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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렸을 적 , 국민학교에 다녔을 때에는
저학년부터 밤에 방송하는 전설의 고향이라는 드라마를 본 적이 있다.
전설의 고향이 시작되면서 흘러나오는 그 특유의 무섭고도 비장한 음악이 흘러 나오면
그때부터 가슴 졸이면서 드라마를 볼 기대와 공포감이 조금씩 들기도 했는데
한편으로는 드라마가 시작되고 무서운 장면을 참고 보다 보면
어린 눈으로 보는 전설의 고향이 다소 재밌기도 하여서
마지막에 음성으로 흘러 나오는 남자 성우의 목소리가 자상하게도
` 이 이야기는 경상남도 어느 지방에서 아직까지 유래되어 전해져오는 이야기입니다. `
라는 멘트를 마지막으로 들으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드라마 보기를 마치기도 했다.
또한 덕대골의 전설에서는
그 마을에 사는 어느 아낙이
남편의 병을 고치고자 무덤을 직접 찾아가 시신의 다리를 구해와서
푹 고아서 다려주면 남편의 병이 낫는다는 어느 용한 사람의 말을 듣고
한밤 중에 무덤을 찾아가는 그 아낙을 숨 죽여서 조마조마하게 봤던 장면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또 하나의 이야기
바리데기가 있었다.
아직도 기억에 난다.
바리데기 공주가 언니들에게 미움을 받고
궁에서 쫓겨나 온갖 시련을 다 겪고
아버지가 아프다는 말을 듣고서
오직 자신을 버린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서천 서역까지 모진 고초와 위험을 불사하고
깊은 효심 하나 만으로 그 비방을 알게 되어서
약수를 뜨러 강가에 갔는데
어린 눈으로 보기에서 어느 강가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강가의 물이 너무 맑아 보여서 신비로웠던 기억이 있었다.
` 어쩜 저리도 물이 맑을까 ` 하면서 그 장면을 보았던 기억
그리고 자신이 떠온 그 약수를 아버지 입에다 갖다 대자 ,
신기하게도 아버지가 건강을 회복하여서
결국엔 자신을 버린 부모와 형제들을 다 용서하고
이쁜 아기들과 멋진 남편과 함께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얘기를 끝으로
바리데기 이야기는 마치게 되었다.
이렇듯 , 전설의 고향은 사람들로 하여금 단지 자극적인 무서움과 두려움만 조성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잊혀졌던 전설 속으로 들어가게 하는 동시에
그 전설을 통해서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자칫 쉽게 잊고 간과하며 살 수 있는
삶의 교훈과 깊은 깨우침을 동시에 전해 주는 좋은 드라마였던 것 같다.
바리데기 설화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은 생명력이었다.
지옥과도 같은 무수한 난관을 거쳐야지만이
약수를 구할 수 있는 방도를 얻을 수 있는데
바리데기는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그 모든 위험도 마다하지 않고 결국엔 아버지를 구하는 약수를 얻게 된 것이었다.
오늘날 이렇게 헌신하면서까지 상대의 목숨을 구하려는 이가 몇 명이나 있을까
참으로 대단한 설화이자 , 생명수 같은 이야기인 것 같다.
나는 바리데기 이야기를 이렇듯 전설의 고향에서나 보고 책으로는 만나 본 적이 없었는데
2000년도 초에 황석영 소설가가 쓴 바리데기를 책으로 읽고
현대의 바리데기는 이런 모습일 수가 있겠구나 라는 자각이 들기도 했다.
사이코드라마를 공부하면서
바리데기를 또 접할 수 있었는데
생명굿을 창시했던 최헌진 선생님은
선생님이 쓴 책에서도 생명굿을 설명하시다가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바리데기 설화를 언급하시기도 했는데
그 내용이 고개가 끄덕여질만큼 공감이 되는 내용이었다.
최헌진 선생님이 보시기에는
현대의 사이코드라마 디렉터나
생명굿에서 사람들을 인도하는 지기가
마치 바리데기 설화에 나오는 바리데기 아이처럼
약수를 떠서 뭇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는 영험한 역할을 한다고도 보시는 것 같았다.
최헌진 선생님이 쓰신 연이 불타는 계절이라는 희곡집에서는
실제로 바리데기의 이름과 비슷한 ` 버리데기 ` 라는 여성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희곡도 직접 쓰셨다.
그 내용을 읽어보니 시대는 1970년대의 암울한 유신 시절을 배경으로
버리데기가 마치 준엄하고 이름없는 약사보살처럼 시골의 어느 지방을 조용 조용 다니면서
돈도 받지 않고 사람들을 치료해 준다는 이야기였는데
정말 이런 여성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신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도 버림받은 아픔이 있으면서
이런 귀한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다.
여기에 버리데기의 내용을 잠깐 옮겨와 보고자 한다.
` 버리데기 ` 중에서
이장 : (강씨에게 바싹 다가가 앉으며) 그래 , 이번엔 뭐 좀 알아보았는가 ?
강씨 : 예 , 이번엔 확실하게 알아보았느디 , 그래도 그 여자 정체는 많이 헷갈리는 구만요
이장 : 우선 , 남자가 있어 , 없어 ? 그것부터 말해봐
강씨 : 없어요 , 결혼한 적도 , 애기 낳은 적도 없어요
이장 : (고개를 끄덕이며) 음 , 그래 , 확실하제 ?
강씨 : 오히려 그 여자가 남자 같애서 보통 남자들은 그 여자한테는 꿈쩍을 못한다는 구만요
이장 : 부모는 ?
강씨 : 아 , 참 , 없어요. 물어 물어 벌교 고아원까지 안 갔겄소
주민등록증 만든다고 사진 찍은 것 갖고 다니길 잘했지
맞대요
어렸을 때 사진하고 비교해 봤는데 , 어쩌면 그리 비슷한지 , 누군가가 버리고 간 아이였는데
열 다섯까지 키우고 , 그 뒤로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다는 거에요.
그 당시 애들끼리는 버림이 , 버러지 , 버리데기 라고 부르며 놀리곤 했다는데
이장 : 그리고 ?
강씨 : 그리고 스물 네 다섯 살까지는 행적을 아무도 모르더라구요
소문만 무성할 뿐 ......
이장 : 소문 ?
강씨 : 어디 머리 깍고 절에 들어갔다느니 , 산 속 깊은 곳 , 무당이 데려다가 교육을 시켰다느니 ......
아마 , 전라도를 떠나 강원도 라도 멀리 떠나 있었던 건 맞는 것 같은디 ...
아무튼 다시 나타났을 땐 이미 딴 사람이 되어 있었다는 거죠
말이 없어지고 , 그저 아픈 사람 돕기만 하는 ......
이장 : 그게 타고난 재주일까 ? 아니면 어디서 배운 재주일까 ?
강씨 : 글씨 말예요
아픈 사람의 고통이 자기 몸으로 옮겨와서 자기가 대신 아프다는 걸 보면 타고난 것 같기도 허구요
거 , 뭐시냐 , 소문이긴 하지만 이상헌 소릴 낸다든가 ,
고함을 삑삑 지른다던가 ...
아니면 중얼거린다던가 ...... 그런 걸 보면 누구한테 배운 재주 같기도 허구요
이장 : 래도 , 아픈 사람들 잘 고친다고 소문났잖았는가 ?
강씨 : 지역마다 또는 사람마다 소문이 다 달라요.
어디서는 약사여래보살이 왔다고 하고 , 어디서는 신내림 받은 여자라고 허기도 하고 ,
어디서는 아예 돌팔이 , 사기꾼이라고 말하고 ......
이장 : 그건 왜 ?
강씨 : 안 글것서요 ? 마치 시장 바닥 야바위꾼처럼 동에서 번쩍 , 서에서 번쩍
왔는갑다 허면 사라져 버리고 , 진득허니 한 곳에 머무르지 않아서 그러것지요
또 무슨 병이든 고치는 것이 아니라 , 자기가 고칠만 한 병만 본다는 것 아니것소 ?
아주 까다롭다는구먼요
척 보고 못 고칠 병이다 싶으면 냉정하게 다른 데 가보라고 손짓하고 훌러덩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가버린다는구먼요
따듯한 말 한 마디 없이 말이라우
이장 : 그래 , 주로 어떤 병을 고치는지는 아는가 ?
강씨 : 저도 잘 모르지만 , 주워들은 바로는 ... 가슴앓이나 토악질을 잘 고친다고 하네요.
머리나 삭신이 쑤시고 아픈 것하며 , 여자들 하혈하는 것 , 꽤나 많던데 ......
이장님이 언제 한 번 자세히 물어봐야 되지 않겠어요 ?
이장 : 그래 , 그럴 기회가 오겠지
강씨 : 그란디 ,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게 한가지 있어요.
그게 뭔가하면 , 돈은 일체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는 거 아니에요 ?
줘도 내동댕이친대요
마치 무슨 더러운 물건이라도 내던지듯이 ......
그러니 그게 참 , 귀신 곡할 노릇 아닝가요 ?
이장 : 그럼 어떻게 먹고 살아가나 ?
먹고는 살아야 할 것 아닌가 ?
강씨 : 돈 대신에 곡식이나 채소 , 감자 같은 걸 받아 간다는 구먼요
그것도 무작정 다 받는거시 아니라 , 가지고 갈만큼만 집어내고 나머진 돌려준다는 거 아닙니까 ?
나 원 참 ......
이장 : 욕심 자체가 없는 여자구먼
강씨 : 예 , 내 말이 그 말이지요
데리고 다니는 젊은 아아 , 봉이라던가 , 그 애도 제 주인 닮아서 보통내기가 아니라고 안합니까 ?
그 애가 모든 먹고 사는 살림을 도맡아 한다는디 ......
- 봉이가 밥상을 내오면 세 사람 , 둘러 앉아 밥을 먹기 시작한다. -
(주막집 오씨 부인이 누님인 오서방이
산달이 가까워진 누님의 상황을 말하며 버리데기에게 도움을 받고자 하는 장면)
버리데기 : 왜 ?
오서방 : 아냐 , 암껏도
버리데기 : 난 못해
오서방 : 알아
버리데기 : 뭘 ?
오서방 : 자네가 애기 낳는 것 못 본다고 그러대
누님이 그래서 알아 보았재 ......
사람들 말이 진짜 그렇다고 허대
버리데기 : 맞아
오서방 : 왜 , 무슨 이유라도 있어 ?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잖아 ?
버리데기 : 어려워
오서방 : 난 모르겠는데
버리데기 : 난 애기 낳은 적 없어
오서방 : ...... ?
버리데기 : 애기 , 상생 못해
오서방 : 상극 ?
버리데기 : 물과 불
오서방 : 왜 그렇지 ?
버리데기 : 출산 , 삼신할매 일
오서방 : 그건 그래
버리데기 : 난 고통 먹어
오서방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버리데기 : 근데 산통 먹어 ?
오서방 : 그렇네 ...... 그래 , 출산 고통이 없으면 안 돼지
버리데기 : 출산 , 죽음 , 노화 , 암 ...... 내 길 아냐
오서방 : 알겠어요 ... 네 , 제가 잠시 오해를 했었나 보네요.
버리데기 : 사람들은 한 것 보다 안한 것 야단 쳐
오서방 : 이거 어쩐다냐 ?
미안해요 보살 누님 , 저희 누님은 나이도 많고 초산이라서 출산이 힘들 수도 있다고 ...
헌디 , 정작 누님 자신은 보살 누님만 믿고 있는 모양이던디 ......
- 오부인이 아기를 낳다가 잘못 되어 아기가 죽은 상황이 되자 ,
동네 사람들이 버리데기를 찾아와 버리데기를 다그친다
여자 3 : 애기가 잘못된 것이 누구 탓이것능가 ?
그래 ,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버리데기에게) 그 날 , 병원 간 날 그래 , 산모 자궁이 안 열렸으면 침이라도 놔서
약방 이씨도 있었으니께 , 침을 놓으라고 했으면 ......
버리데기 : 침 놨어
여자 3 : 뭐라구 ? 침을 놨다구 ? 이씨가 ? 자네가 ?
버리데기 : 이씨
여자 3 : 안 놨다고 허든디
버리데기 : 놨어
남자 2 : 어떵쿰 된 것이여 ? 침을 놨는디도 ......
여자 3 : 그럼 좋아 , 그럼 애기가 잘못된 걸 어떻게 알았남 ?
버리데기 : .......... ?
여자 3 : 자네가 애기가 잘못 되었다고 , 병원가야 헌다고 미리 차를 준비혀라고 ...
그러니께 뭣이냐 , 사전에 이미 알고 있었던 거지
버리데기 : 맥이 느려
여자 3 : 워메 , 반말 하는거 보소 잉 ?
버리데기 : 맥이 안 뛰어
여자 4 : 야 , 지금 어디다 대놓고 반말이냐 , 반말이 ?
오서방 : 반말이 아니라 원래 말투가 그래요
남자 2 : 자넨 또 나선가 ?
여자 3 : 글고 애기 잘못 된 걸 알고 괴성을 질러댔제 , 엉 ? 기억나제 ?
오서방 : 아짐씨 , 너무 하시오
도대체 뭣 땜시 이러시오 ?
여자 3 : 자넨 모르것능가 ?
저 여잔 원래부터 애를 싫어했다고 , 아 , 소문이 쫘 퍼졌는디 ...
산모 , 애 안 받기로 유명하다고 ...
오서방 : 그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꺼고 , 그렇다고 그것이 애기 죽은 것과 뭔 상관이 있다요 ?
오히려 빨리 알아서 누님을 살린 게 아니냔 말요
여자 3 : 증거야 많지 , 처음부터 안 올라고 헌 것 ,
잘못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
소리를 지른 것
산파나 이씨를 곁에도못 오게 한 것
결국 산모까지 잘못되게 생겼으니까 병원으로 보낸게 아니냔 말여 ?
남자 2 : 첫째 , 자넨 우리 마을 사람들을 무시해
저 남쪽 다른 마을들은 돌아 댕기면서 우리 마을엔 코빼기도 안 보인다 말여
그 뿐인가 ?
사람들과 어울리지도 , 친하게 지내지도 안해
알 것능가 ?
자넨 우릴 무시헌단 말이어
두번째 , 그 어떤 자격도 없으면서 사람들 병을 고친다는 건 요즈음 세상에 말도 안 되는 짓이라고
여자 3 : 그리고 미친끼가 있거나 무당끼가 있는 사람은 마을에서 쫓아내야 한다고 했어
내 굳이 하나님 이야기는 안하겠지만 그건 모두가 미신을 믿는 거란 말이여 ,
나라에서도 굿당이며 , 무당집 , 신당은 모조리 없애라는 거여 , 알것제 ?
대통령께서 새마을 운동을 주관하시고 계신데 ......
여자 3 : (큰 소리로) 글고 , 네 번째 , 산모를 무시하는 인간은 인간이 아니다.
여자 3 : 내 말 알아들었으면 알아서 허라고 ,
낸 중에 면사무소 사람이며 경찰이 와서 강제 집행 허기 전에 ... 뒷처리 잘허란 말이여
여자 4 : 이건 다 부녀 회장님이 자네를 생각해서 허는 말잉께 ......
뻘로 듣지 말어 잉 ?
버리데기가 오서방과 함께 서너개의 봇짐을 가지고 방과 부엌에서 나온다.
그리고 자전거와 인력거에 짐들을 싣거나 매달고 나서 버리데기는 다시 굿당으로 들어간다.
잠시 후 큰 봇짐을 등에 메고 나온다.
오서방 : 또 만나 ?
버리데기 : 아니
오서방 : 다시 안 와 ?
버리데기 : 응
오서방 : 어디로 갈건데 ?
버리데기 : 멀리 (산쪽을 가리킨다.)
오서방 : 미안해요 , 내가 못나서
버리데기 : 아냐
오서방 : 이렇게 떠나는 거 아닌데 ......
버리데기 , 자전거를 끌고 봉이와 함께 사라진다.
망연자실 , 홀로 남은 오서방 , 절규인지 통곡인지 모를 ,
온 목소리를 다해 계속해서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지른다.
` 심 봤다 ... 심 봤다 .... `
바람 소리와 함께 산의 메아리가 들려온다.
` 심 봤다 ... 심 봤다 ...... `
무대가 서서히 어두워진다.
첫댓글 🌻
장마철에 몸 조심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