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17일
‘友·敵 프레임’에 빠진 정치적 분단 상태… 다수의 폭정 우려
국정난맥에 권력형 비리 터져도 文대통령 지지율 상승 기현상… ‘내 편·네 편’ 나누는 프레임에 정치의식 마비된 탓
공수처법은 ‘검찰 손보기’로 변질… 선거법 개정안은 정략만 앞세운 범여권 내부 이해관계로 누더기
2019년 연말, 한국 정치에는 삭풍이 분다. 여권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법안과 선거법 개정안을 ‘개혁’이라며 밀어붙이고, 보수 야권은 ‘개악’이라며 결사반대한다. 그것들은 과연 개혁인가 개악인가. 개혁이라면 다음 세 가지 기준을 충족시켜야 한다. 문제 해결 수단으로서의 적합성, 절차에서의 민주적 정당성, 그리고 미래 지향성이다. 두 법안은 이 요건들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문제는 범여권이 ‘내 편과 네 편’이라는 ‘우(友)·적(敵) 프레임’에 입각해 전대미문의 임의기구인 ‘4+1 협의체’라는 걸 만들어 이들 법안을 밀어붙이려 했다는 점에 있다. 이 프레임 속에서 국민은 정치·심리적 분단 상태로 빠져들었고, 범여권 내에서조차 극단적인 당리당략이 맞서 심각한 갈등이 일어나는 상황이다.
◇ 개악으로 치닫는 공수처법과 선거법
공수처는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기구가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가운데 살아 있는 권력에 칼을 대고 고위 공직자의 부패를 제거하도록 하는 원래의 취지에서 벗어나 ‘검찰 손보기’로 변질했다. 지금의 공수처법은 검찰이 살아 있는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수사를 하니까 검찰의 힘을 빼겠다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상당수 헌법학자가 이와 관련한 위헌성을 제기했고, 다수의 형사법 전문가도 형사소송법 체계와의 불일치 및 과잉입법임을 경고하고 있다. 검찰개혁의 핵심은 검찰권의 중립화와 공정화인데, 현재 공수처법은 검찰의 무력화만 노린다.
선거법 개정안도 마찬가지다. 선거제도 개혁의 취지는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생체제와 지역주의를 해소해 협치의 정치적 기반을 확보하자는 데 있다. 당연히 제왕적 대통령제를 손보는 내용을 중심으로 하는 권력구조의 변동을 동반한 개헌이 선거법 개정과 함께 가는 게 전제돼야 했다. 그런데 ‘개헌 없는 선거제도 변경’에 착수했다. 특히 유독 나치의 등장을 막기 위해 어느 정당도 과반수를 못 얻게 설계된 독일식 연동형이 모델이 됐다. 전 세계에서 독일만 하는 제도, 순수내각제에서나 어울리는 제도를 끌어들인 것은 집권 더불어민주당의 우당인 정의당이었다. 그나마 정략이 앞서면서 선거법이 누더기가 돼가고 있다. 민주당이 뒤늦게 ‘4+1’ 합의가 안 될 경우 통과가 힘든 원안(225+75)대로 가겠다고 으름장을 놓기에 이르렀다.
민주당은 공수처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선거법을 연동시켰다. 왜 공수처법에 그토록 매달리는가. 문재인 대통령과 정권의 핵심세력이 집권 전부터 오랫동안 주창해온 검찰개혁과 연결돼 있다는 게 주된 이유일 것이다. 이것마저 무산되면 지지층으로부터 한 일이 뭐냐고 돌아올 비판이 두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공수처법과 선거법은 개혁이라는 이름에 값하지 못한다. 이 법들이 통과된다고 나라가 좋아질 일도, 국민의 삶이 나아질 일도 별로 없다. 포도주 사라고 외치고 식초 파는 사례를 추가할 뿐이다.
◇ 한국은 정치·심리적 분단 상태
이 과정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가 그대로 드러났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를 쓴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렛은 민주주의가 살아 있는지를 판별하는 기준으로 ‘관용의 정신’과 ‘제도적 자제’를 꼽는다. 관용의 정신은 ‘정치적 상대를 적이 아니라 경쟁자와 동업자로 이해하는 인식 수준’이고, 제도적 자제는 ‘권력과 법적 권리를 신중하게 행사하는 태도’를 일컫는다. 최근 한국 정치는 ‘상호 관용’도, ‘제도적 자제’도 부재중이라는 사실을 알린다.
현재 한국은 정치·심리적 분단 상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적폐청산을 보수 궤멸의 수단으로 삼을 때부터 경쟁자는 적이 됐다. 반대급부로 야당이 현 정권을 좌파 독재정권으로 규정하는 순간부터 정권은 타도 대상이 됐다. 정치권만 양극화돼 있는 것이 아니라 지지층도 양극화돼 있다. 지지층 사이에도 정치·심리적 내전 상태라 할 만큼 정치권의 증오와 분노의 심리가 그대로 이식돼 있다.
물론 정치는 이성의 영역일 뿐 아니라 감정의 영역이다. 하지만 감정이 이성을 지나치게 지배할 경우 합리적 토론이 불가능하다. 협곡을 사이에 두고 싸우는 정치는 한쪽의 주장이 다른 쪽의 정치 공간에 공명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강한 지지와 강한 반대가 혼재하는 상황 속에서 지지층만 흔들리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이 지배한다. 이런 정치문화는 나치 독일의 그것을 떠올리게 한다. 나치 시절의 법학자이자 정치학자 카를 슈미트는 정치의 본질이 ‘적과 친구를 가르는 일’이라고 설파했다. 집권세력이 지지층과 비지지층을 갈라치는 전략은 특히 파시즘과 공산주의, 포퓰리즘에서 곧잘 활용된다.
◇ 정치의식 마취시키는 프레임 정치
심각한 권력형 비리가 계속 터지는 데도 문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조금씩 오르는 추세다. 조국 사태로 40%를 위협받았던 지지율은 이제 40%대 후반대를 기록하기도 한다. 그동안 새로운 국정 성과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거꾸로 북핵 위협은 노골화하고, 외교는 이리저리 치이고, 경제는 여전히 내리막길이고, 잡겠다는 부동산 가격은 더 올랐다. 게다가 정권 핵심 인사의 비리와 청와대 차원의 선거 공작 의혹이라는 민주주의 훼손 사건이 발생했는데도 국정 지지율이 오르는 역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일부에서 얘기하는 ‘야당 복’ 때문일까.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결국 프레임 정치가 지배하는 탓이다. 프레임 정치에서는 합리적 판단 기준보다는 도덕적 판단 기준이 우선한다. 그 ‘도덕적 판단의 인식 상자’ 속에는 ‘옳다·그르다’라는 시시비비의 질료가 아니라 ‘가깝다·멀다’라는 호오(好惡) 감정이 질료가 된다. 그것을 우리는 이미 조국 사태에서 충분히 경험했다. 멀쩡한 지식인들이 조국 비리를 검찰 과잉수사 탓으로 전도시키는 비합리적 프레임을 스스로 내걸지 않았던가. 프레임 정치가 횡행하면 정치의식의 ‘마취 효과’도 깊어진다. ‘내 편’의 잘못은 용서가 되지만, ‘네 편’이면 옳은 말에도 귀를 닫는다. 이것은 합리적 공론의 장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선동이 지배하고 전문가의 목소리가 작아지면 국가공동체에 유익한 의사결정이 아닌 정략에 의한 의사결정을 해도 속수무책이다. 정치가 위대한 이유는 다양한 정치적 견해차를 나라를 위해 옳은 의사 결정으로 모으는 데 있다. 프레임에 갇힌 정치는 이런 위대한 정치의 덕목을 잃는다.
성숙한 민주주의는 성찰적으로 묻고 답하는 ‘숙의(deliberation)’가 적정 절차를 통해 이뤄져 결론을 이끄는 미덕이 발휘되는 제도다. 이를 위해 대한민국 국회는 상임위원회 중심주의와 교섭단체 우선주의를 택하고 있다. 여기에 ‘4+1’이라는, 과거 듣지도 보지도 못한 임의기구가 들어설 자리는 없다. 이런 기구에서 예산이 결정되고 법안이 결정된다면 이는 제도적 자제가 아니라 제도적 남용이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심판으로서의 최소한의 중립도 지키지 못했다. 무조건 다수의 결정에 따르라는 식의 국정·의회 운영은 민주주의를 ‘다수의 폭정’(혹은 독재)으로 타락시킨다. 한쪽에서 ‘나를 밟고 가라’고 한다고 해서 다수결이란 이름으로 ‘그래, 밟고 가겠다’며 이를 강행한다면 민주주의는 위기에 빠지게 된다.
박형준 / 동아대 교수·전 국회 사무총장
문화일보
■ 세줄 요약
개악 된 공수처법과 선거법 : 공수처법은 ‘검찰 손보기’로 변질했고 선거법 개정안은 범여권 내부의 이해관계로 누더기가 됨. 여권의 공수처법과 선거법 개정안 통과 시도는 당리당략만 앞세운 채 개혁이 아닌 개악으로 치닫고 있음.
한국은 정치·심리적 분단 상태 : 한국 민주주의는 상호 관용도 제도적 자제도 부재한 상황 속에서 국민을 정치·심리적 내전 상태로 내몰아. 지지층과 비지지층을 갈라치는 집권세력의 행태는 파시즘과 공산주의, 포퓰리즘에서 곧잘 활용되는 전략.
프레임 정치가 부른 마취 효과 : 심각한 권력형 비리가 계속 터지는 데도 대통령 지지율이 오르는 것은 여권이 ‘내 편·네 편’을 나누는 프레임 정치로 정치의식을 마취시키기 때문. 무작정 다수의 결정에 따르라는 건 민주주의를 ‘다수의 폭정’으로 타락시키는 것.
■ 용어 해설
4+1 협의체 : ‘4+1 협의체’는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군소 정당인 정의당, 바른미래당 당권파, 민주평화당 그리고 대안신당이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을 배제한 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정국 돌파를 위해 만들어낸 범여권 협의체임.
다수의 폭정(혹은 독재) : ‘다수의 폭정’(tyranny of the majority)은 다수파가 집단의 힘에 의지해 소수파를 억압하는 것. 다수의 전제, 다수의 독재로도 표현됨. 1788년 존 애덤스의 서적에 등장하며, 1835년 출판된 알렉시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섹션 타이틀로 사용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