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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6장
제 6 장 집사
(대 지)
一. 구제에 대한 원망(1-2)
二. 사무를 분담함(3-6)
三. 교회가 왕성해짐(7)
四. 스데반의 전도(8-10)
五. 위증으로 핍박함(11-14)
六. 얼굴이 천사와 같음(15)
(본문 강해)
一. 구제에 대한 원망(1-2)
. 6:1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한대
헬라파 유대인 이방에서 출생한 유대인을 말한다. "히브리파 유대인"은 유대 본토에서 출생하여 거주하는 유대인이다.
사도들이 구제한 일에 왜 원망이 들어왔을까?
① 사도들이 구제함에 있어 헬라파 유대인의 과부들을 잘 살피지 못했을지 모른다. 교인들이 수 만 명이나 되는 그때에 구제 대상자의 보고가 잘못되면 구제 받을 만한 사람이 구제에서 빠질 수도 있다.
② 구제를 잘하였다고 해도 자기 욕심에 차지 않은 사람은 원망할 수 있다.
③ 표준과 관점과 목적이 다르면 아무리 잘한 것이라도 원망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예수님께 마리아가 기름 부을 때에 제자들이 원망한 일과 탕자가 돌아왔을 때에 아버지가 한 일에 대해 맏아들이 원망한 일 같은 것이다.
돈이나 물질에는 언제나 마귀가 따라다닌다. 그것은 마치 사람의 그림자와 같이 따라 다닌다. "황금은 흑사심(黃金은 黑士心)"이라는 말이 있다. 물질에는 언제나 마귀가 따라다니면서 사람의 욕심을 이용하여 원망하고 불평하게 만든다. 초대 교회가 부흥하므로 마귀가 들어와 욕심으로 원망하게 한 것이다.
. 6:2 열 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모든 제자 모든 믿는 사람을 말한다. 사도들의 가장 중요한 직책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제쳐놓고 구제하는 일에 시간을 빼앗기는 것은 옳지 않다. 이 일을 바로 하지 못하므로 교회에 시험이 들어온 것이다. 교역자가 말씀 전하는 것과 기도하는데 전무하지 않고 사업이나 다른 일에 시간을 빼앗기면 교회의 신령상 손해가 많고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시지 않으며 환난에 처하게 하신다.
二. 사무를 분담함(3-6)
. 6:3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사도들은 교회에 시험이 들어왔을 때에 즉시로 그것을 깨닫고 바로 세우기로 작정하였다. 그리하여 집사들을 택하고 구제하는 일은 그들에게 맡기며 사도들은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일만 전무하기로 한 것이다. 집사의 자격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하였다. 집사는 성령의 인도를 받는 자라야 한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할 때에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집사는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이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고 바로 순종하려면 지혜가 충만하여야 한다. 교회 일은 인간이 자기 지혜대로 하면 안 된다. 자기 지혜를 버리고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서 하여야 한다(고전2:13, 14, 3:18, 19, 참조). 집사는 자기 사욕과 자기 개인의 유익을 위하여 일하면 안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지혜를 써서 하나님의 뜻대로 일을 해 나가야한다.
칭찬 듣는 사람 모든 사람 앞에 덕을 세워 나가는 사람을 말한다. 구제하는 일은 모든 사람 앞에 덕이 되고 인정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고후8:20에 "이것을 조심함은 우리가 맡은 이 거액의 연보로 인하여 아무도 우리를 훼방하지 못하게 하려함이니"라고 하였다. 교회의 재정을 맡아 처리하는 사람은 교인들의 신임을 받아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에 시험이 들어온다. 교회에서 직분을 세울 때에 주일을 지키지 않고 술을 마시며 담배를 피우는 사람을 집사로 세우면 안 된다. 그러한 교회에서는 목사가 교인들에게 "주일을 지키라", "술과 담배를 금하라"고 하면 "집사들도 범하는데 우리는 왜 못하느냐"고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교인들을 다스릴 수가 없다. 참 교회는 진리를 세워 나가며, 성결을 유지해 나가며, 그리스도의 참된 모습을 세상에 보여 주고, 죄인을 구원하여 거룩하게 해 나가야 한다. 또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세상에 비치어 어두운 세상에 등대의 사명을 다 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 빛을 가리우는 자에게 직분을 주면 안 된다.
. 64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
교역자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일만 전무하여야 한다. 전무란 그 일만 전적으로 하는 것을 말한다. 교역자가 기도를 많이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 앞에 죄요, 교회 앞에도 죄이다.
삼상12:23에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도로 너희를 가르칠 것인즉"이라고 하였다. 기도를 많이 하지 않는 교역자는 하나님 앞에 가서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책망을 면치 못한다. 말씀 전하는 것과 기도하는 것을 전문으로 하려면 교회 일을 복잡하게 하지 말고 사무를 분담시켜야 한다.
. 6:5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한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온 무리가 사도의 말을 기뻐하여 순종하였다. 그 이유는 사도들이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일만하고 구제하는 일은 집사들에게 맡김으로 하나님의 복음 사업이 더 잘되어 나가겠기 때문이었다.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 스데반은 반석과 같은 믿음을 소유하였고 성령의 인도를 전적으로 받는 사람이었다. 그 증거가 다음 장(7장)에 나타났다. 스데반 뿐만 아니라 일곱 집사가 다 성령과 지혜가 있는 사람이었다. 여기 일곱 집사는 안수 집사인데 교인들이 택한 것이다. 이 일곱 집사의 이름이 모두 헬라 이름으로 되어 있으나 모두 헬라파 유대인 중에서 택했다고는 볼 수 없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팔레스타인의 유대인들도 헬라 이름을 가진 자가 많았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그들이 집사를 선택할 때에 너희 중(어느 지파 중에서나) 믿음과 성령이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을 택하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일곱 집사가 다 재정을 처리하여 구제하는 일을 한 것이 아니다. 스데반은 전도하는 일에 열중하였고, 빌립은 사마리아와 가이사랴에까지 가서 전도하였다.
니골라는 안디옥 사람인데 유대교에서 개종한 사람이다. 계시록2:15-16에는 니골라가 이단적인 잘못된 교훈을 했다고 하였다.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아마 같은 사람인 것 같다. 열 두 제자 가운데 가룟 유다와 열 두 지파 가운데 단 지파와(창49:17에 단 지파는 뱀이라고 하였다) 일곱 집사 가운데 니골라가 들어가 있다. 사도나 교역자나 집사 중에도 이러한 사람이 섞여 있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것이다.
. 6:6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사도들은 그 일곱 사람에게 안수하고 집사직을 맡겼다. 안수하여 성직을 맡기는 의식은 구약에서부터 유래한 것이다(민27:18, 신34:9 참조).
三. 교회가 왕성해짐(7)
. 6: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아나니아를 처벌하여 교회를 성결하게 하고 집사를 선택하여 구제하는 일을 맡김으로 사도들에게 원망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하여 교인의 단결과 교회의 거룩한 빛이 나타나고, 사도들은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만 전무하게 되니 하나님의 말씀이 더욱 흥왕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큰 무리가 주께 돌아오고 제사장의 무리도 많이 돌아와 예수를 믿게 되었다. 유대교의 지도자인 제사장의 무리가 많이 돌아온 것은 아주 중대한 사건이었다.
四. 스데반의 전도(8-10)
. 6:8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스데반은 집사가 되기 전에도 믿음과 성령이 충만하였고 집사직을 맡아 봉사하고 충성할 때에 더욱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기사와 표적을 많이 행하게 되었다. 스데반에게서 사도들 못지 않게 큰 역사가 나타났다. 누구나 믿음과 성령으로 죽도록 충성하면 하나님은 직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그에게 큰 권능을 입혀 주시고 그를 통해 당신의 구속사업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다.
. 6:9 리버디노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이라는 각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으로 더불어 변론할쌔
이들은 다 이방에서 예루살렘에 온 유대인들인데 이들이 스데반과 변론하고 그것을 근거로 하여 핍박하였다. 당시 예루살렘에는 이방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이 그 돌아온 지방의 방언을 따라 각각 회당을 짓고, 그 회당에서 기도하고 시편을 노래하며 성경을 읽고 가르쳤다고 한다. 리버디노 라틴어로 자유를 의미하는데 로마로 포로되어 갔던 유대인의 후손들에게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구레네 리비아 북부 해안에 있는 수도이다. 이곳은 구레네 시몬의 고향이기도 하다(눅23:26 참조).
알렉산드리아 애굽 북부에 있는 도시로서 이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의 5분의 2가 유대인이었다고 한다. 길리기아 소아시아 지방인데 에베소가 그 수도였다고 한다. 이상 여러 지방에서 거주하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돌아와 거주하며 회당을 지었다.
. 6:10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저희가 능히 당치 못하여
지혜 인간의 지혜가 아니고 하나님께로부터 온 신령한 지혜이다(고전2:6-7 참조). 신령한 지혜와 성령의 역사로 진리를 말할 때에 세상 지혜와 지식으로는 능히 감당할 수 없다.
五. 위증으로 핍박함(11-14)
. 6:11-14 사람들을 가르쳐 말시키되 이 사람이 모세와 및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게 하고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와서 잡아 가지고 공회에 이르러 거짓 증인들을 세우니 가로되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스려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도다 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거늘
스데반의 말을 감당하지 못한 유대인들은 거짓 증인을 세워 스데반을 죽이려고 하였다. 그들은 사람들을 꾀어서 "스데반이 모세와 및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거짓 증거하게 하였다. 그리고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스데반을 공회로 잡아가게 하였다. 공회 앞에서 거짓 증인들은 이 사람이 율법을 거스려 말하기를 나사렛 예수가 성전을 헐고, 모세가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고 거짓 증거하였다.
그들은 스데반에게 두 가지 죄를 뒤집어 씌워 죽이려고 하였다.
첫째, 나사렛 예수가 이 성전을 헐겠다고 하였다.
둘째, 모세가 전하여 준 율법을 고치겠다고 하였다. 이 말들이 전혀 근거가 없는 말은 아니다. 예수께서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2:19)고 하신 말씀을 악용한 것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은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사흘만에 부활하실 자기 몸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을 헐라고 하였다고 주장하였다. 또 율법을 고치겠다고 하였다는 말도 전혀 근거가 없지는 않다. 예수를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고 하므로 율법을 고치겠다는 말과 비슷하다. 마귀는 어느 정도 근거가 있는 것을 거짓말로 뒤집어 씌워 성도를 정죄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전혀 근거 없는 거짓 증거도 있으나 어느 정도 근거가 있는 것을 뒤집어씌우는 경우가 많이 있다. 스데반은 유대인들의 궤계로 공회에 끌려갔고 그들이 세운 거짓 증인들로 인하여 정죄 당하여 죽게 되었다.
六. 얼굴이 천사와 같음(15)
. 6:15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그들이 스데반을 죽이려고 거짓 증인을 세워 정죄하고 있는데 스데반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과 같았다. 스데반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과 같이 화평하고, 온유하고, 기쁨이 충만하고 거룩한 광채가 있었다. 스데반은 그 때에 신령한 세계에서 살고 있었다. 영적 세계에서 중생한 영혼을 써서 살고 있었다. 영적 세계는 언제나 빛의 세계요, 기쁨의 세계이다. 스데반은 하나님의 세계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는 하나님이 그의 기쁨이요, 하나님이 그의 노래요 피난처가 되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세계는 언제나 화평하고 기쁨이 충만하다. 예수님께서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을 믿고 스데반은 이미 죽음을 초월하여 있었다.
영적 세계는 영원히 죽음이 없는 생명의 세계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거짓 증거하는 것을 다 아신다. 스데반에게는 거짓 증거하는 그 사람들이 도리어 불쌍히 보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스데반은 죽이려하는 그 일에 해를 받지 않았다. 하나님이 공의로 심판하실 것이므로 거짓 증거하는 것을 염려할 것이 없다. 이기선 목사님이 말씀하기를 "스데반이 핍박을 받을 때에 나도 예수님과 같이 되는구나 하고 너무 기뻐서 얼굴이 천사와 같이 되었다"고 하였다. 예수를 위하여 거짓말로 비방을 받고 거짓말로 정죄를 당하고 핍박을 받는 것은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걸어가는 것이요, 그리스도께 참여하는 일이다. 스데반은 부족한 자기가 예수님과 같이 되는 것을 생각할 때에 얼마나 고맙고 감사하였겠는가! 너무 감사하고 기뻐서 그 기쁨이 얼굴에까지 나타나 천사의 얼굴과 같이 되었다. 우리 선생이신 예수님을 이렇게 핍박하였는데 나도 예수님과 같은 대접을 받는구나 하고 너무 기뻐서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