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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 그릇>
밥그릇 재질과 크기 질문|한국문화문답 Q&A
이 질의는 설파 선생님께서 답하시기는 적절하지 않은 것으로 보여 제가 답을 드리고자 합니다. 답을 드린다 하나 무슨 전문적인 식견이 있는 것은 아니고 질문을 받은 차에 생각을 정리해 보는 정도입니다. 서술의 편의를 위해서 문어체로 정리했습니다. --------------------------- <음식과 그릇> 음식과 그릇의 관계는 차와 다기의 관계처럼 밀접하다. 특히 차는 제 맛을 내기 위해서 다기의 디자인보다 기능을 중시하여 차의 종류에 따라 기공(氣孔)률이 차이가 나는 다기를 이용한다. 차 맛이 섞이는 것을 방지하고 고유의 맛을 유지하기 위해서 차마다 전용 다기를 사용하기도 한다. 음식은 차만큼 민감하게 식기에 신경을 쓰는 거 같지는 않다. 그러나 그릇이 음식을 담아내는 실용적 기능 외에 심미적인 기능을 하는 것 또한 분명하다. 그릇의 심미적 기능은 단지 아름답다는 시각의 만족을 넘어 음식맛을 돋우는 역할까지 한다. 일종의 공감각(共感覺)적 기능도 갖게 되어 실용적 기능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맛은 과학의 영역이 아니라 통찰의 영역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설파 선생님의 맛이 통찰의 영역이라는 이 견해는 저 연경이 음식 전문가가 아니면서 맛집 여행을 진행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음식을 탐구하고 조리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다도가가 다구를 모으듯 식기를 모으기도 한다. 제대로 된 상차림을 하려면 다양하고 아름다운 식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음식과 그릇에도 궁합이 있고 음식에 따라 그릇을 달리해야 한다고 한다. 국은 따뜻한 맛을 유지하기 위해 도자기를, 김치는 숙성 지연을 위해 열전도율이 낮은 유리그릇을, 장류는 발효식품의 호흡을 위해 기공률이 높은 옹기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반대로 색이 화려한 도자기는 중금속 함유 가능성 때문에 고기를 담는 데는 적절하지 않다. 일반적으로 음식을 담아 놓았을 때 음식이 돋보이고 맛있게 보이는 그릇은 색상이 연한 경우이다. 그릇이 너무 요란하거나 어두우면 음식이 맛있어 보이기 어렵다. 이것은 식당이 커피숍과 달리 환한 조명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커피숍이 음식점을 겸하는 경우에는 적어도 밥시간에는 반드시 조명에 신경을 써야 한다. 그럼 밥은 어디에 담으면 좋을까? 밥그릇에 대해서는 의견이 많지 않은데 내 생각으로는 놋그릇(유기)이 좋지 않을까 한다. 온기를 유지해주고 살균효과로 인해 신선도 유지에도 좋고, 보기에도 품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기를 쓰는 집은 많지 않다. 간혹 비빔밥집에서 전주 성미당이나 가족회관처럼 유기를 쓰기도 하나 그것은 비빔밥이 그 식탁의 주요리이기 때문이다. 단지 밥그릇으로 유기를 쓰는 집은 본 기억이 없다. 김치로 유명한 명선헌도 다른 찬기는 유기를 쓰다가도 정작 밥그릇으로는 스텐레스를 쓰고 있다. 유기가 좋은 것은 알지만 실행하기 어려워서일까. 일제 태평양전쟁 때 공출로 사라졌던 안성 유기는 해방후에 재흥되었다가 연탄이 일반화되며 유기가 연탄에 시커멓게 변하는 성질 때문에 식탁에서 다시 사라졌다. 식민통치도 견뎌낸 유기를 연탄이 식탁에서 몰아낸 것이다. 그러나 연탄이 사라졌어도 유기는 돌아오지 않았다. 단지 변색만이 문제가 아니라 무거워서 씻거나 들마시기에 불편하기 때문이다. 또 유기는 보통 식당에서 사용하기에는 너무 비싸다는 것도 중요한 원인이다. 유기가 안 되면 적어도 도자기를 쓰면 좋을 듯하다. 그러나 도자기를 쓰는 음식점도 많지 않다. 다른 찬기는 다 제법 그럴듯한 도자기를 써도 밥그릇은 어김없이 스텐레스다. 이것은 말해주는 사람이 없어 짐작해볼 수밖에 없다. 식당의 손님은 정해놓고 오는 것이 아니다. 물론 밥시간이 있지만 그 밥시간은 앞뒤로 한두시간이 포함되므로 길게는 서너시간이 밥시간이 된다. 그런데 밥은 짓는데 30분 이상 시간이 걸리므로 미리 해둘 수밖에 없다. 전기밥솥에 그대로 넣어두면 찰기가 사라지고 모양새가 망가진다. 모양새와 찰기와 온기를 모두 유지하는 데는 스텐레스가 적당하다. 미리 밥을 퍼서 온장고나 아이스박스 등에 넣어두면 두세시간 정도는 그대로 보관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려면 뚜껑이 반드시 필요한데 도기 밥공기는 뚜껑이 비싸고 간수도 쉽지 않다. 밥그릇은 다른 접시와 달리 옴막하여 씻기에도 불편하고 쉽게 깨지기 일쑤이므로 안 깨지는 그릇을 찾게 된 것도 스텐레스 사용의 다른 원인이다. 굳이 스텐레스를 버리고 도기로 바꾸려면 상차림 원가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 음식값이 오르는 것은 식당이나 손님이나 반기지 않으므로 밥공기를 도기로 바꾸는 것은 이래저래 어려운 것이다. 그래도 한 음식 전문가가 말한 ‘음식이 사람이라면 그릇은 옷’이라는 말은 귀담아 들어야 할 거 같다. 한류 바람으로 한국 드라마를 보는 중국 동포들이 예쁜 배우 외에 탐닉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생활 집기이다. 그중에서도 식탁에 오르는 그릇을 열심히 본다. 저런 그릇에 밥 먹는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아름다운 그릇, 식탁의 높은 디자인 값이 인간의 품격과 동일시되는 것이다. 디자인으로 높아지는 생활의 격이 인간의 격을 높이는 것이고 인간을 존중하는 방식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한류가 되는 근본 원인도 여기 있다고 생각한다. 식당 음식값 원가도 중요하지만 밥그릇의 품격도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 중요한 이유이다. -------------------------- 너무 길어졌나요? 전문가의 식견을 구하기 어려운 항목인 거 같아 생활인으로서 이것저것 생각해보았습니다. 중용님, 이런 거까지 생각하시는 섬세함 덕분에 생각을 공유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17.2.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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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거친 질의에 섬세한 답변을 들었습니다. 덕분에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