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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토장정 19 (2011.03.05)
40.0km (379.9km)
(충남 태안군 남면 B지구 방조제 -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 - 서해안 A지구 방조제 - 홍성군 궁리포구 - 남당항 - 보령시 천북 굴구이 마을 - 학성 2리 3거리 - 보령교 (방조제) - 오천항 - 갈매못 순교성지)
이른 아침 서둘러 서울을 벗어나 고속도로 서산 휴게소에서 간단히 아침을 하고 8시에 장정을 시작한다.
당암 포구를 벗어나 바로 B지구 방조제로 올라선다,
방조제 안쪽 부남호 옆으로는 보행자 통로와 자전거 도로가 있는 것 같은데 바닷가 쪽은 갓길로 가는 수밖에는 없다.
이른 토요일이어서 차량의 통행이 잦지는 않아 그래도 걸어 갈만 하다.
조금 가니 바로 서산시 부석면를 알리는 표지판이 보인다. 드디어 길고 길었던 태안이 끝난다.
이제 이 방조제만 넘어가면 태안반도도 안녕이다.
B지구 방조제를 넘으니 창리가 나오고 현대 서산농장의 큰 곡물 저장고가 나온다.
1998년 6월 정주영 회장이 판문점을 지나 북으로 몰고 간 ‘통일소’ 500마리가 이곳에서 키워졌다.
16살에 도망치 듯 고향을 떠난 정회장이 80이 넘어 황금빛 소를 몰고 금우환향하는 모습은 정회장 개인의 성공도 대단했지만
그 보다 통일을 염원하는 우리민족에게 뜨거운 가슴속 눈물을 보내주었다.
황소 한 마리를 몰고 가는 대인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곳에는 고인의 전설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지금 우리가 건널 A지구 방조제이다.
서산 A.B지구 방조제는 82년 5월 착공하여 그해 10월에 1km가 조금 넘는 B지구 방조제는 물막이 공사를 마치고
순조롭게 진행 됐지만 문제는 A지구 방조제였다.
6.4㎞의 방조제 공사에 마지막으로 남았던 270m의 물막이 공사가 문제였다.
자동차만한 바위도 들어가는 순간 쓸려 내려갈 정도로 무서운 속도의 급류가 문제였다.
그때 바로 정회장은 고철로 쓰려고 울산에 정박시켜 놓았던 23만t급 폐유조선을 생각해 냈던 것이다.
물론 지금은 많은 이들이 그것이 설마 정회장의 생각이었을까 많은 부분 폄하하지만 콜럼버스의 달걀같이
그곳에 유조선을 세운 사람은 바로 정회장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그 방법을 정주영공법이라고 한다.
무사히 84년 3월 A지구도 물막이 공사를 완료했고 그 방법으로 현대는 290억 원이라는 큰 돈을 절감할 수 있었고
여의도 면적의 33배에 달하는 4,700만평의 국토를 추가시켰다.
또 지금은 한 해에 약 50,000톤이 넘는 쌀을 생산하고 있다. 한 번 계산을 해보자.
한 사람이 한 끼에 필요한 쌀의 량은 대략 160g 이고 하루에 세 번 꼬박 밥만 먹어도 1년이면 1,095번의 식사를 하며
175kg 정도의 쌀이 필요하다.
그러면 50,000톤은 50,000,000kg이고 그것을 175kg으로 나누면 285,700명 정도이다.
2010년 인구통계에 의하면 아산시가 277,553명인데 아산시를 다 먹여 살리고도 남는다.
한 끼 160g이 성인 기준이고 보면 실제로는 500,000명이 넘는 포항시민 정도는 먹여 살리는 것 같다. 대단한 역사이다.
하지만 우리는 110km의 해안선이 8km로 단축된 것이 더 좋다. 숫자 노름에 빠져 있다 보니 벌써 간월도다.
방조제의 중간에 있는 어리굴젓과 굴밥이 맛있는 섬이다. 아니 지금은 육지이다,
점심시간는 아직 멀었고 비릿한 감칠맛의 어리굴젓과 담백한 굴밥은 입맛만 다시고 A지구 방조제로 넘어간다.
이제 이 방조제만 넘어가면 길고 길었던 태안반도 장정이 끝이 난다.
작년 10월 31일이 10번째 장정에서 삽교천을 출발하여 꼬박 열흘 동안 130km를 걸어왔다.
물론 제대로 바닷길로 왔다면 가름하긴 어려워도 아직 반도 못 왔을 것이다.
걷는다고 많이 보면서 많이 생각하고 가슴속 깊이 느끼며 걷자고 했지만 달리듯 온 길 같아 후회가 남는다.
다시 마음을 고쳐먹고 아다지오로 걸어야지 생각해 보지만 발걸음은 비바체가 된다.
방조제의 중간에는 철새를 볼 수 있는 시설을 만들어 놓았고 안내간판은 잘 보이지는 않지만
정주영 회장의 신화에 대하여 설명을 해 놓은 듯하다.
아마도 이 지점이 유조선공법을 써서 마지막 물막이 공사를 한 곳이 아닐까 생각된다.
마침 3월 21일면 정회장의 10주기라고 한다. 벌써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태안반도 초입 현대제철을 지나면서도 생각했던 것이지만 현대가의 자손들이
정회장의 위대한 발걸음을 잘 따라 걸어 주었으면 하는 기원을 한다. 남 일이 아니다.
바닷가 방파제가 파도에 폭풍에 쓸려 많은 부분 유실된 것을 보며 지금 현대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이 큰 역사도 시간이 흐르고 자연의 힘에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씁쓸해지지만
다시금 힘을 모아 허물어진 제방의 돌을 쌓고 잘 지킨다면 어떤 파도와 폭풍에도 문제없이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정말 남 일이 아니다.
잠시 걸어 드디어 홍성군 서부면 궁리포구에 도착했다. 태안반도는 이제 정말 안녕이다.
조용한 갯가 궁리포구는 낚싯배 몇 척을 가지고 있다.
물이 나간 갯가에 올라와 있는 조그만 배들은 시냇가에 무릎까지 바지를 걷어 올리고 앉아 있는 아이들이다.
궁리포구부터는 바닷가에 자전거도로가 잘 만들어 져있다.
보도블록을 예쁘게 깔고 난간도 예쁘게 만들어 놓았다.
감사님의 고향인 홍성의 미적 감각을 칭찬한다.
물론 아스콘 위에 붉은 페인트를 덕지덕지 발라놓은 것이 이상은 해보이지만 그래도 감사님의 고향인지라 계속 칭찬을 해된다.
천수만의 안쪽을 따라 천천히 남당항으로 향한다.
천수만은 위성지도로 보면 흡사 말머리 모양이다.
방조제로 지금은 호수가 된 부남호와 간월호가 양쪽 귀이고 보령항 쪽이 긴 얼굴의 끝인 입부분이다.
우리는 지금 이마부분을 거쳐 눈이 있는 남당항까지 벌써 와버렸다.
남당항은 제철 새조개로 넘쳐나고 있다.
이 집도 새조개 저 집도 새조개
그 수많은 음식점 중 얼마 전 KBS 인간극장 “미선씨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에 출연했던
그 미선이네로 들어가 예쁜 미선씨를 만났다.
오늘도 마음 좋게 생긴 어머니와 아버지, 남동생까지 온 가족이 식당의 손님들을 맞기위해 분주하다. T
V 덕분인지 손님이 많다.
지난 장정에서 새조개를 맛 본지라 오늘은 알이 막 자라 차오르기 시작한 쭈꾸미 샤브샤브로 식사를 한다.
4월 이면 알이 가득차 낙지보다 맛있는 계절이 되지만
지금도 야들야들한 쭈꾸미를 펄펄 끓고 있는 냄비 안에 억지로 잡아서 집어넣는다.
“미안하다 쭈꾸미” 그래도 맛있는 이 원시적 본능에 충실하며 쏘맥잔으로 건배를 한다.
오늘은 모두 컨디션이 좋은 듯하다. 오전 4시간의 장정으로 벌써 18.5km를 걸었다.
오후에는 회장님이 지원조로 빠지고 나머지 4명이 다시 남당항을 따라 천북쪽으로 나아간다.
남당당을 벗어나 바닷길로 조금 걸으니 홍성방조제가 나온다.
방조제 시작부분의 수룡항을 지나 방조제로 올라서니 천수만이 한 눈에 들어온다.
바로 앞에 섬이 죽도이고 멀리보이는 육지 같은 곳이 안면도다.
방조제 중간에 보령시 천북면 표시판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방조재의 끝은 천북 굴구이 마을이다.
지금 굴이 제일 맛있는 계절이다.
그 굴을 구워서 먹으면 짭조름한 맛과 부드럽고 살짝 질긴 듯한 마지막 식감이 너무도 좋은데
아직은 배도 고프지 않고 갈 길이 많이 남아 포기하고 바닷길을 찾아 들어간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물이 벌써 들어와 바닷길이 막혀 버린 것 같다.
동네 아주머니의 말씀으로는 지금 물이 들어오고 있는 중이니 3시간이나 지나야 길이 나오고 그 길도 위험하다고 하신다.
그래서 멀리 돌아갈까 잠시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한 결과 산길을 선택한다.
굴단지 오른쪽 산으로 오르니 바다가 모두 내려다보이는 펜션이 그럴듯하게 자리 잡고 있다.
펜션을 통과하여 다시 잠깐 바닷길을 걷다가 콘크리트로 포장이 되어 있는 산길로 접어든다.
구불구불 소나무 숲 고갯길을 걷다보니 힘도 들고 땀도 난다. 아마도 이 길은 개인소유의 길인 것 같다.
정비도 잘 되어 있고 나무숲 사이로 아담한 별장인 듯한 집도 보인다.
고개를 돌아 내려오니 사호리 방향의 도로를 만난다. 차
량의 통행도 없는 조용한 도로를 따라 바닷가와는 조금 간격을 두고 내려간다.
초상집 만장 같은 구제역 통제 현수막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고 보니 산 쪽으로 붙어있는 큰 집들이 모두 축사들이다.
전국 축산물의 30%를 생산한다는 홍성이 아직은 큰 피해가 없어서 다행이다.
순간 방역소독차가 지나가며 우리한테도 분무기로 소독약을 뿌려 된다.
학성리로 들어서면서 다시 바닷길과 만난다.
시간은 5시가 넘어가고 거리도 30km가 넘어갔다.
지원을 나온 회장님께서 물 한 병을 건네주시며 오늘 밤은 오천항에서 자기로 하며 오천항 건너편 학성리 바닷가는
지금 물이 들어와 갈 수 없다고 한다. 절망적이다.
길로 돌아가려면 다시 사호리 방향으로 나가 하만리를 거쳐 가야한다고 한다.
오늘 밤에 오천항까지 가지도 못할 거리 이다. 물론 30km를 더 걸었으니 이곳에서 장정을 마쳐도 될 터이지만
오늘은 신기록을 세워 보겠다는 욕심이 총무님과 나한테는 있는 것 같다.
그래 산을 넘어가자.
학성2리 마을 회관을 지나 어르신 한 분을 만나고 혜독길을 따라 산으로 올라가면 예전에 넘어 다니던 산길이 있다고 말씀을 들었다.
시간이 벌써 5시 반이다. 만약 산에서 길도 없는데 해까지 떨어지면 낭패를 보게 된다. 걸음이 빨라진다.
콘크리트 포장길이 끝나니 비포장 길이 나오고 저수지를 하나 지나가니 더 이상 길이 없다.
이제는 부회장님의 수색대 감각을 믿을 수밖에. 그래도 간신히 예전 길을 찾아서 간신히 간신히 넘어 나온다.
산길을 넘다가 발에 물집이 잡힌 듯 발걸음이 이상해 졌다.
산을 내려오니 회장님이 기다리고 계신다.
“오늘 그만 끝내지. 홍성 한우와 가리비가 기다리고 있는데.”
“조금만 더 걷지 저기 건너편이 오천항이냐?” 부회장님과 감사님은 좀 놀란 듯하고 총무님은 결연한 의지를 보인다.
“40km 100리 또 언제 걸어보겠어. 내일 못 걸어도 난 오늘 걸을 거야”
지난주 군에 간 아들 생각에 자기도 고생 좀 해 보겠다는 뜨거운 아빠의 사랑이 느껴진다.
“그래 또 걷는 거야”
보령방조제를 걸을 때는 벌써 자동차들이 라이트를 켜기 시작했고 밤이 오고 있었다.
머리가 멍해진다. 분명 무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재미있다.
40km 100리 장정을 시작하며 꼭 한번 해 봐야지 했던 꿈이었다.
방조제를 건너니 완전 어둠이 우리를 맞이한다.
둑길을 따라 조금 내려가 계단을 오르고 도로를 만나 고개하나를 넘으니 오천항이다.
문제는 아직 100리가 안됐다는 것이다.
이미 마음먹은 작정이고 오천항을 지나 어둡고 어두운 도로를 따라 40km 100리가 되는 갈매못 순교성지 바로 전에서 장정을 마쳤다.
서로 같이한 100리 길을 생각하며 꼭 껴안아 주었다.
오전에 지원을 나섰던 부회장님이 100리 못한 아쉬움에 기분이 좀 안 좋은 표정이다.
민박으로 돌아와 홍성한우와 키조개 패주로 저녁을 하고 쓰러져 잠에 빠져든다.
오늘 본 쓰레기 - 사람이 업드려 있는 줄 알았네 ㅎㅎ
첫댓글 ㅋㅋㅋ...............잼있네........
근디 회계님.........여기가 여기만 태안반도의 끝이라는 글이 세번이나 나오네여............
글구 홍성 한우에 가이바시(관자)였는디요...........
또 글구 학성리에서 을 회원님에게 얻어 먹은 약술이야기는 왜 뺐슈?.........^^
군대에서도 4km이상 걸은적이 없었는데...40km..100리 ..내자신이 대견한 하루..ㅋ
태안반도 끝 어디? ㅎㅎ 패주가 관자 아니여?
참 약술 빼먹었네 ㅎㅎ
패주 = 관자가 맞고여................
가리비 패주가 아닌 키조개 관자라는거줘..........ㅋㅋㅋ
증말 체력적으로 문제가 없는 사람들이여...군대 다시가도 될거 가토
그래서 난 일토장정 참석하기가 겁나...ㅠㅠ
내가 군대생활하면서 걸은 총 행군거리 보다 먼 길을, 하루에 걷는 무식한 양반들....ㅠㅠ
( "군대생활"이란 표현을 쓰면 몇사람 열받을려나??....정정하지!! ..."병역의무 기간"동안으로 )ㅋㅋ
나 병장 달을때 군대간다더니............
나보다 먼제 제대한 넘이 군대를 알어?.............ㅋㅋㅋ
그래도 군대를 알지. 이제는
아들놈 군대갔는데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