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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운전사 예고
https://youtu.be/0VH--Ll5P3k
영화 ‘택시운전사’ 비하인드 스토리(스포)
http://tv.kakao.com/v/375763815
부산의 두 변호사 이야기
#노무현 #문재인
택시운전사와 군함도와 어느 변호사
영화 감독들의 '택시운전사' 평가
주제를 건드린 정치적 소신을 칭찬하고 싶은 거겠지. 영화는 진짜 못만들었다. 종편 예능 드라마에나 나올법한 뻔한 클리셰들 엄청 많음
이런 역사적 영화에 너무 많은걸 바라기 보단 그 시대 역사적 사실을 얼마나 잘 담았고 대중들에게 울림을 전했다면 그 보다 잘만든 영화가 어디 있을까요...이건 액션 영화도 스릴러 반전 영화도 sf영화도 아닌 우리가 살아온 시대를 말하는 영화이니까요
개인차는 있겠으나 518관련 영화는 모두 챙겨본 감상으로는 외부의 시선으로 소시민의 시선으로 518을 바라보았다는 것이 흥미로웠고 광주시민들의 당시 모습이 적절히 모두 담겨있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송강호의 연기력까지 더해져서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고 한번 더 보고싶은 영화임.
오늘 부모님까지 온가족이 보고 왔습니다.
웃다가 울다가 했네요.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부모님도 그 참상에 놀라고 막둥이에겐 좋은 교육도 되어 흐믓했네요.
쓸데없는 식민사학 영화에 때려부을 돈을 이 영화에 투자해서 규모를 좀 더 키웠더라면 더욱 명작이 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있지만
역시 송강호씨 서민연기는 짱이네요 ^^
허지웅 글 "이 글은 십수년 전에 관련 문헌들에서 발췌해 썼던 것으로 광주는 모두가 알면서도 동시에 모르는 역사라는 생각이 들어 많이 울면서 밤새 정리했었다."
[화려한 휴가]
5월 17일
밤 11시 40분, 문공장관 이규현은 5월 17일 24시를 기해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계엄 확대가 발표되고 두 시간이 지난 후, 전남대와 조선대 캠퍼스에 특전사가 투입되었다.
5월 18일
오전 10시, 휴교령이 내린 상태에서 전남대 정문 앞에 모여든 학생 100여명과 무장 공수대원이 대치.. “돌격 앞으로” 명령에 공수대원들은 학생들에게 파고들면서 곤봉을 휘둘렀다. 곤봉은 쇠심이 박힌 살상용 곤봉으로, 이를 맞은 학생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총에 대검을 꽂아 사용하였고, 지나친 폭력에 항의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해대며 무지막지하게 구타하고, 여성들에게 폭행하고 옷을 찢고 심지어 젖가슴을 대검으로 난자했다.
“공수 놈들이 여고생을 붙잡고 대검으로 교복 상의를 찢으면서 희롱하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60살이 넘어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아이고! 내 새끼를 왜들 이러요?” 하면서 만류하자 공수놈들은 “이 씨팔 년은 뭐냐, 너도 죽고 싶어?” 하면서 군화발로 할머니의 배와 다리를 걷어차 할머니가 쓰러지자 다리와 얼굴을 군화발로 뭉게버렸다. 그리고 그들은 여학생의 교복 상의를 대검으로 찢고 여학생의 유방을 칼로 그어버렸다. 여학생의 가슴에서는 선혈이 가슴아래로 주르르 흘러내렸다.“ -박남선 <피고인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샘물, 1988)
5월 19일
노인들이 공수대원의 폭력을 만류하자 그들은 노인들의 머리를 곤봉으로 후려쳤다. 노인들도 머리에서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이런 모습을 도망치며 바라본 시위 군중들은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았는지 일시에 돌아섰다. 그리고는 "좋다, 다 죽여라!” 하면서 공수부대에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어느 할아버지는 "저럴 수가 있느냐, 나는 일제 때에도 무서운 순사들도 많이 보고, 6.25 때 공산당도 겪었지만 저렇게 잔인하게 죽이는 놈들은 처음 보았다. 학생들이 무슨 죄가 있길래 저러는가. 죄가 있다고 해도 저럴 수는 없다. 저놈들은 국군이 아니라 사람의 탈을 쓴 악귀들이야.” 하면서 통곡했다. 어느 중년의 사내는 “나는 월남전에는 참전해서 베트콩도 죽여봤지만 저렇게 잔인하지는 않았다. 저런 식으로 죽일바엔 그냥 총으로 쏴 죽이지. 저 놈들은 죽여버려야 해” 하면서 오열을 터뜨렸다. 온 거리는 피의 강, 울음의 바다가 되었다.
로타리 부근 전투에서 머리가 으깨지고 팔이 부러져 온통 피범벅이 된 부상자를 급히 병원으로 이송중이던 택시기사에게 공수대원이 부상자를 내려놓으라고 명령했다. 기사는 안타깝게 "당신이 보다시피 지금 곧 죽어가는 사람을 병원으로 운반해야 되지 않겠느냐” 라고 호소하자 그 공수대원은 차의 유리창을 부수고 운전기사를 끌어내려 대검으로 무참하게 배를 찔러 살해했다. 이런 식으로 최소한 3명의 운전기사가 살해당했는데, 이는 다음날인 20일, 또 하나의 기폭제였던 차량시위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다.
5월 20일
대검만으로는 모자랐던 걸까. 20일 오후부터는 심지어 화염방사기까지 사용하였다. 2시 30분경 공수부대는 화염방사기를 쏘아 여러 명의 시민들이 그 자리에서 타 죽었다.
시민들은 혹시나 자신들의 운명에 관한 새로운 소식이 TV를 통해 방영되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모두 열심히 시청하였지만 TV에서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연속극이나 오락프로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방영되고 있었다. 그들은 텔레비젼을 보며 이글이글 타오르는 분노를 느꼈다. 한 쪽에서는 죄 없이 같은 동포가 절규하며 죽어가고 있는데, 저 텔레비젼의 다리를 흔들어 대는 춤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하는 배신감이었다.
MBC 이외에도 KBS와 세무서도 불에 탔다. 신군부는 이 방화들을 ‘폭도론'의 증거로 TV 등을 통해 계속 보여주었다.
5월 21일
오전 10시경 금남로에는 10만이 넘는 시민들이 모여 있었다. 시민들은 일단 정오까지 공수부대를 시외곽으로 철수시키겠다는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약속한 정오가 지나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오후 1시 정각, 건물 외부에 설치된 확성기를 통해 애국가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그건 공수부대의 집단 발포를 알리는 신호였다. 광주시민들을 몰살시키려는 것이었을까. 시민들은 공수부대의 집단 발포를 정면으로 맞고 쓰러지기 시작했다.
동족을 살상하고도 쓰러진 사람들을 옮기지 못하도록 연발로 위협사격을 해대었다. 아직도 공수부대놈들의 사격선 부근에서 부상한 채로 살려달라고 외치는 시민들의 애원소리는 처절했고, 이는 그것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피를 끓게했다. 공수놈들은 아직 죽지 않고 아스팔트 바닥 위에서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시민들을 구하려고 뛰어나가는 시민들에게조차 사격을 가해 사살해버렸다. 부근 건물의 벽에 바짝 붙어서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시민들은 모두 울고 있었다. 순식간에 금남로는 피와 통곡의 바다가 되었다. 공수부대는 도청과 주변의 건물에 숨어 보이는 사람들마다 져격하였다. 1시 30분경에는 한 청년이 장갑차 위에서 윗통을 벗고 태극기를 높이 휘날리며 도청을 향해 '광주만세!’ 를 외치며 달려들었다. 모든 시민들이 긴장되어 그를 응시하는 가운데 한 발의 총소리와 함께 피가 튀며 청년의 목이 꺽어졌다. 이 광경을 본 모든 시민들은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충격에 온몸을 떨었다. 이제는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전쟁’ 이었다. 시민들은 곧 총을 얻기 위해 시내, 외의 무기고로 향했다.
21일 저녁, 드디어 시민군은 계엄군을 도청에서 몰아내고 점거하는데 성공한다.
5월 22일
22일 비공식적인 정전이 성사되고 종교 지도자들을 포함한 시민 수습위원회와 신군부 사이에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대화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날 계엄당국은 김대중을 광주폭동의 배후라고 발표했으며, 일부 특전사 지휘관들은 무력을 동원해 광주 '폭도들'을 '소탕’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두환은 정석환에게 “최장군의 사기가 극도로 저하되어 있을 터이니 용기를 잃지말고 분발하라고 전해달라"며 전두환 자신의 명의로 금일봉 1백만원을 최웅에게 전해달라고 지시했다.
5월 24일
공수부대는 지원동 주남마을을 출발, 진월동에 이르러 인근지역에 장난삼아 총질을 가했다. 저수지에서 멱을 감고 있던 아이들에게 집중 사격을 가하자 아이들은 둑 너머로 피신했지만, 전남중학교 1학년이었던 박광범이 머리에 총을 맞고 즉사했다. 진월동 동산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에게도 무차별 집중사격을 가했다. 모두 피신했지만 신발이 벗겨져 뒤돌아섰던 효덕국민학교 4학년 전재수는 총에 맞고 즉사했다.
전남대학교 교수들은 <대한민국 모든 지성인들에게 고함>을 발표했다. "모든 사람들은 6.25때에도 이런 참혹한 살육전은 없었다고 울부짖으며 '모두 죽자’ '죽여달라’ 를 외치며 짐승 같은 계엄군과 맨몸으로 싸웠습니다. 고립된 우리 광주 시민들에게는 무엇보다도 한시가 절박합니다. 민주시민이여! 민주화를 위해, 우리의 삶을 위해 일어섭시다.”
5월 25일
아침 8시, 황금동 부근에서 술집을 경영하는 21세의 장계범이라는 사람이 도청 농림국장실에 쓰러지듯이 허겁지겁 들어닥치면서 어깨를 움켜쥐고는 “독침을 맞았다!"고 소리쳤다. 여기저기서 간첩이 침투했다는 소문이 돌고 모두들 수군거리며 도청 안에는 불안해서 못 있겠다며 상당수가 빠져나갔다. 이 사건은 사전에 계획된 것으로서 침투정보요원들의 도청지도부 교란작전이었다. 이간계는 항상 손안대고 코푸는 효과만점의 작전!!
5월 26일
전남 도청에서 최초이자 마지막 내외신 기자회견이 열렸다. 미국의 일간지 <볼티모어 선>지의 기자 블레들리 마틴은 이 기자회견에서 만난 광주항쟁 지도부의 청년학생투쟁위원회 대변인이었던 윤상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미 그가 죽을 것임을 예감했다. 그 자신도 그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표정에는 부드러움과 친절함이 배어 있었지만,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읽을 수 있었다. 지적인 눈매와 강한 광대뼈가 인상적인 그는 최후의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싸우겠다고 했다.”
5월 27일 0시를 기점으로 광주의 시외 통화가 끊기자 도청에 남아있던 사람들은 계엄군이 진입할 것이라는 것을 예감했다. “고등학생들은 먼저 총을 버리고 투항해라. 우리야 사살되거나 다행히 살아남아도 잡혀 죽겠지만 여기 있는 고등학생들은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 산 사람들은 역사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의 빛나는 미래를 위하여, 항쟁의 마지막을 자폭으로 끝내서는 안된다. 자, 고등학생들은 먼저 나가라.”
5월 27일
새벽 4시쯤 도청 앞은 탱크를 앞세운 계엄군에 의해 완전히 포위되었고 일제사격이 개시되었다. 달아나던 시민군을 살해했던 계엄군은 8명의 투항자들을 전부 사살하였다. 한 계엄군 병사는 한쪽 발을 시민군 포로의 등에 올려놓고 사격하면서 “어때, 영화구경하는 것 같지?"라는 농담까지 던졌다.
시민군들이 모두 정면으로 응사하는 동안 뒷담을 넘어 들어온 3공수 특공대는 도청 건물로 잠입하여 보이는 대로 총을 난사하고 여기저기 수류탄을 까넣었다. 그리고는 확인사살까지 했다. 많은 시민군들은 특공대가 들어오는 것을 보았지만 차마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그 날 이후
광주학살의 참상을 목격한 후 서울로 올라왔던 서강대생 김의기는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5월30일 <동포에게 드리는 글>이라는 글을 뿌리면서 투신 자살했다. 오랫동안 집을 떠나 있어 신고가 접수되지 않은 사망자 수까지 합하면 전체 사망자 수는 2천명에 이를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되었지만 확인할 길은 없었다. 공수부대원들이 처음부터 사상자수를 은폐하기 위해 사상자가 발생하는대로 트럭에 싣고 아무도 모를 곳에 파묻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항쟁세력들을 '분별력을 상실한 군중'으로 몰아붙이고, “57년 전 일본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 학살의 역사가 반교사적으로 우리에게 쓰라린 교훈을 주고 있다.” 며 마치 광주시민들을 무자비한 일본인 폭도들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걸 여지껏 '신문'이랍시고 보는 빙신머저리 무뇌문뎅이가 무려 백만마리다.. 등신들!! 당하고 또 당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무력감에 빠진 호남인들은 오작 말 없이 김대중에 대한 지지를 통해 그 한을 풀고자 하였지만, 인정머리 없고 광주학살에 대해 눈물 한방울 흘린 적이 없는 일부 한국인들은 그들의 그런 평화적인 선택에 대해서조차 경멸을 보내는 데에 주저하지 않았다. 신군부는 그러한 '적의 창출’ 효과로 비호남, 특히 영남을 결집시켰고, 나아가 호남을 김대중과 등치시키면서 호남을 제외한 모든 지역의 호남에 대한 반감을 자기들을 위한 안전판으로 활용하였다. 이후 한국사회는 내내 그런 악용의 후유증을 앓게 된다.
https://www.facebook.com/ozzyzzzz/posts/1811238242238999
ㆍ한열사TV / 연예★
'#택시운전사' 결국 '태극기' 넘고 역대 韓톱10 진입
카페리카노
#'택시운전사'가 또 해냈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영화 '택시운전사(장훈 감독)'은 1일부터 3일까지의 주말 기간동안 23만8024명을 끌어모아 누적관객수 1186만3237명을 기록했다.
박스오피스 순위는 '킬러의 보디가드' '청년경찰' '발레리안: 천 개 행성의 도시'에 이어 4위를 차지했지만 개봉 한 달이 지난 기간동안 흥행력은 타 작품들에 비해 크게 떨어지지 않아 놀라운 영화의 힘을 엿보이게 한다.
특히 '택시운전사가 1186만 명을 돌파하면서 역대 한국 영화 흥행 톱10에 올라있던 '태극기 휘날리며(2004·1174만6135명)'의 기록을 뛰어 넘었다.
이에 따라 '택시운전사'는 역대 한국 영화 흥행 10위, 통산 11위에 자리하게 됐다.
'택시운전사'의 다음 목표는 '왕의 남자(2005·1230만2831명)'다. 과연 '택시운전사'가 '왕의 남자'까지 넘고 통산 10위까지 차지할지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은 흥행 도장깨기에 귀추가 주목된다.
조연경 기자
전두환은 즉각 총살시켜라
택시운전사' 김사복-힌츠페터, 함께 찍은 사진 확인
http://m.nocutnews.co.kr/news/4841971
드디어 택시 운전사 실제 주인공을 찾았군요 ^^
첫댓글 더운날 시원한
적수가 없다.개봉 7일만에
영화 '택시운전사'의 유해진, 송강호, 최귀화가 500만 관객 돌파를 기념해 택시 미터기를 들고 인증샷을 찍었다. (사진=쇼박스 제공)이미지 크게 보기
영화 '택시운전사'의 기세가 무섭다. 2017년 개봉한 영화 중 가장 빨리 500만 관객을 모으며 사랑받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 통삽전산망에 따르면 '택시운전사'는 8일 오전 8시 30분 기준, 500만 관객을 돌파했다. 개봉 이틀째 100만, 사흘째 200만, 나흘째 300만, 5일째에 400만 관객을 기록
허지웅 글 "이 글은 십수년 전에 관련 문헌들에서 발췌해 썼던 것으로 광주는 모두가 알면서도 동시에 모르는 역사라는 생각이 들어 많이 울면서 밤새 정리했었다."
[화려한 휴가]
5월 17일
밤 11시 40분, 문공장관 이규현은 5월 17일 24시를 기해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계엄 확대가 발표되고 두 시간이 지난 후, 전남대와 조선대 캠퍼스에 특전사가 투입되었다.
5월 18일
오전 10시, 휴교령이 내린 상태에서 전남대 정문 앞에 모여든 학생 100여명과 무장 공수대원이 대치.. “돌격 앞으로” 명령에 공수대원들은 학생들에게 파고들면서 곤봉을 휘둘렀다. 곤봉은 쇠심이 박힌 살상용 곤봉으로, 이를 맞은 학생들이 피를
http://eposting.co.kr/bbs/board.php?bo_table=blog_blog&wr_id=4344#fb#fb
1.영화 첫장면 서대문 금화터널 나오면서 송강호가 부르는 단말머리
첫장면은 서대문금화터널 나와서 광화문가는 사직터널방향 고가다리를 달리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금화,사직터널하고 고가도로는 박정희때 만든것으로 금화터널을 빠져나와 고가로 올라가는 것은 암울한 터널같은 박정희시대가 끝나고 도래한 80년 서울의봄을 상징합니다
고가다리를 달리면서 옆모습으로 인왕산 모습이 보이는데 사실 영화에선 안보이고 흐릿하게 지나가지만 고가도로 바로 옆에 서대문형무소와 독립문이 있습니다 첫장면부터 대한독립만세의 터전과 하지만 또한 박정희에 의해 옆으로 옮겨져 해체 및 재조립당한 비운의 독립문의 의미를.
김사복
김사복
김사복
김사복
출처:파이낸셜뉴스
" 18일 영진위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택시운전사'는 17일 일일 관객수 17 만 4.384 명을 기록하며, 박스오피스 1위를 지켜냈다 "
" 누적 관객수는 940 만 3.377 명이며, 여전히 예매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상황이라, 주말 중으로 천만 관객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
[뉴스엔 박아름 기자]
김사복씨 아들로 추정되는 인물이 '택시운전사' 천만 관객 돌파에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8월20일 영화 '택시운전사'가 천만 관객을 돌파한 가운데 '택시운전사' 실제 주인공인 택시기사 김사복씨의 아들로 추정되는 김모씨가 이날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장문의 글을 올려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송강호 주연의 '택시운전사'는 1980년 5월, 서울의 택시운전사 ‘만섭’이 통금시간 전까지 광주에 다녀오면 큰 돈을 준다는 말에, 독일기자 ‘피터’를 태우고 아무것도 모른 채 광주로 가게 된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송강호가 연기한 택시기사 만섭은 김사복씨를 모델로 했다. 앞서 '택시운전사' 제작진은 김사복씨를 찾아나섰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그 가운데 김모씨가 등장한 것.
이날 김모씨는 "'택시운전사' 1,000만 관중이 함께 했음을 축하한다. 이제 여러분들에게 호소하고자 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김모씨는 "그간 여러 정황 등으로 우리 아버님 김사복씨가 피터씨와 광주를 다녀온 장본인임을 이 이 영화 제작사에게 충분히 알리고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한다. 우리 아버님인 김사복씨를 그토록 찾았다는 영화 제작사와 피터씨 그리고 영화를 보신 모든 분들에게 김사복씨를 알리고자 기쁜 마음으로 제작사로 뛰어가 모든 정황과 사실을 알려 드리고 공식적으로 밝혀주실 것을 요구했으며 그 당시 한국에 계신 피터씨의 부인과의 만남을입장에서 주선해 줄 것 또한 간절히 요청했으나 그 어느 것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현재 상황을 전했다. 이어 "이제 그 아쉬운 마음으로 여러분들에게 호소하고자 한다.
자식 된 영화를 통해 아버님의 소신과 광주의 진실을 밝혀주신 영화 제작사와 배급사에게 감사한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김모씨는 "시나리오를 작성하며 고증할 당시 아버님을 찾을 수 없었기에 영화의 내용 가운데 아버님의 이미지와 사생활에 관한 많은 부분에서 사실과 다른 아쉬움이 있다. 그로 인해 아직 살아계신 어머님이 돌아가신 것으로 되고 아버님이 우리 모르게 딸을 하나 뒀다는 등 많은 사람들이 영화의 첫 자막에 ‘실화를 배경으로 재구성했다’는 문장 하나 만으로 아버님을 잘못 알리게 된 아쉬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