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장수의 권위(權威)
김태식(가든수필 2024/02/13)
꼰대소리를 들을 “엿장수 마음대로”의 이야기이다. 엿은 찹쌀, 옥수수, 조, 고구마 등을 주재료로 만든다. 굳이 쌀이 아닌 곡식으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오래된 문헌으로 “엿”이 처음 등장한것은 고려 시대라고 한다. 설탕을 모르고 살던 당시에 “당”이라고 했던 표현이 “엿”이다.
이조(李氏朝鮮)때 김홍도(金弘道 1745~1806)화백의 작품 “씨름 풍속도”에서 엿장수가 등장한다. 그당시 엿은 현금거래로 짐작된다. 6.25 동란이 휴전으로 멈추고 먹고 살기가 어려운 시절이었다. 1960년대 이후 ‘잘 살아보자’를 외쳐가며 산업화가 시작되었다. 고물상이 늘어 났다. 재활용품 수거의 필요성이 요구되었다. 고물상들이 “엿판”을 리어카에 싣고 다니기 시작했다. 각종 고물들을 엿과 바꿔 주었다. 엿장수 마음대로라는 말과 함께 집안에 어떤 물건이 없어지면 “엿 바꿔 먹었니?”가 새로운 유행어가 되었다.
“자 엿이 왔어요 !. 못 쓰는 냄비, 프라이 팬, 고장난 시계나 고무신 받아요 !” 찰칵 찰칵 엿장수의 가위에서 울려오는 쇳소리의 장단이 구성지게 난다. 동네 어린이 들이 옹기종기 엿장수를 둘러 싼다. 그때 멀정한 검은 고무신을 땅바닥에 문질렀다. 구멍이 나야 엿을 먹을 수 있겠다는 희망을 걸고 땀에 범벅이되며 문질러 봤었던 추억이 아롱거린다. 언제가 부터는 엿을 두동강이 내면 그 안에 보이는 구멍이 크거나 많은 사람이 이긴다는 “엿 치기”붐이 일어났다. 한동안 엿장수가 나타나면 엿장수 엿판 둘레에 모여 엿 치기를 했었다.
“엿장수 마음대로”라고 말하면 신세대들은 생소한 말이다. 그런데 동서남북 지구상에서는 버젓이 일어나고 자행하는 내로난불이나, 아니면 말구식의 날조의 행포는 근대화된 엿장수 권위의 전수라고 본다. 엿장수가 엿을 가늘고 길게 뽑든지, 아니면 뭉쳐서 굵은 덩어리로 하든지 그야말로 엿장수 마음이다. 엿장수의 가위 소리가 들리면 동네 코흘리개들은 집 안에 있는 빈 병이며 각종 고물을 들고 달려 나간다. 고물의 가치가 정확히 얼마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엿장수가 엿판에서 떼어내는 만큼 아이들에게 주어진다. 기대 이상의 엿을 받아든 아이의 얼굴에는 웃음이 피어나고, 실망한 아이는 거의 울상이 된다. 그러나 아무도 엿장수에게 항의하지 못한다. 엿장수 마음이기 때문이다.
가장 맛있는 엿은 호박 엿이라고 추억된다. 끌을 대고 가위로 톡톡 쳐서 잘라 주는 일명 판 엿이었다. 그양이 일정치 않았다. 엿장수 마음대로 맘에 들면 더주고 맘에 안들면 조금 주었다. 기분 여하에 양의 크기가 좌우 되었으니 그야말로 엿장수 아저씨 마음대로 이였다. 우리는 어린 마음에도 나눠 먹어야 한다는 더불어 사는 마음이 고물이나 고철 하나에도 가득 배어있었던 시절로 기억된다. 엿을 사는 아이의 모습을 부러움에 가득해 쳐다보면 아이들은 절대 혼자 먹지 않고 조금씩이라도 나워 주었다.
군침을 다시며 즐겼던 엿이 지금은 추억의 음식이 된지 오래 되였다. 우리 민족의 식품인 엿이 홀대받는 것을 보면 아쉽기만 하다. 지금은 초컬릿과 커피와 요거트등 서양식의 달달한 먹거리가 넘쳐나고 그것에 입맛이 길들린 세대에게는 외면될 수 밖에 없다. 엿장수의 넝마주이, 고물상이라 했던 그들은 이 땅에서 쓰레기 분리수거를 제일 먼저 실천했던 선각자들이었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금수강산은 삼천리 유리 파편 강산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근래의 내편 저편으로 판을 나누고 동서남북 지구상에 날조로 상대방을 비하하는 풍조를 본다. 과거 엿장수가 고물을 평가하듯 상대방을 자기들의 입맛대로 주물러 된다. 엿장수가 엿을 늘리고 줄이듯 너나 할것 없이 제 마음대로 이랬다 저랬다 한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속담이 있다. 똑같은 고리라도 어디에 하느냐에 따라 긍정적으로, 반대로 부정적으로 해석이 달라 지는 표현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역장수 마음대로는 “제 멋대로 한다” 는 뜻을 가진다. 이 표현은 좋은 의미로 쓰이기도 하고 비판하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엿은 오래전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활과 연관이 깊은 음식이었다. 그래서 엿과 관련된 표현도 생각보다 많다.
아연실색(啞然失色), 양두구육(羊頭狗肉). 표리부동(表裏不同), 조삼모사(朝三暮四), 내로남불, 아니면 말구식 날조된 말, 빛 좋은 개살구,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 작은 고추가 더 맵다, 잔 머리 굴린다. ‘엿장수 마음대로’라는 말은 이러한 말의 대변이라고 볼 수 있다.
엿장수의 손을 거처간 헌 책(古書)들은 고서점에서 엿 장수 마음데로의 기세(氣勢)로 이어진다. 헌책의 값은 책방 주인의 마음대로 값이 불러진다. 오늘날에는 정가(政街)에서도 엿 장수의 생기(生氣)가 이어가는 듯한 진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