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덕천성결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이명재 목사
꿈을 꾼 것 같습니다. 스쳐 지나간 감미로운 향기, 불경스런 비유지만 사춘기 소년 시절 예쁜 여학생과의 짧디 짧았던 교제 시간과 비슷한 감정이었다고나 할까요. 감정은 그럴지 모르지만 의미는 그런 것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예수 향기가 앞으로 계속 피어오를 것이니까요.
지난 목요일(4월 30일)이었습니다. 아내는 근 열흘을 여기에 매달리는 것 같았습니다. 문자로, 카톡으로 또 전화로 사방에 연락을 취했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에게 화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저는 괜한 일로 정력을 낭비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할 일이 얼마나 기다리고 있는데….
현대 사회는 규모로 가치를 쉬 판단합니다. 내용이 아무리 훌륭해도 겉으로 드러나는 크기가 거기에 미치지 못하면 사람들은 성에 찬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세상이 맘모니즘(mammonism)을 추구하는 근본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큰 것은 더 크게, 여기에 반비례해서 작은 것은 더 작게. 교계도 예외가 아닙니다.
기도 모임은 하나님의 일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 안에서 선(善)을 추구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좋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저희 교회(김천 덕천성결교회)에서 한동대 김천지역 학부모 기도모임을 갖는 게 어떻겠느냐고 아내가 물어 왔을 때 두 가지 상반되는 사념(思念)이 교차했습니다.
작은 농촌 교회에서 기도회를 주관하는 것에 대한 부담은 부정적인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한편 하나님께 대한 기도는 시공(時空)을 초월하여 유의미하다는 생각도 없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호사스러운 고급 호텔에서 드리는 기도는 받아 주시고 스러져가는 농촌 교회 예배당에서 드리는 기도는 외면하실까? 마굿간에서 태어나신 주님이신데….
한동대 학부모 기도모임이 자기 자녀만 잘 되게 해 달라는 기도회라면 저는 애초 관심을 갖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런 것이라면 기도회가 아니라 세상 조류에 편승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기도 모임은 그런데 목적이 있지 않다고 했습니다. 내 아이를 통해 다른 아이도 함께 잘 되고, 우리 학교를 통해 다른 학교도 발전하여 국가와 민족의 융성에 이바지하고 나아가 인류 공영에 기여하자는 것, 치열한 경쟁 사회에 이런 가치를 붙잡고 있는 것은 그 의미가 결코 적지 않을 터입니다.
아이를 한동대학교에 보내고 처음 놀란 것은 추구하는 바가 지금까지 제가 알고 있던 여느 대학과는 차이가 난다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에서 힘깨나 쓰는 대학은 좋고 나쁨을 이런 기준에 두고 자랑을 합니다. 가령 유력한 정치인, 고위 법조인,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재벌 총수, 대학 총장, 세계적으로 알려진 예술가 등, 이런 사람을 얼마나 많이 배출했는가를 놓고 대학들이 다툽니다.
하나님의 대학 한동대학교 본관
그러나 한동대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역사가 짧아 그런 것이 아닙니다. 추구하는 목표가 거기에 있지 않습니다. 한동대 홍보 책자를 보면 사회에서는 가볍게 취급하지만 결코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되는, 세상의 약자들과 함께 하는 것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비정상의 사회에서 정상을 추구하고자 애쓰는 학교라고 하면 될까요.
장애인과 더불어 회사를 일구어 가는 사회적 기업인, 후진국 오지 마을에 들어가서 젊음을 불태우는 봉사자, 사회에서 거들떠보지도 않는 분야를 불철주야 연구해서 결과물을 내고 있는 연구자, 소외 계층에게 대가 없이 인술을 베푸는 의료인 등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런 분야는 사람들은 가볍게 여길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시종 관심 두시는 영역입니다.
일제시대 배움의 단계가 아주 낮았을 때 유행한 말 중에 '배워서 남 주나'라는 게 있었습니다. 배움은 자아 발전에 필요한 것이고 출세(立身揚名)하려면 배워야 한다는 말입니다. 17세기 영국의 철학자 베이컨(Francis Bacon)이 말했다는 ‘지식은 곧 힘이다’라는 걍구도 이런 뜻에서 한 말일 것입니다. 그동안 이런 식의 말을 진리에 가깝다고 여겨왔습니다. 하지만 한동대는 이 말을 보기 좋게 역린(逆鱗)합니다. '배워서 남 주자'라고 외칩니다. 이것은 한동대의 모토가 되었습니다.
공부가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필요한 것일 뿐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드는 데 더 유용한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가 될 것입니다. 대학이 취업 준비 기관으로 전락한 듯한 지금 한동대가 더욱 돋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회 발전 동력의 기초인 문사철(文史哲) 등 인문학이 사라지고 이공 분야가 확장되고 있는 추세에서 인문학 및 인접 분야의 비중을 가볍게 다루지 않는 한동대에 애정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생각하고 있는 한동대학교에 대해 이렇게 장황하게 서술한 것은 '한동대 학부모 기도모임'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동기와, 우리 지역의 기도 모임을 저희 교회에서 갖게 된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또 제가 학부모 기도모임의 한쪽 당사자(父)이기는 해도 그 일을 준비하는 아내에게 도움을 주는 입장에 머물러 있고 싶은 마음의 한 반영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이번 기도모임에서 순전히 심부름꾼으로 섬기는 입장에 서 있기로 했습니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발이 되어 주기로 한 것입니다. 필요한 것을 사러 갈 때에는 운전자로, 예배당 안팎을 정리할 때에는 청소부로 또 기도모임을 알리는 표지판을 강단에 붙일 때에는 환경미화인으로, 손님들을 맞으러 갈 때에는 안내원으로 맡은 바 소임에 충실하기로 작정했습니다.
기도하며 음으로 양으로 도움을 주는 분들이 있어 아내는 좋아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사람이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이 영광 받으실 주인공이시니까 섬기는 자세로 임하면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 마련입니다. 아내는 좀 흥분한 말투로 경인지역에서 네 분, 대구에서 다섯 분, 구미에서 두 분이 오실 것 같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김천에서 여섯 분이 함께 하니까 모두 17명이 되는 것입니다.
숫자에 연연할 필요까지는 없지만 행사가 있을 때 참석자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며칠을 기도로 준비한 아내는 당일 아침 일찍부터 부산하게 움직였습니다. 먹을거리를 준비하고 필요한 도구를 마련하기 위해 마트를 다녀왔습니다. 김천의 몇몇 참석자들이 과일과 커피, 음료 등을 준비해 왔습니다. 힘을 모으니 일이 새삼 쉬워집니다. 합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말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것 같습니다.
기도모임을 끝낸 뒤 참석자들이 우리 교회 앞에 모여 단체 사진을 찍었다.
저는 분위기를 조금 바꿀 요량으로 강단에 행사를 알리는 표지판을 붙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갑작스럽게 하게 되었습니다. 창호지와 먹과 붓을 가져다가 '한동대(김천) 학부모 기도모임'이라고 일필휘지(一筆揮之)로 썼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오리고 붙여서 강단 벽에 가지런히 장식했습니다. 좀 썰렁한 분위기가 많이 쇄신된 듯했습니다. 아내는 모르겠으나 저로서는 손님을 맞이할 최소한의 도리를 한 것 같아 뿌듯했습니다.
조둘이 권사님(인천 부회장)을 비롯한 경인 지방에서 오시는 분들이 당일(4월 30일) 오전 9시 57분 김천구미역 도착이라고 알려왔구요, 대구 팀 중 안정희 집사님(대구 부회장)이 10시 17분 김천역 도착이라고 알려왔습니다. 저로서는 빠른 계산을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경인 지방 팀들을 먼저 픽업해서 돌아오는 길에 김천역에 들려 안정희 집사님을 태우면 대강 맞아 떨어질 것 같았습니다.
안 집사님은 대구 지역 부회장을 맡고 기도 모임을 열정적으로 섬기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오기 쉽지 않은 상황인데도 김천 기도 모임 출범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일부러 오시는 것 같았습니다. 일정이 겹쳐 다른 대구 학부모들과 한 차로 오지 못하고 따로 기차를 타고 오게 된 것입니다. 구미에서는 구명회 집사님 부부가 함께 참석하는 성의를 보였습니다. 좋은 징조입니다.
모두 처음 보는 얼굴들이지만 오랜 지기(知己)를 만난 듯했습니다. 주님 안에서의 만남은 이래서 좋은 것 같습니다. 공식 순서를 시작하기 전 저는 저희 교회 소개를 대충했습니다. 창립한 지 25년 되었고 제가 부임한 지는 만 8년이 되었으며 농촌 교회의 특징인 노년층 성도님들이 많다는 것 그리고 이곳은 포도 특구로 지정된 곳이어서 대부분 포도 농사를 짓고 있다는 것 등을 소개했습니다.
사회는 대구 부회장인 안정희 집사님이 맡아 보았습니다. 차분함 속에서 우러나오는 소리가 힘이 있었습니다. 찬양을 몇 곡 부른 뒤 전체 기도모임 총무인 이영춘 권사님이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인천 부회장으로 섬기는 조둘이 권사님이 아이들과 한동대에 관련된 간증으로 참석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아이 둘에 며느리까지 한동대를 나왔으니 성골(聖骨) 한동인(?)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인천지역 부회장을 맡고 있는 조둘이 권사님이 귀한 간증으로 참석자들에게 은혜의 마음을 갖게 했다.
기도모임은 기도를 하기 위할 목적으로 모이는 것입니다. 보름 여 전(4월 13일) 대구 학부모 기도회에서 모은 것들을 원용했습니다. 잘 정리되어 있더군요. 그 내용 안에는 나라와 민족, 북한, 한동대학교, 총장님, 교수님들, 교목실 목사님과 간사님들, 각 학부, 직원 선생님들, 학생들, 병약한 지체들, 공동체 사역, 생활관 및 체육관 신축과 후원자, 학부모 기도회를 위해 통성으로 기도한 뒤 전체 기도모임 부회계 박영경 집사님이 마무리 기도를 했습니다.
나는 순전히 심부름꾼을 자처하며 섬김의 자세를 견지했지만 목회자인 탓에 기도회 말미에 헌금 기도와 축도를 하게 되었다.
이어 참석자들이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했습니다. 한동 가족이 된 것에 대한 감사와 앞으로의 삶 속에 하나님을 더 강력하게 따라야겠다는 순종의 다짐들이 소개의 말 안에 녹아 있었습니다. 이런 모습들을 전체 기도모임 서기인 황미경 권사님은 사진기에 빼곡이 담았습니다. 황 권사님은 직장 월차를 내서 이곳까지 오는 정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런 섬김과 헌신이 한동대 학부모 기도모임의 힘일 것입니다.
그날 점심은 제가 쏘기로 무언의 약정이 되어 있었습니다. 한 가지 기준을 정했습니다. 작은 교회 목사가 대접하는 점심 식사인 만큼 비싸지 않으면서도 맛있는 음식점일 것. 우리가 토요일 김천역 찬양 전도 마치고 자주 가는 식당이 있습니다. 이름도 아름다운 '갈무리식당'이 그곳입니다. 이 음식점은 청국장 백반 전문입니다. 김치 찌게 등 다른 메뉴도 있지만 저는 여러 번을 갔는데도 청국장 외엔 먹어본 것이 없습니다.
청국장이 우리 토종 음식이라는 것도 어느 정도 작용했습니다. 대학생을 둔 학부모들로서 우리 토종 음식을 마다할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자동차를 나누어 타고 평화동 갈무리식당으로 내달렸습니다. 천진난만한 소년소녀들처럼 우리는 휘파람을 불며 식당에 도착했습니다. 마치 장날이라 식당은 만원이었습니다. 우리가 미리 예약을 하지 않았다면 시간이 보다 많이 소비되었을 것입니다.
제가 대접하는 입장이니 참석한 분 중 책임 단위를 맡은 분이 기도를 하면 좋을 것입니다. 전체 서기 황미경 권사님이 식사기도를 했습니다. 막 식사 숟가락을 들으려 할 때 아내가 큰 소리로 광고했습니다. "오늘 점심 식사는 목사님이 사시기로 되어 있었는데 이영춘 권사님이 들어오시면서 계산을 하셨습니다." 이럴 때 좀 멋적게 되는 사람은 대접하기로 한 저 같은 사람입니다. 저는 미안하면서도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김천 지역에서 참석한 분들이 십시일반의 마음으로 먹을거리를 준비한 관계로 식탁이 풍성했다.
일이 있어 몇 분은 돌아가고 나머지 다수는 다시 저희 교회로 돌아와 차와 과일을 들면서 못다 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모두 기대에 찬 얼굴들을 하고 기도모임에 대해서 그리고 한동대 생활에 대해서 나아가 아이들의 진로에 대해서 궁금한 점을 나누었습니다. 그런 대화 가운데 늘 하나님께서 가운데 정좌하고 계셔 든든했습니다. 사람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께 의지하려는 믿음의 사람들, 이들이 사회 요소요소에서 빛을 발한다면 나라가 훨씬 맑고 밝아지겠지요.
경인 지역에서 오신 분들은 기차표를 예매해 놓고 있었습니다. 오후 3시 54분. 3시쯤 기도 모임을 파하면서 교회 앞에 나와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각자 다시 자신의 처소로 돌아가야 할 시간입니다.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작별 인사하는 시간으로 10 여 분이 성큼 흘러갔습니다. 김천구미 역사(驛舍)에 도착하니 오후 3시 45분, 1층 대합실에서 일단 손을 흔들며 작별을 고했습니다만 왠지 기차 플랫폼까지 올라가 보고 싶었습니다. 제 마음에 아직도 20세기 초반에나 통할 문학적 감성이 남아 있는 탓일까요.
기도회 일정을 모두 마치고 상행선 기차를 타기 위해 김천구미 역사 플랫폼에 도착해서 전체 기도모임 임원들과 함께
기차가 조금 연착되는지 꽤 오랜 시간을 함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니 이것은 오래 같이 있고 싶다는 제 마음의 반영인지 모릅니다. 기차가 들어오고 있으니 선 밖으로 나가 기다려 달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습니다. 그 순간 조둘이 권사님이 저희 부부를 플랫폼 기둥에 세우고 사진기 셔터를 눌러댔습니다. 또 경인 지역에서 온 분들 속에 제가 끼어 기념사진을 찍는 행운도 누렸습니다. 모두 순수한 사춘기적 생각이 발동된 결과이겠지요.
그 날 하루 기도모임을 다시 되돌아봅니다. 삭막해져 가는 세상, 맑고 깨끗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만난 것만 해도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자연 속에서 또는 여행을 하면서 거기에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면서 마음의 치유(힐링)를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힐링의 경험을 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입니다. 저는 그날 그것을 경험했습니다. 작은 교회에서 기도모임을 갖는 부끄러움과 부담감 같은 것도 말끔히 씻겨 나갔습니다. 선한 분들로 인해 작은 교회에서 피어오른 예수 향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향기가 지속되기를 바랍니다. 함께 한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