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율리시스 원문 읽기의 여정: 고독한 독서, 존재의 탐색
1904년 6월 16일, 더블린.
바로 그 하루 동안의 이야기.
그 하루가 인류 문학의 하나의 우주가 되었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원문으로 읽어내려가는 일은 단지 책을 읽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한 인간의 의식의 미세한 떨림과 혼란, 기억과 욕망, 희망과 회한을 언어로 직조해낸 거대한 정신의 모험에 동참하는 일이다. 그 여정은 복잡하고 어지럽지만, 그만큼 풍요롭고 깊다.
🌊 왜 원문으로 읽는가?
번역은 독자의 세계에 문을 열어주는 동시에 작가의 세계를 흐리게 만들기도 한다. 조이스는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 시대, 장소, 심리, 역사를 농축해 둔 작가다. 그 언어를 본래의 리듬과 어조로 느껴보고자 한다면 원문 읽기는 유일한 통로다.
조이스는 언어의 경계에서 춤춘다. 문법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단어를 해체하고, 심지어는 신조어를 만들어낸다. 그 혼란 속에서 오히려 언어의 본질, 의식의 구조, 그리고 인간 존재의 중심을 느낄 수 있다.
🔱 제1장 ‘텔레마커스’ – 아버지를 잃은 시대의 아들
율리시스의 제1장은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 텔레마코스가 아버지 오디세우스를 찾아 떠나는 여정에 해당한다. 그러나 조이스의 텔레마커스는 한낱 독립하지 못한 젊은 예술가 스티븐 데덜러스일 뿐이다. 그는 더블린의 마틴 타워에 머물며, 같은 방을 쓰는 벅 멀리건과 충돌한다. ‘말장난을 좋아하는 유쾌한 불경자’ 벅과, ‘내면의 고통과 예술의 절박함을 간직한 철학자’ 스티븐의 대립은 단지 성격 차이가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의 차이, 그리고 주체의 존재방식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 의식의 흐름, 언어의 실험
제1장부터 조이스는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스티븐의 시점에서는 단어가 사유를 따라가고, 사유는 언어를 선도한다. 인물의 겉말과 속생각은 일치하지 않으며, 시점이 어느새 독자에게 스며든다.
예컨대 스티븐이 ‘우리는 다른 자의 눈으로 자신을 본다’며 내면을 절규할 때, 독자는 어느새 그의 상처 속으로 들어가 있다. 죽은 어머니의 유령, 자신이 하지 않은 기도, 종교적 죄책감, 타인의 조롱이 복합적으로 뒤엉킨 채, 하나의 문장으로 독자의 정신을 압박한다.
🧭 주제: 잃어버린 아버지, 세계와의 불화, 정체성의 부유
텔레마커스는 아버지를 찾아 떠났지만, 스티븐은 잃어버린 ‘상징적 아버지’를 갈망한다. 여기서 아버지란 단순한 육체적 존재가 아니다. 권위, 신념, 언어, 민족, 종교, 전통을 대표하는 존재다. 그러나 아일랜드는 제국주의로부터 상처받았고, 가톨릭은 더 이상 구원의 언어가 되지 못하며, 아버지는 죽어버렸다. 조이스가 설정한 이 출발점은 곧 현대인의 정체성 부재, 정신적 부양 상태를 상징한다.
스티븐은 더 이상 누구도 믿지 않지만, 그렇다고 자신을 믿을 수 있는 확고한 토대도 없다. 고독하고, 냉소적이며, 자의식에 갇힌 존재로 등장한다. 그는 예술을 믿고자 하나, 아직 언어는 불완전하다. 그래서 그는 말을 더듬고, 말 속에서 자신을 찾는다.
🔍 제1장을 읽는다는 것
이 장은 익숙한 이야기의 출발이 아니다. 독자는 더블린 타워 위에서 벌어지는 짧은 일상과 신경질적 대화를 따라가면서, 어느새 자신도 ‘모욕감’, ‘불화’, ‘상실’의 공기를 마시게 된다. 조이스는 이 장면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은유한다. ‘잃어버린 권위와 신념의 시대에, 무엇으로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렇기에 제1장은 책의 ‘입구’이자 ‘미로’다. 여기를 통과하지 못하면 율리시스는 영영 낯선 언어로 남을 것이고, 통과한다면 그 이후의 장들은 점차 인간 삶의 총체로 모습을 드러낸다.
✒️ 독서의 태도: 빠르게 읽지 말 것, 이해하지 못한 채 넘기지 말 것
율리시스는 시간의 효율로 읽는 책이 아니다. 어쩌면 수십 번, 한 문장을 되새김질해야 한다. 상징은 해체되고, 의미는 흩어진다. 그때마다 독자는 멈춰야 한다. 그리고 자기 안의 ‘스티븐’을 만나야 한다. 조이스는 독자에게 묻는다. 너는 누구냐. 너는 무엇을 믿고 살아가느냐. 그 질문은 해답을 기대하지 않기에 더 깊고 진실하다.
🏁 마무리하며: 고독한 읽기의 연대
조이스는 이런 말을 남겼다.
“I’ve put in so many enigmas and puzzles that it will keep the professors busy for centuries.”
(수수께끼와 퍼즐을 잔뜩 넣어놨으니, 교수들이 수세기는 이 책에 매달릴 거다.)
하지만 이 책은 교수들만의 것이 아니다. 삶을, 언어를, 고통과 미를 사랑하는 모든 이의 것이다. 원문을 읽으며 헤매는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 나 또한, 페이지와 문장 사이에서 길을 잃고 다시 길을 찾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