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 얻은 것 같으리라
고전 3:14-15
[그레고리 K. 비일의 성전 신학]
그리스도의 터 위에 세워진 새로운 성전으로서의 성도들은 종말의 때에 공적을 시험하는 불을 통과해야 하는 일이 남아 있다. 고전 3:13 이하의 공적에 대한 불의 심판은 말라기 3-4장의 불 시험과 흡사하다. 이것은 바울이 말라기 3-4장을 의식하고 발전시킨 것이라고 비일은 말한다. 비일은 또한 바울이 교회가 “성령의 전”(고전 6:19)임을 환기시키면서 고린도교회 개개인과 그들의 공동체가 자신의 몸을 깨끗이 함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할 것을 강조했다고 말한다. 아래의 내용을 확인해 보자.
마지막 심판 때의 불은 성전의 터 위에 세워진 "각 사람[목회자]의 공적을 시험"할 것이다. 이것은 곧 하나님이 양 무리의 "참된 재료"를 검사하실 것임을 뜻한다(고전 3:13). "만일 누구든지[목회자]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그[목회자]는 상을 받고"(고전 3:14). 달리 말해서 만일 양 무리가 심판의 불을 성공적으로 잘 통과하면, 목양 지도자는 구원받은 영혼들을 상으로 받을 것이다.(마찬가지로 계 3:10에 따르면 “나[그리스도]의 말씀”을 성실하게 “지킨” 자들(참조 3:3, 8)은 다가올 “시험”을 잘 통과하고 “승리”를 거둘 것이요(3:10, 12),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않을” 것이다(3:12).) "누구든지[목회자]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아" 그의 회중(일부 또는 전부; 고전 3:15a)을 잃을 것이다. 이런 경우에 기독교 지도자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을" 것이다(고전 3:15b).
바울이 고린도에 있는 성전으로서의 교회의 건축에 관해 말하고 있음은 3:16-17에 분명히 드러난다. 이 텍스트에서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세 차례에 걸쳐서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부른다. 고린도전서 3:10-17은 솔로몬 성전의 배경에 더해서 말라기 3-4장의 구약적인 배경까지도 담고 있다. 말라기서 텍스트는 바울이 신실한 고린도교회 성도들이야말로 불 같은 마지막 심판의 폭풍우를 이겨냄으로써 마지막 때의 성전에 속하리라고 생각했음을 암시한다.
3:1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2그가 임하시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가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같을 것이라.(말 3:2의 70인경은 주께서 “불처럼 [아마도 성전으로] 들어가실” 것이라고 묘사한다.) 3그는 은을 연단하여 깨끗하게 하는 자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하게 하되 은[70인경은 ‘금’을 추가함]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공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바칠 것이라…4:1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말라기는 바울의 언어와 유사한 언어로 주께서 마지막 날에 “그의 성전에 임하시고” 성전의 제사장들(신자들을 제사장으로 보는 바울의 견해에 대해서는 롬 12:1을 보라(히 13:15; 벧전 2:5, 9; 계 1:6; 5:10; 20:6도 보라). 또한 바울은 자신을 제사장 역할을 하는 자로 본다(롬 15:16; 빌 2:17; 딤후 4:6.)을 “은과 금같이… 불”로써 “연단”하시며, 악을 행하는 자들을 “지푸라기”와 땔나무용 가지처럼 “태우시리라고” 예언한다(참조. 잠 17:3). 바울이 말라기서를 염두에 두었다는 점은 예견 가능하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이미 말라기 3:1을 자신에게 적용하셨기 때문이다(마 11:10; 막 1:2도 마찬가지). 비록 말라기는 제사장들을 연단하는 일이 성전에서 이루어지리라고 묘사하지만, 바울은 성전에 속한 신자들이 귀금속과 같이 연단받을 것이라고 봄으로써 이런 표상을 변형시킨다. 바울이 마지막 때의 성전에 관한 예언을 끌어들였으리라는 것은, 그가 고린도전서 3:9-17에서 성전에 몰두하고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볼 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바울은 말라기서의 예언이 성취될 때가 다가오고 있음을 믿는다. 하나님이 의인은 보존하시고 악인은 심판하는 방식으로 “의인과 악인을 분별”하기 위해(말 3:18) 성전, 곧 교회의 “금속”을 시험하심으로써 말이다. 보존되는 자들은 그리스도와 그의 백성으로 이루어진 참된 종말론적인 성전으로서 자기에게 닥친 시련을 이겨낼 것인데, 이 점은 요한계시록 21:1-22:5에 잘 묘사되어 있다.
바울은 세 차례에 걸쳐서 “터 위에 세우는” 것에 대해 말한다(3:10, 12, 14). 바울의 이 말씀은 세월이 흘러가면서 자라게 되는 구조물의 개념을 분명하게 함축한다. 이것은 에덴 성소와 족장 성소, 솔로몬 성전과 제2성전 등의 성장 개념과 잘 들어맞는다. 이 모든 성소와 성전은 본래의 경계선이나 크기로부터 우주 전체를 포괄할 정도로 확장될 예정이었다. 여기에는 성장 개념뿐만 아니라 성전이 지리적인 이스라엘의 경계를 넘어서서 성전과 참 이스라엘의 참된 기초석인 그리스도 위에 세워질 이방인들을 포함할 정도로 확장되리라는 암묵적인 개념도 포함된다.
고린도전서 3:6-7의 “성장” 개념이 그리스어역 구약성경에서 아담에게 주어진 사명으로 자연스럽게 사용될 뿐만 아니라, 나중에 노아와 족장들에게 전달되고 소규모 성전 건축의 이야기들과 결합된다는 사실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예를 들어 창 9:7이 그렇다: "너희는 생육하고[성장하고] 번성하며 땅에 가득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 하셨더라.” 이 동사의 39회 용례 중 약 20회는 일정한 양식을 가진 사명과 관련되어 나타난다. 흥미롭게도 대상 17:10-12(70인경)은 하나님이 “심으시고” 이스라엘을 “자라게” 하시며, 다윗의 씨가 나[하나님]에게 집[=성전]을 “건축할” 것이라고 말한다(앞에서 따옴표로 묶인 그리스어 단어 세 개는 대상 3:6-10에서도 발견됨)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성전이 건축되고 있음을 바울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도는 교회의 사역자들이 가시적인 성전의 규모가 커지는 것이 진정한 성전을 가리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깨닫기를 원했다.
몇 장 후에 바울은 교회가 “성령의 전”(고전 6:19)이라는 주장을 재개한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왜 그들이 음행을 피해야 하는지를 상기시키기 위해 이 점을 강조한다. 성도들은 마지막 날에 있을 성전에 속한다. 구약의 성전이 부정함으로부터 정결케 되어야 한다면, 성도들은 훨씬 더 자기 몸을 깨끗하게 하고 음행을 멀리해야 한다(6:18). 구약의 성전이 하나님의 영광이 머무는 자리로서 그 영광을 보여주어야 했던 것처럼, 바울은 그들에게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6:20)라고 명한다.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의 옛 성전에 독특한 방식으로 거하시는 것처럼, 그분의 영화로운 속성들도 고린도교회 성도 개개인과 그들의 공동체 안에서 분명하게 드러나야 한다. 왜냐하면 바로 그들이 새로운 성전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새 창조에서 완성되는 성전은 “하나님의 영광”을 완전하게 반영할 것이요(계 21:11) “무엇이든지 속된 것…은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계 21:27).
그레고리 K. 비일, 강성열 역, 『성전 신학』(새물결플러스, 2014), pp. 336-339.
첫댓글 늘 좋은 소개글과 인용문입니다. 좋습니다.
공감합니다!
초신자를 위하여 10줄 정도로 포인트를 잡아서 요약해 드립니다:
고린도전서 3장 14절에서 15절의 말씀은 그리스도의 터 위에 세워진 새로운 성전인 성도들이 종말의 때에 공적을 시험하는 불을 통과해야 함을 보여줍니다.
그레고리 K. 비일은 바울이 말한 공적에 대한 불의 심판이 말라기 3장과 4장의 불 시험을 의식하고 발전시킨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마지막 심판 때의 불은 목회자의 공적을 시험하여 양 무리의 참된 재료를 검사할 것이며 신실한 성도들은 이 심판을 이겨내고 마지막 때의 성전에 속하게 됩니다.
공적이 그대로 남은 지도자는 구원받은 영혼들을 상으로 받지만 공적이 불타 회중을 잃은 지도자는 자신만 불 가운데서 겨우 구원을 얻는 해를 받게 됩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세 차례나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부른 것은 고린도전서 3장 10절에서 17절이 솔로몬 성전과 말라기의 구약적 배경을 담고 있음을 증명합니다.
말라기는 주께서 성전에 임하여 제사장들을 금과 은처럼 불로 연단하고 악인을 지푸라기처럼 태우실 것을 예언했는데 바울은 이 표상을 성도들이 연단받는 것으로 변형했습니다.
바울이 터 위에 세우는 성장을 언급한 것은 에덴과 족장 성소 및 솔로몬 성전이 우주 전체로 확장되어 이방인까지 포함하게 된다는 구약의 성전 개념과 일치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진정한 성전 건축은 단순히 외형적이고 가시적인 규모가 커지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사도는 일깨우고자 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6장에서 교회가 성령의 전임을 다시 환기시키며 구약의 성전이 정결해야 했던 것처럼 성도들도 음행을 피하고 몸을 깨끗이 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옛 성전에 하나님의 영광이 머물렀던 것처럼 새로운 성전인 성도들도 각자의 몸과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의 영화로운 속성을 분명하게 드러내며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초신자는 물론 기성 신자도 포스팅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겠습니다^^
@장코뱅 요약이 잘됐네요. 유익합니다.
칼빈은 삽화 고린도전서 3장 14~15절의 '불'을 연옥의 불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을 통해 참과 거짓을 분별하는 '시험과 검증의 사역'으로 해석했습니다.
여기서 '공력'은 목회자가 교회라는 터 위에 세운 가르침과 교리를 의미하며, 금이나 은처럼 순수한 진리는 불 속에서도 보존되지만 짚과 같은 인간의 헛된 교리는 불타 없어지게 된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공력이 불타 해를 입고 '불 가운데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거짓된 교리를 전한 사역자가 심판 날에 부끄러움과 큰 시련을 겪으며 겨우 파멸을 면하게 됨을 뜻합니다.
3:1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2그가 임하시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가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같을 것이라.(말 3:2의 70인경은 주께서 “불처럼 [아마도 성전으로] 들어가실” 것이라고 묘사한다.) 3그는 은을 연단하여 깨끗하게 하는 자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하게 하되 은[70인경은 ‘금’을 추가함]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공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바칠 것이라…4:1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칼빈은 말라기의 '그가 임하시는 날'을 일차적으로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보았으며, 주께서 성전에 임하셔서 복음의 빛과 성령의 불로 교회를 정화하기 시작하신 사건으로 해석했습니다.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은 하나님께서 레위 자손으로 표상되는 사역자들과 신자들을 시험하사 부패와 위선을 제거하시고, 오직 순수한 신앙과 공의로운 예배를 회복시키시는 은혜롭고도 엄위한 사역을 뜻합니다.
70인경의 '불처럼 들어가실 것'이라는 표현에 부합하듯,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의 외식에 갇혀 있던 옛 성전의 제사 제도를 폐하시고 성령을 통해 신자들의 마음을 참된 성전으로 삼아 그 안에 내주하십니다.
반면 '용광로 불 같은 날'에 '악을 행하는 자가 지푸라기처럼 타버릴 것'이라는 경고는, 정화의 은혜를 거부하고 끝까지 완악하게 대적하는 위선자들과 불신자들에게 임할 철저하고 전멸적인 최종 심판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교회가 “성령의 전”(고전 6:19)이라는 주장을 재개한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왜 그들이 음행을 피해야 하는지를 상기시키기 위해 이 점을 강조한다. 성도들은 마지막 날에 있을 성전에 속한다. 구약의 성전이 부정함으로부터 정결케 되어야 한다면, 성도들은 훨씬 더 자기 몸을 깨끗하게 하고 음행을 멀리해야 한다(6:18). 구약의 성전이 하나님의 영광이 머무는 자리로서 그 영광을 보여주어야 했던 것처럼, 바울은 그들에게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6:20)라고 명한다.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의 옛 성전에 독특한 방식으로 거하시는 것처럼, 그분의 영화로운 속성들도 고린도교회 성도 개개인과 그들의 공동체 안에서 분명하게 드러나야 한다. 왜냐하면 바로 그들이 새로운 성전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새 창조에서 완성되는 성전은 “하나님의 영광”을 완전하게 반영할 것이요(계 21:11) “무엇이든지 속된 것…은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계 21:27).
벌코프는 고린도전서 6장 19절의 '성령의 전'을 성령의 내주 사역으로 보았으며, 이것이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에 근거하여 신자 개개인의 영혼과 육체뿐만 아니라 교회 공동체 전체에 임하는 유기적인 연합의 은혜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는 성령의 전인 신자가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는 바울의 도덕적 권면을 성화의 필연성으로 이해하였고, 내주하시는 성령의 주권적인 통치와 정결케 하시는 사역이 신자의 삶에서 실제적인 거룩함과 음행에 대한 거부로 나타나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결과적으로 벌코프는 지상 교회가 완성될 종말론적인 새 예루살렘 성전의 영광과 완전한 무흠함을 바라보며, 이 땅에서 성령의 전으로서의 정결함을 보존하고 하나님의 도덕적 속성을 세상에 투영하는 본질적인 의무를 지니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말라기 3장-4장을 10줄로 요약:
주께서 보낸 사자가 길을 준비한 후, 언약의 사자이신 주께서 갑자기 자신의 성전에 임하실 것입니다.
그가 임하시는 날은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 같아서 아무도 능히 당해낼 수 없습니다.
주께서는 은을 연단하듯 레위 자손을 깨끗하게 하실 것이며, 그제야 그들이 공의로운 제물을 여호와께 바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점치는 자, 간음하는 자, 거짓 맹세하는 자, 품꾼의 삭을 자르는 자 등 악을 행하는 자들을 속히 심판하실 것입니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규례를 떠나 십일조와 봉헌물을 도둑질하여 저주를 받았으나, 만일 온전한 십일조를 바치면 하늘 문을 열고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주실 것입니다.
완악한 말로 하나님을 대적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번성하고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고 말하며 섬김을 헛되이 여긴 자들이 있었습니다.
반면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들을 위해 하나님 앞에는 행위록(기념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정하신 날에 그를 경외하는 자들을 특별한 소유로 삼으실 것이며,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같이 그들을 아끼실 것입니다.
마지막 심판의 날이 이르면 의인과 악인,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가 분별될 것이며, 악을 행하는 자는 용광로 불에 지푸라기처럼 다 타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그들이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며 악인들을 발바닥 밑의 재와 같이 밟을 것입니다.
거룩한 성전 삼아 주신 주님, 말라기의 불같은 말씀과 사도의 권면을 기억하며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순수한 금과 은의 재료로 교회를 세워가게 하옵소서.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의 은혜를 따라 영과 육을 모든 더러운 것으로부터 깨끗하게 정결히 보존하며, 삶의 모든 자리에서 주님의 영화로운 속성을 온전히 드러내게 하옵소서.
마지막 심판의 날에 용광로 불같은 시험이 닥칠지라도 공의로운 해의 치료하는 광선 아래 보호받게 하시고, 주께서 아끼시는 특별한 소유로서 영원한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옵소서.
아멘!
아멘!
거룩한 성전 된 우리가 짚이나 풀 같은 헛된 공력이 아니라, 오직 변함없는 진리의 말씀과 순수한 신앙으로 삶을 채워가길 소망합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세상의 유혹 속에서도 몸과 영혼을 정결케 지키며, 하나님의 영화로운 속성을 삶의 자리에서 온전히 투영하며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날마다 성령의 불로 우리 안의 위선과 부패를 태우시고, 주께서 기쁘게 받으실 만한 공의롭고 신실한 삶의 제사가 우리 공동체 안에 가득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심판의 날에 부끄럽게 겨우 얻는 구원이 아니라, 불 같은 시험 앞에서도 당당히 통과하여 주님이 아끼시는 특별한 소유로서 영원한 성전의 기둥이 되길 기도합니다.
완성될 새 예루살렘의 영광을 미리 맛보며, 오늘도 우리를 성령의 전으로 삼아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주님의 이름에 합당한 거룩한 길을 함께 걸어갑시다.
아멘!
이렇게 여러 종류의 주석들과 설명들을 비교해서 보니 내용 파악도 잘 되고 유익함이 있어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공감합니다!
말라기와 고린도전서의 엄위한 말씀을 통해, 오늘날 성령의 전으로 부름받은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삶의 공적을 쌓아가야 하는지 깊이 돌아보게 됩니다.
외형적인 규모나 인간의 헛된 사상을 좇기보다, 성령의 불로 날마다 내면의 위선을 연단하며 오직 순수한 진리와 거룩함으로 자신을 채워가야 함을 절감합니다.
마지막 때에 불로 시험받을 우리의 신앙이 지푸라기처럼 타버리지 않고 금과 은처럼 보존되어, 온전히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참된 성전으로 지어져 가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