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제3권이 시작되면서 73편부터 83편까지의 11개 시가 아삽의 시로 묶여 있습니다. 그리고 84편과 85편은 고라 자손의 시, 86편은 다윗의 기도로 이어집니다. 시편 제3권은 73편부터 83편까지 모두 아삽의 시로 묶여 있다는 사실을 우선 기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지난주에 시편 각 권이 어떻게 시작되는지 말씀드렸습니다. 시편 1편이 제1권의 시작, 42편이 제2권의 시작, 73편이 제3권의 시작, 그리고 90편이 제4권의 시작입니다. 이렇게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두시면 유익합니다.
시편 제3권의 시작인 시편 73편은 악인의 형통에 대한 의인의 질투 혹은 시기를 주제로 하는 유명한 시입니다. 시편 37편과 73편이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시편 73편의 핵심 성경절은 16절과 17절입니다.
"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그것이 내게 심한 고통이 되었더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여기서 '이 일'이란 2절부터 15절까지 계속 반복되는 악인의 형통을 보며 겪는 고민입니다. 왜 악인은 형통하고 의인은 고난을 당하는가, 손을 깨끗하게 하고 마음을 정결하게 한 것이 다 헛된 일인가 하는 깊은 번민이었습니다. 시인은 2절에서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라고 고백합니다. 개역한글 성경에서는 '실족'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떠날 뻔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떠날 뻔할 정도로 극심한 번민을 가리켜 '심한 고통'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다가 17절에 이르러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내가 그들의 종말을 깨달았다"라고 고백합니다. 개역한글 성경은 '결국'이라고 번역했습니다. 17절의 핵심 단어는 '성소'와 '종말(결국)'입니다. 우리말 어감으로는 '결말을 알았습니다'라고 이해하면 더욱 와닿습니다. 소설이나 영화를 보며 긴장감이 고조될 때 결말을 궁금해하듯이, 마침내 결말을 보게 된 것입니다.
히브리어로 '아하리트(Acharit)'라고 하는 종말, 결국, 결말의 내용은 18절과 19절에서 자세히 묘사됩니다. 그리고 20절부터 22절까지는 그 결말을 깨달은 이후 자기 자신에 대해 성찰하는 내용이 이어집니다.
17절의 단어를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에서 성소는 히브리어로 '미크다쉬(Miqdash)'입니다. 성경에서 성소는 무엇을 하는 곳입니까? 출애굽기 25장 8절과 9절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성소를 지으라고 명령하십니다. 출애굽기와 레위기에서 성소는 한마디로 '제사드리는 곳'입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을 제사장이라 부릅니다.
공간적으로는 성소이지만, 기능적으로는 제사드리는 곳입니다. "내가 어찌하면 이를 알까 고민하다가, 제사를 드리고서야 그 결말을 알았다"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사의 현대적 의미는 바로 '예배'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소통입니다. 인간이 마음을 하나님께 올려드리고, 하나님께로부터 응답을 받는 자리입니다. 성소에 들어가기 전 시인의 시각은 하나님과의 수직적 소통 없이 세상만 바라보는 수평적 시각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남과 비교하는 수평적 관점에서 불평을 토로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성소에 들어가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과의 수직적 교통이 회복됩니다. 예배는 드리는 순서(기도, 헌금)와 받는 순서(말씀, 축도)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과의 수직적 소통이 이루어질 때 인간은 수평적 지평을 넘어서게 됩니다.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하늘은 막히지 않습니다. 위를 바라보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
산꼭대기에 올라가 밑을 내려다보면 복잡하게 얽혀 있던 길과 방향, 끝이 한눈에 보이는 것처럼, 하나님과의 소통을 통해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각을 갖게 될 때 비로소 삶의 방향과 결말이 보입니다. 이것이 바로 "종말을 깨달았나이다"라는 고백의 의미입니다.
'아하리트'라는 단어는 다니엘서 11장 4절에서는 '자손(후대)'으로 번역되기도 합니다. 인간 생명의 수한을 넘어선 시대 이후의 관점, 즉 하나님의 심판과 영원한 결말을 뜻합니다.
한편 열왕기상 8장에서 솔로몬이 예루살렘 성전을 지은 후, 성전은 '기도하는 곳'으로 강조됩니다. 솔로몬의 봉헌 기도에는 '제사'라는 단어 대신 '이곳을 향하여 기도하거든'이라는 표현이 반복됩니다. 따라서 성소의 두 번째 기능적 의미는 '기도'입니다. "기도를 드리고서야 그들의 종말을 알았다"는 뜻입니다.
성막(Tabernacle)은 이동식 텐트였고, 성전(Temple)은 고정된 건축물이었습니다. 반면 성소(Sanctuary)는 제사드리는 곳과 기도드리는 곳 모두를 아우르는 대표 명사입니다. 시인이 성소(미크다쉬)에 들어갔다는 것은 예배와 기도를 통해 수직적 차원의 영적 조망을 회복했음을 의미합니다.
18절과 19절에서 시인은 악인이 미끄러운 곳에 던져져 파멸에 이르는 심판의 결말을 봅니다. 다니엘서 10장 14절의 '말일' 역시 '아하리트'입니다. 예배와 기도를 통해 마지막 때의 계시적 결말을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이에 시인은 21절과 22절에서 세상만 보고 짐승처럼 어리석게 불평했던 자신을 깊이 회개합니다.
시편 74편은 73편과 깊은 연관성을 지닙니다. 시편 73편이 성소에서 개인의 신앙적 고민을 해결 받는 이야기라면, 시편 74편은 그 신앙의 중심이었던 성소가 파괴되는 국가적 비극을 배경으로 합니다.
열왕기하 25장에 기록된 예루살렘 성전 파괴는 히브리 백성들에게 설명 불가능한 사건이자 삶의 터전과 신앙의 기초가 송두리째 무너지는 경험이었습니다(시편 11:3).
74편 1절부터 11절은 무너진 성소를 보며 느끼는 처절한 절망을 토로합니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영원히 버리시나이까... 원수가 성소에서 모든 악을 행하였나이다."
원수들이 도끼와 철퇴로 성소를 부수고 불태웠으며, 하나님의 회당을 훼파했습니다.
그러나 성전이 무너졌다고 해서 하나님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다니엘은 성전 기명이 바벨론으로 넘어간 것을 두고 "주께서 넘기셨다"(단 1:2)고 기록했고, 에스겔은 포로지 그발 강가에서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이상을 보았습니다(겔 1:1).
시편 74편 12절부터 23절은 성전이 파괴된 절망 속에서 하나님을 향해 드리는 위대한 신앙고백입니다.
"하나님은 예로부터 나의 왕이시라 사람에게 구원을 베푸셨나이다."
성전이 무너진 자리에서 시인은 공간에 갇히지 않는 창조주 하나님이자 출애굽의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13절과 14절에서 바다를 가르시고 리워야단(애굽과 바로의 상징)의 머리를 깨뜨리신 홍해 사건을 회상하며, 16절과 17절에서는 낮과 밤, 빛과 해, 땅의 경계를 세우신 창조의 역사를 노래합니다.
하나님은 건물 성소에만 갇혀 계신 분이 아니라,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하늘의 하나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엘 엘리온)'이십니다.
이를 바탕으로 시인은 18절 이하에서 주의 멧비둘기 같은 백성을 들짐승 같은 바벨론의 손에 넘기지 마시고, 맺으신 언약을 기억하여 일어나 주의 원통함을 풀어달라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시편 73편이 개인의 신앙적 위기를 성소(예배와 기도)를 통해 극복한 '개인 탄원시'라면, 시편 74편은 성소의 붕괴라는 민족적 비극 앞에서 공간을 초월하시는 창조와 구원의 하나님을 기억하며 일어서는 '민족 탄원시'입니다.
핵심 요약 정리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