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 25.(수)
그렇게 산천초목을 휘졌던 초강력 한파의 여운이 남아서 인지 이른 새벽에 눈이 떠진다. 예전처럼 여행에 대한 기대감에 설렘이 있어서도 아니다. 그렇다고 야뇨증이 있어서도 더더욱 아니다.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지 그저 담담할 뿐이다.
세월 탓이란 말인가? 그래도 오랜만에 가는 여행인데 약간의 기분이 업 되어야 정상인데. 이제 남아 있는 감성이란 겨우 “세월이 빨리 가는 구나”뿐이란 말인가. 참으로 서글퍼지는 현상이다.
며칠 전부터 무엇이 빠질까봐 꼼꼼히 메모해 놓고 챙겼던 때가 호시절이다. 깜깜한 창밖을 거실 소파에 앉아 넌지시 바라본다. 강 건너 가로등 불빛이 깡깡 얼어붙은 황강 얼음판에서 썰매를 탄다. 놀이터가 없어진 철새들이 오갈대가 없어 징금 다리 주위에 맴돌려 햇님 오기를 기다린다. 총총 빛나는 별들도 함께 놀고파 내려와 반짝인다. 물결 타고 놀고 있는 별빛이 아리다. 허공중에 맴돌던 찬 서리는 눈치 없이 빙판 녹을까 걱정되는 듯 하늘거리며 내려앉는다.
아내의 출근을 도와주고 며칠 못 볼 가을(개)이 산책시킨다. 영하 17도의 강추위에서도 덕분에 늘 운동하게 되어 좋다. 귓불을 후려갈기는 찬 공기는 온몸을 헤집고 파고든다. 정말 추운 날씨다. 놀러가는 난 좋겠지만 외딴집에 홀로 있을 아내가 마음에 걸린다.
설 명절에 어질어진 장난감과 쌓아 놓은 먼지를 청소한다.
특히 꼬미(개)의 털 빠짐이 심해 진공청소기로 구석구석 빨아내고, 다시 걸레로 밀다보니 시간 반이 훌쩍 지나간다. 나흘 밤을 혼자 보내야 하는 아내에 대한 일말의 미안함에 문 열고 찬 공기 마시며 닦았다.
목욕하고 은행에서 달러를 찾았다. 별로 쓸데가 없지만 두툼하게 챙겼다. 오랜만에 쥐어본 돈 봉투를 어찌해야 될지 몰라 화장대에 던져 놓고 짐부터 챙겼다. 골프공에 선 긋고, 이니셜(J)새기니 정말 가는 느낌이 든다. 5년 전 태국(방콕)에 처음 골프투어 갔었고, 베트남과 필리핀(클락)을 거쳐 파타야에 가게 된다. 해가 갈수록 해외에 나갈 기회가 줄어든다. 스크린 동우회(골빠샤)를 주축으로 한 8명이 함께 가게 되니 마냥 좋다.
줄어드는 기회인만큼 좋은 추억을 담고 싶다. 그동안 쭉 써 오던 고반발 드라이브가 악성 훅이 많이 나서 이번에 큰맘 먹고 바꿨다. 해외에서 까지 애먹일까봐. 짜증만 부리다 오면 어쩌나 해서. 거금을 들여 피팅 드라이브를 샀다. 대충치고 오면 되지 돈 들여 바꿀 필요가 뭐 있을까? 몇 번 고민도 했다.
드라이브는 남자의 자존심이라 했다. 미스 샷이 나오면 모든 게 망가지기 때문이다. 다행히 몇 번의 연습과 스크린으로 손맛을 봤다. 악성 훅은 옛날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첫 나드리라 긴장되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전날 제주도 폭설과 강풍으로 결항된 승객을 나르다 보니 한 시간이나 지연됐다. 혹시나 해서 일찍 서둘러 왔는데, 한 시간이 더 여유로워 지다보니 무척 지루하다. 들뜬 여행의 참맛이 식을까 걱정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코로나로 잠시 중단되었던 여행의 봇물이 터졌나 보다. 티켓팅 할 때 합천분을 만나드니, 식당에서 제자를 만났고, 게이트에서 기다리다 친구를 만났다. 모두 잠자던 에너지를 분출시키려 바쁘다. 내일의 멋진 샷을 기대하면서 좌석을 뒤로 젖히고 마음을 추서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