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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0 장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열망
재림이 가까웠다는 선포와 함께 종교적 대각성이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이 요한계시록 14장의 첫째 천사의 기별에 예언되어 있다.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주하는 자들 곧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계 14:6~7).
천사는 그 기별을 통하여 성취될 사업의 고상한 특성과 그 사업에 수반될 능력과 영광을 나타낸다.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며 “큰 음성으로”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파하는 것은 이 운동의 신속성과 세계적인 범위를 알려 준다.
이 기별은 마지막 때에 전해질 복음의 일부분이다. 왜냐하면 심판의 때는 말세가 되어야 시작되기 때문이다. 다니엘은 마지막 때에 관한 예언의 이 부분에서 “마지막 때까지”(단 12:4) 그것을 봉해 두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때가 이르기 전까지 예언의 성취에 기초를 둔 심판에 관한 기별은 선포될 수 없었다.
사도 바울은 그의 시대에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지 말라고 교회에 경고하였다. 큰 배도와 장기간에 걸친 “불법의 사람”의 오랜 통치가 있은 후에야 비로소 주님의 재림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었다. “죄악의 사람”, “불법의 비밀”, “불법한 자” 등은 1,260년 동안 최상권을 쥐게 될 교황권을 나타낸다. 1,260년의 기간은 서기 1798년에 마쳤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재림은 그 이전에는 있을 수가 없다. 바울은 1798년까지의 신약 시대 전체를 그의 경고에 포함시키고 있다. 그리스도의 재림의 기별은 그 이후에 선포될 것이다.
과거에는 이런 기별이 전해진 적이 없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바울은 그 기별을 전하지 않았다. 루터 역시 심판이 그의 시대로부터 약 300년 후에 있을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1798년 이후부터 다니엘서가 공개되었고, 많은 사람이 심판이 가까웠다는 기별을 전했다.
동시에 여러 나라에서 전함
16세기의 종교 개혁처럼 재림 운동도 여러 나라에서 동시에 일어났다. 하나님은 믿음이 독실한 사람들이 예언을 연구하도록 이끄셨고 그들은 성경을 주의 깊이 연구하는 중에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세계 각처에 있는 그리스도교 단체들이 성경 연구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재림이 가까웠다는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1821년 밀러가 심판의 때를 가리키는 예언의 해석을 한 지 3년 후에 “세계의 선교사”라고 일컬어지는 요셉 볼프(Joseph Wolff)가 주님의 재림이 임박했음을 선포하기 시작하였다. 볼프의 아버지는 유대인 랍비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받아들였다. 그는 그의 집에 경건한 히브리 사람들이 모여서 유대 민족의 소망과 장차 오실 메시아의 영광과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해 나누는 대화를 열심히 경청했다. 어느 날 나사렛 예수의 이야기를 듣고 그분이 누구인지 물었다. 그는 “매우 재능 있는 유대인이었는데 자칭 메시아라고 주장했기 때문에 유대 법정에서 사형 선고를 받게 된 사람”이라는 대답을 듣게 되었다. 그는 다시 “예루살렘이 멸망한 이유가 무엇이며, 우리가 자유를 잃은 백성이 된 것은 무엇 때문인지”를 물었다. 그러자 그의 아버지는 “슬프다. 슬프다. 그것은 유대인들이 선지자를 죽였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하였다. 그 말을 듣자 그 소년의 마음에 갑자기 “아마 예수도 선지자였는데 유대인들이 죄 없는 그를 죽였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스쳐 갔다. 그 생각이 너무나 강렬했기 때문에 그는 그리스도의 교회에 출입하는 일이 금지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교회의 주위를 배회하면서 설교를 듣곤 하였다.
겨우 일곱 살이었을 때 그는 이웃에 사는 연로한 그리스도인에게 메시아가 오시면 이스라엘이 승리를 얻을 것이라고 자랑하였다. 그러자 그 노인은 친절하게 말하였다. “얘야, 누가 참메시아인지 내가 말해 주마. 너희 조상들이 옛적의 선지자들에게 한 것처럼 십자가에 못 박은 나사렛 예수님이 바로 메시아란다. …집에 돌아가서 이사야 53장을 읽어 보아라.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는 집으로 와서 그 성경 말씀을 읽고 그것이 너무도 정확하게 나사렛 예수에게서 성취된 것을 보고 놀랐다. 그는 그 노인의 말이 참말이라고 믿었다. 그는 아버지께 그 예언을 설명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주 무서운 표정으로 침묵하였고 다시는 그 문제를 꺼내지 못하였다.
열한 살이 되었을 때 그는 세상으로 나가서 스스로의 힘으로 교육을 받는 한편 자기의 신앙과 평생의 사업을 택하게 되었다. 그는 돈 한 푼 없는 고독한 신세로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살길을 개척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히브리어 교사로 생계를 유지하며 부지런히 공부하였다. 후에 그는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로마에 있는 프로파간다 대학에서 수학하게 되었다. 여기서 그는 공공연하게 교회의 여러 가지 잘못을 공격하고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얼마 후에 그는 로마에서 쫓겨났다. 그가 로마 교회의 명령에 결코 복종하지 않을 것임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그는 마침내 교회로부터 교정 불가능자라는 선고를 받고 그가 원하는 대로 가도록 허용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영국으로 건너가 개신교 신앙을 받아들이고 성공회에 입교하였다. 2년간의 연구를 마친 다음 1821년에 그는 선교 사업을 시작하였다.
볼프는 예언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영광과 권능으로 재림하실 것을 분명히 깨달았다. 그리하여 그는 나사렛 예수께서 약속된 메시아이며 그분이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희생 제물이 되기 위해 초림 하셨다는 것과 마침내 그분이 우리의 왕이요 또한 구원자로 재림하실 것임을 그의 동족들에게 가르쳤다.
볼프는 주님의 재림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믿었다. 예언 기간에 대한 그의 해석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재림은 밀러가 지적한 바와 같이 불과 몇 년밖에 남지 않았다.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라는 성경 말씀으로 재림의 임박성에 관해 아무것도 알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해 볼프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주께서는 마치 무화과나무의 잎사귀가 나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는(마 24:32) 것처럼 우리에게 재림의 임박함을 알려 주기 위해 때의 징조들을 주시지 않았는가? …노아가 방주를 준비한 것처럼 우리로 하여금 재림을 준비하도록 주신 시대의 징조를 통해 우리는 재림의 시기를 충분히 알 수 있지 않겠는가!”
통속적인 해석에 반대함
성경에 대한 통속적인 해석 방법에 대해 볼프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대부분의 그리스도 교회가 성경의 분명한 의미를 곡해하고 있다. …그들은 ‘유대인’이라는 말을 읽으면 ‘이방인’으로 이해하고 ‘예루살렘’은 ‘교회’로 해석한다. 또 ‘지구’는 ‘하늘’이라고 이해하고 ‘주님의 재림’은 ‘선교 단체의 발전’으로 이해한다. 주님의 집의 산에 오른다는 것은 ‘감리교인들의 큰 총회’로 해석한다.”
1821년부터 1845년까지 24년간 볼프는 이집트와 에티오피아, 팔레스타인, 시리아, 페르시아, 보카라, 인도, 미국 등 여러 나라를 순례하였다.
성경 속에 있는 능력
볼프 박사는 아무런 보호 없이 위험한 국가들을 여행하면서 말할 수 없는 곤란과 위험을 당하였다. 그는 매 맞고, 굶주리고, 노예로 팔리기도 하였다. 세 번이나 사형 선고를 받고, 도적들에게 포위당하고, 기갈로 거의 죽을 뻔한 적도 있었다. 또 한 번은 가진 것을 모두 빼앗기고 걸어서 산을 넘어 수백 킬로미터를 갈 수밖에 없었는데 눈을 맞으며 얼음으로 덮인 땅을 맨발로 걸었기 때문에 발이 감각을 잃게 된 일도 있었다.
야만인과 호전적인 종족들에게 무장하지 않은 채 가는 것이 위험하다는 경고를 받자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나는 무장하였다. 기도와 그리스도에 대한 열심과 하나님의 도움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무장하였다. 또한 내 마음에는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품고 있으며 손에는 성경을 가지고 있다. 나는 성경 속에 능력이 있음을 확신하며 그 힘이 나를 붙들어 주는 것을 느낀다.”
그는 많은 지역을 다니며 심판의 기별을 전하였다. 유대인, 튀르키예인, 페르시아인, 힌두교도 그 밖의 여러 종족과 민족들에게 그 지방의 언어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하고, 어디서나 메시아의 오심이 가까웠다는 소식을 전하였다.
그는 보카라를 여행하던 중 어떤 고립된 지역에 사는 주민들을 만났는데 그들이 주님의 신속한 재림을 믿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 예멘에 있는 아라비아인들은 『세에라(Seera)』라는 책을 가지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그리스도의 재림과 그분께서 영광 중에 통치하실 것이라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들은 1840년에 큰 사건이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나는 또한 단 지파에 속한 이스라엘 자손을 발견했는데 그들은 레갑 자손들과 함께 메시아가 하늘 구름을 타고 신속히 오실 것을 고대하고 있었다.”
또 다른 선교사는 그와 비슷한 신앙을 가진 사람을 동유럽의 타타르(Tatary) 지방에서 발견하였다. 타타르의 한 수도승은 그 선교사에게 그리스도께서 언제쯤 재림하실 것이냐고 질문하였다. 선교사가 그 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대답하자 수도승은 성경을 가르치는 사람이 그 사건을 모르는 것에 대해 크게 놀라움을 나타냈다. 그는 예언에 근거하여 그리스도가 1844년경에 재림하실 것을 믿는다고 말했다.
영국에서의 재림 기별
영국에서는 1826년부터 재림 기별이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재림의 정확한 시기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강조되지 않았으나 그리스도께서 능력과 영광으로 속히 오신다는 진리는 널리 전파되었다. 영국의 한 저술가는 약 700명의 영국 국교회 성직자들도 이 “천국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연합하였다고 말했다.
또한 1844년이 재림의 때라고 알려 주는 기별이 대영 제국에도 전해졌다. 미국에서 건너온 재림에 대한 인쇄물이 널리 배포되었다. 영국인으로서 미국에서 재림 신앙을 받아들인 로버트 윈터(Robert Winter)가 1842년 본국에 돌아와서 주님의 재림을 전파하였다. 많은 사람이 그의 사업에 연합하였으며 심판에 관한 기별이 영국 각처에 전파되었다.
남미에서는 스페인 출신으로 예수회 회원인 라쿤사(Lacunza)라는 사람이 성경을 연구하며 그리스도의 재림이 가까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로마 교회의 비난을 피하고자 그는 자신의 이름을 마치 개종한 유대인처럼 랍비 벤 에스라로 고치고 그 이름으로 자기의 견해를 출판하였다. 1825년경에 그의 책은 영어로 번역되었다. 그 책은 영국에서 이미 일어나고 있는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는 데 매우 큰 역할을 하였다.
벵겔에게 요한계시록이 알려짐
독일에서는 18세기에 루터 교회의 목사요 성경학자요 평론가로 유명한 벵겔(Bengel)이라는 사람이 이 교리를 가르쳤다. 요한계시록 21장으로 설교를 준비하는 동안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빛이 그의 마음을 뚫고 들어갔다. 그는 요한계시록의 예언들을 과거 어느 때보다 잘 이해하게 되었다. 선지자에 의하여 제시된 중요하고 영광스러운 장면에 압도되어 그는 잠시 동안 그 문제를 접어 둘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강단에서 설교할 때 그 주제가 다시 그에게 생생하게 제시되었다. 그때부터 그는 예언 연구에 몰두하게 되었고 특히 요한계시록 연구에 집중하였는데 오래지 않아 그 예언서에서 가르치고 있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가까웠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그가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라고 확정한 연대는 후에 밀러가 주장한 연대와 거의 비슷하였다.
벵겔의 저서들은 그의 고향인 비텐베르크와 독일의 다른 지방에도 전해졌다. 이렇게 하여 재림 기별이 독일에서도 다른 나라들과 같은 시기에 전파되었다.
제네바에서는 고센(Gaussen)이 재림 기별을 전하였다. 그가 목회 사역을 처음 시작할 때에는 회의적인 성향이 있었다. 그러나 롤린이 저술한 『고대 역사』를 읽은 후 그는 다니엘 2장의 말씀을 주목하게 되었고 그 역사가가 기록한 그대로 성경 예언이 놀라울 정도로 정확히 성취된 것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 그것은 성경이 영감으로 기록되었다는 증거였다. 그는 합리주의 사상에 만족할 수 없었고 성경을 연구함으로 더욱 분명한 빛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적극적인 신앙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예언을 연구하는 중에 주님의 재림이 임박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 중요한 진리에 감명을 받고 그는 그 진리를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열망하였다. 그러나 당시에 다니엘의 예언은 오묘한 것이므로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였기 때문에 그의 사업은 큰 장애를 만난 듯하였다. 그는 파렐이 제네바에서 전도할 때 사용한 방법 곧 먼저 어린이들에게 전도하여 그들을 통해 부모들의 관심을 끄는 방법을 쓰기로 결심하였다.
훗날 그는 당시에 사용했던 방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아이들로 이루어진 청중을 모을 것이다. 그들이 기별을 듣고 기뻐하고, 흥미를 가지고 문제를 이해하며,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수 있게 되면 나는 그다음 단계의 활동이 전개될 것을 확신한다. 다음에는 어른들이 참석하여 이 문제는 연구할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렇게만 되면 이 일은 성공할 것이다.”
그의 활동은 성공적이었다. 그가 아이들에게 말하고 있을 때 어른들도 와서 들었다. 교회의 좌석들은 주의 깊이 경청하는 청중으로 만원이 되었다. 그 청중 가운데는 지위가 높은 사람들과 학식 있는 사람들도 있었고 제네바를 찾아온 나그네들과 외국 사람들도 있었으므로 그들이 들은 기별은 자연스럽게 다른 지방으로 전해졌다.
이와 같은 성공으로 용기를 얻은 고센은 예언서 연구를 장려할 목적으로 그가 가르친 내용을 출판하였다. 그 후에 그는 신학교의 교수가 되었다. 일요일에는 전도자로서 활동을 계속하면서 아이들에게 설교하고 성경을 가르쳤다. 그가 저술한 예언에 관한 서적은 사람들에게 큰 흥미를 일으켰다. 그는 여러 해 동안 교수로서 그리고 어린이 교사로서 자신의 인쇄물을 통해 많은 사람의 마음이 주님의 임박한 재림의 예언에 끌리도록 주력하였다.
스칸디나비아에서의 어린이 설교자들
스칸디나비아에도 재림 기별이 전해졌다. 많은 사람이 각성하여 그들의 죄를 고백하고 죄에서 떠나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용서를 구하였다. 그러나 국교회의 성직자들은 이 운동을 반대하였으므로 그 기별을 전하던 몇 사람이 투옥되었다.
여러 곳에서 주님의 재림이 가까웠다는 기별을 전하던 사람들이 잠잠해졌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어린이들을 통하여 기별을 전하게 하셨다. 그들은 미성년자이므로 국법으로 처벌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아무런 장애를 받지 않고 전도할 수 있었다.
경고의 기별을 듣기 위하여 사람들이 모인 장소는 대개 노동자들의 비천한 가정이었다. 어린이 전도자들도 주로 가난한 집안의 자녀들이었다. 그들 가운데는 6세 혹은 8세 정도의 아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통하여 그들이 구주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증거 하였는데 그들이 일상에서 나타내는 지혜와 재능은 또래 아이들과 별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사람들 앞에 서면 그들의 재능을 뛰어넘는 힘이 나타났다. 음성과 태도가 바뀌었고 엄숙한 능력으로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다는 성경 말씀으로 사람들에게 다가올 심판을 경고하였다.
사람들은 그 기별을 듣고 떨었다. 회개케 하는 하나님의 성령이 그들의 마음에 말씀하셨다. 그 결과 많은 사람이 깊은 흥미를 가지고 성경을 연구하게 되었고, 방탕하고 부절제하던 사람들이 생활을 개혁하였다. 사업의 결과가 너무도 뚜렷하였으므로 국교회의 성직자들까지도 그 운동에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구주의 재림에 관한 소식이 스칸디나비아에 전파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당신의 종들의 음성이 잠잠하게 되자 당신의 사업을 성취하기 위하여 어린이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셔서 일하게 하셨다. 일찍이 예수께서 당신을 다윗의 자손이라 칭하시며 종려 가지를 흔들고 환호하는 많은 무리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셨을 때 질투심이 많은 바리새인들은 그들을 잠잠하게 하라고 그분께 요구하였다. 그때에 예수께서는 그 모든 일이 예언의 성취이므로 만일 그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고 대답하셨다. 백성은 제사장들과 관원들의 위협에 눌려서 예루살렘성에 이르자 그들이 즐겁게 외치던 소리를 그쳤다. 그때에 성전 뜰에 있던 어린이들이 노래를 부르고 종려 가지를 흔들면서 “다윗의 자손이여…호산나”(마 21:8~10)라고 외쳤다.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초림 때에 어린이들을 통하여 일하셨던 것처럼 재림의 기별을 전하는 일에도 어린이들을 사용하셨다.
기별 전파
윌리엄 밀러와 그의 동역자들에게 미국에서 경고의 기별을 전하라는 사명이 주어졌다. 그리하여 그 나라는 위대한 재림 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밀러와 그의 동역자들의 저서는 널리 먼 지방에까지 전해졌다. 세계 어느 곳이나 선교사들이 나간 곳에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박하였다는 기쁜 소식이 전하여졌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다는 영원한 복음의 기별은 멀리 그리고 광범위하게 전파되었다.
1844년 봄에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을 것이라고 알려 주는 듯한 예언들은 사람들의 마음에 깊은 인상을 주었다. 많은 사람이 그 예언 기간에 대한 논증이 정확함을 확신하고 그들의 교만한 의견을 버리고 기꺼이 그 진리를 받아들였다. 어떤 목사들은 봉급도 교회도 다 버리고 예수님의 재림을 전파하는 일에 연합하였다. 그러나 성직자들 중에서 기별을 받아들인 사람은 비교적 소수였으므로 기별을 전하는 일은 주로 평신도들에게 맡겨졌다. 농부들은 농장을, 직공은 도구들을, 상인은 상품을, 전문직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직무를 버리고 이 일에 가담하였다. 그들은 사람들을 회개시켜 구원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환란과 궁핍과 고난을 참았다. 무수히 많은 사람이 재림의 진리를 받아들였다.
단순한 성경 말씀이 확신을 줌
전도자들은 침례 요한처럼 나무뿌리에 도끼를 놓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호소하였다. 그들의 감동적인 권면은 일반 강단에서 전해지는 평화와 안전을 보증하는 설교와는 현저한 대조를 이루었다. 단순하고 직접적인 성경 말씀의 증언이 성령의 능력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새겨졌고 도저히 저항할 수 없는 확신을 주었다. 많은 사람이 회개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을 찾았다. 그들은 오랫동안 세상에 두었던 애정을 하늘로 향하게 하였다. 성령께서 그들에게 임하셨으며, 그들은 부드럽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다는 기별을 전하는 일에 동참하였다.
죄인들은 울면서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을 것인가?”라고 질문하였다. 부정직한 삶을 살아온 사람들은 자기들이 입힌 손해를 보상하고자 하였다. 그리스도 안에서 화평을 발견한 사람들은 그 축복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 주고자 하였다. 부모의 마음이 자녀에게로, 자녀의 마음은 부모에게로 향했다. 자존심과 분리의 장벽은 사라졌다. 진심으로 죄를 고백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탄원하는 사람들이 도처에 있었다. 많은 사람이 자기들의 죄가 용서받았다는 확증을 얻기 위해 또한 그들의 친척과 이웃을 회개시키고자 밤을 새워 기도로 씨름하였다.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각 계층의 사람들은 재림에 대한 교리를 듣고자 갈망하였다. 성령께서 진리에 능력을 주셨다. 집회에서 거룩한 천사들의 임재를 느낄 수 있었으며, 신자들이 날마다 증가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속히 재림하실 것에 대한 증거가 반복하여 설명될 때 군중은 숨소리를 죽이고 그 엄숙한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하늘과 땅이 가까워진 것처럼 느껴졌다. 사람들은 찬송하면서 집으로 돌아갔고 그 기쁜 소리는 조용한 밤공기를 타고 퍼져 나갔다. 집회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그 감명 깊은 광경을 영원히 잊을 수 없었다.
반대를 당한 기별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분명한 날짜가 선포되자 강단에서 설교하는 목사들로부터 하나님을 대적하는 가장 무례한 죄인들에 이르기까지 각 계층의 많은 사람의 큰 반대가 나타났다. 그들은 재림의 교리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재림의 시기를 정하는 일을 반대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모든 것을 보시는 하나님의 눈은 그들의 마음을 다 아셨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공의로 세상을 심판하기 위하여 다시 오신다는 사실을 듣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들은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의 심판을 통과할 수 없을 것을 알았고 이로 인해 주님 만나길 두려워한 것이었다. 그리스도의 초림 때의 유대인들처럼 그들은 예수님을 환영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들은 성경에 기록된 명백한 증언들을 듣지 않았을 뿐 아니라 주님을 고대하는 사람들을 멸시하였다. 그리스도와 거룩한 천사들 앞에서 사탄과 그의 사자들은 기뻐 날뛰면서 그리스도의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 너무 적기 때문에 그분의 오심을 원하지 않는다고 조롱하였다.
“그날과 그때를 알지 못하느니라”라는 말씀은 재림 신앙을 거절하는 자들이 가장 자주 제시하는 논증이었다. 그 성경절은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 24:36)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이 성경절을 분명하게 해석하는 사람들은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이었고 그것을 그릇되게 사용하는 사람들은 재림 신자들을 반대하는 자들임이 분명히 나타났다.
구주께서 하신 한 가지 말씀이 다른 말씀을 폐할 수 없다. 비록 그분께서 오시는 날과 시간을 알 수 없을지라도 우리는 그때가 가까움을 알려 주는 징조는 깨달을 수 있다. 재림의 가까움을 알길 거절하거나 소홀히 하게 되면 홍수가 다가오는 것에 무관심했던 노아 시대의 사람들처럼 그 일은 우리에게 치명적인 사건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계 3:3)라고 말씀하신다.
바울은 구주의 경고에 유의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날이 도둑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살전 5:4~5)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진리를 부인할 구실만을 찾고자 하는 자들은 이 말씀에 그들의 귀를 막았다. 그리고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른다는 말은 조롱하는 자들과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공언하는 사람들에 의해 계속해서 반향되었다. 사람들이 각성하여 구원의 길을 찾기 시작하자 종교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곡해함으로 사람들을 진리로부터 차단시켰다.
대개 교회 안에 있는 겸손하고 헌신적인 사람들이 먼저 기별을 받았다. 성경을 스스로 연구한 사람들은 예언에 대한 일반적인 견해가 성경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성직자들의 영향을 받지 않고 성경을 스스로 연구한 자들은 재림의 교리가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 위에 세워진 교리임을 알게 되었다.
재림 기별을 받아들인 많은 사람이 남편, 아내, 부모 혹은 자녀들에게 오해를 받았으며, 그들은 재림 신도들이 가르치는 “이단설”에 귀를 기울이는 것조차 죄가 된다고 주장하였다. 천사들은 재림 기별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성실하게 지키라는 명령을 받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또 다른 빛이 나와서 그들을 비출 것이기 때문이었다.
기별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구주의 재림을 간절하게 기다렸다. 그들이 예수님을 만날 것으로 기대했던 그 시간이 다가왔다. 그들은 매우 엄숙하게 그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일을 경험했던 사람들은 당시의 그 귀중한 기다림의 시간을 도무지 잊어버릴 수 없었다. 그날을 몇 주일 앞두고 그들은 대부분 세속적인 사업을 그만두었다. 진실한 신자들은 마치 임종을 앞둔 사람처럼 그들의 마음을 주의 깊이 살폈다. “승천복”을 만들지는 않았지만(부록 참조) 그들은 구주를 영접할 준비가 되었다는 내적 증거의 필요를 느꼈다. 그들은 심령의 순결을 나타내는 흰옷 곧 그리스도의 속죄하시는 피로 죄에서 깨끗하게 된 품성을 가져야 할 필요를 느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이 지금도 그때와 같이 스스로를 살피고 열렬하고 확고한 신앙을 가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시험하고자 계획하셨다. 하나님의 손이 예언의 기간을 계산하는 일에 생긴 착오를 덮어 주셨다. 기대했던 시간(그리스도께서 1844년 봄에 오실 것이라고 기대했던 시간)은 지나갔고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임하시지 않았다. 진실한 신앙과 사랑으로 구주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쓰디쓴 실망을 당하였다. 하나님은 재림을 기다린다고 공언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시험하셨다. 그들 중 많은 사람이 공포심으로 재림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후에 자신들이 그리스도의 재림을 결코 믿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히려 이들이 앞장서서 참신자들의 슬픔을 조롱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과 하늘의 모든 천사가 낙담 중에 있는 신실한 자들을 사랑과 동정심을 가지고 주목하였다. 만일 눈에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가리고 있는 휘장을 걷어 버릴 수 있었다면 이 충성된 신자들은 천사들이 그들 곁에서 사탄의 공격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하고 있는 광경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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