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경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동시]단짝 - 유춘상
▲ 표제·일러스트=우형순
해가 지면 너는 밝아진다
안심가로등
네 아래로 다가가면
나는 줄어드네
가까이 다가갈수록 내 몸이 차츰차츰 작아지는 걸
넌 높고, 난 네 그림자니까
네 키가 클수록 내 몸은
땅바닥에 딱 붙어 쪼그라지지
우린 친구일까?
네가 서 있고 내가 멀어져 보면
나는 또 약해지네
희미해지네
멀어져서 옅어지는 나
괜찮아,
한번 불러준다면
네가 급할 때 날 부르면 난 곧 딴딴한 근육질로,
내가 화나면 큰일 날 걸(영화 ‘헐크’의 대사 중에서), 하며 헐레벌떡
도우러 갈 테니까
항상 지켜보고 있는 우리가 곧 단짝이지
서로 지켜주자고, 친구
[당선소감/유춘상]글로써 닫힌 생각과 굳은 마음 허물고 싶어
▲ 유춘상
겨울 날씨만큼이나 세상이 을씨년스럽다. 신문과 방송에선 연일 탄핵 뉴스를 쏟아내고, 상상하기 힘든 일들이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폭풍 속에서처럼 글 쓰는 일이 자잘하고 막막하게 느껴지는 날의 오후, 동시 당선 소식이 날아들었다. “아~ 네.” 대답을 하고 나서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나는 진술의 힘을 믿는 편이다. 작은 말과 낮은 말, 젖은 말의 힘을 믿는다. 단순하고 미숙해 보이는 말, 그런 말들에서 나오는 힘을 믿고 동심의 세계에 가까이 다가가 보고자 한다. 말로써 시간의 빗장을 풀고, 글로써 공간의 벽을 무너뜨리고 싶다. 너와 나의 경계도 풀어버리고, 닫힌 생각과 굳은 마음도 조금씩 허물어뜨리고 싶다. 그래서 삐걱삐걱 시소를 타는 언어, 미끄럼틀에서 굴러 내리는 언어, 그네를 타고 날아가 버리는 언어, 개똥지빠귀 날개에 숨어 노닥거리는 언어, 그런 언어들과 같이 놀고 싶은 마음이다. 막막한 바다 가운데 한 줄기 빛으로 ‘단짝’에 눈길 던져주신 심사위원들께 깊이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늘 곁에서 참고 헌신해 주시는 가족들, 함께 활동하고 있는 시그마 선생님들, 그리고 뒤에서 지긋이 힘이 되어주는 분들께 고맙다는 말씀 올린다.
[약력]
-경북 영천 출생, 영남대 국어교육과 졸업
-2022년 제10회 평택 생태시문학상 대상
-2022년 제9회 경북일보 객주문학대전 대상
-현 경주예일고등학교 교사 재직 중
[심사평/정두리]평범한 주제를 詩로 풀어내 연마 돋보여
예심 통과 작품, 20명의 동시 71편을 본심 심사자료로 받았다. 엄정한 예심을 거친 작품들이라 일정의 수준은 지니고 있었지만, 그런 만큼 확 다가오는 작품이 없어 심사의 어려움이 있었다.
심사숙고하여 ‘단짝’을 당선작으로 뽑았다. 그림자라는 다소 평범한 주제를 단짝의 친구로 풀어내는 시를 연마하는 솜씨가 차별되고 돋보였다. 응모한 3편의 다른 작품들도 고른 수준이었기에 안심하고 밀 수 있었다. 그중 ‘그믐’을 옆에 두고 저울질 했음을 밝힌다.
71편 동시를 읽으며 동시의 호흡과 시가 지니는 서사에 관심을 갖고 작품에 임했으면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반구대 암각화는 지역적인 관심을 받아 소재가 되었지만, 새로운 소재 찾기, 시상의 조화로운 표현은 앞으로도 동시쓰기의 과제이기도 하다. 평범한 일상의 일부를 소재로 찾아 새롭게 시를 생성하여 동시의 첫 번의 독자인 어린이에게 펼치기에는 우리 어린이의 걸음은 너무 앞서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무엇보다 ‘동시 쓰기’가 만만치 않은 작업임을 느낄 때, 시는 변화되고 시에 한 걸음 더 다가가는 일이 될 것이다.
[약력]
-1962년 <한국문학> 신인상 시부 당선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
-시집 <기억 창고의 선물> 등, 초등학교 국어교 과서에 ‘떡볶이’ 외 6편 수록
-현 (사)새싹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