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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임재와 개입의 축복(1-2)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수고가 헛되지 않게 하십니다. 우리는 일에 능숙해지고 연륜이 쌓일수록 자력으로 해냈다는 생각에 모든 공을 자신에게 돌립니다. 하지만 혼자만의 수고와 열심은 언제 무너질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지켜주심이 필요치 않은 순간은 없습니다.
1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2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1-2)
시편 127편의 첫 두 절은 ‘하나님의 임재와 개입이 없는 인생의 활동은 다 헛되다’라는 교훈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 교훈은 ‘만약 여호와께서 하지 아니하시면’이라는 조건을 알리는 절과 ‘~가 헛되다’라는 결과를 알리는 절을 결합한 문장 구조로 나오며, 세 가지 예를 통해 제시됩니다. 각 예문에서는 ‘헛되며 헛되도다’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이는 히브리어로 ‘샤브’로서 ‘가치 없음’, ‘헛됨’, ‘텅 빔’, ‘거짓’, ‘속임’ 등의 뜻을 나타내며, 이런 뜻이 담겨 있기 때문에 ‘우상’을 지칭할 때도 사용되었습니다(시 31:6; 렘 18:15). 이 단어는 전도서에서 나오는 ‘헛되다’와 다릅니다. 세 가지 예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시겠습니다. 첫째, 집을 짓는 데 있어 하나님의 개입이 없으면 허사입니다. ‘집’이란 단어는 개인과 가족의 거주지(신 22:8), 왕의 궁궐(삼하 7:1,2), 동물의 은신처(욥 39:6; 잠 30:6), 이방신의 사당(왕상 16:32), 하나님의 성전(삼하 7:5,13; 슥 1:16)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1절의 ‘집을 세운다’는 표현은 문자적으로는 거주지를 건축하는 일을 뜻하면서도, 상징적으로는 한 가정이나 가문을 세우는 일(암 7:16) 또는 왕의 경우, 왕조를 세우는 일(삼하 7:11,16)을 함축합니다. 가문이나 왕권을 설립하는 중대한 일에 하나님의 개입이 없다면, 그 일에 가담하는 자들의 수고와 노력이 헛되며 미래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둘째, 성을 지키는 데 있어 하나님의 개입이 없으면 허사입니다. 파수꾼은 적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엄중한 임무를 수행하는 자들이나, 성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그들과 도성에 미치지 않는다면, 이들의 수고는 물거품이 될 것입니다. 셋째, 일상생활에 하나님의 개입이 없으면 모든 수고와 그 결과도 허사입니다. 이 셋째 예(2)는 1절의 첫째, 둘째 예와 구조와 내용 면에서 달라 듣는 이의 주의를 끕니다. 먼저 구조면에서, 2절에서는 1절의 ‘여호와께서 하지 아니하시면’이라는 조건절이 생략되었습니다. 대신 ‘그러므로’로 시작하는 문장이 부가적으로 나왔습니다. 내용 면에서는, 1절의 두 에는 건축과 파수라는 제 3자의 특정적이고 중요한 일을 예로 들었습니다. 그러나 2절에서는 ‘너희’ 즉, 청중에게 초점을 맞추어, 대부분 가정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 즉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하는 수고를 예로 들었습니다. 2절의 첫 문장은 직역하면 ‘일어나기를 일찍이 일어나고, 앉기를 미루며, 수고들의 빵을 먹는 것이 너희에게 헛되다’입니다. 여기서 ‘앉기를 미룬다’는 말은 휴식을 미룬다는 말로 쉬지 않고 일하는 모습을 강조합니다. 이 예에서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의 개입이 없다면, 사람의 일상적인 노동과 노력만이 허사가 아니라, 그로 인해 얻은 결과물(‘수고의 떡’)조차 허사임을 강조합니다.
2절에 부가적으로 나온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의 해석에는 몇 가지 의견이 제시되었습니다. 이 번역은 히브리어 원문의 직역으로 개역개정을 비롯한 대부분의 번역본(KJV, ASV, NIV, ESV 등)에 등장합니다. 반면, 몇몇 번역본(NAU, NAB, TNK)은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가 잠을 자는 동안에도 복을 주신다’는 의미로 번역하였습니다. 어떤 번역이든, 분명한 것은 ‘잠’이 하나님의 축복을 뜻한다는 점입니다. 다만, ‘잠’ 자체를 하나님의 축복의 잣대로 보는 것, 잠이 많은 자나 잠을 잘 자는 자가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라는 주장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그런 해석은 문맥을 고려하지 않은 데서 나왔다고 봅니다. 2절에서 시인이 갑작스레 잠에 대해 언급하는 듯하지만, 잠에 대한 언급은 오히려 자연스럽습니다. 일찍 일어나 잠자리에 들기까지 앉기를 미루고 일하는 자들에게 현실적으로 가장 필요한 것이 잠이기 때문입니다. 잠은 히브리어 ‘쉐나’로 ‘헛되다’인 ‘샤브’와 같은 자음 소리로 시작하고 끝나므로, 결과적으로 자음 하나만 다른 단어입니다. 시인이 이러한 언어유희를 이용하여 고된 일상을 보내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잠은 하나님의 개입과 축복임을 말한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원문 그대로의 의미로 읽어도 전혀 무리가 없습니다.
자녀의 축복(3-5)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땀 흘려 수고함으로 생을 이어가도록 하셨지만, 노동 자체가 목적은 아닙니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수고해도 잠 못 드는 인생이라면 어디에서 쉼을 얻겠습니까. 노동의 완성은 안식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의지하며 수고하는 백성에게 쉼을 주십니다.
3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4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5이것이 그의 화살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그들이 성문에서 그들의 원수와 담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3-5)
3절은 ‘보라!’로 시작하여 청중의 주목을 끈 후 자녀를 예로 들어 부모와 하나님과의 관계, 부모에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을 5절까지 설명합니다. 1-2절이나 3-5절 모두 하나님의 간섭과 하나님 덕분에 얻게 되는 유익을 담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시 전체에서는 성벽 있는 도성 안에서 사는 사람들과 삶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 증거로 시에 언급된 사람들로는 건축자, 파수꾼, 일반인, 자식, 부모, 원수가 있으며, 관련 장소로 집, 성, 성문이 언급되었고, 이들과 장소에 관련된 일이 설명되었습니다. 127편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의 하나이며, 이 표제가 있는 시 대부분이 ‘시온’과 ‘예루살렘’에 대한 평안을 기원하거나 언급하기 때문에(시 122:6-9; 125:1-2; 126:1; 128:5; 129:5; 132:13-18; 133:3; 134:1-3), 이 시와 나머지 시의 배경이 되는 장소를 시온 성이나 예루살렘 성으로 보아도 무방합니다. 또한 ‘자식’(바님)은 발음상 1절의 ‘세우는 자’(보님)를 상기시킵니다. 집을 짓는 행위는 가문이나 왕조를 세우는 상징적 의미와도 연결되므로, 가문과 왕조를 세우는 데 필수 요소인 ‘자식’에 대한 언급과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시인은 자식을 ‘하나님의 기업’으로 소개하는데(3), 기업이란 ‘땅’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에게 땅은 ‘가나안 땅’이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언약(창 12:7; 13:14-17; 15:7)을 통해 받은 산물입니다. 이 기업은 각 지파에 따라 분배되었고(수 12:23;13-19장), 지파의 각 가정은 분배받은 땅을 후손에게 유산으로 물려주어 대대로 삶의 터전으로 삼을 수 있었습니다. 땅이 하나님의 것이듯(레 25:23), 각 가정에 주신 자녀도 하나님의 소유입니다(출 19:5). 땅이 한 가정에게 유업이 되듯, 자식도 대대로 출생하여 가문과 왕조의 대를 세웁니다. 한편, 기업은 기본적인 ‘땅’의 의미 외에도 이스라엘과 하나님에게 적용되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기업’(사 19:25; 렘 12:7-9)으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기업’(민 18:20: 신 10:9; 수 13:14; 시 119:57)으로 불렸습니다. ‘기업’이라는 개념은 언약을 통한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의 친밀하고 연속적인 관계를 함축합니다. 자녀는 ‘태의 열매’와 ‘하나님의 상급’으로 설명되었습니다(3). ‘태의 열매’는 어머니의 뱃속에 아이가 잉태된 상태를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어구입니다. 각 여인의 태를 열고 닫는 권한이 하나님께 있으므로(창 20:17-18), 태를 열어 아이를 잉태하게 하신 것(창 20:17; 25:21-22)을 하나님의 상급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자녀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자들입니다(창 33:5).
4-5절은 자녀가 잉태되고 태어난 것만이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라, 자녀가 있음으로 인해 따라오는 힘, 유익, 행복도 하나님의 축복임을 묘사합니다. ‘젊은 자의 자식’(4)은 ‘젊을 때 낳은 자식’이라는 뜻이며, 이와 같은 자식은 용사의 손에 있는 화살들로 비유되었습니다. 용사에게 있어 화살이나 창은 용사가 전장에 나갔을 때 그의 생명을 지켜줄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인 수단입니다. 이처럼 자식도 부모에게 있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것입니다. 더구나 용사의 화살통에 화살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가 적과 더 오래 겨룰 수 있는 원천이 되듯, 자녀도 많으면 부모가 어려움을 당할 때 큰 힘이 되므로 그 부모는 행복한 자입니다(5). 특히 부모가 성문에서 원수와 말할 때(‘담판할 때’로 번역됨), 그들 사이에 오가는 말에 자녀가 나서서 부모를 지지해 주거나 분별력 있게 행동하여 원수에게서 수치를 당하지 않도록 막아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성문’은 마을의 경제 활동이나 작고 큰 소송의 해결을 위한 재판 등이 진행되는 곳입니다. 이같이 자녀의 진가가 부모의 삶에 나타나는 모습은, 하나님과 함께하며 수고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잠으로 평안케 하시듯(2), 자녀와 부모의 삶에 하나님의 개입과 축복이 지속되고 있음을 암시합니다(3).
각자도생도 힘든 시대에 노동 강도는 점점 강해지고 쉼의 자유는 박탈되고 있다. 우리의 모든 수고와 노동의 버거움을 아시는 하나님은 그럴수록 하나님을 의지하고 맡겨야 함을 일깨워주신다.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 세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