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나무는 으레 로맨티시즘의 상징이다. 4월 평균기온이 13도를 웃돌지를 않나 꽃샘추위라 불리는 것들도 막상 꽃이 피고 나면 자취를 감추는 게 정설이다. 날씨가 좋다 일컬어져도 좋을 빛깔을 한 하늘이 찾아오는 시기와 개화 시기가 맞물려 떨어지는 우연은 그 교차점에서부터 의미를 가진다. 떨어지는 벚꽃잎을 잡으면 사랑이 이뤄진다나 벚나무 아래에 시체가 묻혀있다거나 하는 근거 없는 속설도 전부 그에서 비롯된다. 상징성을 가진 것들이야말로 이름붙이기 가장 좋은 부류라고 불리고는 했다. 생각해 보라! 아무도 겨울의 앙상한 나뭇가지에 매달려 사랑을 논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따지고 보자면 벚꽃은 피상적일 때 가장 아름답다. 벚꽃 명소라 불리는 장소는 이미 인산인해, 사람들로 가득 차 발 디딜 틈도 없는데. 그 틈바구니에서 낭만을 찾아내는 인간이야말로 진정 현시대의 염세주의를 이겨낼 위인이랴. SNS에 올라오는 보정된 영상과 사진을 바라보며 감탄하는 순간이야말로 그 아름다움이 극대화되는 시기 아닌가?
그런 점에서 보자면 벚꽃과 거짓말은 비슷한 특성을 지닌다. 피상적인 것들을 늘어놓는 진열장 같은 모습이 닮았다고 주장하자니 그를 증명할 증거도 없다만 반박할 반증 따위도 없었던 거다.
그래서 그럴지 벚꽃 아래에서 하는 거짓말은 어쩐지 전부 용서받을 것만 같다. 사람들의 머리통에 가려 잘 보이지도 않는 새하얀 꽃들을 예쁘다고 지칭하는 문장도 종일 걸어서 피곤한 다리를 이끌고 재미있었다며 인사 건네는 것도 일종의 거짓말에 가깝지 않은가. 예컨대 지금 좋아한다고 고하는 문장이 그저 꽃가루 알러지일수도 있는 것이고, 달아오른 얼굴은 벚나무 열매에 착색되었을 뿐일 가능성도 언제나 존재하며... ...
그럼에도 그 거짓말에 기꺼이 속아 넘어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1년에 한 번 있어 특별하다는 생일도 생이라는 연장선을 두고 보자면 몇십 번도 넘게 찾아오는 연례행사에 불과할 뿐이면서도 축하인사를 주고받는 이유는? 발렌타인데이니, 화이트데이니 빼빼로데이니 하는 상술에 휘둘리는 이유는 인류가 멍청한 종족이라서는 아니다. 그 상술 또한 인간의 머리에서 나왔으니 같은 인간이 그를 간파하지 못할까.
그러니 우리는 단지 핑계가 필요했을 뿐이다.
달이 떴다고 연락을 준 누군가는 달이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았더라도 네게 연락하고 싶었을 터다. 몸이 날래지 못하니 하늘에서 내리는 꽃잎 하나 붙잡지 못한 우리는 빈손으로 마음을 고해야 했고, 벚나무 아래에 시체가 묻혀있다 한들 사람들은 두개골 꼭대기를 아스팔트로 포장해 잘만 걸어 다닌다. 봄빛 향기에 취한 고백은 암묵적으로 계약서를 작성하는 행위나 다름없다. 사랑한다고 말한다면 나 또한 그렇다고 답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
그러니 벚꽃잎을 잡아채지 못한 빈손으로 뱉은 고백은 거짓.
시체를 밟고 곧게 선 채로 사랑을 읊는다면 이 또한 거짓.
구름 속에 가려진 달은 고개를 드밀 기미도 보이지 않는데 빗방울만 눈앞에 아른거린다. 비는 벚꽃의 낙화를 알리는 신호탄.
벚꽃이 질 시간이 다가온다. 다음으로 늘어놓을 변명도 핑계도 진작에 동나버렸다.
첫댓글 개인의 철학적인 부분이 잘 반영된 글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본인 글만의 개성이 있어요. 다만 단어의 사용이 너무 무겁고, 어려워서 읽기는 조금 어려웠어요. 평론가를 하기에 적합한 글인 것 같습니다.
낭만도 사랑도 사라지고있는 우리사회에 가장필요한 멋진 글귀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