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올레 8코스를 다시 걷는다.
월평 아왜낭목 쉼터에서 시작해 마을길과 귤밭, 비닐하우스길을 지나다 보니 불쑥 약천사가 나타난다.
제주에서 제일 큰 절집.
우뚝우뚝 서있는 절집들의 위용이 넘쳐난다.
예전에는 아래에서 올라오며 약천사를 바라봤던 것 같은데 길이 조금 바뀌면서 옆쪽에서 느닷없이 약천사를 만나게 된다.
쑥쑥 솟아오른 야자수길을 지나 대포포구에 이르면 바다가 옆으로 따라오며 친구가 되어 준다.
바다 위로 솟아오른 기암괴석 갖가지 모양의 바위들은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대포연대 가는 길까지는 마치 7코스 외돌개 길을 걸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 풍긴다.
잘 다듬어진 산책길, 공원을 관리하는 이의 손길로 이발한 듯 깔끔한 나무들, 가지 사이 사이 드러나는 바다.
참 걷기 좋은 길이다.
중문으로 접어드니 대포 주상절리가 나타난다.
직각의 기둥이 파도에 부딪히며 병풍처럼 펼쳐진다.
입장료를 내며 들어가기 전에는 직접 내려가 발로 디디며 신비한 모양새를 살펴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울타리로 막혀있는 주상절리 옆길을 따라 걷는데 남편이 당황스러워하며 전화를 받는다.
올레 시작점, 폐업을 한 가게 앞에 주차를 해놓았는데 영업을 해야한다며 비켜달란다.
어찌 이럴 수가.
컨벤션 센터까지 내달려 빈택시를 잡아타고 시작점으로 되돌아 간다.
입구에 들어가지 못하게 낡은 줄이 묶여 있어 영락없이 폐업한 가게인 줄 알았다고 했더니
주인아저씨 "아이고 서운하네" 라며 얼굴을 붉힌다.
땀흘리며 즐겁게 걷던 신명이 사그러들어 버렸다.
빗줄기마저 날리며 몸에 나던 열기도 식어간다.
어차피 파르나스호텔에서 예래생태공원까지 도로길로 가야하는 곳은 위험하고 걷기도 힘들어 점프하기로 한 터라 내처 논짓물까지 차로 이동한다.
논짓물 공용주차장에 차를 두고 다시 걷는다.
바당물과 용천수가 만나는 곳. 이곳은 휠체어로 갈 수 있는 구간이기도 하다.
뒤를 돌아보니 지어지다 만 건물들이 잔뜩 들어선 곳이 보인다.
JDC가 휴양형 주거단지를 건설하다 대법원에서 토지수용무효 및 인허가 무효 판결로 공사가 전면 중단되고 마치 유령도시처럼 되어 버린 곳이다.
약 10여년을 회색지대가 되어 흉물로 버티고 있는 모양새에 인상이 찌푸려진다.
제주시에서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니 활력을 찾는 마을이 되길 바래본다.
간간히 내리던 빗줄기도 잦아들고 바다를 바라보며 가는 길이라 걷는 걸음이 수월하다.
어느 만큼 걷다 보면 등대가 보인다.
진황등대.
벤치에 엉덩이를 걸치고 따뜻한 물과 간식으로 잠시 쉼을 갖는다.
계단을 내려서면 마리나 계류장이 보이고 바닷길을 걷노라면 금세 산방산을 등지고 있는 대평포구가 보이기 시작한다.
아름다운 풍경에 취해 사진도 찍고 콧노래도 부르며 걷다 보니 너무 빨리 도착했다.
논짓물에서 대평포구까지 3.6km밖에 되지 않는다.
어이쿠, 점프를 너무 높게 길게 해버렸다.
한참을 더 걸을 수 있는데...
베릿네 오름을 오르지 못한 건 너무 아쉽다.
화가 뽀글뽀글 인다.
약 10여킬로, 2만보를 채 채우지 못한 딱 절반의 완성.
주차는 눈 크게 뜨고 제대로 된 자리를 찾아 해야하는 거였다.
어영구영 지나가 버린 점심 해결을 위해 나폴리 피자로 들어 선다.
피제리아에서 상호명이 바뀌었다.
화덕에 직접 구어주는 곳.
기분이 그래선지 예전보다 맛이 덜하다.
그래도 풍경은 기가 막힌 곳이니 뭐~
재밌는 에피소드.
탔던 택시를 또 탔다.
기사 아저씨가 아는 체를 하더니 다양한 손님들과 얽힌 웃지 못할 경험담을 얘기해 준다.
참 별난 사람들 많다.
어쨌거나 수월하게 끝나버린 8코스 올레길.
오랜만에 걸으니 쉬엄쉬엄 걸으라는 거였나 보다.
첫댓글 새해 첫 나들이 하러 제주 가셨군요.
동대문역사공원역 8번출구 인근에 중앙아시아길이 있고 이곳에 우즈베키스탄 음식점들이 있어요.
서울에 살면서 이런 곳이 있는지 지난 토요일 처음 알았어요.
친구의 안내로 처음으로 갔거든요.
분위기도 맛도 가격도 괜찮은 느낌이었어요.
추천합니다^^
남편께 여자친구 전화가 왔었나 봐요. 여친도 있는 멋진 남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