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계는 고려의 태조 왕건이 도선선사를 국사로 맞아 나라를 번성시켰다는 전례를 참작하여 무학을 국사로 모시기로 했다.
무학은 고려 충숙왕 14년(1327)에 탄생하였다.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하였으며, 18세에 수도자가 되어 소지(小止) 선사에게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아 중이 된 이후 오로지 불도에 정진하였다. 그가 부도암(浮圖庵)에서 공부할 때 불이 났는데 모두들 아우성을 쳤으나 그는 태연하였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이변이 생긴 것이다. 금방이라도 온 세상을 삼킬 듯이 덮쳐오던 불길이 무학에게 이르러 저절로 꺼져버린 것이다. 그때부터 무학은 신불(부처님)의 보호를 받은 수도자라는 소문이 나게 되었다.
무학이 묘향산 금강굴(金剛窟)에서 수도할 때 새벽녘이 되도록 명상에 잠겼다가 새벽 범종이 울리는 소리를 듣고 크게 깨우치게 되었다고 한다. 무학이 원나라로 가서 인도 스님인 지공(指空)대사를 만났다. 그곳에서 저 유명한 나옹선사(懶翁禪師)를 만났는데 그것이 그의 심안이 열리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바로 무학의 스승은 나옹이 된 것이다. 나옹의 어머니는 황급빛 봉황새가 날아와 알 한 개를 떨어뜨린 것을 받는 태몽을 꾸었다고 전해진다. 나옹은 고려 충숙왕 7년(1320)에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명민했으며 사색하기를 좋아하던 그는 20세의 나이에 친구가 죽는 것을 보고 수도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가느냐에 대해 골똘히 파고들다가 결국 수도자가 되었다. 득도하고자 오랜 고행 끝에 중국의 연경으로 들어갔다. 1350년 4월 8일 평강부(平江府)의 휴휴암(休休庵)에서 한철을 보낸 후 그해 8월자선사(自禪寺)에 이르렀을 때 평산처림선사(平山處林禪師)를 만나게 된다. 그는 나옹과의 선문답을 통해 나옹을 천하에 보기 드문 대법기(大法器)임을 알아 보았다. 나옹은 그후 고려에 돌아와 왕사가 되었다. 나옹선사에 23명의 제자가 있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수제자가 바로 자초 무학대사이고 다음이 지천대사이다.
어느날 나옹선사는 꿈을 꾸었다. 가뭄이 바닥난 개천에서 신룡(神龍)이 숨을 헐떡거리며 괴로워하는 것을 보았다. 바로 그때에 신라의 고승인 도선선사가 나타나서 이렇게 말하였다.
“나옹, 그대는 신안통이 있으니 천기를 알 것이네. 자네의 제자 무학에게 일러주시게. 고려는 이제 국운이 쇠하여 왕기(王氣)가 한양으로 옮겨질 것이니 거기에 따른 대업을 맡을 준비를 하라고 이르시게. 지금 가뭄으로 헐떡거리는 저 신룡은 바로 고려의 운명일세. 이미 다시 살아나기는 어렵네. 그러니 새 나라가 일어날 때를 대비하도록 하게. 무학에게 일러 그때에 큰 일을 해낼 인물을 찾으라고 미리 일러주게. 그는 황씨 성을 지닌 잠룡으로서 나라의 근심을 기쁨으로 전환시킬 것이네.”
나옹은 무학에게 그 뜻을 알렸다. 무학대사가 이성계를 돕기까지는 스승 나옹선사의 선견지명에 의한 가르침이 있었던 것이다. 나옹선사의 수제자 무학, 그가 이성계와 인연을 맺은 시초는 이러하다.
이성계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이다. 이성계는 명당을 구하고자 하루에 천리를 마다하고 백마를 타고 산천을 헤매던 중이었다. 함주의 동산에 올라 땀을 씻으며 잠시 쉬고 있는데 발 아래 계곡 쪽에서 말을 나누는 소리가 들려 자세히 보니 스승과 제자로 보이는 두 스님 사이의 명당에 관한 대화였다. 이성계는 노승과 젊은 스님 앞에 꿇어앉으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감히 두 분 선사님께서 명당이 어디인지 가르쳐주시면 그 은혜 백골난망이겠습니다. 이성계는 자리를 떠나는 두 스님을 계속 따라가면서 옷자락을 붙잡고 늘어지며 졸랐다. 노승은 한동안 하늘을 바라보았고, 젊은 스님은 이성계에게 한마디 불쑥 던졌다.
“아까 만난던 그곳으로 가면 흰 사슴이 풀을 뜯다가 달아나는 곳, 그곳이 바로 명당이오. 각별히 덕을 쌓아야 하오, 만약 어긴다면 복이 화가 되리다.”
이성계는 “고맙습니다.”라고 답례한 후 땅바닥에 엎드려 큰절을 올리며 머리를 조아렸다. 젊은 스님이 말해 준 그곳에 이르니, 과연 흰 사슴이 풀을 뜯다가 달아났다. 결국 그곳에 표시를 한 후 아버지 시신을 안장시켰다. 명당터를 알려준 당시의 두 스님 중에서 늙은 스님은 나옹이고 젊은 스님은 무학이었다.
이성계는 어느 날 꿈을 꾸었다. 다 쓰러져가는 집에서 서까래 세 개를 지고 나왔다. 그러자 꽃이 떨어지고 커다란 거울이 땅에 떨어지면서 소리를 내었다. 이상한 꿈을 꾼 이성계는 해몽을 했으면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마침 그때에 어느 늙은 비구니가 탁발을 왔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이성계는 안채로 들어가서 바가지에다 쌀을 한가득 퍼와서 바랑에 담아주었다. 그리고는 이상한 꿈을 꾸었으니 해몽을........부탁하자, “지금 설봉산 토굴 속에는 9년째 면벽 수좌하고 있는 무학대사, 그분을 찾아가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며 일러준다.
이성계는 기쁜 나머지 안채로 들어가 급히 옷을 갈아입고 나와 사흘을 헤맨 끝에 겨우 찾아냈다. 낮에도 컴컴한 곳이라서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바로 그때“무엇을 망설이고 있소, 빈도가 이미 기다린 지 오래인데.....,”그 소리를 듣고 이성계는 주춤주춤하며 동굴 안으로 들어서면서 말했다.
“저는 영흥 사람이온데 안변에 와서 거주하던 중에 참으로 이상한 꿈을 꾸었기에 선사님께 이렇게 해몽을 얻고자 찾아왔으니 하교해 주십시오.”
동굴 속은 제법 넓었고 촛불이 켜져 있었다. 신승은 동굴 속으로 들어온 이성계를 날카롭게 쏘아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어서 꿈 이야기를 해보시오.”라고 말했다. 이성계는 꿈꾼 내용을 말하고 도승의 눈치를 살폈다. 서까래 세 개를 졌으니 사람이 선 형태에 석 삼(三)은 곧 왕(王)자입니다. 장차 만승 천자가 될 왕기가 주어짐을 뜻하옵니다. 공은 소승의 말을 누구에게 섣불리 발설하지 마시고 반드시 대업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그러면서 소승의 시키는 바를 이행하시면 좋을 것이라며 귀뜸해 준다.
이성계 : 무엇인지 즉시 가르쳐주십시오.
소승 : 함경도 길주에는 폐사 직전에 놓인 명적사(明積寺)라는 절이 있소. 오늘 소승을 만난 이 자리에 석왕사(釋王寺)라는 절을 세우셔야 하오. 그리고 명적사에 있는 오백 나한들을 이곳으로 옮기야 하오. 불사를 일으키고 오백성제(五白聖齊)를 올려 천 일간 남모르게 정성껏 공덕을 쌓으면 신불들이감응하여 도울 것이오.
이성계 : 저같은 한미한 출신의 한낱 무사가 어찌 그런 엄청난 일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소승 : 모든 것이 하늘의 뜻입니다. 공은 소승이 읽고 있는 이 서책중에서 아무 글자나 하나 짚어보시오.
이성계 : 물을 문(問)자를 짚었다.
소승 : 그것 보시오, 틀림없이 군왕이 될 것이오.
이성계 : 무엇 때문이지 알고 싶습니다.
소승 : 물을 문(問)을 파자(破子)하면 이리 보아도 임금 군(君)이요, 저리 보아도 임군 군(君)이니 틀림없이 장차 임금이 될 것이라는 암시지요. 그러니 대업을 완성하는 데 있어서 항시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오.
이성계 : 대사님의 가르침을 늘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소승 : 무엇이든지 말씀하시오.
이성계 : 대사님은 여려 해 전에 소생의 부친이 세상을 떠났을 때 명당터를 잡아주신 두 분 선사님 중 한 분이 아니신지요?
소승 : 모든 우주의 삼라만상은 인연으로 얽힌 것이라오. 어서 하산하시오.
이성계는 인사를 드린 후 의아해 하면서도 돌아오다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자기 집에 이르기 전에 어떤 다리 밑에 사는 거지를 만나러 갔다. 거지 중에서도 풍채가 당나라 두목지(杜目之)를 연상시키는 자가 있었다. 이성계는 인물과 풍채가 가장 좋은 젊은 거지 한 명을 골라 집으로 데리고 왔다. 깨끗이 목욕시키고 그에게 값비싼 비단옷을 입혔다. 기름진 음식을 먹이면서 한 열흘을 함께 보낸 후 그에게 말했다.
“애야, 내가 너에게 돈을 듬뿍 줄 테니 내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이성계는 간단한 예절을 가르친 후 무학대사가 있는 곳으로 찾아가서 글자를 짚으라고 하면 물을 문 자를 짚으라고 일러주었다. 거지는 무학대사를 찾아갔다.
무학대사 : 그대는 어찌 왔느냐?
거지 : 소인의 사주팔자, 운명에 관해 알고 싶습니다.
무학대사 : 그래? 그럼 이 서책에서 아무 글자나 짚어보아라.
거지는 이성계가 시킨 대로 물을 문(問) 자를 짚었다. 거지는 열흘 동안에 결쳐 그 글자 한 자를 배웠던 것이다.
무학대사 : 음, 그대는 지금 비단옷을 걸치고 풍채도 당당하긴 하지만 평생 거지로 지내야 할 팔자로구나.
거지 :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요? 소생은 과거에 올라 벼슬하려는 사람인데 당치도 않게 거지라니오?
무학대사 : 내 말을 들어보게, 사람마다 자기에게 주어진 운명과 팔자가 따로 있는 것이야. 그런데 그대는 물을 문 자 밑에 입 구(口) 자가 붙었으니 남의 대문 밑을 찾아다니며 구걸하고 살 팔자로세. 같은 글자를 놓고서도 이렇게 서로 뜻이 다른 풀이를 하였다. 거지는 돌아와서 이성계에게 사실대로 보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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