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1. 21
영화 "어벤저스"에 보다 보면 "타노스"라는 빌런이 나온다. 여자 프로 배구팀에도 타노스의 이름을 딴 별명이 붙여진 감독이 있다. 바로 GS 칼텍스 차상현 감독이다.
타노스와 차상현의 이름을 딴 "차노스"
▲ 차상현 감독(한국 배구연맹 사진 제공)
차노스는 차 감독이 거대한 몸집의 타노스처럼 체격이 좋고, 훈련할 때는 마치 악당처럼 인정사정없이 독하게 훈련을 시킨다고 해서 선수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차노스 감독이 지휘하는 GS 칼텍스에는 이렇다 할 주전급 스타 선수가 없다. 해마다 새로운 얼굴들이 등장해 라이징 스타로 떠오르기 때문에 GS칼텍스를 일컬어 많은 이들이 '화수분 배구(보물이 나오는 단지) '라고 얘기를 한다.
흥국생명의 김연경처럼 GS칼텍스에는 팀을 상징할 만한 간판선수가 없다. 감독 입장에서는 매 경기 누구 하나 믿고 맡길 선수가 없단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끊임없이 신인급 선수들을 배출해 내는 화수분 배구의 비법이 궁금했다.
화수분 배구
지난 12일 경기도 청평에 있는 화수분 농장(GS칼텍스 체육관)에서 차 감독을 만났다.
"감독님! 여기는 진짜 운동만 할 수 있는 곳에 체육관이 있네요?"
실제로 체육관 주변에는 노인회관을 빼고 아무것도 없었다. 차 감독은 웃으며 답했다.
"운동하기 좋은 곳에서 운동을 열심히 하면 되지"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어떻게 해마다 신인급 선수들을 잘 만들어 내세요?"
차 감독은 훈련에 답이 있다고 했다.
"우리 선수들은 진짜 훈련을 많이 한다. 이따가 보면 알겠지만 훈련을 많이 해야 하는 선수들이야. 우승권에 있는 팀들에 비해 주전들의 기량이 떨어지니까 훈련밖에 방법이 없다. 그리고 베스트 6 가지고 절대 시즌을 치를 수가 없고, 웜업존이 강해야 그 팀이 강하다"라고 설명했다.
▲ 화수분의 새싹들 (오세연, 권민지,김지원 문지윤 선수)
차 감독은 마른 걸레를 짜내는 심정으로 GS는 선수 구성을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면서, 지금 선수들로 팀을 이끌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하셨다.
차 감독은 올해 GS 칼텍스 감독에 부임한지 7년째다. 부임 직후 차 감독은 만원 관중 앞에서 배구를 할 수 있는 팀을 만들겠다고 했던 차 감독은 GS 칼텍스를 밝고 빠른 배구를 하는 팀으로 만들었다. 감독의 목표가 뚜렷했던 까닭에 팀 성적은 해마다 올랐다.
차 감독은 선수들에게 동기부여를 해주고, 선수들이 코트에서 자신감 있게 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하면서 반복적으로 많은 양의 훈련을 소화하는 것, 이것이 화수분 배구의 비법이라고 했다.
훈련이 답이다.
오후 3시부터 시작된 본격적인 훈련!
나는 남자팀에서만 훈련을 해봤기 때문에 여자 팀의 훈련 방식이 궁금했다. 그냥 막연히 여자팀은 남자팀보다 훈련량이 적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훈련 방식을 보니 거의 남자팀과 같은 양질의 훈련을 소화하고 있었다.
6 대 6 미니게임 중인 GS 칼텍스
중간에 잠깐 쉬는 시간이었다. 선수들 하나같이 나에게 다가와 물었다.
“우리 팀 훈련 많이 하죠?”
선수들이 나에게까지 와서 이렇게 이야기 한다는 게 어떤 힘듦! 인지 알기에, 그냥 웃픈 미소만 나왔다.
웜업부터 수비, 공격, 6 대 6 미니게임까지 방식은 비슷할 수 있으나! 어떻게 하냐에 따라 훈련 형태와 선수들의 긴장도는 많이 다르다. GS 칼텍스 훈련을 지켜보면서 내가 다 긴장됐다. 타이트한 훈련 속에 차 감독의 눈빛은 더 매서워졌다. 선수들이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실점을 하면 크게 호통을 치셨다.
선수들이 훈련을 하다가 집중력이 떨어지면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훈련할 때 긴장도는 많이 높았다.
모마 선수와 권민지 선수는 마지막까지 차 감독과 1 대 1 훈련을 하며, 어떻게 하면 타점을 높일 수 있을지 연구했다.
아직 리그 초반이긴 하지만, 지난 몇 년 동안 우승권에 계속 머물던 팀이기에 올 시즌에도 좋은 성적을 거둘 것이라는 팬들의 기대감은 높을 것이다. 훈련을 지켜보는데 갑자기 차상현 감독과 얽힌 추억이 떠올랐다.
"나만 믿고 따라와"
때는 2009년 아시아 선수권 준비하던 대표팀 시절이었다.
당시 불미스러운 일로 코칭스태프들을 비롯해 선수들이 제대로 선발되지 못하던 상황이었다. 중요한 대회를 1주일가량 남기고, 대표팀 분위기는 풍비박산이 났다. 당시 사건도 사건이지만, 남아서 남은 대회를 치러야 했던 대표 선수단에게는 데미지가 몇 배 이상이었다. 언론은 그때의 이슈를 부각하느라, 선수단을 흔들었다.
▲ 차상현, 김구철 코치님과 모든 스태프들(대한배구협회 사진 제공)
코칭 스텝으로는 차상현 감독(당시 코치 시절), 김구철 코치가 선수단을 이끌고 필리핀으로 출발을 했다. 당시 대표팀은 예선 탈락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설상가상으로 태풍 켓사나까지 몰려와 대형버스 중간 높이까지 물이 범람했고 200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대회 첫 경기는부터 취소됐고, 경기장까지 물에 잠기면서 대회 일정이 연기되면서 대회 자체를 취소해야 하는 상황까지 갔다.
차상현 감독은 선수단을 모아 놓고 이야기를 했다.
"이런 상황 속에 너희들에게 잘해야 한다는 말은 어불성설인 것 같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배구까지 못하고 간다면, 우린 대표팀으로서 자격이 없다. 여기에 온 목적이 있으니, 그동안 훈련한 것이 아깝지 않게 최선을 다해보자. 내가 할 수 있는 건 뭐든지 다 할 테니 나만 믿고 따라와 달라.“
가슴이 뭉클했다. 당시 차상현 감독은 30대 후반의 지도자였다. 차감독도 처음 겪는 상황이 답답하긴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모래알이 되어버릴 수 있던 선수단을 하나의 바위처럼 단단하게 묶었던 한마디는, 나를 믿고 따르라.
보통 대회를 나가면 체제비가 준비되어 있는데, 차 감독은 그 돈을 모두 선수들을 위해 준비해 주셨다.
차상현 감독은 어떻게 하면 선수들에게 더 좋은 것을 먹일까 고민하며 노력하셨다. 덕분에 해외 경기였지만, 비싼 한식당을 그렇게 많이 갔던 건 처음이었던 것 같다.
또 경기마다 서브, 블로킹, 공격(몇 점 이상부터), 수비 등 각각에 보너스를 부여해 많은 금액은 아니지만, 1~5달러 정도를 책정해 수당으로 주셨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선수들이 조금이나마 동기부여를 받을 수 있게 생각을 짜내셨다.
태풍은 이틀 만에 잠잠해졌고, 대회는 다시 열렸다.
어수선한 분위기 탓에 대표팀이 부진할 것이라던 예상을 깨고 예선전부터 하나로 똘똘 뭉치기 시작했다.
대한배구협회 사진제공
지금의 여오현 플레잉 코치를 필두로 한선수(대한항공), 황동일(OK 금융그룹), 은퇴를 한 이선규(한국전력 코치), 하경민(현대캐피탈 유소년 감독), 김요한(KBS N 해설 위원) 등 선수들은 매 경기 어렵게 경기를 했지만, 눈에 불을 켜며 경기에 임했다. 달러를 모아 커피를 먹을 수 있게 해준 차 감독님의 승리 수당 때문이었을까? ^^;;; 대표팀은 대회를 3위로 마무리했다.
단순히 성적으로만 본다면 이런 게 무슨 의미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수많은 악재 속에 차 감독과 선수들이 만들어 낸 의미 있는 3위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당시의 3위라는 결과가 많은 이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결과라고 할지라도 당시 대회를 함께 했던 선수들에겐 자랑스러운 결과다. 누구도 경험하지 못했던 악재 속에 함께 이뤄낸 결과라는 점에서 모두가 3위라는 성적을 진심으로 기뻐했다
감독은 성적으로 말한다.
프로 감독은 성적으로 이야기를 해야 한다. 차노스의 화수분에서 자라나는 여러 보물들이 성장하고 빛을 내며 5위에서 4위, 3위, 2위, 1위까지 영광의 순간을 맛봤다. 하지만 화수분 배구에도 또 다른 보물들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GS칼텍스에게 이번 시즌은 아마도 새로운 도약을 위한 준비의 시간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해 본다. 새로운 선수들이 성장하고 빛을 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준비 시간 말이다.
프로에서 때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낸다는 건 쉽지 않다. 팀을 응원하는 팬들에게도 신뢰가 쌓여 있어야 하고, 프로 선수들이다 보니 금전적인 부분도 무시 못 할 수도 있다. 이 과정 속에서 비난과 책임론은 결국 감독의 몫이다.
▲ 훈련이 끝나서야 환하게 웃는 GS칼텍스 선수단
차상현 감독은 여러 가지 악조건 속에서도 1위라는 정점을 찍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또다시 정상에 오르는 길을 알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앞으로 한발씩 내딛고 있었다.
"훈련은 배신하지 않는다. 훈련이 답이다."
그렇게 차곡차곡 훈련량이 쌓여 준비가 잘 된다면 트레블을 차지했던 2020~2021 시즌 "모두가 주전" 이라는 차 감독의 믿음을 다시 한번 성적으로 증명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윤봉우 / 전 프로배구 선수, 현 이츠발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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