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자
정창준|(주)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파란시선(세트 0023)|B6(신사륙판)|167쪽
2018년 6월 30일 발간|정가 10,000원|ISBN 979-11-87756-20-0|바코드 9791187756200 04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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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소개 ▄
여전히 아름다운 자에겐 구원이 없으므로
정창준 시인의 첫 신작 시집 <아름다운 자>가 2018년 6월 30일, ‘(주)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에서 발간되었다.
정창준 시인은 1974년 울산에서 출생했으며, 울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2011년 <경향신문>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현재 대현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재직 중이며, 수요시포럼 동인이다.
정창준 시인은 고래다. “은행에 갚아야 할 빚이 있”는 고래다. “최저생계비에 의탁해 기생하는” 고래다. “골목 끝으로 몰려 웅성거리”리는 “계약직” 고래다. “평생을 날개 없이 걸어 다녀야 하는” 고래다. “종일 담배 냄새를 묻히고 돌아다니다 귀가”하는 고래다. “환청에 시달”리는 고래다. “자주 편두통으로 앓아눕곤” 하는 고래다. 여전히 “먼 지방의 말투”를 쓰는 고래다. “불법체류” 중인 고래다. “반지하”에 세 들어 사는 고래다. “수배 경력도 없”는 고래다. “자목련”처럼 지고 있는 고래다. “몸을 둥글게 웅크리고 자는” 고래다. “너는 얼마나 낮은 주파수로 울었던 것일까?” “밑창이 뜯어진 운동화를 뚫고 나온 발가락”을 숨길 줄 모르는 고래다. “갚을 수 없는 것들만” “고스란히 물려받”은 고래다. “불가촉의 자리에” “뿌리를 내린” 고래다. “어쩌다 이른 새벽이면 탈탈거리는 용달차 소리로 인사를 대신한 채” 사라지는 고래다. “이제는 수신조차 되지 않는” 고래다. “유목민처럼 죽은” 고래다. “꼬박 9시간을 교실에서 수업”받는 고래다. “열매도 필요 없이 꽃 피는” 고래다. “서둘러 교문을 빠져나가는” 고래다. “봉고차”를 타고 학원에 가는 고래다. “유통기한이 갓 지난” 고래다. “외톨이” 고래다. “너무 일찍 늙은” 고래다. “외딴 공터에서” “자주 타살되”던 고래다. “인형 뽑기 기계의 좁은 출구”에 낑긴 고래다. “한 번도 네 이름으로 불린 적이 없는” 고래다. “컴컴한 지층 속에서” “점점 화석이 되어 가는” 고래다. “겨울나무를 닮아 가고 있”는 고래다. “길고 음울한 코를 가진 푸석한 얼굴의” 고래다. “건기의 식물처럼 침묵”하는 고래다. “문득 늙은 날처럼 쓸쓸해진” 고래다. “퇴화하고 있”는 고래다. “살육”당하는 고래다. “혼신의 힘을 다해 도망치는” 고래다. “누구에게도 읽혀지지 못할 글들을 쓰기 시작”한 고래다. “그 속에 내가 있었다”, 그리고 당신이 있었다. 정창준 시인은 바로 우리다.
추천사 ▄
정창준은 사회학적 상상력, 정치학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도시 변두리로 내몰린 사람들의 폐허처럼 쓸쓸한 내면을 정확하고 정직하게 꿰뚫는다. “바람은 언제나 삶의 가장 허름한 부위를 파고들”지만 어두운 현실을 비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를 소각하고 밀어내기 위한” 모든 것에 아버지는 “집을 지키기 위한 단 한 번”의 “발화”를 하며 온몸으로 저항하는 방법을 택한다(「아버지의 발화점」). 그에게 시인은 우울과 비관에 머무는 자가 아니라 좀 더 완강한 내면적 벽을 꿈꾸는 자이며(「캥거루의 밤」), 세상의 소음과 친해지며(「소음 보청기」),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더욱 고통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클라인 씨의 병」).
구멍 난 가슴을 채우는 슬프고 단단한 시들, 정창준은 시가 발화하는 지점과 시가 있어야 할 자리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시인이다. 뿌리 없이 휘청거리는 사람들, 뿌리 뽑혀진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버려진 것들에게 다가가 소곤대고 다독거리며 함께 울어 주는 시들을 그는 보여 준다. 쓸쓸한 등을 가지고 태어난 우리는 언제쯤 슬픔에 익숙해질 수 있을까. 아름답게 태어나지 못한, 창백하고 불안한 영혼들을 온 힘으로 받치고 있는 시편들은 상처의 바깥이 상처를 덮으며 고통스럽게 아름답다.
―정재학(시인)
시 「아버지의 발화점」은 가난과 부끄러움 그리고 죄의식이라는 세 항목의 역학 관계를 통해 ‘발화점(發火點)’이 장전될 수 있었음을 보여 준다. 니체는 ‘도덕의 근본 개념’ 중 하나인 죄(Schuld)는 부채(Schulden)에 의해 발생한다고 했다(그러고 보니 죄와 부채의 독일어 어원이 같다). 부채 관계에서 빚을 상환하지 못할 때 가해지는 형벌의 잔인함에 대한 채무 의식이 결국 도덕의 기원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인간은 빚을 지는 순간 죄인이다. 도덕의 기원으로서 ‘빚(채무 의식)’은 원죄 의식에 닿아 있는 것이다. 마우리치오 라자라토는 니체의 이 ‘빚을 진 자(L’homme endetté)’의 형상을 오늘날의 신자유주의 메커니즘을 분석하기 위해 ‘부채 인간(homo debitor)’이라는 개념적 도구로 새롭게 창안하기도 했다. <부채 인간>에서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힘은 ‘자본’이 아니라 사회, 개인, 도덕 등 경제적이지 않은 모든 가치들을 경제적 효용 가치로 환원해 버리는 ‘빚’이라고 설명했다. 정리하면 가난과 죄의식은 ‘빚’에 의해 결합된 원죄 의식에 닿아 있는 것이다. “빚 있는 자”만이 죄의식을 가질 수 있다면, (니체는 유일신의 기독교 비판으로 나아갔지만) 이 죄의식이 인간을 윤리적 주체로 정립하는 기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가난한 “빚 있는 자”만이 “남루함이 죄였다”라고 발화(發話)할 수 있다.
―박정희(문학평론가, 해설 중에서)
저자 약력 ▄
정창준
1974년 울산에서 출생했으며,
울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2011년 <경향신문>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현재 대현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재직 중이며,
수요시포럼 동인이다.
시인의 말 ▄
분쇄된 원두를 지나온 물은 커피가 되고
덖은 새잎을 지나온 물은 한 잔의 차가 된다
가끔 나는
내가 지나온 것을 믿을 수 없다
차례 ▄
시인의 말
제1부
아버지의 발화점 ― 13
먼지 ― 15
폴리에스테르 로드 ― 16
Vincent Van Gogh 1 ― 17
캥거루의 밤 ― 20
대형 마트의 사회학 ― 24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 26
서커스 ― 29
붉고 슬픈 홈런 ― 30
지네 ― 34
헨젤과 그레텔 ― 35
소음 보청기 ― 40
52-hertz whale ― 42
제2부
마더 ― 47
흡혈귀의 시간 ― 48
클라인 씨의 병 ― 52
토이 크레인 ― 55
키위, 혹은 ― 58
모나미 153 ― 60
WELCOME JUICE ― 62
새장 ― 64
누이의 방 ― 67
목격담 ― 70
80년대식으로 말하다 ― 72
이상 성애 강철 거인 ― 73
겨우살이 ― 76
닭가게 마사오 ― 78
소문 배급소 ― 80
제3부
사월 초파일 ― 85
사상 검증 ― 86
암각을 헛디디는 정오 ― 88
Vincent Van Gogh 2 ― 90
루시드 드림 1 ― 92
핑크 플로이드 버전의 학교 ― 95
있을 법한 상담 ― 100
루시드 드림 2 ― 102
아카시아 아닌 ― 104
자목련 지다 ― 106
송정못에서 ― 107
기억해야 할 동행 ― 108
벚꽃 엔딩 ― 110
겨울 삽화 ― 111
습작기 ― 112
놀이터의 사회학 ― 113
제4부
울기엔 좀 애매한 ― 119
서점의 사회학 ― 122
노안 ― 125
거미줄바위솔 ― 126
우울한 오후 ― 128
나의 아내, 소냐 ― 130
안전한 병원 ― 132
거미 ― 135
바람이 쓴 일기 ― 136
신정동 ― 138
다시, 봄 ― 140
브레히트가 그린 나의 자화상 ― 142
섬의 방식 ― 143
해설
박정희 ‘빚 있는 자’의 발화(發火)를 위한 발화(發話)들 ― 147
시집 속의 시 세 편 ▄
아버지의 발화점
바람은 언제나 삶의 가장 허름한 부위를 파고들었고 그래서 우리의 세입은 더 부끄러웠다. 종일 담배 냄새를 묻히고 돌아다니다 귀가한 아버지의 몸에서 기름 냄새가 났다. 여름밤의 잠은 퉁퉁 불은 소면처럼 툭툭 끊어졌고 물 묻은 몸은 울음의 부피만 서서히 불리고 있었다.
올해도 김장을 해야 할까. 학교를 그만둘 생각이에요. 배추 값이 오를 것 같은데. 대학이 다는 아니잖아요. 편의점 아르바이트라도 하면 생계는 문제없을 거예요. 그나저나 갈 곳이 있을지 모르겠다. 제길, 두통약은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남루함이 죄였다. 아름답게 태어나지 못한 것, 아름답게 성형하지 못한 것이 죄였다. 이미 골목은 불안한 공기로 구석구석이 짓이겨져 있었다. 우리의 창백한 목소리는 이미 결박당해 빠져나갈 수 없었다. 낮은 곳에 있던 자가 망루에 오를 때는 낮은 곳마저 빼앗겼을 때다.
우리의 집은 거미집보다 더 가늘고 위태로워요. 거미집도 때가 되면 바람에 헐리지 않니. 그래요. 거미 역시 동의한 적이 없지요. 차라리 무거워도 달팽이처럼 이고 다닐 수 있는 집이 있었으면, 아니 집이란 것이 아예 없었으면. 우리의 아파트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고층 아파트는 떨어질 때나 유용한 거예요. 그나저나 누가 이처럼 쉽게 헐려 버릴 집을 지은 걸까요.
알아요. 저 모든 것들은 우리를 소각하고 밀어내기 위한 거라는 걸. 네 아버지는 아닐 거다. 네 아버지의 젖은 몸이 탈 수는 없을 테니. 네 아버지는 한 번도 타오른 적이 없다. 어머니, 아버지는 횃불처럼 기름에 스스로를 적시며 살아오셨던 거예요. 아, 휘발성의 아버지, 집을 지키기 위한 단 한 번 발화. ***
키위, 혹은
지금 둘이 살기도 빠듯하고 힘든데 애를 낳으면 어떻게 해요? 애는 누가 키우구요? 우리가 뻐꾸기처럼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는 것도 아닌데, 친정엄마도 아프고 시어머니도 질색이신데, 지금도 아파트 대출 원금은커녕 이자 갚기도 힘이 든데 아기를 낳는 순간 직장에서 잘릴 게 뻔한데 당신이 벌어 오는 고만고만한 월급으로 세 식구가 어떻게 살겠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에게 우리의 삶을 온전히 물려주기는 싫어요. 제발 날개가 퇴화되기 전의 우리 부모들과 우리의 삶을 동일시하지 말아요.
여기서 한나절을 꼬박 날아가면 닿게 되는 뉴질랜드에는 날지 못하는 새가 있다지. 제 이름을 스스로 부르는 새라는데, 키위 새는 날개를 쓰지 않다가 끝내 날개가 퇴화되어 손톱만큼도 날지 못하고 땅 위를 걸어 다닌다지, 그러다가 물려 죽거나, 제 몸의 4분의 1이나 되는 알을 낳다가 대부분 죽는다는데, 혹시 순산을 하게 되더라도 평생을 날개 없이 걸어 다녀야 하는 숙명을 물려주어야 한다는데, 키위 새가 사는 법은 알을 낳지 않은 것, 그리고 알을 낳지 않기 위해서는 짝짓기도 하지 않는 것,
우리처럼. ***
52-hertz whale
너희는, 오랫동안 나를 두고, 나의 언어를 두고,
독백이라고 했다. 진화가 덜된 목소리라고도 했다. 그래서,
내가 이상해?
네가 사라져야 비로소 밤은 찾아왔다. 장국영이 죽고서야 벚꽃이 떨어졌듯이. 목소리를 묻어 버리는 목소리야말로 대낮처럼 폭력적이야. 대부분의 낮을 나는 열대우림의 나무처럼 얇은 목피 속에서 침묵하지. 끈끈하고 불쾌한 습도를 참아 내며 서 있어도 평범의 바깥에는 다른 평범함이 서 있을 뿐 내가 있을 곳은 어디에도 없어. 시청률과 조회 수와 판매량의 반대편으로 향하는,
내가 이상해?
주파수가 혼선된 해적 방송 같아? 단 한 번도 밤이 푸르지 않았던 너희는 아침의 채도를 몰라. 일조량에 따라 조건반사로 벌어지는 꽃송이처럼 떨어질 날들만 기다리는 것은 아니지? 나는 파미르의 이방인, 지극히 관조적이고 낯선. 너희는 나와의 교집합을 강요했지만 나는 합집합을 떠올리지. 단 한 번도 너희를 배제하지 않아. 하지만
아무도 들을 수 없어야 나는 마음껏 말할 수 있어. 내가 이상해?
서로 다른 부력이 없었다면 우리는 모두 심해의 생물이 되었으리. 시가 없었다면 우리는 괴물이 되었으리. 수중의 두터운 물살을 헤치고 나아가는 나의 울음은 아무도 들을 수 없다고 했다.
처음부터 이해의 방식이 잘못되었던 거야. 내 신음과 웃음도 구별하지 못하던 당신들이… 내 소리만을 갖고 나를 이해하려 했던 잔인함이…
너희는 왜 알아듣기 싫은 말만 하는 걸까. 내가 이상한 거야?
일을 하다가 고개를 들면 말이야, 책상 칸막이 너머로 모조리 정수리만 보여. 그게 너무 무서워. 일종의 환공포증일까. 도대체 성실이라는 말 속에 울림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성실은 착취의 풀메이크업 버전이야. 애국은 매국자가 선점해 버리고 진실은 위선자의 무기가 되고 있어. 오히려 거짓이라고 발음의 음장 속에 진실은 숨어 있어. 숫자와 탐욕이, 행간과 절실함이 서로 같은 헤르츠를 공유한다고 믿어. 이런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