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석鄭志石 이름 석 자만 보아도 그가 바르고 강직하고 고아한 품격의 인물 임을 느낄 수 있다. 부산 경남고등학교 제 20회 동기동창생이다. 1963년에 입학하여 1966년 졸업.. 3년 동안 늘 붙어 다녔다. 고 2 년 여름방학 때는 헤진 군화로 낙동강, 진주남강 천리길 무전여행을 부산고 박 동기와 셋이서 다녀왔다. 활기차고 자유분방 하고 건강한 청년 소망하였다.
석이는 부산시 인근 농촌 마을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일본 교토 대학 졸업하신 개척교회 목사님이셨고 어머님은 세상에서 제일 어질고 신앙이 깊으신 교회 권사님이셨다
부산중학교는 부산의 명문중학교로 입학시험 합격자는 일간지에 이름이 성적순으로 게재되었다 석이는 입학 이후 3년간 빼어난 학습능력을 발휘하여 수재로 이름을 떨쳤다 그러나 집이 서대신동으로 이사하는 까닭에 경남고등학교 입학시험에 응시하였고 다섯 손가락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하였다 1학년 신입생 반장 선거는 신입 학생 간에 상호 교분이 없어 서로가 오리무중이다 석이는 담임선생님 추천으로 우리반 반장이 되었다 경남고등학교 1학년은 7할이 경남중학교 출신이다 부산중학교 출신인 석이는 동급생이 생소한 얼굴이 대부분이라 학급 통솔에 어려움이 많았다 나는 경남중학교 출신이고 한 책상을 쓰고 옆에 앉아 그를 열심히 도왔다
석이는 수학에 빼어났고 나는 어학이 조금 앞섰으며 방과 후에는 석이 집에 머물러 숙제를 마친 후 귀가하였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부터 부유한 가정에 입주 가정교사를 하였으며 잡비 지출에 여유가 있었다. 부모님께 학창시절부터 효도한다는 긍지를 갖고 싶었다 숙제를 석이 집에서 함께 마치고 가정교사 집으로 귀가하면 마음이 뿌듯하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는 외대로 진학하고 석이는 서울대 공대에 진학하였다 나는 서울 법대 청강과 훌륭한 친구들 교제를 위하여 낙산 이화동에 하숙집을 정하였다 석이는 하숙비 절약을 위하여 청계천 7가 6촌 형님 사출공장에 거처를 정하고 그곳에서 기거하였다 석이 일상은 성경의 사도처럼 희생과 봉사의 세계였고 친지와 친구들에게 물심양면으로 자비를 베풀었다
놀랍게도 대학 3학년 때인가 그가 예비한 등록금을 육촌형 공장 운영비에 보태고 두 학기나 등록을 미룬 것을 알게되었다. 노력 봉사 만으로도 과한데... 크게 실망하였고 이후 석이의 생각을 고쳐볼까 고의로 만남을 멀리하였다 이 시절 소상공인에 대한 정부 지원은 전무해 기업의 생존율은 2할 미만이였고 결국 사출공장은 도산하고 석이는 대학 졸업을 포기하고 생업에 종사하여 부모님 도우려 농촌에 자주 간다는 소문 들었다
시월 유신이 마무리되고 1973년 상반기에 나는 경제기획원에 입사한 후 외자계약 심의 업무를 맡게되었다. 대기업 간부들이 계약 상세 내용 설명을 위하여 사무실 왕래가 잦았다. 많은 교분을 쌓게 되었고 몇 번이나 '훌륭한 인재를 좋은 직장에 소개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다짐 만 하다가 그 때나 지금이나 겁이 많아 적당한 직장을 소개하지 못하였다.
내가 대우 중공업 간부로 특채된 이후 석이 집으로 찾아왔다 그는 결혼 이야기를 꺼냈다. 신부는 아버님 개척 교회가 있는 농촌에서 교회와 목사님 가사일 돕는 홀로된 중년여성. 나이도 우리 보다 열 살 이상 많고 딸린 자녀도 있는 것 같았다. 억장이 무너져 정신이 혼미하고 말을 잊었다
이후 연락을 않고 있다가 나이 서른이 넘어 석이 성산동 집으로 찾아왔다. 미국 농촌 소도시 동영상을 보여주며 같이 미국으로 이민 갈 것을 권유하였다. '석이 가족 먼저 가서 자리잡고 생활이 번창하면 불러주라'
마지막 인사 후 40여년 지난 오년 전인가 사무실로 전화가 왔다. 뛸듯이 반가워 "어디냐" "거제도 가는 길" '거제 왜 가냐' "옥포 조선소 일하러" 음성이 당당하고 아직 건강하구나 생각했다
이후 일 마치면 전화한다 했는데 연락이 없었다 사나흘 기다리다 연락 온 전화번호를 찾아 연결하니 불통이다.
2022년 나이도 팔십대 길목 경남고교도 80 주년. 기념 출판 명부를 뒤져 석이 주소 미국 미네소타 Dellwood를 찾어냈다 새 해에는 성자聖者 정지석을 찾아 미국 미네소타로 성지 순례길 가야한다. 조오현 대종사님 싯귀가 조금 바뀌어 들려온다
"나는 죽을 나이가 지났는데도 아직도 살아있지만 그 어느날 단 하루도 용기내고 두려움없이 산 적이 없어 천 년을 살아도 聖者는 미네소타에" "I am still alive, long past my time to die There is no one day I could be brave and fearless May live a thousand years, but the holyman is the one in Minnesota"
첫댓글 만날 날을 기대하시지요. 그런 날이 오리라 생각합니다.
강회장님. 신의같은 수필...큰 감동입니다. 고맙습니ㅣ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