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벌이 있으면 됐어”
갯벌이 있으면 됐어
인천에서 사는 필자는 얼마 전 강화도를 찾았다. 발을 딛는 곳마다 살아있는 역사박물관인 강화도! 제법 땅이 넓다. 우리나라 섬 중에 네 번째로 크다고 한다. 노희정씨가 운영하는 문인들의 육필 원고와 책들이 전시된 육필박물관을 보고 해안 길을 달려서 도착한 곳은 동검도다. 동검도東檢島는 글자그대로 동쪽의 검문소라는 뜻이다. 옛날 삼남지방에서 한양으로 향하는 선박과, 중국과 우리나라를 오가는 사신이나 상인들은 반드시 이곳 동검도를 거쳐야 했다고 한다. 동검도 앞바다를 덮은 회색빛 갯벌은 장엄하고 아름다웠다. 그리고 살아 있었다. 그러고 보니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우리나라 갯벌에 대해서 잘 모르면서 무심히 지나친 것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갯벌은 갯가, 즉 바닷가의 넓은 벌판으로 바닷가의 평탄하고 물의 흐름이 완만한 곳에 물속의 흙 알갱이들이 퇴적되어 내려앉아 만들어진 곳이다. 퇴적물이 펄로 된 곳은 펄갯벌, 모래로 된 곳은 모래갯벌 그리고 펄과 모래, 작은 돌 등이 섞여 있는 곳은 혼합갯벌이라 한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는 갯벌의 전체 면적이 약 2,500㎢에 달한다. 이는 서울 면적의 6배에 해당하는 넓이로, 갯벌에는 720여 종류에 이르는 다양한 생물들이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흔히 갯벌에 가면 바지락, 낙지, 해삼, 게, 갯지렁이 등이 모두 한 곳에 모여 산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들의 입맛에 따라 저마다 좋아하는 음식이 다르듯이, 갯벌생물 또한 제각기 좋아하는 먹이에 따라 살아가는 서식지가 다양하다.
세계5대 갯벌 중 하나인 한국 서해안의 갯벌은 최근 들어 그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갯벌의 긍정적인 기능은 첫째, 갯벌의 조절적 기능이다. 갯벌은 기후위기와 오염, 자연재해에 대처하는 좋은 터전이다. 자연 환경의 오염으로 인해 과잉으로 공급되는 영양염류나 오염물질을 흡수하고 정화한다. 인천의 경우를 보면 갯벌 면적은 전국 갯벌의 28%로 전남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인천시 보건환경연구원은 갯벌이 탄소를 흡수하는 탄소포집기능이 있어서 주목할 만한 천연자원임을 과학적으로 입증했다. 인천 갯벌 퇴적물에는 평균 1㎡당 약 18.5㎏의 탄소가 저장된다고 밝혔는데, 이는 강화와 중구 일대 갯벌이 인천시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20%에 해당하는 탄소를 고정하는 수준이다. 갯벌에서는 표층의 저서미세조류低棲微細藻類(BMA)가 광합성으로 공기 중 탄소를 흡수하고, 이렇게 흡수된 탄소는 퇴적작용으로 갯벌 퇴적물 안에 장기간 저장되기 때문이다. 갯벌이 탄소를 흡수하고 저장할 수 있다는 탄소포집기능은 국가 차원에서도 탄소중립과 기후위기 대응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갯벌의 또 다른 좋은 점은 서식지 기능이다. 이름에 '갯'이 들어가는 거의 모든 생물은 갯벌에서 서식한다고 보면 된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맛조개나 낙지, 참게, 농게, 꼬막, 망둥어 등 여러 가지 조개류와 낙지, 오징어, 꼴뚜기 등의 두족류, 물고기 등은 연안 어업 종사자의 주 수입원이자 생계수단이다. 갯벌의 문화적 기능도 빼놓을 수 없다. 갯벌에서 서식하는 다양한 생물과 오고 가는 철새들을 가까이서 체험할 수 있는 갯벌은 최고의 생태학습장이다. 이곳에서 생물 다양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 고무적인 것은 우리나라 갯벌의 생태학적 가치와 중요성을 해양수산부가 '한국의 갯벌' 책자를 통해 알리고 있다는 것이다. 책에서는 퇴적환경, 대형저서低棲동물, 염생식물, 바닷새 등 갯벌의 다양한 생태계를 세밀하게 분석, 제시하여 우리나라 갯벌의 현재 상태와 변화를 잘 알리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소중한 갯벌을 위협하는 반갑지 않은 손님인 ‘갯끈풀’이 있다. '갯끈풀'은 ‘갯벌의 암살자’로 불리는 최근에 유입된 외래식물로 벼처럼 생긴 식물인데 강한 번식력으로 급속하게 퍼지며 갯벌을 황폐화하고 있다. 문제는 ‘갯끈풀’의 확산을 막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관할 자치단체와 주민들이 합심하여 뿌리째 뽑아버리는 퇴치 노력에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확 트인 갯벌을 바라보면 갯벌은 마치 온 세상이 멈춘 듯 고요하고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안에서는 수많은 생명들이 쉴 사이 없이 먹고 움직이며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광대한 갯벌을 앞마당에 둔 동검도에 밀물이 천천히 밀고 들어오니 "음 됐어 바다가 보이면 됐어" 이생진의 시가 구불구불 갯벌 위에 씌여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