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 12마당
춘향가
12마당 가운데 가장 유명한 소리이며, 많은 이본창본이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으로 [열녀춘향수절가], 신재효 작 [춘향가], 정북평 창본인 [옥중가],이선유의 [춘향가],이해조의 [옥중화] 등이 있다. 춘향가의 주제는 사랑과 자유의 숭고함,그리고 조선조 여인의 정절을계몽하는 설화를 소재로, 변사또를 악인으로 출현시켜 춘향의 정절에 대한 보상으로 이도령이 어사또가 되어 금의환향하게 되는것이다. 이 유명한 춘향가의 유래는 이렇다.
1680년 경인 조선 숙종(肅宗)초 남원에 살고 있었던 퇴기의 딸 춘향은 인물이 몹시 출중하였다. 어쩌다가 그 때의 남원부사의 아들인 이몽룡과 우연히 알게되어 두 사람은 백년가약을 맺었다. 2년의 임기를 마친 이부사는 상경하게 되었고,이 몽룡과 춘향은 할 수 없이 후일을 기약하고 이별하였다.
그 후 이부사는 관직에서 물러나게 되어 그 집안은 점차로 기울게 되었는데,이러한 이몽룡의 딱한 사정을 모른느 춘향은 이몽룡이 영달하여 자기를 찾을 날 만을 기다리다가 병이 생겼고,끝내는 소식없는 이몽룡의 무정함을 원망하면서 죽었다.
춘향이가 죽은 그 이듬해부터 남원 지방에 흉년과 재앙이 계속되니 남원군민은 아사지경(餓死之境)에 이르렀다. 이렇게 되자 남원군민은 흉재(凶災)의 원인이 원사(寃死)한 춘향의 소치라고 생각하고, 이에 대한 대책의 의론이 물끓듯 하였다.
이 흉흉한 남원군민의 마음을 걱정한 당신의 이방은 [춘향전]을 지어서, 무당(巫堂)으로 하여금 [씻김굿]을 하게 하였다.
심청가
이 소리 역시 [춘향가]와 같은 시대의 작품임을 알 수 있으며, 순조 때의 명창인 박만춘이 [심청가]를 윤색.개작하였다는 [조선창극사]의 기술이 이 사실을 뒷받침한다. [심청가]는 효가 그 주제이지만, 그 이면에는 유.불교의 틈바구니에서 고민하는 인간상을 부각시키고 있는 작품이다.
심청가는 춘향가 다음으로 많이 불려지는 판소리로 이야기의 문학성과 소리의 음악성 이 뛰어난 데다가 유명한 대목이 많아서 '작은 춘향가'라고도 불린다. 길이도 춘향가 다음으 로 길어서 한 마당을 다 부르는 데 네 시간 가량 걸린다. 심청가는 슬픈 대목이 많아서 계면 조로 된 슬픈 노래가 많다. 감정을 풍부하게 하여 정교한 장식음을 구사하는 대목이 많아서 웬만큼 좋은 목을 가진 명창이 아니고서는 부르기가 어렵다. 대표적인 창본으로는 완판, 경판, 신재효본,이선유본 등이 있다.
흥보가
이 소리 역시 [춘향가].[심청가]와 거의 같은 시대의 것이거나 , 그보다 앞섯을 것이다. 이러한 추측은 8명창 중에 가장 선배인 영조.정조 때의 권삼득의 [더늠]이 [홍보가] 중 제비 후리는 대목이었다는 점이 뒷받침 해 준다. [흥보가]의 주제는 형제간의 우애이며, 실학의 영향을 입은 근대적 경제사상이 강조되었다.
경판, 신재효본,이선유본 등이 대표적 창본이다.박타령이라고도 불린다.심술궂은 형 놀보에 의해 가진것없이 온 가족이 쫓겨난 가난하지만 착한 아우 흥보가 부러진 제비 다리를 고쳐 주었더니, 그 제비가 물어온 박씨를 심었다가 얻은 박을 타서 보물을 얻어 부자가 되고,부자이나 심술궂은 형 놀보는 제비 다리를 일부러 부러뜨려서 고쳐 주고 얻은 박씨를 심었다가, 박 속에서 나온 상전, 놀이패, 장수 따위에게 혼이 난다는 줄거리의 이야기를 판소리로 짠 것이다.
짐승이 사람에게 은혜와 원수를 갚는 이야기는 몽고의[박타는 처녀], 일본의 [혀를 자른 새], 중국의 [은혜를 갚은 누런 새]따위에서도 보이듯이, 아시아에 널리 퍼져 전해 내려오는 것인데, 우리나라에서도 예부터 전해오는 이런 이야기를 조선 왕조 어느때쯤에 가객들이 판소리로 짠것 같다.흥보와 놀보 형제를 등장시켜 엮어 나가는 이 이야기 속에서는 서민다운 재담이 가득 담겨있고, 놀보가 탄 박통 속에서 나온 놀이패들이 벌이는 재담도 들어있어서, [흥보가]는 판소리 다섯 마당 가운데서 가장 민속성이 강한 마당으로 꼽힌다.
수궁가(토별가)
영조 30년(1754) 이전의 판소리이다. 그 내용은 별주부가 용왕의 병을 고치고자 토끼를 꾀어 용궁으로 데리고 간다는 것으로, 충이 일종의 테마인 듯하면서도 문무의 상쟁 속에 암매(暗昧)한 지도자를 풍자한 작품이다. 대표적 창본으로는 완판본,신재효본,이선유본 등이 있다.
수궁가는 서민의 애환과 풍자가 넘치는 작품으로서 조선후기의 사회상을 예리하게 해부, 고발한 작품이다. 이 작품의 피상적인 주제는 관념적인 충(忠)이다.
유교의 질곡하에서 빚어지는 무능, 부패 속에서도 권력에 혈안인 상층계급에 대하여,고발, 풍자, 저항하는 서민상을 부각한 것이 이 작품의 표면적인 주제다. 이러한 각양의 내용을 가진 대개의 사설은 조잡한 모자이크성을 면하지 못하였으나, 신재효의 손에 의하여 하나의 작품으로 승화 형상되어 완판으로 출간됨에 이르렀다. 특히 여기에서 주목되는 점은, 작품의 중심소재문제다.
분명치 못한 작품의 중심을 주부의 충과 토끼의 지락으로 양분해 놓고 이것을 취옹정모족희의에 있어서의 권력의정립, 쟁투상은 조선 후기의 수령, 아전, 왈패들의 가혹성과 서민들의 유일한 염원인 굶지 않으려는 발버둥, 생존에의 집념 등이 엇갈리는 그 사회상의 일단면을 해부고발한 것이다.
적벽가(일명 화용도 타령)
순조.헌종.철종 3대에 걸쳐 활약한 명창이며, 8명창 중의 한 사람인 모홍갑이 이 [적벽가]로 유명하였다는점으로 보아, 1810년 이전부터 불려 온 창본이다.
중국의 고대소설 [삼국지] 중 적벽대전에서 조조가 크게패하는 대목이 그 내용으로 예부터 양반 귀족들이 즐겨들었다고 한다.특히 빠른 장단에 웅장하고 씩씩한 호령조를 많이 사용하는 가장 남성적인 판소리이다.
특히 조조가 일방적으로 한 없이 격하, 강등되어 우스개거리가되고 있는 점, 비장미와 골계미가 바탕을 이루고 있는 점 등이 특징적이다.
이 적벽가는 [삼고초려],[장판교 싸움],[군사 설움타령],[적벽강싸움],[화용도] 이렇게 5대목으로 나눌 수 있는데, 바디에 따라서는 장판교 싸움 대신, [박망파 싸움]이 들어있는 것도 있다.삼고초려에는 장수의 늠름한 자태와 위엄있는 기상을 그리느라고느린 장단과 배합된 소리와 유유한 소리가 많고, 장판교 싸움과적벽강 싸움에서는 긴박한 전투장면이 많아서, 그 광경을 그리느라고빠른 장단(잦은몰이 장단)과 배합된 우조 소리가 많다.
변강쇠가(가루지기타령,횡부가)
판소리 원로의 한 사람이며, 8명창의 한 사람인 송홍록이 [변강쇠가]를 잘 하였다는 서술이 정노식의 [조선창극사]에 들어 있는 것으로 보아 1810년 이전부터 불려 온 창본임을 알 수 있다.
내용은 음탕한 변강쇠와 음녀인 옹녀의 난음한 생활을 묘사한 것인데, 표면적으로는 성과 육체를 부정한 듯한 내용이면서도 내면적으로는 오히려 그것을 긍정하려는 듯 보이며, 실학사상의 흔적을 엿 볼 수 있다.
특히 떠돌이들의 뿌리뽑힌 삶의 모습이나, 장승으로 상징되는 지배계층의완강한 자기 보호의식은 변강쇠가를 성애만을 노래한 작품으로 볼수 없게 한다.창본으로는 신재효본이 있을 뿐이다
장끼타령(자치가)
이 소리도 1810년 이전에 설화가 판소리 사설화된 것으로 추측된다. 이러한 추측은 순종.철종 때의 명창으로 8명창 중의 한 사라인 염계달이 [장끼타령]을 잘 불렀다는 [조선창극사]의 기록이 증명해 주고 있다. 그 후 고종 때의 명창 한송학이 이 소리를 불렀으며, 그러 [너늠]인 까투리 해몽의 1절이 [조선창극사]에 전해 온다.
장끼가 까투리의 말을 듣지 않고, 콩을 주워먹다가,차위(짐승을 잡는 틀)에 치어 죽자, 까투리는 여러 새들의 청혼을 받게 되나, 결국 문상 온 홀아비 장끼에게시집가서 잘 살았다는 이야기이다.타인의 충고를 받아들여야 하며, 분에 넘치는 욕심을부려서는 안된다는 등의 교훈적인 내용이 중심을 이루는가운데,여성의 정조관념에 대한 풍자와, 기층 민중에 대한참혹한 수탈의 양상을 아울러 함축하고 있는 작품이다.
꿩을 의인화한 것으로, 남녀의 절개 없음을 풍자한 것이 그 내용이다.
배비장타령
현재 불리지 않고 있는 소리 중의 하나이다. 소설 배비장전이 남아있어 내용을 상세히 알수있다.제주도에 부임한 김경이라는 양반의 비장인 배비장은 도덕군자인체하는 사람으로 제주에 도착하여 주색을멀리하고 도도하게 지내는데, 김경의 명을 받은기생 애랑과 방자의 계교에 의해 애랑의 유혹을 받고애랑의 집에 찾아갔다가 알몸으로 뒤주 속에 갇힌채온갖 망신을 당한다는 내용으로 유교의 공허한 형식주의적인 관념에 대한 비평이다.
완전한 창본은 현재 전해지지 않고 있으며,다만 판소리 사설을 소설화한 김삼불본이 전할 뿐이다.
옹고집타령
1810년에 간행된 [관우회]와 정노식의 [조선창극사]에 판소리 열두마당 중의 하나로서 [옹고집타령]이 수록된 것으로 보아 이소리도 판소리 전성기 때의 전래설화가 판소리 사설화한 것으로 생각된다. 내용은 인색하고 고집세고 욕심많은 불효자인 옹고집을 한 도사가 도술로서 개과천선시킨다는 것인데, 이 소리 역시 누가 불렀다는 기록은 없고, 다만 판소리 사설을 소설화한 김삼불본이 전한다.
여기에서 옹고집은 조선조 후기에 등장하기 시작한 서민 부자층을 대변하고 있는데, 그들의 극단적인 이기심과 사회의 일반적 규범을 벗어나는 행동이 서민들의 반감을 사게되어, 신랄한 풍자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로 보인다.박동진에 의해 복원되어 불려진 바 있다.
강릉매화타령
이 소리도 1810년 이전부터 불려 온 듯하나 현재는 전하지 않는다. 다만 1992년 [강릉매화타령]의 사설을바탕으로 한 [매화가]라는 소설이 발견되어 그 전모를알수 있게 되었다.
강릉부사의 책방 골생원이 강릉의 일등 명기 매화를 만나즐겁게 지내다 서울에 와서 과거를 보며, 매화를 그리워하여 그 답안으로 매화를 그리워하는 시를 써내고 낙방한후, 강릉으로 돌아올적, 강릉 부사는 거짓으로 매화의무덤을 만들고 매화가 죽었다고 한다. 골생원은 매화의무덤에가 통곡하고 매화의 초상화를 그려 껴안고 지내는데매화가 귀신인체 하고 골생원과만나게 하는등 골생원을골탕먹이는 내용이다.
[강릉 책방 골원을 매화가 솔이랴고 백주에 산 사람을 거짓되어 죽었다고 활신벽겨 앞새우고 상예 뒤를 딸아가며 이 사람도 건드리고 저 사람도 건드리며 자지예 방울차고 달랑달랑 노는 것이 그도 또한 굿실네라.] 즉,타락한 인물인 골생원에 대한 풍자와희화화를 통하여, 삶의 건전성과 균형감각을 일깨우고자 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왈자타령(무숙이타령)
1810년대 이전의 판소리이고 열두마당중의 하나이었다. 그러나 창본도 없고 부른 광대가 없어 내용을 알 길이 없었으나,1991년 소설 [계우사]가 [무숙이타령]의사설 정착본인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 내용은 서울 장안의 왈자(술과 노래와 기생들을즐기던 사람) 무숙이의 허랑방탕한 생활을 보다못한주위 사람들이 공모하여 무숙을 극도의 경제적 궁핍에빠지게 함으로써, 마침내 개과천선케 한다는 것이다.
이는, 새로이 등장한 평민 부호층의 삶에 대한 균형감각을 일깨우고자 하는 의도로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숙영낭자타령(가짜신선타령)
이 소리도 1810년 이전부터 전래한 것이다. [조선창극사]에 보면 헌종.철종.고종 때의 명창인 전해종이 이 소리를 잘 했다는 기록이 있어 조선조 말엽 중고제 명창김정근이 잘했다고 하는걸로보아 이때까지만 해도 불리었던 소리로 생각된다.
그러나 창본은 전해오지 않고, 1810년 경에 송만재라는사람이 쓴 [관우회]의 기록에 의해 내용만은 짐작할 수 있다.
한 어리석고 못 생긴 이가 신선이 되려고 금강산에들어가, 한 늙은 선사의 지시로 천세해도(복숭아)와 견일주란 술을 얻어 먹고 신선이 되는 줄 알았으나, 결국 죽고 말았다는 내용이며, 현실에서 도피하여 무릉도원에 일신을 맡기려는 조선조의 지식인들을 풍자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