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爾時에 長者維摩詰이 自念寢疾於牀하니 世尊의 大慈로 寧不垂愍인가하더니 佛知其意하시고 卽告舍利弗하사대 汝行詣維摩詰하여 問疾하라 舍利弗이 白佛言하대 世尊이시여 我不堪任詣彼問疾이니다 所以者何오 憶念하니 我昔에 曾於林中에 宴坐樹下러니 時에 維摩詰이 來爲我言하되 唯舍利弗아 不必是坐가 爲宴坐也니라 夫宴坐者는 不於三界에 現身意가 是爲宴坐며 不起滅定하고 而現諸威儀가 是爲宴坐며 不捨道法하고 而現凡夫事가 是爲宴坐며 心不住內하고 亦不在外가 是爲宴坐며 於諸見에도 不動하고 而修行三十七道品이 是爲宴坐며 不斷煩惱하고 而入涅槃이 是爲宴坐니 若能如是坐者라사 佛所印可니라 世尊이시여 時我聞是語하고 黙然而止하여 不能加報니다 故我不任詣彼問疾호이다
佛告大目健連하사대 汝行詣維摩詰問疾하라 目連이 白佛言하되 世尊이시여 我不堪任詣彼問疾이니다 所以者何오 憶念하니 我昔에 入毘耶離大城하여 於里巷中에 爲諸居士說法이러니 時에 維摩詰이 來謂我言하되 唯大目連이여 爲白衣居士說法인댄 不當如仁者所說이니라 夫說法者는 當如法說이니 法無衆生이라 離衆生垢故며 法無有我라 離我垢故며 法無壽命이라 離生死故며 法無有人이라 前後除斷故며 法常寂然이라 滅諸相故며 法離於相이라 無所緣故며 法無名字라 言語斷故며 法無有說이라 離覺觀故며 法無形相이라 如虛空故며 法無戱論이라 畢竟空故며 法無我所라 離我所故며 法無分別이라 離諸識故며 法無有比라 無相待故며 法不屬因이라 不在緣故며 法同法性이라 入諸法故며 法隨於如라 無所隨故며 法住實際라 諸邊不動故며 法無動搖라 不依六塵故며 法無去來라 常不住故며 法順空隨無相하고 應無作하며 法離好醜하고 法無增損하며 法無生滅하고 法無所歸하며 法過眼, 耳, 鼻, 舌, 身, 心하고 法無高下하여 法은 常住不動하고 法離一切觀行이니 唯大目連이여 法相如是어늘 豈可說乎아 夫說法者는 無說無示하고 其聽法者는 無聞無得이니 譬如幻士가 爲幻人說法이라 當建是意하여 而爲說法이라야 當了衆生의 根有利鈍하며 善於知見에 無所罣碍하며 以大悲心으로 讚於大乘하고 念報佛恩하여 不斷三寶然後說法이라하니 維摩詰이 說是法時에 八百居士가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라 我無此辯일세 是故로 不任詣彼問疾이니다
佛告大迦葉하시되 汝行詣維摩詰問疾하라 迦葉이 白佛言하되 世尊이시여 我不堪任詣彼問疾이니다 所以者何오 憶念하니 我昔에 於貧里而行乞이러니 時에 維摩詰이 來謂我言하되 唯大迦葉이여 有慈悲心하되 而不能普하여 捨豪富하고 從貧乞가 迦葉이여 住平等法하여 應次行乞食이며 爲不食故로 應行乞食이며 爲壞和合相故로 應取搏食이며 爲不受故로 應受彼食이며 以空聚想으로 入於聚落하며 所見色은 與盲等하고 所聞聲은 與響等하며 所齅香은 與風等하고 所食味는 不分別하며 受諸觸하되 如智證하고 知諸法을 如幻相하여 無自性하고 無他性이니 本自不然하고 今則無滅이니다 迦葉이여 若能不捨八邪하고 入八解脫하며 以邪相으로 入正法하며 以一食으로 施一切하며 供養諸佛과 及衆賢聖然後에 可食이니 如是食者는 非有煩惱며 非離煩惱며 非入定意며 非起定意며 非住世間이며 非住涅槃이라 其有施者는 無大福, 無小福하며 不爲益하고 不爲損이니 是爲正入佛道요 不依聲聞이니다 迦葉이여 若如是食이라도 不爲空食人之施也니라 時我世尊이시여 聞說是語하고 得未曾有하여 卽於一切菩薩에 深起敬心하고 復作是念하되 斯有家名의 辯才智慧가 乃能如是어니 其誰不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리요 我從是來로 不復勸人以聲聞辟支佛行하나이다 是故로 不任詣彼問疾이니다
佛告須菩提하시다 汝行詣維摩詰問疾하라 須菩提白佛言하시다 世尊하 我不堪任詣彼問疾하나이다 所以者何오 憶念하니 我昔에 入其舍하여 從乞食이러니 時에 維摩詰이 取我鉢하여 盛滿飯하고 謂我言하되 唯須菩提여 若能於食에 等者는 諸法에도 亦等하고 諸法에 等者는 於食에 亦等하나니 如是行乞이라야 乃可取食이니다 若須菩提여 不斷淫, 怒, 痴하고 亦不與俱하며 不壞於身하고 而隨一相하며 不滅痴愛하고 起於明脫하며 以五逆相으로 而得解脫하며 亦不解不縛하며 不見四諦나 非不見諦며 非得果나 非不得果며 非凡夫나 非離凡夫이며 非聖人이나 非不聖人이며 雖成就一切法이나 而離諸法相이라사 乃可取食이니 若須菩提여 不見佛하고 不聞法하며 彼外道六師인 富蘭那迦葉과 末伽梨拘賖梨子와 刪闍耶毘羅胝子와 阿耆多翅舍欽婆羅와 迦羅鳩"364;迦旃延과 尼犍陀若提子等이 是汝之師어든 因其出家하여 彼師所墮에 汝亦隨墮라사 乃可取食이니다 若須菩提여 入諸邪見하여 不到彼岸하며 住於八難하되 不得無難하며 同於煩惱하여 離淸淨法하며 汝得無諍三昧어든 一切衆生도 亦得是定하며 其施汝者는 不名福田이요 供養汝者는 墮三惡道하고 爲與衆魔로 共一手하여 作諸勞侶하며 汝與衆魔와 及諸塵勞로 等無有異하며 於一切衆生에 而有怨心하며 謗諸佛하고 毁於法하며 不入衆數하여 終不得滅度니 汝若如是라사 乃可取食이니라 時我世尊하 聞此茫然하여 不識是何言이며 不知以何答하여 便置鉢하고 欲出其舍러니 維摩詰이 言하사대 唯須菩提여 取鉢勿懼하라 於意云何오 如來所作化人이 若以是事詰에 寧有懼不아한대 我言不也니다하니 維摩詰이 言하사대 一切諸法이 如幻化相하니 汝今에 不應有所懼也니라 所以者何오 一切言說이 不離是相하며 至於智者하여는 不着文字故로 無所懼하나니 何以故오 文字性離하여 無有文字가 是則解脫이요 解脫相者는 卽諸法也라하니다 維摩詰이 說是法時에 二百天子가 得法眼淨일세 我故不任詣彼問疾이니다
佛告富樓那彌多羅尼子하사대 汝行詣維摩詰問疾하라 富樓那가 白佛言하대 世尊이시여 我不堪任詣彼問疾하나이다 所以者何오 憶念하니 我昔에 於大林中에 在一樹下하여 爲諸新學比丘說法이러니 時에 維摩詰이 來謂我言하되 唯富樓那여 先當入定하여 觀此人心然後에 說法이니 無以穢食으로 置於寶器어다 當知是比丘心之所念이니 無以琉璃로 同於水精이어다 汝不能知衆生根源인댄 無得發起以小乘法이니 彼自無瘡하니 勿傷之也어다 欲行大道인댄 莫示小徑이니 無以大海로 內於牛跡하며 無以日光으로 等彼螢火어다 富樓那여 此比丘는 久發大乘心이나 中忘此意어늘 如何以小乘法으로 而敎導之리오 我觀小乘하니 智慧微賤이 猶如盲人하여 不能分別一切衆生의 根之利鈍이라하고 時에 維摩詰이 卽入三昧하여 令此比丘로 自識宿命케하니 曾於五百佛所에 植衆德本하여 廻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라 卽時豁然하여 還得本心하고 於是에 諸比丘가 稽首禮維摩詰足커늘 時에 維摩詰이 因爲說法하여 令阿耨多羅三藐三菩提에 不復退轉케하니 我念聲聞은 不觀人根하며 不應說法일세 是故로 不任詣彼問疾이니다
佛告摩訶迦旃延하사대 汝行詣維摩詰問疾하라 迦旃延이 白佛言하대 世尊이시여 我不堪任詣彼問疾하나이다 所以者何오 憶念하니 昔者에 佛爲諸比丘하여 略說法要시어늘 我卽於後에 敷演其義하되 謂無常義며 苦義며 空義며 無我義며 寂滅義라하니 時에 維摩詰이 來謂我言하되 唯迦旃延이여 無以生滅心行으로 說實相法이어다 迦旃延이여 諸法이 畢竟에 不生不滅이 是無常義오 五受陰이 洞達하여 空無所起가 是苦義오 諸法이 究竟無所有가 是空義오 於我無我에 而不二가 是無我義오 法本不然거늘 今則無滅이 是寂滅義라한대 說是法時에 彼諸比丘가 心得解脫일세 故我不任詣彼問疾이니다
佛告阿那律하사대 汝行詣維摩詰問疾하라 阿那律이 白佛言하대 世尊이시여 我不堪任詣彼問疾이니다 所以者何오 憶念하니 我昔에 於一處經行이러니 時有梵王이 名曰 嚴淨이라 與萬梵俱하여 放淨光明하고 來詣我所하여 稽首作禮하고 問我言하되 幾何阿那律의 天眼所見인가한대 我卽答言하되 仁者여 我見此釋迦牟尼佛土三千大千世界를 如觀掌中庵摩勒果라하니 時에 維摩詰이 來謂我言하되 唯阿那律아 天眼所見을 爲作相耶아 無作相耶아 假使作相인댄 則與外道五通으로 等이요 若無作相인댄 卽時無爲라 不應有見이니라 世尊하 我時黙然이러니 彼諸梵이 聞其言하고 得未曾有하여 卽爲作禮하고 而問曰世孰有眞天眼者이니까 維摩詰이 言하되 有佛世尊이 得眞天眼하시니 常在三昧하여 悉見諸佛國土하되 不以二相이니라 於是에 嚴淨梵王과 及其眷屬五百梵天이 皆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하고 禮維摩詰足已에 忽然不現일세 故我不任詣彼問疾이니다
佛告優波離하사대 汝行詣維摩詰問疾하라 優波離가 白佛言하사대 世尊이시여 我不堪任詣彼問疾하나이다 所以者何오 憶念하니 昔者에 有二比丘하여 犯律行하고 以爲恥라하여 不敢問佛하고 來問我言하되 唯優波離여 我等이 犯律하니 誠以爲恥라 不敢問佛하니 願解疑悔하여 得免斯咎케하소서 我卽爲其如法解說이니라 時에 維摩詰이 來謂我言하되 唯優波離여 無重增此二比丘罪하고 當直除滅하여 勿擾其心하라 所以者何오 彼罪性이 不在內하고 不在外하며 不在中間이니 如佛所說하여 心垢故로 衆生이 垢하고 心淨故로 衆生이 淨이어니와 心亦不在內하고 不在外하며 不在中間이니 如其心然하여 罪垢亦然하며 諸法亦然하여 不出於如라 如優波離가 以心相으로 得解脫時에 寧有垢不아 我言不也니다 維摩詰이 言하대 一切衆生의 心相無垢도 亦復如是하나이다 唯優波離여 妄想이 是垢요 無妄想이 是淨이며 顚倒是垢요 離顚倒가 是淨이며 取我是垢요 不取我是淨이니다 優波離여 一切法이 生滅不住함이 如幻如電하며 諸法이 不相待하며 乃至一念이라도 不住하며 諸法이 皆妄見이라 如夢如燄하며 如水中月하며 如鏡中像하여 以妄想生이니 其知此者는 是名奉律이며 其知此者는 是名善解니다 於是에 二比丘言하되 上智哉라 是優波離의 所不能及이로다 持律之上으로 而不能說이로다 我答言하되 自捨如來코는 未有聲聞及菩薩이 能制其樂說之辯이니 其智慧明達이 爲若此也니라 時에 二比丘疑悔卽除하여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하고 作是願言하여 令一切衆生으로 皆得是辯일세 故我不任詣彼問疾이니다
佛告羅睺羅하사대 汝行詣維摩詰問疾하라 羅睺羅가 白佛言하사대 世尊이시여 我不堪任詣彼問疾하나이다 所以者何오 憶念하니 昔時에 毘耶離諸長者子가 來詣我所하여 稽首作禮하고 問我言하대 唯羅睺羅여 汝는 佛之子라 捨轉輪王位하고 出家爲道하니 其出家者는 有何等利닛고 我卽如法하여 爲說出家功德之利러니 時에 維摩詰이 來謂我言하대 唯羅睺羅여 不應說出家功德之利니 所以者何오 無利無功德이 是爲出家니 有爲法者는 可說有利有功德이어니와 夫出家者는 爲無爲法이라 無爲法中에 無利無功德이니라 羅睺羅여 夫出家者는 無彼無此하며 亦無中間이라 離六十二見하고 處於涅槃이니 智者所受요 聖所行處라 降伏衆魔하며 度五道하고 淨五眼하며 得五力하고 立五根하여 不惱於彼하고 離衆雜惡하며 摧諸外道하고 超越假名하며 出淤泥하여 無繫着하며 無我所하고 無所受하며 無擾亂하며 內懷喜하여 護彼意하고 隨禪定하여 離衆過니 若能如是면 是眞出家니라 於是에 維摩詰이 語諸長者子하대 汝等이 於正法中에 宜共出家니 所以者何오 佛世難値니라 諸長者子가 言하되 居士여 我聞佛言하니 父母不聽이면 不得出家니다 維摩詰이 言하사대 然하다 汝等이 便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면 是卽出家며 是卽具足이니라 爾時에 三十二長者子가 皆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일세 故我不任詣彼問疾이니다
佛告阿難하사대 汝行詣維摩詰問疾하라 阿難이 白佛言하사대 世尊이시여 我不堪任詣彼問疾하나이다 所以者何오 憶念하니 昔時에 世尊이 身小有疾하사 當用牛乳일새 我卽持鉢하고 詣大婆羅門家하여 門下立이러니 時에 維摩詰이 來謂我言하되 唯阿難이여 何爲晨朝에 持鉢住此오 我言居士여 世尊이 身小有疾하사 當用牛乳일새 故來至此니다 維摩詰이 言止止어다 阿難이여 莫作是語하소서 如來身者는 金剛之體라 諸惡을 已斷하고 衆善이 普會어늘 當有何疾이며 當有何惱리오 黙往하소서 阿難이여 勿謗如來하며 莫使異人으로 聞此麤言하고 無令大威德諸天과 及他方淨土諸來菩薩로 得聞斯語하라 阿難이여 轉輪聖王이 以少福故로 尙得無病이어든 豈況如來가 無量福會普勝者哉아 行矣어다 阿難이여 勿使我等으로 受斯恥也니라 外道梵志가 若聞此語하면 當作是念하되 何名爲師오 自疾도 不能救어든 而能救諸疾가하리니 仁者여 可密速去하여 勿使人聞이어다 當知하라 阿難이여 諸如來身은 卽是法身이요 非思欲身이니 佛爲世尊하여 過於三界하며 佛身은 無漏라 諸漏已盡이며 佛身은 無爲라 不墮諸數니 如此之身에 當有何疾이리오 時我世尊이시여 實懷慚愧하여 得無近佛而謬聽耶아하더니 卽聞空中聲하니 曰阿難이여 如居士言이나 但爲佛出五濁惡世하여 現行斯法은 度脫衆生이니 行矣어다 阿難이여 取乳勿慚하라하였나이다 世尊이시여 維摩詰의 智慧辯才가 爲若此也일새 是故로 不任詣彼問疾이니다 如是五百大弟子가 各各向佛하여 說其本緣하며 稱述維摩詰所言하고 皆曰不任詣彼問疾이러라
그 때 장자 유마힐은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이렇게 병들어 누워 있는데 자비하신 부처님께서 어찌 나를 불쌍히 여기어 위문하여 주시지 않으시는가.’
그러자 부처님이 그 뜻을 아시고 사리불에게 이르셨다.
“네가 유마힐에게 가서 병을 위문하여라.”
사리불은 부처님께 대답하였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 사람에게 가서 병을 위문할 수 없나이다. 그 까닭은 제가 옛적에 숲속의 큰 나무 아래서 조용히 좌선하노라니 그 때 유마힐이 와서 이렇게 말하였나이다.
‘사리불이여, 반드시 앉아 있는 것만이 좌선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릇 좌선이란 삼계(三界)에 몸과 뜻을 나타내지 않는 것이 좌선이며, 멸진정(滅盡定)에서 일어나지 아니하면서도 온갖 위의를 나타내는 것이 좌선이며, 부처님의 도법을 버리지 않고서 범부의 일을 나타내는 것이 좌선이며, 마음이 안에도 머물지 않고 밖에도 머물지 않는 것이 좌선이며, 외도의 사견에 흔들리지 않으면서 37조도품을 닦는 것이 좌선이며, 번뇌를 끊지 않고서 열반에 들어가는 것이 좌선이니, 이렇게 좌선하는 이라야 부처님께서 인가하실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그 때 이 말을 듣고 대답할 바를 몰라서 잠자코 있었나이다. 그러므로 저는 감히 그에게 가서 병을 위문할 수 없나이다.”
부처님께서 다시 목건련에게 이르셨다.
“네가 유마힐에게 가서 병을 위문하여라.”
목건련은 대답했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 사람에게 가서 병을 위문할 수 없나이다. 그 까닭은 제가 옛적에 바이샬리성에 들어가 어떤 마을에서 거사들을 위하여 법문을 하고 있었는데 그때 유마힐이 와서 이렇게 말하였나이다.
‘대목건련이여, 흰옷 입은 거사들에게 법을 설할 때 당신의 말씀과 같이 해서는 안됩니다. 설법이란 것은 마땅히 법답게 설해야 합니다. 법에는 중생이 없으니 중생이란 때(垢)를 벗어난 때문입니다. 법에는 ‘나’라는 것이 없으니 ‘나’라는 때를 벗어난 때문입니다. 법에는 수명이라는 것이 없으니 생사를 벗어난 때문입니다. 법에는 주체적인 자아란 것이 없으니 과거와 미래가 끊어진 때문입니다. 법은 항상 고요한 것이니 모든 형상을 멸했기 때문이며, 법은 형상을 여읜 것이니 반연할 것이 없는 때문입니다. 법은 이름이 없으니 말로 형용할 수 없기 때문이며, 법에는 말씀이 없으니 생각과 관(觀)을 여의었기 때문입니다.
법은 형상이 없으니 허공 같기 때문이며, 법에는 실없는 말이 없으니 끝까지 공(空)한 때문이며, 법에는 내것이 없으니 내것을 여읜 때문입니다. 법에는 분별이 없으니 모든 식(識)을 초월하였기 때문이며, 견줄 것이 없으니 상대가 없기 때문입니다. 법은 어떤 원인에 속하지 않았으니 인과에 얽매여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법은 법의 체성과 같으니 법의 체성을 증득하였기 때문입이며, 법은 진여에 따르니 견줄 것이 없는 때문이며, 법은 진실한 자리에 머무니 있느니 없느니 하는 한쪽 편에 치우치지 않기 때문이며, 법은 흔들림이 없으니 육진을 의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법에는 과거나 미래가 없으니 항상 어디나 머물지 않기 때문입니다.
법은 공에 따르고 형상 없는데 따르며, 인연따라 지어진 것과 지어지지 않은 것을 순응하며, 법은 좋고 나쁜 것을 여의고, 법은 더하고 덜함도 나고 없어짐도 높고 낮음도 없으며, 법은 항상 머물고 흔들리지 않으며, 법은 온갖 생각하는 경계를 여의었습니다.
대목건련이여, 법의 참 모양이 이러하니 어떻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법을 말하는 이는 말할 것도 없고 보일 것도 없으며 법문을 듣는 이도 들은 것도 얻을 것도 없습니다. 마치 요술하는 사람이 요술로 만든 사람에게 법을 말하는 것 같이 법문을 말해야 합니다. 중생의 근기가 예리하고 우둔한 것을 알아야 하며, 수승한 지견으로 걸릴 것이 없어야 하며, 자비한 마음으로 대승법을 찬탄할 것이며, 부처님의 은혜 갚을 것을 생각하여 삼보를 끊이지 않게 공양한 뒤에야 법문을 설할 수 있습니다.’라고 하였나이다.
유마힐이 이 법문을 말할 적에 그곳에 모인 사람들 중 8백거사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나이다. 저는 이런 변재가 없으니 감히 그에게 가서 병을 위문할 수 없나이다.”
부처님이 마하가섭에게 이르셨다.
“네가 유마힐에게 가서 병을 위문하여라.”
가섭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 사람에게 가서 병을 위문할 수 없나이다. 그 까닭은 제가 옛적에 가난한 촌락에 가서 밥을 비노라니 그 때 유마힐이 와서 말하였나이다.
‘마하가섭이여, 자비심이 있기는 하오마는 넓지 못해서 부잣집은 버리고 가난한 집만 찾아 밥을 비시는 군요.
마하가섭이여, 일체가 모두 평등하다는 마음으로 밥을 비는 것도 차례 차례로 하여야 합니다. 궁극적으로 먹지 않는 열반의 법을 위하여 걸식할 것이며, 인연으로 뭉쳐진 화합상을 파하기 위하여 걸식할 것이며, 음식에 대한 집착을 버리기 위하여 걸식하는 것이며, 나고 죽음을 받지 않기 위하여 걸식해야 합니다.
텅 빈 마을과 같이 생각을 비우고 마을에 들어갈 것이며, 여러 가지 빛깔을 보아도 장님과 같이 하며, 소리를 듣더라도 메아리와 같이 하며, 냄새를 맡을 적엔 바람과 같이 하며, 음식을 먹을 적에 맛을 분별하지 않을 것이며, 몸으로 감촉을 느낄때 무심정(無心定)에 든 것과 같이 하여야 합니다. 모든 현상계가 다 환상(幻)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제 바탕도 없고 남에게서 얻어진 것도 없는 줄을 알아야 합니다. 본래부터 그런 것이 있는 것도 아니기에 지금에 와서 멸하여 없어지는 것도 없으니 말입니다.
가섭이여, 만일 8사(八邪)를 버리지 않고 8해탈에 들어가며, 삿된 모양을 가지고 정법에 들어가며, 한 그릇 밥으로 일체 중생계에 보시하며, 여러 부처님과 여러 성현에게 공양한 뒤에 먹을 것이니, 이렇게 먹는 이는 번뇌가 있는 것도 아니요, 번뇌를 여읜 것도 아니며, 선정에 들어간 것도 아니요, 선정에서 일어난 것도 아니며, 세간에 머문 것도 아니요, 열반에 머문 것도 아닙니다.
그에게 밥을 베푼 이 또한 큰 복도 없고 적은 복도 없으며, 이익이 될 것도 아니고 손해가 될 것도 아니니, 이것이 불도에 들어가는 것이요 성문법에 의지함이 아닌 것입니다.
가섭이여, 이렇게 밥을 먹어야만 남이 베푸는 음식을 공짜로 먹는 것이 아닙니다.’하였나이다.
세존이시여, 제가 그 때 이 말을 듣고 일찌기 없던 일이라 생각하고 모든 대승보살에게 존경하는 마음을 가졌으며, 또 생각하기를 이 분은 속인으로서도 변재와 지혜가 이러하니 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하고, 그 후 부터는 성문법과 연각법을 다른 사람에게 권하지 아니 하였나이다. 그러므로 저는 감히 그에게 가서 병을 위문할 수 없나이다.”
부처님이 수보리에게 이르셨다.
“네가 유마힐에게 가서 병을 위문하여라.”
수보리는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에게 가서 병을 위문할 수 없나이다. 그 까닭은 제가 옛적에 그의 집에 가서 밥을 빌었더니 유마힐이 제 바루를 받아 밥을 가득 담아 가지고 와서 이렇게 말하였나이다.
‘수보리존자여, 만일 먹는 데 평등한 이는 제법에도 평등하고 제법에 평등한 이만이 먹는데 평등합니다. 이와같이 평등한 마음으로 걸식하여야만 이 공양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만일 수보리님이 탐욕과 노여움과 어리석음을 끊지도 않고 또한 그 마음과 함께 하지도 아니하며, 육신의 몸을 그대로 두고 실상의 몸을 따르며, 어리석음과 애착을 없애지 않고 3명과 8해탈을 성취하여야 합니다. 5역상(逆相)으로서 해탈을 얻되 5역죄(五逆罪)에서 해탈하는 것도 아니요 속박을 받는 것도 아니여야 하며, 4성제(四聖諦)를 참다운 이치로 여기는 것도 아니고 여기지 않는 것도 아니어야 하며, 도과(道果)를 얻는 것도 아니요 얻지 못한 것도 아니며, 범부도 아니요 범부의 경지를 여읜 것도 아니며, 성인도 아니요 성인 아닌 것도 아니어서, 온갖 법을 성취하였으나 모든 법을 버릴 수 있어야 이 공양을 받을 수 있습니다.
수보리여, 그대가 부처님을 만나 뵙지 못하고 법을 듣지도 않으며 승가를 섬기지도 않으면서 저 육사외도(六師外道)인 푸라나 카사파, 아지타 케사캄발라, 파쿠다 카챠야나, 막갈리 코살라, 산자야 벨라티풋타, 니칸타 나타풋타 등을 당신의 스승으로 삼아 출가하여 섬기면서 그들이 잘못 떨어지는 곳에 그대도 과감히 떨어질 수 있어야만 그대는 이 공양을 받을 수 있습니다.
수보리여, 그대가 삿된 소견에 들어가서 열반의 저쪽 언덕에 건너가지 않아야 하며, 8난(八難)중에 머물러서 어려움을 겪어야 하며, 번뇌와 함께하여 청정한 법을 등져야 합니다. 그대가 무쟁삼매를 얻으면 모든 중생도 그 삼매를 얻을 것이며, 그대에게 보시한 이를 복전(福田)이라 하지 않고 그대에게 보시한 이가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진다면, 모든 마군과 손을 잡는다면, 번뇌를 반려로 삼고 모든 중생을 원수로 생각한다면, 부처님을 비방하고 법을 비난하고 승가에 의존하지 않는다면, 그리하여 마침내 구극의 열반에 들지 않는다면, 그대는 이 공양을 받을 수 있습니다.’하였나이다.
세존이시여, 제가 그 때 이 말을 듣고 정신이 아득하여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알지도 못하고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를 몰라서 바루를 그냥 두고 그 집에서 나오려 하였더니, 유마힐이 또 이렇게 말하였나이다.
‘수보리존자여, 두려워 하지 말고 바루를 받으시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만일 그대에게 이런 말을 한 사람이 여래가 신통력으로 만든 사람이었다면 그대는 두려워 하겠습니까?’ 하기에 제가 두려워할 것이 없다고 대답하니 유마힐이 말하기를,
‘일체의 모든 모습과 성품이 모두 허깨비와 같은 것이니 그대는 조금도 두려워 할 것이 없습니다. 일체의 언설(言說)도 이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지혜있는 사람은 말과 문자에 집착도 하지 않고 두려움도 품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문자의 본 바탕이 본래 공한 것이니 문자가 없는 것이 곧 해탈이며 해탈의 모양이 곧 모든 법입니다.’
유마힐이 이러한 법문을 말할 적에 2백명의 천자가 지혜의 눈을 얻었사옵니다 그러므로 저는 감히 그에게 가서 병을 위문할 수 없나이다.”
부처님은 또 부루나에게 이르셨다.
“네가 유마힐에게 가서 병을 위문하여라.”
부루나는 부처님께 대답하였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 사람에게 가서 병을 위문할 수 없나이다. 그 까닭은 제가 옛적에 큰 숲속 어떤 나무 아래에서 새로 비구가 된 이들에게 법을 설하는데 유마힐이 와서 저에게 이렇게 말했나이다.
‘부루나 존자여, 설법하려거든 먼저 선정에 들어서 그 사람들의 마음을 관찰한 뒤에 법을 설하십시오. 더러운 음식을 보배 그릇에 담지 마시요. 마땅히 이 비구들이 생각하는 바를 알아야 할 것이니 유리를 수정과 같다고 하여서는 아니됩니다. 그대는 중생의 근본도 알지 못하면서 소승법으로서 인도해서는 안됩니다. 본래 부스럼이 없는 이에게 상처를 내지 마시오. 큰길로 가려는 이에게 샛길을 가리키지 말며, 바닷물을 소발자국에 넣으려 하지 말며, 햇빛을 반딧불과 같다고 하지 마십시오.
부루나 존자님, 이 비구들은 오래 전에 대승의 마음을 내었다가 중간에 잊어버렸을 뿐인데 어찌하여 소승법으로 지도하려 하십니까. 내가 보니 소승들은 장님과 같아서 그 지혜로는 중생들의 근기가 영리하고 우둔함을 분별하지 못합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유마힐이 삼매에 들어서 그 비구들로 하여금 지나간 세상일을 알게 하였나이다.
그들에게 일찌기 5백 부처님의 처소에서 온갖 공덕의 씨앗을 심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로 회향한 인연을 알게 하자 비구들은 즉시에 본래 마음을 도로 얻고 유마힐의 발에 경례하니, 유마힐이 그들에게 법문을 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다시는 물러나지 않게 하였나이다. 제가 그때서야 먼저 중생의 근기를 관찰하지 못하고서는 법문을 말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저는 감히 그에게 가서 병을 위문할 수 없나이다.”
부처님은 또 마하가전연에게 이르셨다.
“네가 유마힐에게 가서 병을 위문하여라.”
가전연이 부처님께 대답하였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 사람에게 가서 병을 위문할 수 없나이다. 옛적에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법문의 요긴한 뜻을 말씀하신 뒤에 제가 다시 그 뜻을 부연한 적이 있었나이다. ‘이것은 무상(無常)의 뜻이요, 이것은 고(苦)의 뜻이요, 이것은 공의 뜻이요, 이것은 내가 없다는 무아의 뜻이요, 이것은 열반(涅槃)의 뜻이요.’ 하였더니 그 때 유마힐이 와서 저에게 이렇게 말하였나이다.
‘가전연이여, 생멸하고 분별하는 마음으로 실상법(實相法)을 말하지 마시오.
가전연이여, 모든 법이 나는 것도 아니고 멸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 무상(無常)의 뜻입니다. 오온(五蘊)은 궁극적으로 공(空)한 것이기에 결국 불생(不生)을 깨닫게 되니 고(苦)란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고의 뜻입니다. 또한 모든 법이 필경에 불변하는 고정적 실체가 없다는 것이 공의 뜻입니다. 나(我)와 나없음(無我)이 둘이 아니니 이것이 무아(無我)의 뜻입니다. 법이란 본래 그 자체의 고유한 성품도 없고 지금도 멸해 없어질 것이 없다는 것이 적멸(寂滅)의 뜻입니다.’ 라고 하더이다.
이런 법문을 말할 때 저 비구들이 마음에 해탈을 얻었나이다. 그러므로 저는 감히 그에게 가서 병을 위문할 수 없나이다.”
부처님은 또 아나율에게 이르셨다.
“네가 유마힐에게 가서 병을 위문하여라.”
아나율은 부처님께 대답하였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 사람에게 가서 병을 위문할 수 없나이다. 옛적에 제가 어느 곳에서 경행(經行)을 하고 있노라니 엄정(嚴淨)이라는 범천왕이 1만 범천 사람들을 데리고 맑은 광명을 놓으면서 와서 머리숙여 예배하고 저에게 묻기를, ‘아나율이시여, 천안으로 보는 거리는 얼마나 됩니까?’ 하기에, 대답하기를 ‘인자(仁者)여, 나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국토인 3천대천세계를 보는 것이 손바닥 안에 있는 암마라 나무의 열매를 보는 듯 합니다.’ 라고 하였더니 그 때에 유마힐이 저에게 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나율존자여, 천안통으로 보는 것은 보겠다는 생각에서 보는 것입니까, 보겠다는 생각없이 보는 것입니까? 가령 보겠다는 생각이 있어서라면 외도들이 얻은 오신통(五神通)과 같은 것이요, 만일 보겠다는 생각이 없이 보는 것이라면 곧 무위(無爲)의 법이니 본다는 것이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때 아무 말로도 대답하지 못하였으나 범천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일찌기 보지 못한 일이라고 기뻐하면서 유마힐에게 예배하고, ‘이 세상에 누가 참 천안통을 얻었습니까?’ 물었나이다.
유마가 대답하기를 ‘부처님께서는 참 천안통을 얻고 항상 삼매중에 계시면서 여러 부처님 세계 보기를 아무런 분별심 없이 보시며 두 가지 모습으로 보시지 아니합니다.’ 라고 하니, 이 말을 듣고 엄정 범천왕과 그 권속 5백인들이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어 유마힐의 발에 경례하고 홀연히 보이지 아니 하더이다. 그러므로 저는 감히 그에게 가서 병을 위문할 수 없나이다.”
부처님은 다시 우바리에게 이르셨다.
“네가 유마힐에게 가서 병을 위문하여라.”
우바리는 부처님께 대답하였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에게 가서 병을 위문할 수 없나이다. 옛적에 두 비구가 계율을 범하고는 부끄러워서 부처님께는 여쭙지 못하고 저에게 와서 묻기를, ‘우바리시여, 우리가 계율을 범하였는데 부끄러워서 부처님께는 여쭐 수가 없으니 바라건대 우리의 의혹과 뉘우침을 풀어주어 허물을 면하게 하여 주십시오.’하기에 제가 그들을 위하여 법대로 말하여 주었더니 마침 유마힐이 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바리존자여, 이 비구들의 죄를 더 보태지 마시오. 죄책감을 없애주지는 못할망정 그 마음을 어지럽게 하지는 마시오.
죄의 성품은 안에 있는 것도 아니고 밖에 있는 것도 아니며 중간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부처님의 말씀과 같이 마음이 오염되면 중생도 오염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깨끗하면 중생이 깨끗해 집니다. 그런데 마음이란 것은 안에 있는 것도 아니고 밖에 있는 것도 아니며, 중간에 있는 것도 아닌 것처럼 죄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모든 법도 또한 그러하여 진여(眞如)의 바탕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만일, 그대가 이미 마음으로 해탈을 얻었다면 그대에게 번뇌의 때가 있겠습니까?’ 하고 묻기에 제가 번뇌의 때가 없다고 하였더니, 유마힐이 또 이르기를, ‘모든 중생들의 마음도 이와 마찬가지로 본래 청정하여 오염된 적이 없습니다. 우바리시여, 망상이 바로 때이고, 망상 없는 것이 깨끗한 것입니다. 제 정신을 바로 갖지 못한 것이 때이고, 제 정신을 똑바로 차리면 깨끗한 것이며, 나를 집착한 것이 때이고 나에 집착하지 않으면 깨끗한 것입니다. 우바리시여, 모든 법이 났다, 없어졌다 하여 잠시도 머물지 않는 것이 허깨비와 같고 번개와 같습니다. 모든 법이 서로 의지하지 않아서 잠깐동안이라도 머물러 있지 아니하며, 모든 법이 다 허망한 것이어서 마치 꿈속 같고 멀리서 피어나는 아지랑이 같으며 물속에 비치는 달과 같고 거울속에 나타나는 형상과 같습니다. 모든 것은 허망한 생각으로 생기는 것이니 이런 줄을 아는 이는 계율을 잘 지니는 것이며, 바로 아는 것입니다.’ 라고 했나이다.
이에 두 비구가 말하기를, ‘지혜로운이여! 우바리로서는 미칠 수 없는 일이며 계율지니는 이 가운데 으뜸가는 우바리로서도 능히 말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제가 대답하기를, ‘여래를 빼놓고는 어느 성문이나 보살들도 이 변재를 따를 수 없으며 그 지혜의 밝은 것도 그러하다’고 하였나이다.
두 비구가 즉시에 죄의식과 뉘우침이 없어지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고 원을 세워 말하기를, ‘모든 중생이 모두 이러한 변재를 얻어지이다.’ 라고 하였나이다. 그러므로 저는 감히 그에게 가서 병을 위문할 수 없나이다.”
부처님은 또 라후라에게 이르셨다.
“네가 유마힐에게 가서 병을 위문하여라.”
라후라는 부처님께 대답하였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 사람에게 가서 병을 위문할 수 없나이다. 그 까닭은 옛적에 바이샬리성에 있는 여러 장자의 아들들이 저에게 와서 예배하고 말하기를, ‘라후라여, 당신은 부처님의 아들로서 전륜왕의 지위를 버리고 출가하여 도를 닦았습니다. 출가하면 무슨 이익이 있나이까?’ 하기에 제가 법대로 출가의 공덕을 말하였더니 그 때 유마힐이 저에게 이렇게 말하였나이다.
‘라후라여, 출가 공덕의 이익을 그렇게 말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이익된다, 공덕된다 할 것 없는 것이 출가입니다. 이 세상의 법[有爲法]은 이익이 있다, 공덕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세속을 벗어나는 법[無爲法]은 이익이 있다, 공덕이 있다라고 할 수 없습니다. 라후라여, 출가하는 것은 저것도 없고 이것도 없으며 또한 중간도 없으며, 62견(見)을 여의고 열반에 머물러 있으니, 지혜있는 이가 수용하는 길이고 성인의 나갈 곳입니다. 모든 마군을 항복받고 다섯 갈래 중생을 제도하고 다섯가지 눈을 깨끗이 하며, 다섯가지 힘을 얻고 다섯가지 근기를 세우는 것입니다. 다른 이를 괴롭히지 않고 온갖 나쁜 행을 여의었으며, 외도를 굴복시키고 헛된 이름에서 초월하는 것입니다. 진흙창에서 벗어 나와서 온갖 결박됨이 없으며, 내 것이랄 것도 없고 받아들일 것도 없으며, 마음에 시끄러운 것이 없어서 안으로 기쁨을 품으며 남의 뜻을 잘 보호하고, 선정을 따라 모든 허물을 여의는 것이니, 능히 이렇게 하면 이것이 참다운 출가입니다.’
그리고 나서 유마힐이 여러 장자의 아들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들은 정법 가운데 함께 출가할 것이니, 왜냐하면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할 때를 만나기가 어려운 때문이니라.’고 하였나이다.
장자의 아들들이 말하기를, ‘부처님 말씀에 부모가 허락하지 않으면 출가할 수 없다 하지 않았습니까?’
유마힐이 대답하되 ‘그렇다. 하지만 너희들이 만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게 되면 그것이 곧 출가하는 것이며, 그것이 곧 구족계를 받는 것이라.’고 하더이다.
그렇게 말할 적에 장자의 아들 32명이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하였나이다. 그러므로 저는 감히 그에게 가서 병을 위문할 수 없나이다.”
부처님은 다시 아난에게 이르셨다.
“네가 유마힐에게 가서 병을 위문하여라.”
아난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 사람에게 가서 병을 위문할 수 없나이다. 그 까닭은 옛적에 세존께서 가벼운 병환이 나셨을 때 우유를 써야 하겠기에 제가 바루를 들고 큰 바라문의 집에 가서 문앞에 서 있었더니 그 때 유마힐이 와서 ‘아난 존자님, 어찌하여 이른 새벽에 바루를 들고 여기 있습니까?’하였나이다.
저는 세존께서 조금 편찮으셔서 우유를 쓰게 되었으므로 여기 와 있노라고 대답하였더니 유마힐이 또 이렇게 말했나이다.
‘그 무슨 말씀입니까 아난존자여, 그런 말씀 마십시오. 여래의 몸은 금강(金剛)과 같은 몸이라 모든 나쁜 행은 이미 끊어졌고 온갖 선(善)만 모였거늘 무슨 병이 있으며, 무슨 괴로움이 있겠습니까. 잠자코 이곳을 떠나십시오. 아난존자여, 부처님을 비방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이 이 어설픈 말을 듣지 않게 하며 큰 위덕을 지닌 하늘 사람들이나 다른 정토에서 온 보살네로 하여금 이런 말을 듣게 해서는 안됩니다.
아난이여, 전륜성왕은 적은 복력을 가지고도 오히려 병이 없는데 하물며 여래의 한량없는 복력과 많은 공덕으로 어찌 병이 나겠습니까. 어서 가십시오. 아난이여, 우리들로 하여금 이런 수치를 받게 하지 마십시오. 외도와 바라문들이 이 말을 들으면 생각하기를 ‘소위 스승이라고 하면서 제 병도 고치지 못하면서 어떻게 남의 병을 고치리요’ 하리니 가만히 어서 가서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게 하십시오.
또 아난이여, 부처님의 몸은 법의 몸이시고 애정과 탐욕으로 된 몸이 아닙니다. 부처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이여서 3계에서 뛰어 나셨으며, 부처님 몸은 생사에 빠지지 아니 하시므로 모든 번뇌가 이미 다 없어졌습니다. 부처님의 몸은 세간을 뛰어났으므로 나고 죽음에 떨어지지 아니 하시니 이러한 몸으로 무슨 병이 있겠습니까.’하더이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 때 부끄러운 마음이 생겨서 속으로, 부처님을 가까이 모시면서 잘못 듣거나 이해한 일은 없었는가 생각하는데 공중에서 한 소리가 있어 외치기를 ‘아난이여, 거사의 말이 맞으나 오탁악세(五濁惡世)에 나셨으므로 이런 일을 나타내어 중생을 구제하려 하시는 것이니 부그러워 하지 말고 어서 우유를 가지고 돌아가라.’하더이다.
세존이시여, 유마힐의 지혜와 변재가 이와 같으므로 저는 감히 그에게 가서 병을 위문할 수 없나이다.”
이렇게 5백명의 큰 제자들이 제각기 부처님께 지난 일과 유마힐이 하던 말을 부처님께 아뢰고 모두 감히 유마힐에게 가서 병을 위문할 수가 없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