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3일 성지순레
#광주대교구
옥곡성당
1827년(순조 27) 정해 년에 전라남도 곡성을 시발로 하여 경상북도 상주, 충청도와 서울의 일부에까지 파급되었던
천주교 박해의 옥사를 정해박해라고 합니다. 아마도 중, 고등학교 역사교과서에서 신유박해와 정해박해를 외웠던 기억이 나는데요,
즉, 신유박해로 살아남은 교인들이 교인촌을 이루고 있다가 사소한 다툼이 밀고로 번지면서
전국적인 천주교 박해로 전개되었던 사건입니다.
1801년(순조 1) 신유박해로 살아남은 천주교인들은 산간벽지로 흩어져 새로운 교인 촌을 이루고 신앙생활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러나 신유사옥을 마무리 짓기 위하여 전국에 반포된 「척사윤음(斥邪綸音)」은 천주교 탄압의 법적 근거가 되어 전국 각지에서 크고 작은 박해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천주교인들은 이와 같은 어려움 속에서도 정하상(丁夏祥) 등을 중심으로 교회재건과 성직자 영입운동을 꾸준히 전개하고 있었다. 그런데 1827년 2월곡성의 한 교인 촌에서 사소한 다툼이 일어나 곡성현감에게 천주교도를 고발하는 밀고사건이 일어났다. 이를 계기로 천주교인에 대한 박해가 다시 전개되었다.
곡성에서 시작된 천주교인 검거선풍은 점차 전라도 전역으로 파급되어 240여 명의 신자들이 전주감영에 갇히게 되고, 이어 4월 22일 전주의 포졸들이 상주에서 신태보(愼太甫)를 체포하여 전주로 압송해가자, 경상도에서도 천주교인들에 대한 검거선풍이 일어 많은 교인들이 체포되었다.
또한, 서울에서는 4월에 이경언(李景彦)이 체포되어 전주로 압송되었고, 충청도 단양에서는 경상도에서 박해를 피하여 이곳 교인 집에 숨어 있던 신자들이 체포되어 충주로 압송되었다.
이렇게 하여 전라도ㆍ경상도ㆍ서울ㆍ충청도 등지에서 2∼5월의 4개월 동안 500여 명의 천주교인들이 체포되었다. 그들 중 전라도에서 신태보ㆍ이경언ㆍ이일언(李日彦)ㆍ정태봉(鄭太奉) 등 8명, 경상도에서 박보록(朴甫錄)ㆍ박사의(朴士儀)ㆍ김사건(金思建) 등 6명, 충청도에서 황지석(黃之石)ㆍ유성태(劉性泰) 등 2명, 도합 16명이 순교하였고, 대부분은 배교하여 석방되거나 유배되었다. 이 옥사로 전라도지방의 천주교회는 거의 괴멸상태가 되었다.
정해박해[丁亥迫害]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카카오맵] 곡성성당
전남 곡성군 곡성읍 읍내11길 20 (곡성읍 읍내리)
http://dmaps.kr/35uz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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