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묵시록은 로마의 플라비아누스 왕조의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통치 기간인 기원후 90 -95 년경에 쓰여 졌다. 이 황제는 살아있을 때에, 자기가 ‘주님이신 신’ ‘Dominus et Deus’ 라고 주장하며 백성들에게 신적 숭배를 강요했던 인물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황제 숭배 의식을 거부했다. 그래서 이 황제의 재임 기간 동안 일부 지역에 국한된 것이지만 몇 차례의 박해가 발생하였다. 이들 중에서 특히 오늘날 튀르키예 에게해 지역인 아나톨리나 서부지방의 신생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이 박해를 받았다. |
1. 에페소 교회
에페소 교회는 에페소라는 큰 도시에 세워졌다. 에페소 교회는 그리스도교적 중심지들 중의 하나였다. 사도 요한이 세상을 떠나고 대성전이 세워졌다. 오늘날은 ‘성 요한의 대성당’이라고 불린다. 사도 요한은 에페소 교회 신자들과 함께 살았었기에 에페소에 먼저 편지를 썼다. 베르가모는 소아시아 지방의 공식적인 수도였지만 그 지방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도시는 에페소였다. 그 도시는 ‘아시아의 빛’이라고 불렸다.
이 도시는 큰 항구를 가지고 있었으며 상업지역이었다. 유프라테스강으로부터 그리고 메소포타미아와 페르시아로부터 그 도시로 흘러들어오는 모든 여행자들과 무역 상품과 제품들을 위한 통로였다.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교량 역할을 하였다. 정치적으로는 로마 제국 안에서 자치권을 가진 도시였다. 그래서 아주 중요한 경우를 제외하고 로마법의 간섭을 받지 않았다. 원래는 항구를 가지고 있던 도시라고 말씀드렸고 바다 입구에 퇴적물이 쌓이면서 에페소는 현재 바다로부터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이 도시는 아르테미스 여신을 숭배하는 도시였다. 바오로 사도는 기원후 53 년부터 55 년까지 머물렀고, 이곳에서 선교의 성공을 거두었다. 그런데 바오로 사도의 활동 말기에 그 지역의 은장이 조합원들이 바오로 사도를 쫓아낸다. 그 이유는 그들은 아르테미스 신전의 제구나 신상을 만들어 파는 사업으로 돈을 벌었는데, 바오로 사도의 선교로 새로운 신앙으로 개종한 사람들이 증가함에 따라 그들의 수입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사도행전 19 장-23 장. 참조.
바오로 이후 사도 요한이 이 지역에 머물며 선교하였고, 전승에 의하면 요한이 성모 마리아를 모시고 살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에서 복음서와 서간을 저술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파트모스 섬에서 유배를 마치고 돌아와 죽었고, 그의 무덤 위에 ‘성 요한 대성당’이 설립되었다.
에페소 교회는 바오로 사도가 에페소 공동체를 세운 이후 이 도시가 선교 활동의 거점 도시가 되었지만 이 도시는 아르테미스 여신을 위한 신전이 있었고, 도미티아누스 황제 때에는 자신을 위한 신전을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이 교회는 다른 어떤 교회들보다도 이단에 많이 노출되어 있었다. 여러 도시를 잇는 교량의 역할을 하다 보니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왕래를 했을 것이고 정통 교리가 아닌 혼합적 성격을 가진 교리를 전파하는 사람들에게 노출이 되었다.
2 장 2절에 ‘사도가 아니면서 사도라고 자칭하는 자들’과 6절에 ‘니콜라오스파’가 등장한다. 니콜라오스파는 그리스도교 신앙과 황제 숭배를 접목한 가르침을 전하던 사람들일 것이다. 이들의 소행은 14 절에 페르가몬 신자들에게 보내는 말씀에서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걸림돌을 놓아 그들이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고 불륜을 저지르게 한 자’라고 소개되고 있다.
에페소 신자들에게 ‘회개’를 강조한다. 요한 묵시록은 4절에서 ‘처음에 지녔던 사랑을 저버린 것’을 나무란다. 5절 ‘네가 어디에서 추락했는지 생각해 내어 회개하고, 처음에 하던 일들을 다시 하여라.’ 고 한다. 이 말씀에서 회개는 생각을 바꾸어 처음의 마음으로 되돌아가는 것, 처음에 지녔던 사랑을 다시 찾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들이 받았던 복음과 교회의 정체성을 지키라고 한다. 그래서 ‘처음에 지녔던 사랑을 저버린 것’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승리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하느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게 해 주겠다.’ 고 7절에서 약속을 하십니다. 생명나무는 22장 19절에도 나오는데, 구원된 상태를 나타낸다. 그리고 이 생명나무는 에덴동산 한가운데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함께 있었다고 전한다. 창세기 2,9 절 참조. 요한 묵시록의 저자는 생명나무를 언급함으로써 그리스도를 통한 새로운 창조를 암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2. 스미르나 교회
스미르나는 에페소 북쪽에 있는 바닷가에 인접한 도시로 소아시에서 형성된 초기 도시들 중 하나였다. 그리고 소아시아의 도시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에 하나로 언급된다. ‘아나톨리아의 보석, 소아시아의 왕관이며 꽃’, 등으로 묘사된다. 일리아드, 오디세이의 저자 호메로스의 고향으로 알려져 있다.
이 도시는 알렉산더 대왕 시절에 건설되었고, 무역과 상업이 흥했던 도시였다. 도시의 아름다움과 경제적 여유와 함께 이 도시는 로마에 충성스러운 도시였다. 또한 아테네 여신의 성전 등 그리스 신을 모시는 신전들이 많았다. 정치와 종교에 있어서도 중심 역할을 했던 도시였다. 그리스 신들의 신전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의 회당들도 많이 있었다.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에게 이것은 심각한 문제였다. 특히 유다인들의 눈에는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배척해야 할 이단 중의 하나로 간주되었고,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곤란에 빠트리기 위해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였다. 그래서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스미르나에서의 삶이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새로운 종교를 따른다는 것은 곧 법의 보호를 박탈당함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인은 항상 목전에 칼날의 위협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과 같았다. 요한은 가끔 유다인들을 사탄의 무리들이라고 말한다.
스미르나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는, 사람의 아들을 ‘처음이며 마지막이고 죽었다가 살아난 이’ 2;8에서 소개한다. 여기 ‘사람의 아들’은 5 장 6 절에 나오는 ‘살해된 것처럼 보이는 어린 양’이라는 표현이 가리키는 인물과 동일한 인물로서,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 도시가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도시였으나 그리스도인들은 유다인들의 배척으로 경제적으로 소외되었을 것이다. 이 공동체를 특징짓는 단어가 ‘환난과 궁핍’인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요한 묵시록이 기록되던 때에 유다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을 배교자로 생각했고 이방인처럼 여겼다. 이런 배경에서 스미르나 공동체는 유다인들과 갈등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유다인이라고 자처하는 자들’ 2;9 은 스미르나에 거주하던 유다인들을 지칭한다. 유다인들은 소아시아 지방에서 종교 생활의 특혜를 받고 살았다.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받자, 유다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그리스도인과 구분되려고 노력했고, 이러한 배경이 요한 묵시록에 담겨 있다.
편지는 스미르나 신자들에게 궁핍과 박해로 인한 환난 가운데서도 신앙을 끝까지 지키라고 권고한다.
이곳의 박해로 인해서 교회의 첫 번째 주교였던 뿔리까르뽀가 순교하였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그는 꿈에서 머리에 베고 있던 베개가 불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어떤 환시를 받았다. 꿈에서 깨어난 후 그는 이 꿈을 자신이 받아들여야만 할 죽음에 대한 예언으로 해석하였다. 붙잡혀 형 집행을 받게 되었을 때 그는 마지막으로 한 시간 동안만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을 달라고 하였다.
뿔리까르뽀가 경기장에 들어섰을 때 그는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것 같은 소리를 들었다.
‘두려워 말라, 뽈리까르뽀 그 경기를 치르고 승리의 화관을 받아라.’
로마의 총독은 예수님을 버리도록 위협하였지만 주교님은
‘ 86 년이 넘는 동안 나의 주님을 섬겨왔는데, 이제 와서 내가 그를 버리겠는가? 그리고 그 화형이라는 것이 무엇이 두렵단 말인가? 심판 날에 악한 사람들을 기다리는 영원한 형벌의 불이 지금 이곳의 한순간의 불보다도 훨씬 더 혹독하다는 것을 당신은 모르는가? 무엇을 망설이는가? 어서 네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하여라.’
뽈리까르뽀는 신앙을 위해 스미르나에서 순교했고, 신앙에 충실했다. 뽈리까르뽀 주교님의 순교 이야기는 요한 묵시록이 기록된 다음 60 년 후이지만 이렇게 그리스도교인들은 고통을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신앙을 지키라고 권고하면서 ‘생명의 화관’을 약속하고 있다.
요한은 스미르나 교회에게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한다. 그 말씀은
‘죽을 때까지 신앙에 충실하여 네가 충성스럽다는 것을 보여주어라. 그리고 서로 사랑하여라’, ‘사탄의 고문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에게 영광과 정의와 아름다움과 생명으로 만들어진 생명의 왕관을 줄 것이다.’
이 왕관은 육상경기에서 승리한 자에게 주어지는 올리브 나뭇가지로 만든 화관이다. 그리스도교 신자는 인생이라는 육상경기에서 승리의 왕관을 차지할 수 있다. 그것은 인생의 종말에서 승리한 그리스도의 운동선수였다는 데에 대한 상이 될 것이다. 이 상은 지상의 삶을 연장하는 상이 아니다. 2 장 11 절의 ‘두 번째 죽음의 화를’ 면하는 것이다. 20 장 6 절과 14 절 그리고 21장 8절에 두 번째 죽음은 천 년에 걸친 그리스도의 다스림 후에 오는 완전한 파멸을 가리키며, 육적인 죽음이 아닌 영적인 죽음, 곧 최종적이며 영원한 죽음을 의미한다.
이 두 번째 죽음을 맞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은, 새로운 예루살렘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이라는 뜻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이 왕관은 하느님이 계신 곳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표시이기도 하다. 만약 신앙에 충실한 그리스도교 신자라면 하느님을 직접 뵈올 수 있는 기쁨을 차지할 것이다. 이러한 말씀으로 인하여 스미르나 교회는 그리스도교 신앙이 확산되기에 적합한 장소가 되었다. |
3. 페르가몬 교회
페르가몬은 현재 튀르키에의 베르가마로 알려져 있다. 페르가몬은 소아시아에서 매우 중요한 지역이다. 로마의 역사가인 플리니는 페라가몬을 ‘아시아에서 단연 가장 유명한 도시’라고 말했다. 이 도시는 기원전 133 년에 로마의 통치 아래 놓였으며 에페소 이후에 소아시아 지방의 행정 중심지로, 관청이 있었고 지방관이 머물렀던 도시이다. 이미 기원전 29 년 페르가몬에는 로마의 여신과 아우구스투스 황제를 위한 신전이 있었을 정도로 소아시아 지방에서 황제 숭배 의식이 성행했던 곳이다.
페르가몬은 에페소와 스미르나와 함께 그 지역의 3 대 주요 도시들 중 하나였다. 이 도시에는 제우스에게 바쳐진 제단이 있었고,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을 ‘사탄의 왕좌’로 불렀다. 그리고 건강과 예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가 숭배되는 도시였다. 히푸클라테스와 갈레누스 같은 유명한 의학자들이 이 도시에서 활동하였다. 아스클레피오스가 의술의 신이었다. 그래서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카라칼라 같은 황제들이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페르가몬에는 치료를 위한 광천을 가지고 있었고 지금도 있다.
이교인들과 또 이교 신들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살고자 했다면 문제가 없었지만 그리스도인들은 황제의 신적 숭배는 양심상 따를 수 없었다. 아우구스토스 황제를 위한 신전이 있었고, 사람들은 페르가몬을 황제 숭배 의식의 중심지로 생각했다. 이 공동체에서는 황제 숭배 의식 때문에 안티파스가 순교하였는데 이 사건이 페르가몬의 그리스도교 공동체에는 상당히 큰 의미가 있었다.
또한 교회를 위협하는 ‘니콜라오스파’ 같은 이단들이 등장했다. 이 이단은 구약의 민수기에 등장하는 거짓 예언자 발라암과 연결된다.
발라암 이야기는 민수기 22-24장에 나온다. 발라암은 이방인 출신 예언자로 등장하는데 모압 임금 발락에게서, 이집트를 탈출하여 점차 세력을 확장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해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민수기에는 발라암이 하느님의 신탁을 충실히 수행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유다교 전승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 전승에서는 발라암이 하느님의 천사를 만나는 부분에서 나귀도 볼 수 있는 하느님의 천사를 보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하느님의 뜻을 충실하게 따르지 않은 본보기로 제시한다. 민수기 22 장 22-35 절 참조. 또 민수기 25 장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의 뜻을 거슬러 모압 여인들과 간음하게 하고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을 먹게 하고 그리고 다른 음란한 짓들과 혐오스러운 행위들과 같은 심한 죄들을 범하게 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을 이렇게 만든 장본인이 발라암이라는 기록이 민수기 31 장 16 절에 나온다.
페르가몬 신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역시 불륜과 우상 숭배를 버리고 하느님께 돌아오라는 것을 강조한다. 회개하지 않는 이들은 심판을 받을 것인데, 저자는 ‘내 입에서 나오는 칼’ 2 장 16 절이라고 표현한다. 요한 묵시록에서 그리스도의 심판은 전쟁의 이미지로 표현된다. 그리고 믿음을 간직한 이들이 받는 약속은 ‘숨겨진 만나’ 와 아무도 모르는 새 이름이 새겨진 ‘흰 돌’이라고 표현되고 있다. 2 장 17 절. 숨겨진 만나는 탈출기 16 장에 묘사된 이스라엘 민족의 광야생활을 떠오르게 한다. 이 표현은 2 장 14 절에 나오는 ‘우상에게 바친 제물’ 과 대비된다. 우상의 음식과 천상의 음식이 대조를 이루는 셈이다.
구약성경에 의하면 40 년 동안 광야에서 방랑하던 이스라엘 사람들을 먹였던 만나를 담았던 항아리를 가져다가 계약의 궤에 모셨다. 그것을 나중에 지성소 안에 있는 하느님의 대전에 모셔졌는데 처음에는 장막 안에, 후에는 예루살렘에 있는 솔로몬 성전 안에 모셔졌다( 탈출기 16 장 33-34 절. 히브리서 9 장 4 절). 오래된 유대 전승에 의하면 기원전 6 세기 초 솔로몬 성전이 바빌론 사람들에 의해 파괴될 때 계약의 궤와 그 궤 속에 들어있는 만나를 담은 항아리와 십계명을 적은 석판들이 예레미야 예언자에 의해 숨겨졌다고 한다.
만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라 불러졌다. 예수님은 당신을 ‘하늘로부터 내려온 생명의 빵’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그리스도는 우상숭배와 박해를 극복해 낸 사람들에게 두 가지 약속을 하신다. 첫 번째는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감추어 둔 만나를 약속하신다. 이는 ‘생명의 빵’으로 요한복음 6 장에 성체성사를 나타낸다고 본다. 요한 6 장 41 절에서 당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이라고 하신다.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만찬, 성찬례시 성체를 영 하는데 이것이 생명의 빵인 것이다. 두 번째로 하느님과 함께 하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약속을 하셨다. ‘아무도 모르는 새 이름이 새겨진 ‘흰 돌’ ’은 3 장 12 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밝혀진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그분께서 계시한 이들에게만 알려진 이름으로, 다시 오실 때까지 믿음을 간직한 이들에게만 유보되어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 이름은 장차 우리를 구원할 이름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사탄이 살고 있는 곳이라 불리던 페르가몬에 대성전을 세우고 사도 요한에게 헌정하였다. 현재는 폐허가 되어 있다. |
4. 티아티라 교회
티아티라는 현재 이즈미르(스미르나)로부터 95킬로 떨어져 있는 도시이고, 기원전 3 세기에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지배당하다가, 알렉산더 사후 셀레우코스에 의해 지배당했고, 기원전 133 년에는 로마 제국에 속하게 되었다. 카라칼라 황제가 때때로 이 도시에 머물렀다고 하며, 번창한 도시였고, 에게해 지역의 중요한 상업 중심지였다. 이 도시는 베르가모까지 고속도로가 뻗어 있는 곳에 위치해 있으며 서쪽으로 스미르나, 에페소로 이어지고, 북쪽으로 비잔티움과 니케아로 이어지는 도시로 소아시아에서 동방까지 무역상과 상인들이 붐볐던 도시였다. 이렇게 여러 도시로 연결되는 이 도시를 선교 활동의 중심지로 만든 것이다. 이 도시는 특별히 황제 숭배나 그리스의 예배의식, 또는 이교 잡신들의 숭배의 중심지는 아니었다. 그 지방의 신 티리무스를 섬기고 있었다고 한다. 종교적 측면에서 이 도시에 대해 알려진 것은 점을 치는 사당이 있었고 여기서 여제사장은 sombathe 라고 불리었다.
그럼 이곳 신자들에게 어떤 위험과 문제가 있었을까?
이 도시는 모직 제품류의 무역과 천 염색에서 중요한 상업적 중심지였다. 양모와 린넨류와 청동제품과 가죽제품의 장인과 노동자들의 길드, 노동조합이 잘 조직되어 있었다. 이 길드가 이 교회에 중요한 문제가 된다. 이들 길드 중에 하나에 가입하지 않으면 즉 노동자의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않으면 많은 불이익이 있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양심에 의해서 이런 길드에 가입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두 가지 중요한 특성들로서 구별되었다.
첫째로 회원들은 공동의 잔치와 식사를 했다. 그리고 이것은 사회적 중심부인 신전에서 행해졌다. 이 만찬들은 대체로 잡신들에게 바친 희생물과 봉헌을 함으로써 시작하였다. 의식을 거친 고기 부분이 우상들에게 봉헌되었다. 그래서 그리스도교인이 이 같은 길드 식사에 참가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그리스도교인들은 노동조합의 구성원이 될 수 없었다.
또한 티아티라 교회에 ‘이세벨’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이 인물은 아스라엘 임금 아합의 부인이고, 이방인 출신이었다. 그리고 이 여자 때문에 이스라엘이 바알 신 숭배에 빠져들기도 했다(1 열왕 16,31-34). 구약 열왕기에 등장하는 이세벨은 바알 신앙의 추종자였고 이것에 대해서 가장 강하게 반대한 예언자가 엘리야 예언자이고, 엘리야 예언자는 바알 예언자들을 죽이고 아합과 이세벨에 쫓겨 광야로 도망을 치기도 하였다. 엘리야는 아합과 이세벨이 이스라엘 백성을 한 분이신 하느님에 대한 참된 예배로부터 탈선시켰다는 사실 때문에 그들의 죄를 엄중하게 탓하였다. 이세벨은 이스라엘에 자신의 신, 바알을 소개했고 많은 이스라엘인들이 성적인 탈선을 범하게 하였고 이 지역이 그런 종교적 특성을 받아들인 것이다.
티아티라 교회에 니콜라오스파에 속한 여 예언자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 여 예언자가 교회 생활에 악영향을 준 것 같다. 그래서 티아타라의 이세벨이 그리스도교 교회 안에 예배와 생활의 순수함에 악적이고 쾌락적인 영향을 끼친 여인으로 간주된 것이다. 그 여 예언자는 교회와 신앙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이교적 신앙생활과 가르침 그리고 관습을 교회에 가져오려고 했던 것이다. 그녀는 자신을 ‘여 예언자’, ‘하느님의 사자’로 불렀다. 그녀는 그리스도 신앙을 그들 자신들에게 적합하도록 변화시키기를 원하고 그리고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본래의 가르침을 추구하고 또 그런 능력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 하나였다. 그래서 이세벨과 그를 따르는 추종자들이 경고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분명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고 그래서 사람들이 그녀를 따랐을 것이다. 그녀는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했고, 여 예언자로서 간주될 수 있을 만큼 언변의 능력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런 그 여자 예언자에게 교회에 문제가 발생을 한 것이고 요한 묵시록의 저자는 티아티라 신자들에게 불륜과 우상 숭배를 버리고 회개하라고 전한다. 페르가몬 신자들에게 말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2 장 23 절에 ‘나는 너희가 한 일에 따라 각자에게 갚아 주겠다.’라는 말씀이 주어집니다. 그러나 이세벨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사탄의 깊은 비밀’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말하며 그들에게 약속한 것은 ‘샛별’이다.
‘샛별’은 금성을 의미하는데, 새벽녘에 나타나는 특성 때문에 ‘아침의 별’로 불렸다. 샛별은 고대사회에서 ‘통치권’을 나타내는 상징이었다. 여기서 ‘샛별’은 그리스도를 의미하고, 22 장 16 절에서도 같은 표현이 나온다. ‘샛별을 주겠다’는 약속은 믿음을 간직한 이들도 그리스도의 통치권과 주권에 참여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 지방 주화 위에 그려져 있는 영웅이 있는데 그 사람이 쇠지팡이를 들고 있다. 이 쇠지팡이도 샛별과 같이 통치와 주권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2 장 26-27 절에 ‘민족들을 다스리는 권한을 주겠다. 그는 쇠지팡이로 다스릴 것이다.’ 특히 쇠지팡이는 상징적 의미와 함께 여인에게서 태어난 사내아이에게 주어질 것이라고 12 장 5 절에 다시 언급된다. 그리스도인은 죽음의 밤을 지샌 후 부활할 것이고, 그리고 그리스도와 결합할 것이다. 샛별은 아침 해, 떠오르는 태양을 상징하기도 한다. |
5. 사르디스 교회
사르디스는 지금의 살리흐리 도시 근처의 작은 마을이다. 고대 리디아 왕국의 수도였던 사르디스는 고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였다. 번영을 누렸던 리디아 왕국은 기원전 546 년 페르시아 왕 키루스에 의해 함락되었고 그 후 페르시아 제국의 일부분이 되었다. 기원전 334년 알렉산더에 의해 정복되었고 기원전 100 년 전 로마 제국에 속하게 되었다. 그리스도교가 전래되면서 일곱 교회 중 하나가 이곳에 세워졌다. 그러나 기원후 14 세기말에 튀르키에 오스만 제국의 일부분이 되었다. 이 지역의 유적 발굴을 통해서 로마식 경기장, 목욕탕, 그리고 가장 유명한 아르테미스 신전이 발견되었다. 이 도시의 길을 따라서 금이 운송이 되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경제적으로 부유하게 성장했다. 기원후 17 년에 발생한 큰 지진으로 이 도시는 폐허가 되었고 그 후 티베리우스 황제는 세금을 면제해 주면서 도시를 재건했고, 26 년에 티베리우스 황제는 자신의 어머니를 위한 신전과 원로원을 위한 신전을 세웠다고 한다.
사르디스 사람들은 그들의 부와 풍요로움으로 인해 부드럽고 나약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그리스도교가 정착하기에 수월했다. 그러나 이런 그들의 심성 때문에 그리스도에 대한 초기 신앙과 열정을 상실하였다. 또한 많은 전쟁으로 인해서 이 도시 주민들이 활력을 잃어버린 탓도 있었다. 다소 퇴폐적인 환경 탓으로 그리스도교 역시 활력과 힘을 많이 잃었는데, 그들 자신이 살아있다고 생각하더라도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시체에 불과하였다. 사르디스 교회는 잠들었고 생명력이 없었다.
사르디스 신자들에게 보내는 말씀을 보면, ‘깨어 있어라’, ‘회개하라’이다. ‘깨어 있어라’는 공관복음서에서 종말론적 기다림을 나타내기 위해 주로 사용한 표현이다. 마태오 24:36; 루카 12:35 절 이하. ‘회개하라’ 역시 세례자 요한과 공생활을 시작하는 예수님이 선포한 내용이다. 그래서 묵시록 저자는 ‘네가 가르침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들었는지 되새기라’ 는 내용이다. 3 장 3 절. 여기서 표현된 ‘어떻게’는 의미상 ‘무엇’이라고 볼 수 있는데, 즉 어떤 가르침을 간직했는지 생각하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사르디스 신자들에게 흰옷을 입고 생명의 책에 기록될 것이라고 약속한다. 흰옷은 그리스도의 승리한 모습을 예시하는데, 그래서 흰옷을 입게 될 것이라는 약속은 그리스도의 승리와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생명의 책은 요한 묵시록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12:8; 17:8; 20:15; 21;27절 참조. 탈출기 32장 32-33절에 ‘그들의 죄를 부디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시지 않으시려거든, 당신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제발 저를 지워 주십시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나에게 죄지은 자만 내 책에서 지운다.’ 모세가 언급한 책이다. 다니엘서 12장에도 비슷한 표현이 나온다. 종말에 관한 설명에서 ‘네 백성은, 책에 쓰인 이들은 모두 구원을 받으리라’ 다니엘 12:1. 또한 종말에 관한 비밀은 마지막 때까지 봉인되어 남아 있을 것이라는 말씀이 선포된다. 12:9 절 참조. 책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은 구원되었음을 나타낸다. 예수님은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고 하셨다.
그렇게 깨어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세 가지의 약속이 주어졌다. 승리의 흰옷, 생명의 책에 기록된 그들 이름에 대한 보장, 주님에 의해 그들의 존재가 수락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분께 충실한 사람들에 대해 영원히 충실하시다. 이것이 사르디스 교회에 보낸 말씀이고 오늘 우리에게도 보내는 말씀이다. |
6. 필라델피아 교회
필라델피아는 현재 이름은 알라셰히르이다. 이 도시는 비옥한 지역에 위치해 있으며 남쪽에 있는 매우 높은 산 티몰소스산이 유명하며 그곳으로 여행 오는 사람들이 많이 들리는 도시이다. 필라델피아는 다른 도시에 비해 그리스도교가 뿌리내리기까지 상당히 오랜 기간이 걸렸는데 그 이유는 이 도시에는 티베리우스와 칼리쿨라와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를 위한 신전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또 제우스와 아르테미스, 그리고 디오니소스에게 예배하기 위한 제단이 있었다고 한다. 비옥한 토지를 바탕으로 포도밭으로 둘러싸여 있고 포도주 생산이 주된 산업이었다. 그래서 포도의 수확을 관장하는 것으로 알려진 디오니소스의 제단이 있었다. 또한 선교가 더뎠던 이유는 도시의 이렇게 많은 사원과 사당을 방문한 순례자들로부터 들어오는 큰 수입과 소득 때문이었다. 즉 이교 신앙은 주민들에게 큰 소득원이었기에 그리스도교가 전래된 이후로 이익을 내었던 사업들이 문을 닫게 되었다. 초기에는 몇몇 그리스도인들이 여기에서 순교를 하였다. 이 도시에 보낸 주님은 어떠한 비난이나 경고도 하지 않으신다. 필라델피아에 보낸 편지의 ‘거룩한 이, 진실한 이, 다윗의 열쇠를 가진이’ 3:7 절 라는 구절이 나온다. 여기서 열쇠를 가졌다는 것은 문을 열 수 있는 권한이 있음을 의미하고, 그 권한은 구원으로 향하는 문, 다윗의 도성 곧 새 예루살렘을 향한 문을 여 닫을 수 있는 권한이다. 필라델피아에 있는 신자들은 지역에 살고 있던 유다인들로부터 많은 역경을 겪었다. 3장 9절에 ‘나는 사탄의 무리에 속한 자들을 이렇게 하였다. 그들은 유다인이라고 자처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거짓말을 하고 있을 뿐이다.’ 필라델피아 교회는 이 도시에 사는 유다인들, 동포들로부터 많은 핍박을 받았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복음화에 긍정적인 효과를 내었다. 그것은 복음을 듣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는 기회가 되었던 것이다. 필라델피아 교회 신자들은 행동과 삶을 통해 주님께 충실성을 보여주었다. 필라델피아 교회에 보낸 편지에는 ‘주님의 재림’에 대한 그리스도의 말씀은 약속과 경고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필라델피아 사람들에게 그들이 믿고 있는바를 잘 지켜서 어떤 사람도 그들의 월계관을 빼앗을 수 없도록 할 것을 요구하신다. 여기서 월계관의 의미는 스미르나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설명되었던 것이 다시 적용된다. 신약시대와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에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생각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 사람들에게는 경고로써 그리고 핍박을 받고 있는 신앙인들에게는 위로로써 적용된 것이다.
이 교회에 보내진 편지는 질책이 없는 오직 단 하나의 편지이다. 이 도시의 신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한 삶을 살았고 그들에게 약속된 하늘의 보상을 받았다. 그들에게 성전에 머물게 한다는 약속이 주어진다. ‘내 하느님의 이름과 내 하느님의 도성, 곧 하늘에서 내 하느님으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 사람에게 새겨 주겠다.’ 3:12 절. 신약성경에서 성전 또는 성전을 이루는 기둥에 대한 비유는 다가올 구원의 시간에 보이는 구원의 모습을 말한다. 1 티모 3:15 절 참조. 성전은 하느님 현존의 상징이다. 요한 묵시록에서 특별히 새 예루살렘에 대한 환시에서는 더 이상 성전이 필요 없다. 왜냐하면 그 자리를 하느님과 어린 양이 대신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승리하는 사람이 받는 약속, 곧 성전에 머물게 될 것이라는 말은 구원에 참여하리라는 약속이다. |
7. 라오디케이아 교회
라오디케이아로 불리는 도시가 여섯 개 있었고 그중에 묵시록에 언급되는 라오디케이아는 리쿠스의 라오디케이아로, 에스키히사르 마을 근처에 있는 것으로 이즈미르로부터 동쪽으로 250km 현재의 데니즐리로부터 6km 거리에 있다. 세간선도로의 교차점에 위치해 있다. 이 근처에는 성경에 언급되는 도시로써 히에라폴리스(현재 pamukkale)와 골로사이 (현재 conaz)가 있다. 이 도시에는 다른 도시가 있었는데, 셀레우코스 왕조 때 안티오쿠스 2 세가 여기에 새 도시를 세우고 그 도시의 이름을 자신의 아내 라오디게의 이름을 따서 붙였다. 기원전 190 년경 로마의 동맹국 베르가모 왕국에 넘어갔다가 후에 로마의 수비대가 이 도시에 주둔하게 되었다. 기원후 1 세기에 지진으로 이 도시가 파괴되었다.
라오디케이아는 초기 그리스도교와 비잔틴 시대에 눈부시게 발전하였다. 그리고 일곱 교회에 상응하는 일곱 대성전 중 하나가 여기에 세워졌다. 기원후 4 세기에는 여기서 세계 공의회가 개최되기도 하였다. 이후 오스만 제국에 넘어가게 되었고 이 마을은 폐허 되었다. 라오디케이아의 중요성은 비옥한 강 계곡에 자리 잡고 있다는 점과 에페소에서 동쪽으로 뻗은 중심 도로는 이 도시를 통과했는데 이 도로는 소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도로였다.
이 라오디케이아는 고대 세계에서 중심 도시였고 중요한 상업적 중심지였다. 또한 전략적 가치도 가지고 있었다. 풍부한 지하 수맥과 샘들로 인해 물 공급이 보장되었고 그래서 요새의 역할을 하였다.
이 지역은 양을 길러 부드러운 검은 양털을 얻었다고 하며 Trimita라고 알려진 모직 tunic(고대 그리스, 로마의 남녀가 입던 무릎까지 내려오는 가운 같은 옷)을 생산함으로써 Trimitaria 라는 별칭도 얻었다. 이렇게 라오디케이아는 환경적 요인과 모직 제품의 생산과 염색업, 상업, 금융의 중심지였고 좋은 아마포 직물도 역시 여기서 생산되었다. 또한 이 도시는 중요한 의료의 중심지였다. 히에라폴리스 근천의 광천수가 치료에 사용되었고 타우루스산맥에서 흘러내려오는 찬물이 기력을 회복시키는 데 사용되었다. 이 두 물은 건강을 유지하고 회복시키는데 특출한 효험이 있었다고 한다. 라오디케이아는 의료 센터와 학교가 발전했으며 그 당시 이 도시는 귓병 치료와 눈병 치료와 눈약 등을 생산했다고 한다.
이 도시에 많은 유다인들이 이주해 살고 있었고 그들 중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되었을 것이다. 이곳에 교회는 1 세기경에 바오로 사도의 제자이며 협력자였던 에파프라스가 인근 지역인 헤에라폴리스와 골로사이와 함께 설립하였다. 바오로 사도는 이 지역의 교회에 두 통의 편지를 쓰는데 하나는 신약성경에 수록되어 있는 골로사이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이고 하나는 라오디케이아에 보낸 편지인데 이 편지는 소실되었다. 그리고 바오로, 요한, 필립보, 루카, 디모테오 같은 많은 사도들이 이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였다.
라오디케이아 교회에 보내는 편지는 질책의 성격이 강하게 드러난다. 질책을 보기 전에 먼저 ‘아멘 그 자체이고 성실하고 참된 증인’이란 표현이 3장 14절에 등장합니다. 이 표현은 요한 묵시록 저자가 하느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그분의 약속은 분명히 실현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요한 묵시록에서 강조하는 하느님의 성실함은 그분의 계시가 헛되지 않음을 나타낸다. 그리고 ‘창조의 근원’이라는 말은 요한 묵시록에 자주 등장하는데, ‘처음이며 마침’이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칭호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선재를 의미한다. 요한복음 1장 1절-18까지에서 볼 수 있듯이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 창조 이전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라오디케이아 신자들에게는 굳은 결단으로 믿음에 대한 열정을 가지라고 요구한다. 그러면서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3장 15절에서 질책을 하시며 믿음을 가지고 살아갈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타협적 자세를 나무란다. 예수님께서는 3 장 20 절에서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신다. 고대 근동에서 식사를 함께 한다는 것은 전에나 지금이나 상호 간의 밀접한 친교를 상징한다. 예수님은 당신에 대한 믿음과 사랑 안에서 모든 사람을 받아들이고 친구가 되실 것이라 말씀하시고 계신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편지의 경고가 피해 갔으면 좋았을 텐데 이 번창하고 힘 있던 도시와 그 부유했던 교회가 얼마간의 유적을 제외하고는 남은 것이 없게 되었다. 그들의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았기 때문에 정말로 그들은 주님의 입에서 뱉어져서 그들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우리는 성경을 읽고 묵상할 때 그냥 읽는 것이 아니라 항상 깨어서 그 말씀이 지금 이 자리에서 나에게 주어지는 말씀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경고들에 대해서 경계심을 갖고 우리 이웃들의 안녕과 각자 자신들의 안락과 만족을 위해서 선한 삶을 살도록 촉구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우리 모두에게 적용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