존재하게 된다. 자녀에게는 평생의 추억으로 각인되고 그 각인이 자녀의 노후를 보장한다. 우리는 자녀에게 유산을 남길 게 아니라 바로 자연에 사는 심성을 심어주어야 한다. 캠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유와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는 해방감 즉 자기 자신마저 잊은 공백, 이러한 것이 진정한 캠핑의 뜻인지도 모른다.
서구의 캠핑문화는 이러한 주류로 흘러가고 있으며 이는 자유사상의 궁극적인 삶의 목표라고 할 수 있다. 과거에는 에너지를 재충전시키고 생산성을 높이는 데 목적을 두었지만 지금은 개인의 행복에 가치를 두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실정은 다르다. 급속한 사회성장 과정에서 여가문화에 대한 자질이 소홀하게 된 면도 있으므로 시스템화된 여가문화 프로그램의 훈련을 통해 철학하는 멋을 간직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캠핑의 라이프 사이클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젊은이들의 유스캠프, 가족캠프, 동호인캠프, 실버캠프 등 어린 시절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그 즐거움을 계속할 수 있다. 오토캠핑의 실재는 한 가지 해답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자연에서의 서바이벌 활동이기 때문에 기본적인 지식과 교육훈련이 그 결과를 성공적으로 이끈다. 우선 장비가 갖추어져야 하며 텐트, 타프, 침구, 취사도구, 기타 레저용 부속 용구들이 간편하고 기능적인 것이어야 한다. 자연과 어울리는 품위 있는 리빙 펜션공간은 각자의 아이디어와 안목으로 결정될 것이다.
오토캠핑은 잠자리와 식사만을 해결하기 위한 노숙의 수단이 아니라 인생을 풍요롭게 만드는 생활양식Lifestyle의 문화 창조에 있다. 캠핑은 우리에게 부지런함과 참신한 아이디어와 사람간의 협동심 그리고 대화의 장을 마련해 준다. 또한 절약과 검소 실용적인 가치와 자연을 아끼는 때 묻지 않는 마음을 갖게 한다.
캠핑엔 자연환경을 해칠 수 있는 많은 요소가 있다. 텐트 사이트 설치를 위해 흙을 파고 고르고, 취사를 위해 이것저것 동원하고 모닥불을 땅에 피우는 일 등이다. 요즘은 다양한 환경상품들이 나와 있어, 적절히 이용한다면 환경을 파괴하거나 손상을 입히지 않고도 캠핑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캠퍼들은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자연환경 보존에 앞장서 야외활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하며 자진해서 환경정화 봉사활동을 해야 한다. 자라나는 아이와 사회를 위해 단 하나뿐인 지구를 위해 우리가 가장 소중한 가치로 여겨야 할 양심적 의무이다.
“때때로 죽음을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그 위에 당신의 삶을 설계하십시오.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십시오.
죽음의 기로에 서 있음을 안다면
한층 인생의 무게가 더해질 것입니다.
어떤 바보라도 사과 속 씨는 헤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씨 속의 사과는 자연만 압니다.
사람의 생명은 자연에 맡겨져 있고,
그래서 사람은 자연에 순응하여야 합니다.”
-2013. 2. 깐돌이 박상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