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혜 3기 씨알지기
5월2일~3일, 씨알지기 양성과정 제3기 1학기 교육생 강경규, 김시라, 김종길, 박남근, 임인선, 장경혜, 최명철, 황희숙 씨알은 스승이신 박재순 씨알을 모시고 1기 씨알지기인 안창도 씨알, 2기 씨알지기인 김창식 씨알부부와 함께 강원도 영월로 1박2일 수련회를 다녀왔다. 세월호 참사로 나라전체가 슬퍼하지만 우리가 영월로 떠나는 날은 그 어느 때보다도 날씨가 화창하여 하늘을 우러르며 슬픈 마음을 잠시 접고 설레는 여행길에 오를 수 있었다.
우리는 두 대의 차로 나누어 수유동과 잠실에서 각각 출발하여 이천휴게소에서 만나 영월 별마로 펜션으로 향했다. 별마로 펜션은 박남근 씨알 지인이 운영하는 곳으로 동강이 옆에 흐르는 자연그대로의 정취가 살아있는 아름다운 곳에 위치해 있었다. 별마로라는 이름이 예쁘고 특이하여 물어보니 근처에 있는 별마로 천문대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라 했다. 별마로 펜션에 도착한 우리는 우리가 머물 곳에 짐을 풀고 다시 차를 타고 영월시로 나와 영월의 대표음식인 올갱이국으로 맛있는 저녁식사를 하고 돌아왔다.
펜션으로 돌아온 우리는 저녁공부를 하기 위해 둥그렇게 둘러앉았다. 그리곤 씨알공부 하러 오게 되기까지 각자 살아온 삶을 나누며 서로에 대해 깊이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분 한분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우리는 감동하였고 점점 하나가 되어감을 느꼈다. 그것은 마치 큰 강으로 모여든 작은 시냇물들이, 만남이 기뻐 노래부르다 하나가 되어 큰 강을 이루어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큰 강은 씨알공부였다. 어느새 씨알공부로 하나가 된 우리는 펜션주인장께서 마련해주신 토종닭 두 마리로 만든 백숙과 막걸리로 배를 채우고는 뿌듯함과 든든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거실에서 잔 남성 씨알들의 수다소리에 잠을 깬 나는 그 소리가 마치 아침에 지저귀는 참새소리와도 같이 정겹게 느껴졌다. 어느새 부지런한 여성 씨알들은 어제 먹고 남은 백숙국물로 닭죽을 만들어 주어서 아침을 든든히 먹고 또다시 둥그렇게 둘러앉아 아침공부를 시작하였다. 어제 몸이 불편하여 일찍 잠자리에 들어 함께 나누지 못했던 김시라 씨알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그동안 배운 유영모 씨알사상에 대한 문답시간을 가지려고 하였다. 근데 궁금한 것이 많은 박남근 씨알의 갑작스런 재단에 대한 질문으로 옆길로 새고 말았다. 하지만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어떻게 하면 씨알사상을 우리사횡에 잘 보급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동안 나는 주민운동을 하면서 우리 국민들이 정이 많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서로 돕고 함께 행동하고자 하나 이슈가 사라지면 뿔뿔이 흩어지는 현상을 수없이 지켜봤다. 이는 우리 국민들이 살고자 하는 철학과 사상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세월호 참사사건만 봐도 그렇다. 우리 국민이 얼마나 원칙과 의식없이 대충대충 살려고 하는지 알수 있는 사건이었다. 이제는 더이상 망설일 수 없다. 더 이상의 피해를 막아야 한다. 국가는 국민이 바른 사고와 철학을 하도록 하는 것만이 우리나라를 살릴 길이라 생각하고 이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온 국민이 유영모, 함석헌의 씨알사상을 배우고 익혀서 자기뜻으로 만들어 살아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럴때에만 우리나라는 바로 설수 있고, 온 국민은 자기책임을 다하면서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행복한 공동체 마을을 만들어 살아갈 수 있다.
아침공부를 마치고 우리는 남은 음식을 다 먹고, 일찍 떠남을 아쉬워하는 펜션주인장을 뒤로 하고 영월기행길에 올랐다. 우리가 먼저 찾아간 곳은 김삿갓 묘소와 문학관이었다. 김삿갓은 본명이 병연으로 원래 사대부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조부가 홍경래난 때 가담하여 역적으로 몰려 가문을 닫게 되었을 때 아버지는 귀양가고 그의 어머니는 화를 피해 어린아들을 데리고 산속에 숨어살았는데 그렇게 흘러온 곳이 영월이었다. 김병연은 어머니로부터 글을 배워 영월도호부 과거에 응시하였는데 장원급제를 하였다. 근데 집안의 내력을 몰랐던 김삿갓은 장원급제를 한 글이 조부를 비판한 글이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조상을 욕되게 했다는 자책감에 20세에 처자식을 뒤로하고 방랑길에 올랐다. 그리고는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이라 하여 삿갓을 쓰고 전국곳곳을 돌아다니면서 민중의 한과 설움을 해학적으로 읊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나는 처자식을 두고 떠날 수 밖에 없었던 그리고 그 마음을 달래기 위해 그렇듯 시를 쓸 수 밖에 없었던 김삿갓의 아프고 슬픈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마음을 달래기 위함인지 김삿갓 묘소 옆에는 김삿갓 모습을 그대로 뺀 현대 김삿갓이 초막을 짓고 앉아 오가는 길손들에게 덕담과 맛있는 차를 대접하고 있었고 문학관에는 생전 그가 지은 시들을 모아 전시하여 방랑자 김삿갓의 마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문학관앞 뜰에는 부부가 한 몸이었다 둘로 나누어지는 동상이 있었으니 이는 보는 이로 하여금 아내와 헤어지는 절절한 마음과 아픔이 느껴져 가슴먹먹하게 하였다.
봉고차에서 빨리 오라고 손짓하며 부르는 소리에 가슴 먹먹함을 뒤로 하고 우리가 찾아간 곳은 단종의 유배지였던 청령포였다. 단종 역시 슬픈 역사를 살다 어린나이에 돌아가신 임금이다. 아버지 문종이 돌아가시고 삼촌인 수양대군에 의해 쫒겨나 영월의 작은 섬 청령포에서 살다가 마침내 죽임을 당한 기가 막히게도 슬픈 임금이다. 서강앞에 서서 강건너 단종이 유배되었던 섬 청령포를 바라보면서 권력의 탐욕앞 에서 무참히 이슬로 사라진 슬픈 영혼을 위로하며 장릉으로 발길을 돌렸다. 장릉은 단종의 시신을 거두어 묻은 곳을 찾아 훗날 단종이 복원되면서 왕의 능으로 조성된 곳이다. 그런데 단종의 능이 조성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영월호장이었던 엄흥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단종의 시신을 거두는 사람에게 엄벌에 처하겠다는 명령을 듣고도 “옮은 일을 하다 화를 입는 것은 달게 받겠다”며 단종의 시신을 수습하여 지금의 장흥에 몰래 묻었는데 241년이 지나서 숙종24년에 복권되어 묘호를 단종으로 하고 능호를 장능으로 왕실의 정례를 되찾았다. 이렇듯 슬픈 단종의 묘소인 장릉을 돌아보고 우리는 늦은 점심을 먹고 서울로 향하였다.
집에 돌아와 나는 인터넷으로 별마로 천문대를 찾아 별마로의 뜻을 검색하였다. 별마로는 ‘별을 보는 정상’이라는 의미가 있었다. 유영모 선생님도 하늘의 별을 보는 것을 즐겨 망원경을 만들어 옥상에 놓고 하늘의 별을 보셨다는 글을 책에서 본적이 있는데 유영모 선생님이 우리를 별마로 팬션으로 이끄셨을까? 신기하다. 유영모 선생님은 “어둠속에서 하늘을 봐야 실제 우주의 실상을 본다”고 하셨다. 어둠속이란 단어가 가슴에 와 닿았다. 이번 수련회에서 본 것은 어둠이었기 때문이다. 김삿갓도 그렇고 단종도 어둠속에서 살았다. 그래도 김삿갓을 자신의 어둠을 승화하여 민중의 삶과 애환을 읊으며 살았지만 단종은 숙부에게 내내 탄압을 받다가 마침내 죽임을 당하는 한 많은 삶을 살았다. 유영모 선생님은 어둠의 깊은 의미를 강조하셨다. 나는 우리가 참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둠을 피하지 말고 직면하라는 말씀처럼 들렸다. 그렇게 직면했을 때 삶의 의미가 보이고 자신의 탐욕을 내려놓을 수 있어 참인간이 될 수 있다고 하시는 것같았다. 이는 가난을 즐기고 청빈한 삶을 추구하는 주민운동의 정신과도 다르지 않았다. 이번 세월호 참사는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지금은 온 나라가 슬픔과 어둠에 잠겨있지만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이 사건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한다.
짧은 수련회이었지만 이번 수련회는 참으로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생각하게 해주었지만 크게 세가지로 정리해본다. 첫째는 각자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씨알사상과 연결시킬 수 있었다는 것. 씨알사상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머리로만이 아니라 자신의 삶과 연결시킬 수 있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국가적인 측면에서 우리나라가 제대로 설려면 철학과 사상이 필요하다는 것, 그 철학과 사상이 유영모 함석헌의 씨알사상이어야 한다는 것. 그것을 씨알지기들이 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김삿갓과 단종의 슬픈 역사의 현장을 돌아보고 지금도 되풀이 되고 있는 이러한 슬픈 현실에 대해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는 힘의 움직임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첫댓글 좋은 기행에 의미있는 기행문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