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7과 창조주를 경배하라
(5월 13일 안식일 / 일몰: 오후 7시 32분)
TMI 실천해 보세요
81. 장보기 어려운 이들을 도와 주세요.
82. 이웃 어르신들의 집수리를 도와 주세요.
49. 당신을 낳고 키워주신 부모님께 감사하세요.
연구 범위: 계 1:9, 사 40:26, 고후 5:17, 골 1:17, 계 4:11, 요 19:16–30
기억절: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계 4:11).
당연하게 여기는 것, 특별히 우리가 항상 알고 있거나 경험하는 일들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기가 쉽다, 예를 들어, 어린아이들이 그들의 짧은 생애 동안 알고 지낸 부모의 존재를 당연한 것처럼 여기기가 얼마나 쉬운 일인가? 우리 역시 태양, 하늘, 공기 또는 우리 발아래의 땅을 당연하게 여기기 쉽다.
하지만 우리가 “존재”라는 것 자체를 얼마나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지 생각해 본 적 있는가? 우리는 얼마나 자주 일상을 멈추고 저 유명한 철학적 질문인 왜 아무것도 없는 대신에 무언가가 존재하는지를 물어보았는가?
애초에 우주 자체와 그 안에 있는 모든 장엄하고 놀라운 것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의 우주는 존재하는데 그 안에 우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떤 커다란 논리적 모순이 일어날까? 최신 과학 이론(변하는 경향이 있음)에 따르면 우리 우주는 한때 존재하지 않았다. 즉, 우주 안의 우리는 우연히 생겨난 것이고 우리가 여기에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는 것이다. 절대적인 무에서 우주가 발생했다거나, 일종의 수학 방정식에서 비롯되었다거나 하는 여러 가지 주장이 있다. 하지만 우리 우주는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셨기 때문에 존재한다.
TMI Time
*학습 목표
- 깨닫기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주이시며 우리를 죄에서 구하시는 구속주이시다.
느끼기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이 구원과 믿음의 모든 기초가 됨을 느낀다.
행하기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에게 영광 돌리는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
TMI 안으로 : 안교 소그룹이 함께 서로를 돌보고 연합함
1. 서로 인사를 나누고 손님을 환영합니다.
2. 출석과 공부를 확인하고 안교헌금을 드립니다.
3. 결석자와 구도자에 대한 보고를 듣고 방문 계획을 세웁니다.
TMI 위로
그것이 너무 가까이에 있어서 그(것)의 소중함을 모르고 사는 것이 있습니까?
2.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은 특별히 어떤 자들을 자주 찾아오십니까? (계 1:9)
3.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발견하고 놀라거나 감동받은 적이 있습니까? (창 1:1)
4. 거룩하고 존귀하신 하나님이 그대와 얼마나 가까이 계시다고 생각합니까? (요 17:23)
5. 하나님이 창조주이시며 또한 구속주라는 사실은 어떻게 연결됩니까? (골 1:13-17)
6. 첫째 천사가 마지막 시대에 창조주를 경배하라고 외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계 14:7)
7.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은 우리의 존재 그 자체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습니까?
결론 하나님은 연약한 자와 함께하시고 어려운 가운데서 우리를 도우신다.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다. 그는 거룩하고 존귀하신 분이시며 온 우주를 능력으로 창조하신 분이시다. 그런 분이 사랑의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를 구속하셨다. 진화론이 팽배한 시대에 세 천사의 기별은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를 기억하고 그를 경배하라고 우리를 부른다.
TMI 밖으로 : 안교 소그룹이 함께 지역 사회에 복음을 전하고 봉사함
1. ‘내가 실천한 TMI 활동 : ( )’을 적고 함께 나눕니다.
2. 각자가 만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할 내용을 나눕니다.
3. 우리 안교 소그룹의 성장과 TMI 활동 계획을 위해 기도합니다.
5월 7일(일)
고난에 동참하는 자
하늘로 승천하신 이후(행 1:9) 예수님은 마지막 살아남은 사도, 요한을 찾아오셨다. 요한은 무자비한 로마 황제 도미티아누스에 의해 밧모섬에 유배되어 있었다.
요한계시록 1:9을 읽어 보라. 또 마태복음 13:21, 사도행전 14:22 그리고 요한복음 16:33을 참조하라. 여기에 나타난 이 세상에서 예수를 따르고자 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기별은 무엇인가?
가족, 친구, 기독교 공동체의 지지로부터 분리되어 떨어진 요한은 예수를 따르는 자로서 환난과 근심을 홀로 감당하도록 버림받지 않았다. 그의 사역은 끝나지 않았다. 그의 증언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눈부시게 빛나는 고귀한 방문자가 외로운 섬에 있는 요한을 찾아와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온 소식을 직접 전했다. 예수님의 이 기별은 이후 세기에 걸쳐, 시간의 통로를 따라 울려 퍼질 것이었다. 그것은 모든 세대를 위한 희망의 소식이지만, 특별히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위해 마지막 때의 하나님의 백성들을 준비시키는 기별이었다. 그것은 마지막 때의(혹은 지금 겪고 있을 수도 있는) 모든 시련에 대한 심각한 경고인 동시에 격려의 기별이다.
요한이 요한계시록의 예언적 환상과 함께 하늘 천사의 방문을 받았다고 알려진 동굴에 가보면 그 입구에 요한계시록 전체를 요약한 다음 문구가 담긴 명판이 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계 14:7).
요한계시록의 중심 주제는 예배이다. 우리는 예배하는 존재로 창조되었다. 우리 모두는 무언가 또는 누군가를 예배한다. 창조주를 경배하는 참된 예배는 우리로 하여금 삶의 바른 목적과 삶의 이유를 발견하게 해 준다. 그것은 우리에게 목숨을 걸 만한 무언가를 줄 뿐만이 아니라, 더 의미심장한, 무엇을 위해 살며, 필요하다면 환난을 견뎌야 하는 이유를 준다.
(이어서) 그래서 실제로 마지막 위기가 닥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행 14:22)는 사실을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교훈> 예수님은 고난받는 신자들을 홀로 두지 않으시고 그와 함께 하신다.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을 경배하며, 고난에 동참하는 자들을 위한 기별로 가득하다.
<묵상> 요한과 같은 충실한 하나님의 종들이 고난과 핍박을 당했다면 우리 자신도 고난을 당하지 않으리라 생각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벧전 4:12~15 참조)
<적용> 신앙은 기쁨만 있는 것이 아니며 많은 경우 고난을 동반합니다. 그런 때에도 그대가 신앙을 해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는지 자신에게 물어 보십시오.
<영감의 교훈>
고난에 참여하는 자들은 영광도 나눌 터 - “그들은 저희 주님이 당하신 것처럼 혹독한 시련을 당하나 고통으로 인하여 기분이 상하거나 마음의 평화를 깨트리지 아니한다. 그들은 잘 견디기만 한다면 그 시련이 그들을 세련되고 순결하게 할 것이며 그리스도와 더욱 밀접히 교제하게 하리라는 사실을 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자들은 또한 그분의 위로에 동참하는 자가 되고 마침내 그분의 영광을 나누어 가지는 자가 될 것이다.”(사도 행적, 261)
<기도> 시련 중에 고통당할 때 버려두지 않으시고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인하여 감사합니다. 저를 대신해 고난의 짐을 져 주시고 은혜를 주심을 감사합니다. 이 땅의 고난은 여전하지만 주님의 손 굳게 잡고 동행하게 하옵소서.
5월 8일(월)
창조주를 경배하라
요한계시록 14:7을 읽어 보라. 첫째 천사의 기별은 어떻게 결론을 맺는가? 이 심판의 때의 기별은 어떤 최후의 호소를 하는가?(사 40:26, 요 1:1~3, 롬 1:20 참조)
요한계시록 14:7은 창조주를 경배하라는 분명한 요청으로 끝난다. 이 부름은 대부분의 과학계와 심지어 기독교계까지 성경과 기독교의 모든 것의 핵심을 타격하는 가르침인 진화론을 받아들이고 있는 오늘날 특별히 더 중요하다. 진화가 사실이었다면 우리의 믿음은 필연적으로 거짓말이 될 것이다. 그것은 이 문제가 얼마나 극명한지 말해준다.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호소는 성경의 첫 번째 책인 창세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우리가 창조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예배를 둘러싼 이 우주적 전쟁의 쟁점들을 결코 완전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 이 구절은 모든 성경의 기초이다. 이 구절에서 "창조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바라(bara)로, 오직 하나님만을 주어로 사용하는 동사이다.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무한한지 조금이라도 알아보기 위해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 중 태양을 예를 들어 생각해 보자. 태양은 1초 동안에 인류가 태초로부터 석유, 가스, 석탄 또는 불로 생산한 모든 것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생산한다.
태양의 직경은 약 139만 킬로미터이며 지구 크기의 행성 백만 개를 담을 수 있다. 그러나 태양은 우리 은하인 은하수에서 적어도 1000억 개가 되는 별 중 하나일 뿐이다. 피스톨별이라 불리는 별 하나는 태양이 만들어내는 힘의 천만 배나 되는 힘을 발산한다. 태양 크기의 별 백만 개가 피스톨별의 크기 안에 쉽게 들어갈 수 있다. 우리가 과연 어떻게 창조에 관하여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까?
(이어서) 창조물은 놀라운 힘과 무한한 능력을 지닌 하나님을 나타낸다. 그분의 창조 능력은 하늘과 땅을 존재하게 하셨을 뿐 아니라 여러 세기에 걸쳐 그분의 백성을 위해 역사하고 있다. 그분은 이 세상을 시작하신 하나님이시며 이 세상에 항상 계시고 자기 백성을 결코 버리지 않으실 것이다.
<교훈> 첫째 천사의 기별은 창조주를 경배하라는 분명한 기별을 준다. 그것은 전능하시고 무한하셔서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요청이다.
<묵상> 온 세상에 가득한 창조물들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작은 우리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생명을 버리셨다는 사실을 묵상해 보십시오.
<적용> 광대한 세계 속에서 살면서 경험하는 창조 세계의 압도적인 위대함이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를 잘 이해하게 합니까?
<영감의 교훈>
창조주 경배는 하나님의 계명 준수로 나타남 - “인류는 첫째 천사를 통하여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고 주님을 천지의 창조주로 경배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사람이 이 일을 하려면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 현인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전 12:13)고 말한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면 어떤 예배로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각 시대의 대쟁투, 436)
<기도> 푸른 하늘, 맑은 물, 싱그러운 자연, 신선한 공기, 이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생명을 주시고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는 동안에도 모든 좋은 것으로 우리를 두르신 창조주 하나님을 일평생 신뢰하게 하옵소서.
5월 9일(화)
친밀하신 하나님
해와 달과 별을 만드시고 그 놀라운 능력으로 지구를 창조하시고 생명으로 채우신 창조의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당신의 백성을 애굽의 속박에서 건져내시고 광야의 방랑길에서 인도하시고 하늘에서 만나를 내리게 하시며 여리고 성을 무너트리시고 이스라엘의 대적을 무찌르신 하나님이시다. 우주를 창조하기 위해 무한한 능력을 나타내신 바로 그 하나님이 우리 영혼을 대항하여 싸우는 악의 세력을 물리치기 위해 그 무한한 능력을 베푸신다.
고린도후서 5:17, 시편 139:15–18, 사도행전 17:27, 골로새서 1:17을 읽어 보라. 이 구절들은 하나님의 친밀함에 대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초월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것은 하나님이 모든 피조물 위에 저 높은 곳에 계신다는 생각이다. 그들은 또한 하나님의 내재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이것은 하나님이 어떻게든 우리 세계 안에 존재하며 성경의 역사가 보여주듯 세세하게, 밀접하게 관여되어 있다는 생각이다. 주님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시지만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이사야 57:15) 계신다. 예수께서는 친히 그분의 신실한 제자들과 대화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요 17:23) 무엇도 이보다 더 친밀할 수는 없다.
우리 하나님에 관한 놀라운 소식은 그분의 위대함과 권능이 너무나 광대하여 우주를 건너 우리 각자의 삶에 다가온다는 것이다. 그분은 우리를 다시 만들고 빚어내어 그분의 형상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시키겠다고 약속하신다.
(이어서) 이 약속의 의미를 생각해 보라. 수십억 개의 은하계를 창조하고 유지하시는 하나님이 우리가 그 안에 ”살며 기동하며 존재”(행 17:28)하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 안에서 역사하여 우리에게 새 마음을 주시고 우리의 죄를 정결하게 하시며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시는 동일한 하나님이시다. 우리 하나님, 그와 같은 능력의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돌보신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가?
<교훈> 온 우주를 돌보시는 권능의 하나님이 지금 내 곁에 계시고, 기도를 친히 들으시는 분이시다. 그분은 내 안에서 역사하시며 살고 움직이게 하신다.
<묵상> 혹시 하나님이 당신의 가장 어두운 비밀을 알고 계시기 때문에 두렵습니까? 그런 상황에서 복음은 어떻게 당신에게 평안을 줄 수 있습니까?
<적용> 하나님이 내 안에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은 나의 생활에 어떤 영향을 주겠습니까? 그 사실이 어떤 희망과 위로를 주겠습니까?
<영감의 교훈>
모세가 누렸던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통 - “모세의 역사에서 우리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통이 사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임을 알 수 있다. 범죄자에게 있어서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에 들어가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그러나 시내 산에서 그처럼 무서운 위엄 가운데 선포된 그 율법의 창시자와 단둘이 있게 된 것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의 심령이 그의 창조자의 뜻과 일치되었기 때문이다.”(교회증언 4권, 533)
<기도> 온 우주를 돌보시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기억하고 마음에 품게 하셔서 하나님의 넉넉하심처럼 우리도 서로 돕고 베풀게 하시며 그 영광이 우리의 삶 가운데도 나타나게 도와주옵소서.
5월 10일(수)
복음, 심판, 창조
영원한 복음, 심판의 시간, 창조주를 경배하라. 첫째 천사가 말한 이러한 개념들이 서로 얼마나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지 보라. 우리가 심판에서 창조주 앞에 설 때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것은 오직 복음뿐이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들은 육신을 따라 행하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 행하느니라”(롬 8:1, 흠정역). 지금 결코 정죄함이 없다. 또 심판의 때에도 확실히 그럴 것이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기별은 현대 진리의 핵심이며, 특히 진화론이 기독교의 탈을 쓰고 기독교 신앙의 전체 기초를 파괴하려고 위협할 때 더욱 그러하다.
진화론의 맹공격 속에서도 하나님은 그 이름 자체가 진화론에 반대하는 증인이 되는 사람들, 즉 하나님께서 우리의 창조주시오, 구속주라는 근본적인 진리를 선포할 사람들의 교회를 세우셨다.
에베소서 3:9, 골로새서 1:13–17, 요한계시록 4:11, 로마서 5:17–19을 읽어 보라. 이 말씀들은 창조주시며 구속주이신 예수님에 대해 무엇을 말해 주는가?
창조주이신 예수님과 구속주이신 예수님이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보라. 진화론의 필연적인 시도대로, 만약 그분의 창조주로서의 역할이 약화된다면 구속자로서의 그분의 역할 역시 불분명해질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와 죽음과 고통과 폭력에서 구속하기 위해 오셨는데 과연 진화론자들이 가르치는 것처럼 죄, 죽음, 고통, 폭력이 생명을 발생하게 하는 필연적인 수단이겠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실 때에 사용하신 중요한 그 과정들에서 우리를 구속하실 필요가 있겠는가? 그것은 매우 위험한 거짓말이다.
그리고 더 나쁜 것은 진화론이 예수의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이라는 개념 자체를 조롱한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바울(롬 5:17~19 참조)은 아담에 의해 시작된 죄와 예수의 죽음을 불가분의 관계로 연결한다. 따라서 아담과 예수 사이에는 직접적인 연결 고리가 존재한다.
(이어서) 그러나 진화론의 어떤 모델에서도 죄 없는 상태로 창조된 아담이 죄를 지음으로 최초의 죽음을 가져온 인류의 조상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죽음(수백만 년의 죽음)이 아담이 존재하는 데 필요한 힘이자 능력이라고 가정하기 때문이다(그들은 오랜 기간의 진화를 믿기 때문에 아담이 죄의 기원이라는 사실을 부정한다, 편역자주).
그러므로 진화는 처음부터 십자가의 성경적 기초를 파괴한다. 그와 반대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은 세상이 창조주를 경배하도록 부름으로써 이 오류에 대항하는 산 증인이 된다.
<교훈> 창조주이시고 구속주이신 하나님을 섬기는 기독교의 기초를 파괴하는 진화론의 영향력이 팽배한 시대에 창조주를 경배하라는 기별은 더욱 중요하다.
<묵상> 죄인과 하나님 사이에는 원대한 물리적 거리와 그 신원에 있어서의 차이가 있는데 어떻게 해서 그대는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는지 묵상해 보십시오.
<적용> 진화론적 사고가 가득한 세상에서 자녀들과 친구들에게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경험케 하고 증거하기 위해 그대가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일은 무엇이 있겠습니까?
<영감의 교훈>
첫째 천사 기별의 요지와 목적 - “하나님의 심판 때를 알려 주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배하라는 요한계시록 14장의 첫째 천사의 기별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세상의 부패한 감화에서 떠나게 하고, 세속화되고 타락한 그들의 참 상태를 보도록 그들을 일깨워주기 위하여 주어진 기별이었다.”(각 시대의 대쟁투, 379)
<기도> 주님, 시시각각 들어오는 세속적 영향력에서 교회를 지켜주시고 진화론적인 교육의 영향력이 강한 시대 속에서 자라나는 청소년들과 성도들을 인도해 주시옵소서. 창조주를 경배하라는 부름 앞에 우리가 충성되도록 도와주소서.
5월 11일(목)
십자가에 달리신 창조주
우리가 아무리 많이 주님을 창조주로서 깊이 경탄하고 경배한다 해도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가 다시 살펴 볼 가치가 있는 중요한 개념은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구속하신 그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창 1:26)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이 십자가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 하고 소리치신 분이다. 하나님을 경외해야 하는 이유, 거기서 더 나아가 그분에게 영광을 돌리고 그분을 경배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 보라!
타락한 인간인 우리가 이처럼 놀라운 진리에 어떻게 적절하게 반응할 수 있겠는가? 이 사실에 부응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첫째 천사는 우리에게 그 대답을 준다. “그가 큰 음성으로 이르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계 14:7)
요한복음 19:16~30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에 대한 요한의 기록을 읽어 보라. 읽으면서 창조주이신 예수님에 대해 우리가 살펴보았던 성경 구절을 생각해 보라.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골 1:16). 이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에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 것인가?
창조주를 경배하라는 첫째 천사의 기별은 십자가 사건 이후에 전해졌다.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의 근원을 만드신” 바로 그 분이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오셔서)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빌 2:7, 8)신 동일한 분이신 것이 우주 거민들과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에게 알려진 후에 선포된 것이다.
(이어서) 예수님이 인간으로 이 땅에 오시기 전에 그분을 알았던 존재들에게는 이것은 얼마나 놀라운 광경이었을까? 하늘의 존재들도 그를 경배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그분의 피로 구속받은 우리가, 우리의 창조주요 구속주이신 그를 경배하는 것 외에 다른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교훈> 창조주이신 분께서 죄인을 대신해 십자가에 달리신 구주시라는 놀라운 사실에 대한 우리의 합당한 반응은 그에게 영광을 돌리고 경배하는 것이다.
<묵상> 십자가에 비추어 볼 때, 타락한 인간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하신 일에 무엇인가를 더할 수 있다는 생각이 왜 그토록 이단적인 생각입니까?
<적용> 일상의 모든 일 가운데서도, 창조주의 하신 놀라운 일에 겸손히 경배하고 영광을 돌리는 가치의 우선순위를 분명히 세우기 위해 기도하고 노력해 보십시오.
<영감의 교훈>
창조와 구속을 통해 한 가족이 된 인류 - “국적이나 인종이나 계급에 의한 차별을 하나님께서는 인정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온 인류의 창조주이시다. 모든 사람은 창조에 의하여 한 가족이 되었고, 구속을 통하여 하나가 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분리의 장벽을 헐어 버리시고 성전 마당의 모든 칸막이를 열어젖혀서 모든 영혼이 자유로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오셨다.”(선지자와 왕, 369)
<기도> 주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고난과 수치를 무엇으로 보답할 수 있겠습니까? 나를 창조하시고, 십자가로 재창조해 주시는 주님, 온 우주가 찬탄하는 존귀한 주님의 이름 앞에 겸손히 엎드려 구원의 귀한 사랑을 찬양하고 경배합니다.
5월 12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하나님에 대한 예배는 성경의 중심이며 인류와 하나님의 백성에게 항상 논쟁거리가 되어 왔다. 구약 전체에 걸쳐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다른 신을 섬기거나 이교도들의 예배 방식을 사용하여 주님을 예배하는 것을 질책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과 다른 신을 예배하는 것 사이의 갈등은 우주적 대쟁투의 핵심이며 여기에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는 갈등이 수반되었다.
“예배는 살아있는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의 임재 앞에 나올 때 어떻게 할 것인가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인간 존재의 가장 근본적인 측면과 관계있다... 살아 있는 사람만이 주님을 경배할 수 있다. 죽은 자는 그분을 찬양하고 경배할 수 없다... 우리를 창조하신 분은 우리의 삶을 당신께 드림으로 더욱 풍성하게 되돌려 받아, 다른 이들의 유익을 위해 사용하도록 우리를 초대하신다. 예배는 우리 존재의 본질과 목적, 그리고 우리를 이기심에서 해방하기 위해 우리의 내부가 아닌 외부에 중심을 두어야 할 필요에 의해 주어졌다.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는 것은 우리의 존재 이유를 잃는 것이다. 그것은 방향 감각을 상실한 상태로 죽어가는 것이며 생명의 근원으로부터 단절되었기 때문에 완전한 멸망으로 향하는 것이다.”(앙헬 마누엘 로드리게스, 42)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타락한 세상에서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 보라. 우리에게는 왜 구원의 약속도 필요한가?
2. 당신의 삶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권능과 사랑을 경험한 일을 생각해 보라. 그리고 나서 이분이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묵상하라! 바로 그 하나님이 당신의 삶을 돌보실 만큼 충분히 당신을 사랑하신다. 이 사실이 왜 그대에게 위안을 줄 뿐 아니라 당신을 겸손하게 만드는가?
3. 진화가 사실이라면 우리를 창조하기 위해 수십억 년 동안 죽음, 폭력, 파괴, 고통, 대량 멸종을 사용해 온 창조자를 과연 경배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 보라.
뜻밖의 패스파인더 광고 (스페인)
로이다의 세상은 부모님이 이혼한 12살에 무너졌습니다. 그녀는 조부모 때부터 이어진 재림교인의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하지만 그날 이후 교회에 가는 것을 그만두었습니다. 아버지는 교회에서 제명되었습니다. 그녀는 화가 났고 그 감정을 표출했을 때, 교인들은 아버지가 죄를 지었다고 했습니다. 당시 로이다는 침례 받을 준비를 하던 패스파인더였지만 그녀는 침례를 받지 않기로 했습니다. 교회에 가는 것도 그만두었습니다. 실망스럽게도 목사님도, 그 어떤 교인도, 이후 그녀에게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안부를 물어보거나, 성경 공부를 계속하도록 격려해 주리라 생각했지만 아무도 연락하지 않았고 그렇게 30년이 지났습니다.
어느 날, 로이다는 소셜 미디어를 보다가 패스파인더 캠포리 광고를 보았습니다. 왜 그 광고가 자신에게 나타났는지 의아했습니다. 그녀는 재림교인 친구가 전혀 없었고 소셜 미디어에서 교회로 어떤 연결도 한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내용이 궁금했습니다. 그녀가 광고를 열자 과거의 캠포리 영상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녀는 그 영상들을 보며 울었습니다. 교회에 다니며 패스파인더에 참석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하나님과 다시 연결되고 싶은 강한 욕망이 생겼습니다. 온라인에서 재림교회에 대해 찾으면서, 설교를 포함한 많은 온라인 자료를 보았습니다. 그녀는 일주일 내내 설교, 기도주일, 기타 교회 행사들을 보았고 영상 중 일부는 그녀의 8살 딸 발레리아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 교회가 내가 원래 다니던 교회란다.”
발레리아는 패스파인더 캠포리 영상에 마음을 온통 빼앗겼습니다. “엄마, 왜 지금은 교회에 다니지 않아요?” “모르겠구나.” 로이다는 그 질문에 대답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릴 적 교회를 그만뒀을 때, 많은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녀가 볼 때 타당한 이유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발레리아는 패스파인더 캠포리에 가자고 했습니다. 로이다는 옛 재림교인 친구 한 명이 생각났습니다. 그 친구는 이들 모녀가 캠포리에 가는 것을 도와주었습니다.
그것은 정말 멋진 경험이었습니다! 캠포리 이후, 모녀는 성경 공부를 시작했고, 2년 후, 로이다는 침례를 받고 마음을 예수님께 바쳤습니다. 10살의 발레리아도 침례 받기를 희망하며 성경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로이다는 재림교인들이 거의 없는 작은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그녀는 재림교인이 많은 사군토로 이주해서, 교회에 더 참여하고, 딸은 삼육학교에서 공부하기를 원합니다. “30년 동안, 저는 제 삶에서 뭔가가 빠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교회와 하나님께 다시 돌아온 지금, 제 삶이 온전해졌음을 느낍니다.” 여러분이 드린 헌금이 사군토 삼육대학을 돕는데 사용되었습니다. 세계 선교에 동참하는 여러분의 귀한 정성에 감사드립니다.
제공: 대총회 세계선교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