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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7:37~39 생수의 강
히스기야는 실로암 수로를 팠다고 전해지는데,
그는 다윗 이래로, 타락한 나라를 재건한 다윗의 버금가는 왕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무너진 제사를 회복하였고, 유월절을 복원하였으며, 성전을 개혁하고, 우상을 타파하였으며, 하나님께 감사예물과 십일조를 회복하였으며, 국방과 모든 일을 정의와 진실함으로 행하였으므로, 하나님께 형통함을 받았다고 한다.
대하3:20~21 히스기야가 온 유다에 이같이 행하되 그의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선과 정의와 진실함으로 행하였으니 그가 행하는 모든 일 곧 하나님의 전에 수종드는 일에나 율법에나 계명에나 그의 하나님을 찾고 한 마음으로 행하여 형통하였더라
그리고 히스기야는 실로암 곧 필요한 물을 다윗 성으로 끌어오는 일도 하였는데, 이것이 실로암의 기원일 것이다.
대하32:30 이 히스기야가 또 기혼의 윗샘물을 막아 그 아래로부터 다윗 성 서쪽으로 곧게 끌어들였으니 히스기야가 그의 모든 일에 형통하였더라
이 실로암 물은 유대인들이 물을 긷는 연못이 되었는데, 초막절 7일 동안 매일 제단 옆의 은 그릇에 붓는 의식을 행하였다. 삼대 절기가 있는데, 유월절 칠칠절 그리고 초막절이다. 초막절은 원래, 출애굽 광야 시절 광야에서 야자나무 가지 같은 걸로 지은 임시 처소를 의미하는데, 매우 허름한 처소였다. 그러므로 지금도 이스라엘은 어려웠던 출애굽 광야시절을 기억하려고, 일부러 좋은 집을 두고, 밖에 초막으로 집을 만들어 임시로 초막절 기간동안 거주한다고 한다. 그러나 가나안에 들어오면서 초막절은 그 의미가 추수감사절로 바뀌는데, 온갖 농사의 열매를 거두는 절기로 의미가 역전되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사건 이후로 초막절은 성령의 내주와 열매를 의미한다. 그런데 실로암 물은 이는 그들의 선조 곧 모세 때 광야에 있을 때 바위에서 이적으로 솟아나온 물을 기념하는 뜻으로, 이 물을 가지고 특별히 명절 끝날 곧 큰 날이라고 하는 날에는 제사장이 실로암 연못 물을 금주전자에 떠와 제단에 바치며 구원의 언약과 찬양을 부르며 물의 축제로 끝을 장식 하였다.
사12:2~3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이 실로암은 수로이자, 연못으로 천천히 흘렀다. 성령의 평안함을 의미한다.
요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그런데 이사야가 지적한 것은, 이 백성이 생수의 근원 평안한 생명수를 버리고, 다른 물을 기뻐하였다는 것이다.
사8:6 이 백성이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리고 르신과 르말리아의 아들을 기뻐하느니라
물살이 빠른 곳에는 고기가 별로 없듯이, 천천히 흐르는 실로암 연못은 생명을 의미하며, 구원의 샘 곧 성령을 의미한다. 세상의 물을 따라가면, 나중에는 더 목마르게 된다. 사람 속에는 채울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다. 어거스틴은 하나님만이 그것을 채우실 수 있다고 하였다. 그것을 채워보려고, 술 또는 유흥 또는 쾌락 돈 또는 여러 가지로 채워보려고 하지만, 세상으로는 채워지지가 않는다. 오히려 바닷물을 마신 것처럼 더 목마를 뿐이다. 바울이 빌립보 감옥에서 나왔을 때, 어떤 간수가 그런 목마름이 있어 그것을 말하였는데,
행16:30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어거스틴은 쾌락에 빠져보기도 하고, 자식을 낳기도 하고, 또한 지식을 쌓아 교수가 되기도 하고, 마니교에 빠지기도 하였는데,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러한 마음속의 갈급함을 채우기 위하여 산 것이다. 그런데 그의 어머니 모니카는 아들을 위해서 오랫동안 기도하였는데, 어거스틴은 성경은 무식한 자들의 책이라고 생각했다. 모니카는 암브로시우스에게 설교를 들었는데, 암브로시우스는 기도하는 어머니의 자식은 망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러다가 어거스틴도 암브로시우스의 설교를 듣게 되었고, 암브로시우스의 설교에서 기독교인이 다는 무식하지 않다고 생각하였고, 그러던 어느날 그는 아이들의 노랫소리 “들고 읽으라 들고 읽으라”는 소리를 듣고 성경을 폈는데, 롬13:13~14절이었다.
롬13:13~14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이 말씀에 사로잡힌 그는 믿음을 갖게 되었는데, 훗날 그는 “신앙의 빛이 내 마음에 홍수처럼 밀려 들어와 모든 의심의 어둠을 몰아내는 것 같았다”고 하였다.
나도 제대하고 쾌락에 빠져서 부끄러운 삶을 살았는데, 그동안 부모님은 나를 위해서 기도해주셨다. 그리고 아버지가 교회를 개척하시고, 예배에 참여하던 중 외증조부의 성경을 발견하였는데, 아니 성경인지, 누더기인지, 모를 만큼 엄청 많이 읽은 성경이었는데, 아니 도대체 성경이 뭐길래 이렇게 읽을 수가 있냐. 만화책도 전공서적도 이렇게는 읽으라고 해도 못 읽는다. 성경에 뭔가 있기는 있는게 분명하구나. 그래서 아버지 나 성경 읽고 싶어요 하니, 현대어 성경을 주셨는데, 어디부터 읽어요 하니까 마태복음부터 읽어라 그래서 읽는데,
마10: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로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이 말씀으로 구원을 받았는데, 말씀이 생명수이다. 예수께서 초막절 끝날에 외쳐 말씀하시기를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하셨다.
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와서 마시라는 것은, 하나님께로 오라는 것이다.
사55:1~7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 보라 내가 그를 만민에게 증인으로 세웠고 만민의 인도자와 명령자로 삼았나니 보라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네가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네게로 달려올 것은 여호와 네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말미암음이니라 이는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할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아멘.
유대인이든 헬라인이든 로마인이든, 상관없다. 철수든 영희든 나까무라든 왕서방이든 상관없다. 데이비드든 효돌스키든 알간디 모르간디든 상관없다. 베드로가 로마사람 고넬료의 집에서 복음을 전할 때, 복음을 들은 고넬료와 집 사람들에게 성령이 내려오셨다. 사람 속에 영적 갈증이 있다. 이것은 고기를 아무리 먹어도 안 채워지고, 술 이성으로도 안 채워지는 하나님만 채울 수 있는 갈증이다. 자력수행으로 얻는 카타르시스와도 다르다. 그런데 성령이 임하는 것은 솔직히 모른다. 성경에 여러 가지 경우의 수가 있으나,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요3: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죄는 회개해야 한다. 율법을 지켜야 한다. 법을 지켜야 한다. 양심대로 살아야 한다. 내 맘대로 살면 이성과 양심 법을 무시하고 살면 어떻게 되나. 그래서 학교 법원 경찰 군인 교도소가 있다. 그런데 아무리 잘 지키려고 해도 한계가 있다. 그리고 엄밀히 볼 때, 아무도 완벽하게 그렇게 살지 못한다. 바리새인 사도바울도 율법으로는 흠이 없다고 자부하였으나, 깊이 율법의 빛으로 들어가 보았을 때, 오히려 그는 자신의 몸이 사망의 몸이라는 것을 깨닫고 절규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그때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였다.
롬7:21~25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예수께서 아직 십자가 수난을 받기 전이셨으므로, 아직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지 아니하셨다.
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사람은 행위로는 아무도 구원을 받을 수가 없다. 선한 행위가 소용없다는 말이 아니다. 열심히 선한 행위를 해야 한다. 그런데 그것으로는 구원받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사람 자체가 죄인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그것을 다각도로 말하고 있는데, 우리 조상 아담이 범죄한 후로, 콩 심은데 콩나고, 팥심은데 팥나듯이, 죄인으로 태어난다. 죄는 안 가르쳐줘도 저절로 잘한다. 그러므로 죄를 여러 가지로 묘사하는데, 모세는 나병환자로, 이사야는 중증환자로, 예레미야는 표범가죽으로, 에스겔은 음녀로 비유하였는데, 무엇보다도 예수께서 그것을 적나라게 말씀하셨다.
막7:21~23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또한 그것을 고발하는 것이 바로 율법이다. 613가지라고 한다. 모세는 이렇게 말하였는데,
갈3:1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모세는 율법을 항상 지키지 않는 자는 율법이 고발하는 죄로 말미암아 율법의 형벌의 저주 아래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땅에 오신 것은, 십자가에서 이 저주를 대신 받으시기 위함이었다.
갈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마가복음에서 예수께서는 자신을 대속물로 표현하셨는데,
막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로마서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화목제물로 표현하였다.
롬3:23~27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그러므로 전능자 하나님이! 죄인의 대속물 화목제물로 오셨다는 것이다. 그것을 창세기에서부터 야곱이 예언하였는데, 야곱은 실로가 유다 지파에서 올 것을 예언하였는데,
창49:10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실로는 메시아를 의미하는데, 성자 곧 예수 그리스도 메시아를 가리킨다. 그리고 성부 성자는 성령의 담지자로, 성령을 보내신다. 요한복음은 다른 복음서보다 성령에 대해서 많이 말하는데, 예수께서 떠나시면, 그 자리를 성령께서 대신하신다는 것이다.
요14:16~17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성령님은 삼위 하나님의 세 번째로 인격적인 하나님이다.
요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요16:13~14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바울은 성령충만함을 받으라고 하였는데, 성령을 계속 받아야 한다. 그것은 샘물과 같다. 졸졸 흐르는 시냇물이 아니라, 생수의 강이 흐르도록 해야 한다.
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아멘.
-실로암-
어두운 밤에 캄캄한 밤에 새벽을 찾아 떠난다.
종이 울리고 닭이 울어도 내눈에는 오직 밤이었소
우리가 처음 만난 그 때는 차가운 새벽 이었소
당신 눈 속에 여명 있음을 나는 느낄 수 가 있었소
오 주여 당신께 감사하리라 실로암 내게 주심을
나에게 영원한 이 꿈 속에서 깨이지 않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