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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편 섭리 기반 확대와 연두표어
1960년 4월 11일(음 3.16) 참부모님 성혼식은 새로운 섭리역사가 출발하는 기점이다. 이날로부터 제1차 7년노정이 시작되었고 대외 기반 확대를 위한 다양한 활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그리고 전국에 교회가 세워지고 식구가 늘어나면서 지방조직도 강화되었다. 매년 동․하계 계몽전도 활동이 펼쳐졌고, 대학원리운동과 초교파,승공운동 등을 통해 종교계와 대사회 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참부모님께서는 계몽운동을 시작하면서 갈 길을 몰라 허덕이는 한민족 앞에 생명의 철장을 가지고 나가 외치라고 식구들을 독려하셨다. 식구들의 피눈물 나는 노력으로 국민들이 통일교회를 새롭게 인식하게 되고 협회가 정부에 등록되면서 안정적 활동기반이 마련되었다. 1963년 협회가 창립 10년 만에 사회단체로 정부에 정식 등록된 것은 섭리사적으로 제3 이스라엘로 축복을 받고 유대교 입장을 복귀할 터전을 마련한 것이다. 로마제국과 같은 미국에서의 등록에 이어 한국에서도 등록을 이끌어 내면서 하나님의 섭리가 한 단계 진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참부모님께서는 1957년에 《원리해설》을 출간한 데 이어 1966년 《원리강론》을 발간하셨다. 《원리강론》이 나옴으로써 대사회적인 원리 전파에 더욱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되었고 원리공청회, 원리대강연회, 특별부흥회 등을 통하여 통일원리가 아니면 이 나라와 이 민족의 갈 길이 없음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대학가에서는 전국대학원리연구회 활동을 전개하여 공산주의 사상의 침투를 방어하고 교수와 학생들에게 이 나라와 이 민족을 위해 갈 길을 제시하였다.
참부모님께서는 1960년부터 3차의 7년노정을 설정하시고 내적 외적 기반 확대에 박차를 가하셨다. 특히 제1차 7년노정은 참부모님께서 한국 해방 직후 이루지 못한 개인․가정․종족 복귀를 통해 통일종족을 편성하는 것은 물론 민족복귀를 위한 기반 조성에 주력하신 기간이었다. 참부모님께서는 제1차 7년노정과 제2차 7년노정의 승리 기반 위에 세계무대에 나설 수 있었다고 말씀하셨다. 이 기간에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을 제정․선포하신 후 하나님이 날을 찾아 세우셨다. 또한 매년 연두표어를 발표하시면서 그해의 섭리적 목표를 정하시고 새해를 출발하셨다.
제1장 협회 등록과 내적 기반 확대
1절 협회법인등록과 성전건축
협회 법인 등록
1960년 10월 14일 협회 기구가 처음으로 확정된 이후 교회 발전에 따라 조직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1963년 5월 31일 협회가 창립 10년 만에 정부에 사회단체로 정식 등록되었으며, 10월 4일 유지재단 법인 인가도 획득하였다. 이로써 참부모님께서는 민족복귀를 위해 대내외적으로 더욱 박차를 가하실 수 있게 되었다.
1 1960년까지 우리는 심한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 이후에도 물론 박해를 받았지만 우리는 차츰 성장해 왔습니다. 복귀섭리는 가인과 아벨 사이의 싸움입니다. 우리가 협회를 정부에 등록하려고 했을 때 문교부에서 등록 업무를 취급하였는데, 그때 문교부장관이 우리 신청을 거부했습니다. 일주일 후에 그것이 번복되었습니다. 그 일주일은 70년, 700년 또는 7000년에 해당합니다. 그 당시에 그것이 번복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어떤 종교적인 운동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번복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마침내 1963년 5월 31일 협회가 정부에 정식 등록되었습니다. (052-187, 1971.12.29)
2 통일교회는 제3 이스라엘이라는 축복을 받아 충효의 도를 상속받을 수 있는 유대교의 입장으로 복귀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협회의 정부 등록증이 나온 것입니다. 로마제국과 같은 미국에도 등록이 되었고 유대나라와 같은 한국에도 등록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종교를 중심삼고 세계적인 무대를 닦아 놓았으니 이제는 우리를 누가 추방할 수 없고 죽이려야 죽일 수 없습니다. 유대교는 이스라엘 민족의 사상적인 면을 담당하고 새로운 천지를 향하여 가는 방향을 가르쳐 줘야 할 사명이 있었습니다. 이제 그 방향을 가르쳐 주는 책임을 통일교회가 감당해야 됩니다. (013-051, 1963.10.16)
3 우리 교회가 정부에 등록된 것은 기뻐할 일이었지만 아버님은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또 다른 투쟁이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실 때 함께 기뻐하려고 합니다. 앞으로 4년이 지나면 제1차 7년노정이 마무리되고 아버님의 21년노정도 끝나게 됩니다. 이 민족은 점점 혼란에 빠져 갑니다. 우리는 이때를 대비해야 됩니다. 속죄의 제단은 통일교회밖에 없습니다. 4년이 지난 후에는 이 민족을 대표해 동원되어 세계를 위해 희생봉사해야 됩니다. 그리하여 눈물과 피로써 세계를 복귀해야 됩니다. 한국이 문제가 아닙니다. 세계와 천주를 하나님 앞에 돌려놓기 위해 기도해야 됩니다. (013-084, 1963.10.20)
4 아버님은 남들이 모르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불쌍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1차 7년노정의 3년기간에 다리를 펴고 잠을 자지 못한 것입니다. 남녀노소가 머리를 숙이고 지도해 달라고 하고, 민족과 국가가 따르도록 해야 됩니다. 통일교회가 정부에 등록됨으로써 어느 권세로도 갈 길을 막을 수 없는 입장에 서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시 오시는 주님이 죽지 않도록 하려고 민주주의를 세우셨습니다. 협회가 등록되었다고 해서 안심하지 못합니다. (013-079, 1963.10.19)
5 오늘날 통일교회는 어떤 입장에 처해 있느냐? 어떤 시대적인 과정에 놓여 있느냐? 제1차 7년노정의 3년 기간은 어떤 기간이냐? 예수님은 3년 공생애노정 끝에 십자가를 졌습니다. 그래서 민족을 중심삼고 승리의 발판을 닦는 기간이 무너졌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뜻이 연장되었는데 언제까지나 연장되는 것이 아닙니다. 일제 치하 40년과 3년의 미 군정기간은 원리적으로 이스라엘 민족의 애급고역 430년 기간에 해당합니다. 그러면 3년 중에 첫해는 어떠한 해였느냐? 첫해는 설 자리가 없어서 육계와 영계가 합하여 자리를 마련하는 해였습니다. 통일교회로서는 생사의 결정을 짓는 해였습니다. 아버님이 1960년에 성혼을 함으로써 비로소 개인이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하나의 기점을 세운 것입니다. 그것은 어떠한 기점이냐? 모세가 홍해를 건너기 전의 3일 기간에 세운 것과 같은 기점입니다. 복귀역사의 모든 것이 이 3년 기간에 전부 들어 있습니다. 이 기간을 마침으로써 이루어진 사위기대를 중심삼고 1963년 음력 4월 13일에 협회 등록의 선포식을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012-273, 1963.06.20)
세계본부 부지 매입 및 지방교회 건립
세계선교본부 건립을 위해 1971년 4월 14일 서울 여의도에 부지 1만4천여 평을 매입하였다. 식구들도 한 평씩 산다는 조건으로 정성을 모았다. 참부모님께서는 세계순회를 끝내고 귀국하실 때마다 이곳에 들러 기도하셨다. 그리고 전국 교회 성전 건축을 위해 자금을 지원하셔서 1974년 6월 10일 충남교구 신탄진교회를 시작으로 A타입 성전이 1976년까지 전국에서 188동이 세워졌다.
6 부모님은 지방에 가서 초라한 교회문을 들어설 때에 교회가 이렇게 비참한 것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이 비참한 모습이 현시대에는 비참함으로 흘러갈 것이지만, 역사적인 시대가 오게 되면 이 비참함은 깃발을 드높여 만국 국민 앞에 자랑할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남에게 신세를 지우고 잠자는 사람에게는 평화의 해방이 찾아올 것이고, 승리의 영광의 찬양 소리가 준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통일교회는 점점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어디를 가더라도 부끄러움이 없고, 어떤 사람을 만나더라도 당당합니다. (059-212, 1972.07.16)
7 본부라고 해서 청파동의 본부가 세계본부가 아닙니다. 내가 외국 식구들한테 이 청파동 본부는 이러이러한 역사를 중심삼은 무엇을 지닌 곳이기 때문에 초라하지만 이곳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이곳이 세계본부가 될 수 없습니다. 세계본부라는 것은 제일이라는 의식을 주어야 됩니다. 또 세계본부는 새로운 곳에 만들어야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의도에 땅을 사게 된 것입니다. 세계본부의 땅을 사려면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곳에서 사야 됩니다. 그런 곳에 세계본부를 만들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세계를 위해 세계본부가 있어야 됩니다. (045-185, 1971.06.27)
8 이제는 통일교회도 때가 되었기 때문에 본부를 지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 네 곳의 땅을 설정해 놓았습니다. 사위기대를 복귀할 수 있는 경제적 터전을 세워야 하기 때문에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국가나 세계에 대해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기지를 마련하기 위하여 착수하고 있는 것입니다. (038-123, 1971.01.03)
9 세계본부는 세계를 지도해야 될 전당입니다. 세계본부를 지으려면 2만2천 평은 사야 되는데 지금 사려야 살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1만4천 평 되는 땅이라도 사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땅은 한국 식구들이 사야 됩니다. 부모님은 정성을 다하여 나라를 넘고 넘어서 이런 일을 하고 있는데, 뜻을 안 사람으로서 여기에 가담하지 못하게 된다면 천추만대에 한이 남을 것입니다. (038-124, 1971.01.03)
10 한국을 보게 될 때 이제는 우리가 나서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또 여의도에 세계본부도 좋게 지어야 됩니다. 앞으로 여의도는 서울의 중심가가 될 것입니다. 그것을 보면 하나님이 보호하사 내가 예상한 것이 다 들어맞았습니다. 그리고 세계본부 앞에는 광장이 생깁니다. (045-334, 1971.07.11)
11 앞으로 교회를 전국에 지어야 됩니다. 그러니 땅 준비를 해야 됩니다. 여러분이 협력하고 본부도 협력해서 어떻게든지 교회를 세우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왔습니다. 1975년에 1천명의 국제기동대가 일본에 왔다가 한국에까지 오게 됩니다. 그러면 1천명이 전부 서울에 한꺼번에 머무를 수 없으미 8대 도시를 순방하게 해야 될 것입니다. 그러니 교회를 지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서로 협력하여 하나되어서 교회를 세우지 않으면 그 교회는 오래 못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정성 들이고 피땀을 흘려서 지어야 그 교회를 바라볼적마다 그것을 지을 때 어려웠으면 어려웠을수록 신앙을 유지하는 데 하나의 표상적인 전당이 될 것입니다. (071-158, 1974.04.30)
12 내가 A형 교호 짓기 운동을 하려고 합니다. 그 비용의 절반은 여러분이 마련해야 됩니다. 그 절반을 마련하는 곳부터 지어 줄 것입니다. 재료를 갖다가 조립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어디에 준비되었습니다.’라고 하면 본부에서 그 장소가 적합한가 안 한가를 감정할 것입니다. 건물을 피난처 같은 데에다 지어 놓으면 건물이 죽는 것입니다. 풍치라든가 전후 좌우의 모든 환경이 건물을 지음으로써 맞느냐 안 맞느냐를 감정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감정해서 불합격이 되면 다른 데에다 세워야 합니다. 만약 합력한 터전이 있으면 그다음에는 기초하는 팀이 가는 것입니다. 그 팀이 먼저 가서 기초만 닦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거기에 골조, 골격을 세우면 됩니다. 트럭으로 재료를 실어다가 기둥과 문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렇게 골격을 세워 놓으면, 기와를 얹으면 되는 것입니다. 비가 안 새게 해 놓고, 그다음에는 미장하는 사람이 가서 미장을 하고, 마루를 까는 사람이 마루를 까는 것입니다. 그렇게 분담 책임을 주어서 이동하며 한꺼번에 교회를 짓는 것입니다. (071-165, 1974.04.30)
13 1975년 ‘희망의 날’ 대향연 집회 이후에는 기독교가 우리를 반대할망정 일반 국민은 지지할 수 있는 단계에 들어왔습니다. 핍박받을 때에는 어려웠지만 환영받을 수 있는 때에 들어왔기 때문에 여러분도 고향산천을 찾아가 여러분의 종족을 찾아서 하늘나라의 족보를 꾸미는데 가입시켜야 됩니다. 여러분의 일족을 족보에 편입시키지 않고는 여러분은 선조로부터 참소받을 것이요, 앞으로 후손으로부터 참소받을 것입니다. 부모님이 본부교회를 지을 수 있는 땅을 사 놓고 지방교회를 지어 놓았습니다. 그다음에는 청평에 세계의 젊은 사람들을 교육할 수 있는 수련소와 대학교 부지를 사게 되었습니다. (084-158, 1976.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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