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위기 바꾸기 / 변화를 주다
책 읽기, 수필과 시작문, 켈리 그라피와 붓 그림 등 몇 시간을 의자에 앉아서 하면 눈이 침침하고 기분도 얼떨떨해진다. 거실과 각 방을 이리저리 다니기, 목과 팔 돌리기 등 스트레칭한다. 수필계간지 문예지 출품, 미술 대전, 전시회 출품 등 시기가 겹치어 시간 촉박도 있고 갑자기 일이 많아져 바빠졌다. 한자리에 오래 있지 못하는 내 스타일에 온몸이 쑤신다. 그래도 참아 가면서 한다. 20여 일이 훌쩍 지나간다. 반복되는 시간에 이제 짜증이 살살 나고 목소리 톤도 높아지기 시작한다. 여유 있게 준비해 두지 못한 내 잘못. 지금은 분위기 변화가 필요하다. 잠시 이 작업에서 손을 놓는다.
비내골 텃밭. 관리도 잘 안 하는 밭이다. 무 배추 일구기만 시기 맞추어서 하고 있다. 처서 지났으니 잡초 목 정리로 눈길을 돌린다. 맨 위 다랭이 밭이 많이 우거져 있다. 뽑고 배고 맘도 거르고 보니 숨어 있던 생체들 모습이 드러난다. 하루 만에 후딱 다하는 것이 아니고 올 때마다 한가득 땀날 때까지만 한다. 그리하다 보면 한두 시간이 잠시 지나간다. 시간 구애는 없으니. 내 체력만 따지면 되는 일이다.
천연초. 국산 선인장이라고도 한다. 생의 연명이 질김은 알지만 정말 좋다. 봄 여름 잡초에 덥혀서도 살아 있다. 햇볕 없이도. 다 사그라진 줄 알았다. 처음 파종할 때는 귀족처럼 대접받았다. 어느 날부터 괄호 밖으로 밀려난 약초다. 잔가시가 너무 성가시다. 그래도 한동안 잘 자라면서 군무를 이루어 노란 꽃 빨간 열매 잘 보여 주곤 했었다. 한 번씩 백숙용 약제로 활용도 했다. 지금 보니 상흔이 말이 아니다. 십년지기 원뿌리는 다 녹아서 남은 넓적 잎에서 새로 뿌리와 촉을 올리고 있다. 모두 거두어서 따로 모아 둔다. 후사 일은 다음이고.
모과나무 세 그루는 봄에 심었다. 잘 자라고 있다. 고욤나무 지난겨울 초에 심었다. 감나무 접용으로. 이들도 잡초에 특히 환상 덩굴에 덥혔다. 이제 햇빛을 본다. 침범자는 더 없으니 안심이다. 모과는 2년 차 아니 생후로는 삼 년 차다. 내년에는 꽃피울 수 있을까? 내가 닮았다고 한 못난이 과실 모 주로 향기를 줄 활력의 나무이다. 고욤은 대붕 감 접목을 하여야 하는데 내년 2월경에 친구에게 부탁을 좀 해야겠다.
밭떼기는 여름 지나 가을 시기라 잡초 목으로 숲처럼 되어 있다. 자생력 믿고 내버려 두었다. 아니 방치였다. 가뭄과 더위에 채소, 과실수는 저 능력자가 되어 다들 수그려져 있다. 상관도 없는 잡초들 때문이다. 이제 속속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기는 자, 지는 자. 관찰용이 아니다. 기분 전환 낫질의 결과다. 평소 관리 해주지 못한 건 여름 날씨 탓. 너무 덥고 햇볕이 화염 총 같았다. 나부터 살고 봐야 했다. 실은 하기 싫어서인데. 가을에 되어서 하니 마음이 좀 찔리기는 하다.
세 가지 맛이 난다고 해서 삼 채 나물 또는 삼미채 고랑이 우슬초 밭이 됐다. 그냥 둔다. 그 사이사이에 난 개망초들 꽃씨 날리기 전에 뽑아주고 무슨 뿔인지 모른 기다랗게 자란 잡초 뭉텅이도 뽑고 강아지풀도 뽑는다. 삼 채 나물은 일부만 살아남아 부추 화 돼 있고 우슬 순만이 수북이 자란다. 두 품종 다 백숙용으로 아주 좋은 약초다. 누가 이기든 지든 아무나 무럭무럭 자라라.
햇볕 받은 파옥초 생기도니 울 마누라 홀랑 잡아간다. 겨우 자란 가지도 똑 타고. 딱 먹기 좋을 만큼 자랐고 먹을 만큼 채취다. 유기농이라면서. 파옥초가 여기 온 지가 벌써 십 년이 훨씬 넘었네. 이 동네에서 첫 입주자인데. 화분 갈이 하듯 한 촉 한 촉 분리 확장되어 지킴이로 있다. 한때 아씨 정구지로 소문도 나고 했다. 최고 효자 품종인데 서운한 대접이었구나. 양지쪽 토양으로 따로 이식하여 특별관리해 주어야겠다. 가지는 나름 햇볕이 든다 해서 터를 잡았었다. 주변 점령자에 치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올 양식 양만큼의 값은 했으니 효자 종으로 인정을 한다.
올 늦봄에 돼지감자와 신선초 잡풀 이기라고 군데군데 뿌리 군으로 이식했다. 제 목을 너무 잘해주고 있다. 오히려 다른 작물에 지장 줄 정도로 잘 자란다. 심지 않은 들깨는 작년에 씨가 떨어져 자발적으로 무성하게 많이도 자랐다. 여기저기 뭐 장소 불문이다. 지금은 정리 대상 중이다. 퇴출 잡초로 분류되어 잘려서 나간다. 세상에! 봄날에는 맛있다, 좋다며 대접받던 귀염둥이였다. 동네 인지분들 맛있다고 야단이 난 놈이다. 세월이 유수라 훼방군 신세로 전락했다. 이게 자연의 이치다.
올봄에 친구 산에 있는 고비와 머위를 구해와 이 다랭이 밭에 이식했다. 자연산이라며 산채 나물로 키우기 위해서다. 물도 주고 잡초도 잡아 주기를 몇 번 해주다 방치했다. 약하지만 고비 살아 있다. 머위는 뿌리 좀 많이 심었는데 몇 포기만 생존이다. 살아 있어 준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이제는 대접받는 양반으로 신분 상승 중. 둘 다 먹거리로는 귀한 작물이다. 잘 사귀어 보자꾸나. 물도 주고 그름도 준다.
자생으로 난 문둥이 풀이라 하는 곰보배추와 두 달 전에 모종 얻어 심은 방풍. 양지의 명당에 자리 잡고 매일 보살핌 받는다. 처음부터 귀족 대접이다. 아직 나물 시식 체험도 못 해본 작물이다. 내년에는 밥상 같이할 것이라 예견해 본다. 문둥이 풀은 밑의 밭으로 이식을 하는 중이다. 산그늘이 늘어나 음지가 되어 가고 있어서다. 또 다른 곳 여기저기에 난 삼 채 나물은 자연 방사 상태. 죽으면 죽고 살면 살고다. 그래도 퇴출하지 않으니 다행인 종자다.
3년 차인 사인 머스킷 포도 한 그루와 일부 돼지감자들이 한 무리로 잘 어울려 있다. 그냥 둔다. 공생의 법칙 학습이다. 밭 가의 매실나무. 칠기에 덥혀 숨 졸려 가지 체 꽁꽁 잡혀있다. 시원하게 구해 준다. 이 칠기는 밭 정리할 때 둑 만들면서 언젠가는 약용용으로 활용하기 위해 몇 뿌리 심었는데 너무 잘 자란다. 캐내지도 못하고 줄기 자르기만 한다. 또 임시 장소에 식수한 저 포도는 적당한 장소를 찾아서 이식해야 하는데 아직 자리도 못 잡고 있다.
은행나무 두 그루. 하나는 잡목 나무 그늘에 가려 있다. 10년 차다. 열 매 구경은 아직도 못했다. 성장도 년 수보다도 못하고. 지형에 맞지 않는지. 하나는 양지 밭둑에 있다. 이도 잘 자라지 못한다. 햇수로 7년 차, 아직 1m도 못 자랐다. 그냥 보고만 있다. 밭 지키는 복순이 부산물도 넣어 주곤 하는데. 지금은 온통 돼지감자순에 가려 있다. 과연 열매 구경할 수는 있을까?
국화. 작년에 화분에서 옮겨 심었다. 잘 자랐다. 한데 진딧물이 점령. 나름 천연 살충약 만들어 살포했는데 아! 불싸! 고사 상태까지. 겨우겨우 목숨 건졌다. 문제는 감식초 양 조절 실패였다. 타 버린 것이다. 주변의 속 새 풀과 쑥 제거해 준다. 3년 차 해당화 꽃 필 때 맛이 반쯤 간 모양새 아직 적응이? 했는데 씨 봉이 발가서리 농도 있게 잘 여물고 있다. 기특하다. 내년에는 이쁜 꽃도 잘 펴주겠지. 바닷가에서 풍류 즐기는 한 량 이인데 밭둑에서 혼자 고독을 즐기는 꽃나무다.
일 해보니 할 일이 참도 많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일이지만. 바쁘면 바쁘고 놀면 노는 곳에서 시간 소일이다. 3일 차. 아직도 이 다랑이 밭 하나를 다 정리하지 못했다. 내일 머리가 아프더라도 일하는 시간은 작품 작업에서 해방이다. 생각지도 않았던 작물들의 역사가 떠오르는 성취감도 만끽한다. 여기 잡초도 시간과 운때가 잘만 맞으면 산 채 나물용이나 약초 거리가 대다수다. 들깨가 제거 대상이 되듯 시운이 맞지 않아 내 매운 손맛을 보게 된 것이다. 이런 일탈이 참 재미있다. 정리되어 가는 밭떼기 모습 보기 좋고 땀 흘려서 홀가분해진 이 기분이 정말 좋다. 작품 작업 성취감을 미리 맛본 것 같다.
22. 09. 29.
경산문학 38집 출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