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롱초롱 박철홍의 고대사도 흐른다.23
ㅡ 고구려 시조 동명성왕(주몽) 탄생설화 ㅡ
주몽!
2006년 '주몽' 이라는 81부작 'KBS 대하역사드라마'가 선풍적인 인기를 끈 적이 있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우리 대부분은 '주몽'하면 그저 고구려를 건국하고 활 잘 쏘는 남자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난 드라마를 띄엄 띄엄 일부만 봤고 전체적으로 본 적은 없다. 그러나 줄거리는 대략 알고 있다.
고구려를 건국한 시조 '주몽' 즉 '동명성왕(東明聖王)' 탄생설화에는 출생 신비감과 주몽 능력에 대해 잘 나와 있다.
동명성왕에 관한 탄생설화는 <광개토왕비문>을 비롯하여 <모두루묘지>, <위서>, <삼국사기>, <동국이상국집>, <삼국유사> 등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기록된 원본 내용을 일부 살펴 보자.
[옛날에 시조 '추모'(주몽)왕이 나라를 세웠다. 북부여에서 태어나셨는데, 천제(天帝)의 아들이고, 어머니는 하백(河伯)의 딸이었다. 알을 깨고 세상에 났는데, 태어나시면서 성스러운 기운이 있었다.]
ㅡ '광개토왕비문'의 일부 ㅡ
[고구려는 부여에서 갈라져 나왔는데, 스스로 말하기를 선조는 주몽이라 한다. 주몽의 어머니는 하백의 딸로서 부여 왕에게 잡혀 방에 갇혀 있던 중 햇빛이 비치는 것을 몸을 돌려 피하였으나 햇빛이 다시 따라와 비추었다. 얼마 후 잉태하여 알 하나를 낳았는데, 크기가 닷 되들이만 하였다. 부여 왕이 그 알을 개에게 주었으나 개가 먹지 않았고, 돼지에게 주었으나 돼지도 먹지 않았다. 길에다 버렸으나 소나 말들이 피해 다녔다. 뒤에 들판에 버려두었더니 새들이 깃털로 그 알을 감쌌다. 부여 왕은 그 알을 쪼개려고 하였으나 깨뜨릴 수 없게 되자 결국 그 어미에게 돌려주고 말았다. 그 어미가 다른 물건으로 이 알을 싸서 따뜻한 곳에 두었더니 사내아이 하나가 껍질을 깨뜨리고 나왔다.]
ㅡ 위서 ㅡ
[나이가 겨우 일곱 살이었을 때 남달리 뛰어나 스스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 쏘면 백발백중이었다. 부여말에 ‘활 잘 쏘는 사람’을 주몽이라 하였으므로 이것으로 이름을 삼았다. 금와에게는 일곱 아들이 있어서 항상 주몽과 더불어 놀았는데, 그 기예와 능력이 모두 주몽에 미치지 못하였다. 그 맏아들 대소가 왕에게 말하였다. “주몽은 사람이 낳은 것이 아니고 사람됨이 용맹스럽습니다. 만약 일찍 일을 도모하지 않으면 후환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청컨대 없애버리십시오.” 왕은 듣지 않고 그에게 말을 기르게 하였다. 주몽은 날랜 말을 알아내어 먹이를 적게 주어 마르게 하고, 둔한 말은 잘 먹여 살찌게 하였다. 왕은 살찐 말은 자신이 타고, 마른 말은 주몽에게 주었다. 후에 들판에서 사냥할 때 주몽이 활을 잘 쏘기 때문에 화살을 적게 주었지만 짐승을 매우 많이 잡았다. 왕자와 여러 신하들이 또 죽이려고 꾀하자 주몽의 어머니가 이것을 눈치 채고 (주몽에게) 알렸다.]
ㅡ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동명성왕 즉위조 ㅡ
위 내용으로 81부작이나 되는 기나 긴 '주몽'이라는 '대하역사 국민드라마'를 만들어 냈다. 신비한 탄생설화 치고는 너무 상세히 나와 대하드라마가 가능했을 것이다.
그런데 주몽의 탄생설화가 부여를 건국한 시조 '동명왕' 탄생설화와 거의 같다시피 흡사하다.
주몽이 부여에서 왕자로 살다가 떨어져 나왔기에 부여시조 '동명왕' 탄생설화를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한 뒤 그대로 베껴 정통성을 확립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아래는 부여시조 '동명왕' 탄생설화이다.
[북이(北夷) 탁리국(橐離國) 임금(영품리왕)을 모시던 무수리[侍婢]가 임신했다. 임금이 무수리를 죽이려고 하니 무수리가 아뢰되 "크기가 달걀만한 기운이 하늘에서 내려오더니 쇤네가 아이를 뱄습니다"라고 하였다. 나중에 아이를 낳았다. 돼지 우리[豬溷] 안에 (아이를) 버리니 돼지들이 입김을 불어 아이가 죽지 않게 했다. 다시 마구간[馬欄]으로 옮겨 말이 (임금) 대신 아이를 죽이게 했다. 말도 입김을 불어 아이가 죽지 않게 했다. 임금이 하늘의 아들이 아닐까 생각하고 그 어미에게 명하여 거두어 노비처럼 키우게 했다. '동명'이라 이름짓고 소와 말을 돌보게 했다. 동명은 활을 잘 쐈다. 임금은 (동명에게) 나라를 빼앗길까 두려웠다. 동명을 죽이려고 하니 동명이 달아났다. 남쪽 엄수(掩水)에 이르러 활로 물을 치니 물고기와 자라가 떠올라 다리를 만들었다. 동명이 건너자 물고기와 자라가 흩어졌다. 추격병들은 건너지 못했다. 그리하여 부여(夫餘)에 수도를 정하고 임금이 되었다. 이것이 북이(北夷) 땅에 부여(夫余) 나라가 생긴 연유(緣由)다.]
이 탄생설화는 중국사서 '논형'에 나온다.
우리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역사서 '논형'은 중국 한나라의 '왕충'이라는 역사덕후가 쓴 엄청난 책이다. 한 명의 개인이 백 명 보고 쓰라 해도 못 쓸 만한 양, 세상 소문까지 다 모은 듯 거의 백과사전 저리 가라할 수준의 엄청난 양의 역사 이야기를 써놨기 때문에 현재 세계 동양사학계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사자료로 쓰이고 있다. 물론 '논형'에 나오는 모든 내용이 팩트일 수는 없으나, 한반도나 만주 이야기까지 저렇게 열심히 써놓는 성의를 보였기에 역사학자들도 크게 인정하는 책이다.
만약 논형에서 동명왕 탄생설화를 기록해 놓지 않았다면 주몽 탄생설화는 복사본이 아닌 완전 창작본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고구려는 소수림왕 대에 이르러 고구려 초기역사를 정비하면서 부여시조 <동명왕 탄생설화>를 베껴 <주몽탄생설화>를 만들었으며, 이를 감추기 위해 동명왕을 천제아들로 설정한 '해모수'로 바꾸거나 교체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고구려가 굳이 이렇게 한 이유는 천제혈통이란 설정을 부여해 고구려 시조 주몽의 고귀함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구려 소수림왕은 이왕 건국시조 탄생설화를 베낄 빠에는 좀 더 각색해서 티가 안 나게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렇지 않고 고구려가 내놓고 탄생설화를 거의 그대로 베낀 것은 고구려가 부여의 후손이 세운 나라이며 고구려는 계속 부여를 따르고 싶다는 것을 천명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고구려 소수림왕 시대까지도 당시 부여 영향력이 고구려에 어느 정도 였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 주는 일이다.
<주몽설화>는 단순한 역사적 사실을 넘어서, 주몽의 신성한 기원과 그의 영웅적 행적을 통해 고구려의 정통성을 강조하고 고구려 민족 자부심을 고취하는 역할을 해왔다.
주몽 탄생설화는 한국 여러 역사서와 문학작품, 드라마 등 에서 다양하게 다루어져 왔다.
특히 kbs 대하드라마 '주몽'이 큰 인기를 끌면서 '주몽'을 현재 우리에게도 알에서 태어난 신화적 인물만이 아닌 친숙한 역사적, 현실적 인물로 다가오게 해 주었다.
아직 드라마로는 방영되지 않은 주몽과 거의 같은 동시대에 존재했고, '난생설화'를 가진 '박혁거세'나 '김수로왕'등은 아직도 여전히 전설적, 신화적 인물로 남아있다.
주몽 탄생설화 내용 중에는 주몽이 강을 건너며 기적적인 사건을 겪기도 한다. 주몽이 부여군에 쫒겨 강을 건널 때 물고기와 자라가 다리를 만들어 주어 그를 도왔다는 이야기이다. 강 위치만 다르지 부여시조 동명왕 탄생설화 내용 그대로 이다.
어쨌던 이후 '졸본' 지역에 도착한 주몽은 고구려를 건국하고, 자신을 '동명성왕'이라 칭하게 된다.
고구려 발상지인 압록강 중류 지역은 요동지역이나 동해안으로 통하며, 남으로 대동강 유역 평야지대, 북으로 송화강 유역 평원지대로도 통할 수 있는 교통로상 중요지점이다.
또한 고구려 최초 발상지인 '졸본'지역(오늘날 중국 요녕성 환인)은 꽤 넓은 분지를 이루고 있다. 이 지역 기후는 중국 동북 지역에서 가장 온난하며 강수량도 풍부하여 사람이 살기에 적합한 곳이다.
이처럼 주몽이 지리적 위치 이점이 있는 곳에 고구려 터를 잡았기에 고구려가 발전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하였다.
고구려는 건국 초기부터 정치적 안정과 영토확장을 목표로 했다.
고구려가 초기에는 부여와 같은 북방 유목민 영향을 받아 정복국가로서 중국 "낙랑'등 한나라 군현을 정복하여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출발은 유목민족처럼 정복국가로 시작했으나 고구려는 초기부터 농경사회로서의 특성도 지니고 있었다.
주몽에게는 '소서노'라는 부인이 있었다.
사실, '소서노'는 주몽이라는 드라마가 나오기 전까지는 거의 듣지 못 했던 생소한 이름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몰랐을 뿐이지 역사적 사실로 보았을 때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강력한 여인이었다.
'소서노'란 여인이 직, 간접적으로 무려 세 나라(고구려, 비류백제, 온조백제)나 건국하는데 큰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관련 정도가 아니라 이 세나라를 직접 건국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소서노'는 고구려 건국시조 '주몽'의 부인이자 백제 건국시조 인 '비류'와 '온조'의 어머니이다.
그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이어하겠다.
ㅡ 초롱박철홍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