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피는 꽃
전 의 수
점심 식사 모임에 가려고 시내버스를 탔다. 마침 오늘은 대전시가 노인복지 일환으로 제공한 ‘어르신 무임교통 카드’가 사용되는 첫날이다. 빈부를 따지지 않고 70세 이상 전 노인에게 발부되었다. 왜일까 조금은 씁쓸하다. 어쨌든 일단 내 손에 왔으니 처음으로 테그해 본다. 전에 유료 카드에서는 ‘감사합니다’라는 맨트가 나왔는데 이 카드는 ‘고맙습니다’라고 나온다.
중간에 앉아 정류장마다 버스에 오르는 사람들을 눈여겨보았다. 버스에서 내릴 때까지 대충 승객의 7할에 해당하는 인원이 ‘고맙습니다’ 승객으로 보였다. 물론 출퇴근 시간이 아니고 점심 식사시간을 앞둔 때여서 노인들이 더 많은지도 모른다.
여유가 많아진 시간에 인터넷을 통해 숱한 정보 세계를 유영한다. 가톨릭의 신부, 불교 스님, 유명인사들의 삶에 대한 강의를 즐겨 듣는다. 이들은 나이 들었다고 체념하지 말고 새로운 것을 배우며 살아라. 취미활동을 해라. 사람들과 많이 어울려라. 노후 건강관리에 힘써라. 재물을 키우려는 욕심을 내려놓아라. 등등으로 매우 다양한 가르침을 준다.
낮에 시내버스에 오르던 ‘고맙습니다’ 승객들은 무슨 일로, 어디를 가는 것일까 생각하면서 오늘의 나를 돌아본다. 내 나이가 우리식으로 올해 일흔여섯이다. 요즈음 부고장에 망인이 대부분 아흔 살을 넘었다. 나를 그에 대입해 보면 앞으로 살아갈 날이 대충 십, 사오 년으로 계산된다. 물론 지금의 건강에 큰 이변이 없을 때 얘기다. 짧지 않은 세월이다. 남았을 삶을 어떻게 지내는 게 잘살다 가는 것일까.
나는 글쓰기와 마음공부라는 방편에 열중한다. 이 두 가지의 공통점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것과, 혼자도 할 수 있다는 거다. 다른 점은 글쓰기는 무언가 소재가 머리에 스칠 때만 가능하다. 그리고 한편의 글을 완성하면 즐거운 만족감을 느끼는 재미가 있다. 마음공부는 TV나 핸드폰의 유튜브로 수시로 들을 수 있다는 점이 좋다. 하지만 이건 듣기는 쉽지만 들어 배운 것을 실천하고 성취하기가 만만치 않다. 마음공부는 소위 견성(見性)이라는 깨달음에 이르는 걸 추구한다. 하지만 나 같은 국외자가 그에 이르기는 무척 힘들 것으로 여겨진다.
마음공부 4년째다. 어느 날 유튜브를 보다가 한 큰 스님의 법문을 듣고 매력에 빠졌다. 다행인 건 공직에서 한문을 많이 사용했던 경험으로 법문에 쓰이는 한문 용어를 쉽게 이해하는 것이다. 대강 더듬어 보면 반야심경과 마음공부, 육조단경과 마음공부, 달마의 불이(不二)와 마음공부, 목우 스님의 수심결과 마음공부 등등이 생각난다. 그밖에 유튜브에 뵈는 관련 강의나 법문을 빼놓지 않고 들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보면 하루가 지루하지 않다. 때로는 공부를 위해 법문을 듣는지, 시간을 보내느라 유튜브를 보는지 애매한 마음이 일기도 한다. 하지만 계속 듣고 있다.
한 달 두 달, 일 년 이년. 세월이 갈수록 혼자 지내야 하는 날들이 많아지는 건 나만의 사정은 아닐 터. 그러기에 노후에 허송세월하지 않는 방편으로 이것만큼 좋은 게 없다고 여긴다. 글이 써지면 모아 책을 낼 수 있어 좋다. 보아주는 이 없어도 길가에 이름 모를 꽃은 피듯이 그저 쓴다. 마음공부 역시 어찌 알겠는가.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들려다 안되면 송곳이라도 얻는 기쁨을 맛보지 않을까 기대하며 꾸준하게 갈아 볼 일이다.
간간이 친구들이 소주 한잔하자는 문자가 오면 달려나가 정담을 나누는 건 삶의 윤활유가 되니 좋다. 소속단체에서 민요봉사 일정이 통보 오면 함께 봉사를 즐긴다. 이 또한 삶의 양념이다. 오늘 처음 사용한 시내버스 무임승차 카드가 이런 일에 유용하게 쓰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23.9.)
첫댓글 무임 버스 카드, 웬지 고마움보다 씁쓸한 기분이 듭니다.
귀감이 되는 건실한 생활하시는 잔다리님. 이미 見性 하셨네요.
편안하게 읽히는 글 , 잘 읽었습니다.
격려말씀 감사드립니다. 내일 뵙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