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3. 31
결국 한전공대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에너지공학의 단일학부로 구성되는 최초의 '공공형' 특수대학이 나주에 세워진다. 대선공약과 100대 국정과제에서 떠들썩하게 자랑하던 화려했던 구상은 현실의 벽을 넘지 못했다. 자그마한 골프장 부지에 들어설 학생 1000명, 연간 운영비 640억 정도의 소박한 지방대학이 고작이다. 당장은 교수도 없고, 직원도 없다. 그런데도 내년 3월 '정상개교'를 외치고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꿈은 화려하다. 에너지 인공지능, 에너지 신소재, 수소 에너지, 에너지 기후환경, 차세대 에너지 그리드의 5개 분야가 핵심이다.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인류의 에너지 난제를 해결하는 연구를 수행한다. 대학 구성원의 아이디어와 연구 성과가 상용화되는 선순환 구조를 갖춘 산학연 클러스터를 만들겠다고 한다.
선진국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아직도 이런 수준의 공허한 미사여구가 설득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이 놀랍다. 21세기의 에너지 기술을 선도할 인재를 육성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당장 상용화할 수 있는 실용적인 기술을 개발하는 연구소를 만들겠다는 것인지조차 분명치 않다. 대학과 연구소의 기능에 대한 최소한의 상식도 찾아볼 수 없는 억지 환상이다.
한전이 가진 것이 없다.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대학을 운영해본 경험도 없고, 상용화가 가능한 연구 성과를 만들어내는 연구소를 운영해본 적도 없다. 10여 개의 자회사를 압박해서 추렴하는 1조 원의 설립비와 연간 500억 원의 운영비를 부담하는 재정적 능력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마저도 정부의 과격한 탈원전으로 미래가 매우 불투명한 상황이다. 과연 국내와 해외 주주들이 한전공대의 설립과 운영에 투입할 비용을 용납해줄 것인지도 확실치 않다.
교수들에게 최대 10억 원의 정착금과 억대 연봉을 제공해서 한전공대를 단기간에 세계적인 명문대학의 반열에 올려놓겠다는 발상도 초라하다. 당장 상용화할 수 있는 연구 성과를 창출하기 위해서 필요한 연구의 엄청난 비용에 대한 고민을 찾아볼 수 없다. 억대 연봉의 교수 100명이 연구비로 1인당 10억씩만 써도 매년 1000억 원이 필요하다. 한전이 매년 그런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알량한 골프장 부지에 그런 규모의 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시설을 들여놓겠다는 발상도 놀랍다.
'단일학부'의 대학을 만들겠다는 구상도 민주사회에서 교육의 본질을 망각한 어처구니없는 것이다. 아무리 에너지 신산업 인재라고 해도 자연과학·인문학·사회과학·예술에 대한 폭넓은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 오로지 에너지 신산업의 망령에만 몰입하는 괴물 인재의 양성은 아무에게도 도움이 될 수 없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체조 선수를 육성하던 식의 시대착오적인 교육은 민주사회가 요구하는 전인 교육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먼 것이다.
대학 설립이 무너진 지역경제를 되살리기에 도움이 될 가능성도 기대하기 어렵다. 경제가 낙후된 지역에 대학을 세우고, 무작정 예산을 쏟아 부으면 반드시 대학이 성공하고, 지역 경제가 되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미국 보스턴의 '올린공대', 프랑스의 '소피아 앙티폴리스', 스웨덴의 '말뫼대학'의 성공은 지극히 예외적인 것이다. 지자체가 제공해준 골프장 부지에 말뚝조차 박을 여유도 없이 허겁지겁 학생을 모집하겠다고 나서는 성급함으로는 한전공대의 성공을 기대하기 어렵다.
제도적인 걸림돌도 심각하다. 거대 여당이 막무가내로 통과시킨 한전공대특별법은 한전공사법 제13조를 철저하게 무시한 것이다. 한전은 전원개발 촉진과 전기사업의 합리적 운영을 통해 전력수급을 안정화시킴으로써 국민경제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된 공기업이다. 1980년에 제정된 '한국전력공사법'에 그렇게 명시되어 있다. 제13조에는 한전의 사업 영역 8가지가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다. 물론 '인재양성'이나 '교육'은 찾아볼 수 없다. 한전이 한전공대를 설립·운영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탈법이라는 뜻이다.
한전공대가 애써 양성한 인력의 진로도 불투명하다. 이제 세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공정'이 대세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한전이 한전공대 졸업생을 특채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한전도 출신대학을 공개하지 않은 '블라인드' 전형을 시행해야 하는 공기업이기 때문이다. 한전이 전폭적인 지원을 해준 학생에게 일자리까지 마련해주는 것은 명백한 김영란법 위반이 될 수도 있다. 전국의 대학이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상황에서 과연 한전공대의 정상개교가 가능할 수 있을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이덕환 / 서강대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디지털타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