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나라의 평화 지킨 벚나무 - 경향신문 (khan.co.kr)https://m.khan.co.kr/series/articles/ao391
퇴계 이황의 매실나무
이 땅의 봄을 불러온 매화가 막 절정을 넘어섰다. 우리나라 최고의 매화라고 일컬어지는 순천 선암사 선암매를 비롯해 남녘 마을 매화는 이제 서서히 낙화를 채비하는 중이다. 팬데믹 사태로 발길은 붙잡혔지만, 찬란한 봄은 어김없이 우리 곁에 깊숙이 스며들고 있다.
남녘의 매화는 절정을 넘어서고 있지만, 한 주일쯤 뒤 절정을 맞이하는 매화가 있다. 비교적 북쪽에 위치한 나무여서, 남녘에 비해 조금 늦게 피어나는 경북 안동 도산서원의 퇴계매다. 도산매라고 부르기도 하는 매화다. 지금은 지폐 도안이 바뀌었지만, 한때 1000원짜리 지폐에 그려져 있던 퇴계매는 우리 국민이 좋든 싫든 가장 많이 바라보았던 매화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무의식중에 우리 마음 깊이 각인된 나무임에 틀림없다.
퇴계매는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이황에게 각별한 나무였다. 이황은 매화를 유난히 좋아했다. 상처한 뒤 홀로 된 마흔일곱의 이황이 충북 단양군수를 지내는 동안에 겪은 매화 이야기가 있다. 그때 단양 관아에는 미모와 기품을 고루 갖춘 두향(杜香)이라는 젊은 관기가 있었다. 이황의 인품에 감탄한 두향은 사랑의 증표가 될 여러 선물을 이황에게 전했으나, 번번이 거절당했다. 그러자 두향은 이황이 거절하지 못하고 반드시 받아들일 선물을 톺아보고 마침내 기품을 갖춘 매실나무 한 그루를 선물했다. 예상대로 이황은 두향의 매화를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임기를 마치고 다른 지방으로 떠날 때에도 매실나무를 옮겨갔다. 이황은 생의 마지막 시기를 보낸 지금의 도산서원 자리에 두향의 매화를 옮겨 심고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에는 ‘저 나무에 물을 주거라’는 말을 남겼다.
그때 두향이 선물했던 매실나무는 안타깝게도 오래전에 고사했다. 이황의 후학들은 매화를 사랑했던 스승의 뜻을 이어가기 위해 도산서원 안팎 곳곳에 매실나무를 심고 정성껏 키웠다. 지금 도산서원 경내에서 봄의 교향악을 울리는 매화가 그 나무들이다.
배고파 죽은 넋 위로한 이팝나무
이팝나무 꽃이 하르르 피어났다. 하얀 쌀밥을 소복이 담은 ‘고봉밥’을 떠올릴 만한 꽃을 피워서 ‘이팝나무’라는 이름을 가진 우리 토종 나무의 향긋한 꽃이다. 입하 즈음에 피어나 보름 넘게 은은한 향을 피우며 오래 머무르는 꽃이어서 예로부터 선조들이 좋아해 왔다.
이팝나무는 수십 년 전만 해도 중부지방에서는 키우기 어려울 정도로 따뜻한 기후를 좋아한 나무였으나 이제는 서울을 비롯한 중부지방에서도 흔히 심어 키우는 나무가 됐다. 아름다운 꽃에 담긴 기후변화의 신호는 사뭇 이 땅의 참담한 사정을 떠올리게 한다.
크고 건강하게 잘 자란 이팝나무 노거수를 보려면 그래서 남부지방으로 가야 한다. ‘순천 평중리 이팝나무’는 그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나무로 꼽힌다. 높이 18m에 가슴높이 줄기둘레가 5m에 이르며, 나이는 400년을 너끈히 넘는 큰 나무다. 무엇보다 이팝나무를 대표할 만한 전형적인 수형을 갖추었다는 점이 돋보인다.
‘순천 평중리 이팝나무’는 마을 앞 논 가장자리의 둔덕 위에 소박하게 마련한 정자 곁의 정자나무로 농촌의 봄 풍광을 싱그럽게 하는 랜드마크 구실을 한다. 옛 농부들은 이팝나무 꽃이 활짝 피면 풍년이 들고, 반대로 꽃이 부실하면 흉년이 들어 보릿고개를 대비해야 한다고 믿었다. 오랜 경험에 따른 믿음이지만, 과학적 사실과도 어긋나지 않는다. 이팝나무의 꽃이 필 무렵이면 농부들은 모내기를 하게 되는데, 이때 비가 적당히 내려 습도가 유지되고 햇살이 따뜻해야 뿌리를 잘 내릴 수 있다. 곧 이팝나무 꽃이 풍성하게 필 조건과 정확히 닿은 상황이다. 결국 이팝나무 꽃이 잘 피어나면 벼가 튼실하게 자라서 풍성한 알곡을 맺는다는 이야기다.
하릴없이 보릿고개를 맞이해야 했던 시절에는 특히 배곯아 죽은 넋을 위로하기 위해 무덤가에 이팝나무를 심었다. 가정의달 오월이면 어김없이 피어나는 이팝나무 꽃무리 앞에서 지금 우리 가족이 누리는 풍요를 감사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