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원 윤현식(행인)의 [3·30 충남 노동자 행진] 참가기
3·30 충남 노동자 행진이 진행되어야만 하는 이유를 보여주는 하늘이었습니다. 행진이 있기 전날, 하늘은 흙빛이었습니다. 전날 비가 제법 왔던 걸 생각하면 비에 씻긴 맑은 하늘을 볼 법도 하련만, 온통 사방이 어둑할 정도로 공기가 좋지 않았습니다. 행진 당일날은 전날보다 약간 좋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대기질은 최악에 가까웠습니다. 기관지가 그럭저럭 튼튼하다고 생각했던 저도 목이 따갑고 숨 쉬는 게 불편했을 정도였으니까요.
황사인지 미세먼지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인간이 유발한 문제인지 아니면 자연현상의 일부였을 뿐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언론에서는 “최악의 황사”라는 표현을 사용하던데, 대기질에 영향을 미치는 오염물질 지수인 AQI(Air Quality Index)는 300~400대까지 나왔다고 하는군요. 300~500대의 수치는 ‘위험’이라고 하여 “건강상의 매우 부정적인 상황과 다른 병들도 유발”할 수 있다고 하네요. 이런 위험을 무릅쓰고 많은 사람이 태안에 모였습니다.
기후위기가 시대적 담론이 된지는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그러나 과연 인류가 이 상황을 말 그대로 위기로 인식하고 있는지 실감이 되진 않습니다. 국가적 차원에서 탄소중립이나 RE100 같은 대안들이 논의되고는 있지만, 실제 한국의 정부만 보더라도 과연 그런 용어들의 개념이나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제시되는 ‘정의로운 전환’은 아직 국가정책적 차원에서는 거의 반영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결국 기후위기를 극복할 정의로운 전환의 주체는 이 시공간을 살아가고 있는 민중일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온실가스 배출을 중단하기 위한 산업현장의 대대적 구조전환의 당사자인 노동자들이 그 주체가 되어야만 하는 시절입니다. 3·30 충남 노동자 행진은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응한 주체들의 직접행동이었습니다.
행진의 출발점인 태안 시외버스터미널 앞에는 깃발을 앞세운 많은 조직들이 자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집회시위 관리를 위해 동원된 경찰들이 행진 참여자들보다 더 많아 보였습니다만, 참가자들은 질서정연하게 자리해서 사전집회를 진행했고, 한국서부발전까지 행진을 하였습니다. "석탄발전은 멈춰도, 우리 삶은 멈출 수 없다"는 구호가 외쳐졌습니다. 단지 노동자들만의 문제가 아닌, 황사와 미세먼지로 혼탁한 하늘을 같이 이고 사는 모든 사람의 문제라는 절박함이 묻어나는 구호였다고 생각합니다. 노동자의, 농민의, 서민의 삶이 연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각성을 촉구하는 행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경향 각지에서 버스까지 대절해 태안으로 달려온 분들의 연대가 뜨거웠습니다. 행진은 전반적으로 어둡지 않고 경쾌하게 진행됐습니다. 기후위기를 헤쳐나가고 정의로운 전환을 추구하는 의지가 체감되는 집회와 행진이었습니다. 앞으로 이어지게 될 기후악당과의 큰 투쟁을 기대하게 하는 시작이라고 여겨졌습니다.
다만,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노동자 당사자의 투쟁을 선포하는 행진이라고 하기엔 약간의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행진 도중 연도에서 마주친 현지의 주민들은 대부분 뜨악한 표정이었습니다.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주민은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청소년 몇 명이 잠깐 대오에 합류했던 정도였습니다. 물론 제가 보지 못한 곳에서는 그렇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행진대오는 방관자처럼 거의 무심하거나 약간은 불만을 가진 듯한 표정의 주민들 곁을 지나갔습니다. 태안 화력발전소의 문제가 태안 주민들에게 자신의 문제로 다가가지 못했기 때문일까요.
지역에 현장을 가진 노동자들의 지역정당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역정당 운동에 사정없이 꽂혀 있는 입장이다보니 그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노동자들이 주체가 되어 활동하고 있는 지역정당이 있고, 이 지역정당이 정의로운 전환을 지역의 핵심 아젠다로 지역주민과 소통하고 있었다면 상황이 많이 달랐을지도 모릅니다. 은평민들레당 같은 풀뿌리 지역정당이 진작부터 노동자들과 주민들의 연대를 구축하고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정치조직화와 정치세력화에 대한 고민, 지역의 의제를 지역 주민이 직접 풀어나가는 정치활동과 환경의 조성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오는 행사였습니다.
준비하신 모든 분, 과감하게 정의로운 전환을 자신의 문제로 채택한 노동자들, 각처에서 시간을 내어 연대하러 오신 분들에게 경외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번 3·30 행진을 기화로 더 강력한 투쟁, 더 강고한 연대, 더 확대된 대응이 이어지기를 기대합니다. 더불어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서라도 당사자의 직접정치가 가능한 지역정당의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의지를 다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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