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 스프릿을 타고 보라카이로 날라갔다.
좌석이 맨 앞이다. 우리만 거꾸로 앉았다. 모든 사람들이 다 우릴 보고 있다. 기분이 이상하다. 비행기는 꽉 찼다. 백인들이 거의 반이고 나머지는 필리핀 사람들, 그리고 우리말고 한국인 가족이 더 있다.
난 잠이 안오는데 은채는 자꾸 자려고 한다. 못자게 계속 괴롭히니까 화를 낸다. 치사한 것..... 심심해서 스튜어디스가 주는 음료, 과자를 다 까먹었다. 사탕도 오도독 오도독 다 씹어먹었다.
마닐라는 날씨가 좋았는데 보라카이 쪽으로 갈수록 흐려진다. 드디어 까띠끌란이 보이고 보라카이가 보인다. 화이트 비치가 보이고.. 여전하다. 급한 마음에 뛰어내리고 싶다.
내리고나니 결국 부슬부슬 비가 온다. 마중나온 친구가 우릴 보고 씩 웃는다. 새까만 얼굴에 새까맣다 못해 반짝반짝 광이 나는 팔과 다리... 좋아 보인다.
까띠끌란 항에 새로운 건물이 하나 생겼다. 저번부터 짓고있던 것이 드디어 완공된 모양이다. 우리는 방카를 타고, 수영을 못하는 나는 불안한 맘에 냄새나는 구명조끼를 꼭 쥐고 있었다.
드디어 보라카이 도착! 우리는 한달 동안 집이 될 리조트로 들어갔다.
사실 리조트라 부르기엔 좀 그렇다. 그냥 집같다.
TV와 냉장고, 전화는 없지만 방은 큰 편이고 깨끗하다. 우리에겐 그런 것은 필요없다. 여기선 TV 말구도 재미있는게 얼마든지 많기 때문에 괜찮다. 그리고 저번에도 여기서 묵었기에 무엇보다 친숙하다.
짐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한 달 예정이기에 짐정리도 만만찮다. 짐을 풀고나니 사람사는 집같다. 보라카이 친구는 내가 가져온 튜브를 보더니 ‘이놈의 튜브 또 가져왔어! 에잇~“하며 튜브를 내동댕이 친다. 헉!!! 내 생명줄인디...
어느덧 해가 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보라카이에서의 첫날임을 기념하여 거하게 술판을 벌였다. 역시 보라카이에서 마시는 산 미구엘이 제 맛이다. 찰스바에서 바다 소리를 들으며 술을 마시니 맘이 평안해진다.
며칠 후에 바주라에서 풀문 파티가 있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은 처음이다. 하긴 이제 이 곳도 성수기에 접어드니 사람이 많을만 하다. 서있을 자리도 겨우 마련되었지만 오히려 더 즐거웠다. 너무 즐거운 맘에 방방거리며 뛰어다니다가 계단이 있는줄 모르고 점프했다가 `퍽!`하고 떨어졌다. 스테이지에서 춤추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웁스!`하며 사사삭하고 뒤로 물러났다. 마신 술의 양이 있기에 쬐~끔 창피했다.
보라카이에 들어온지 일주일간은 이렇게 흘러갔다. 매일매일의 음주와 과로로 인해 일주일동안 딱 한번 바닷가로 나갔다. 그 한 번은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 모래성을 쌓고 놀았다. 배가 접히는 줄도 모른채... ...
일주일간을 머리를 하얗게 만든 다음, 우리의 목적인 `다이빙 라이센스 따기`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졸린 눈을 부비며 교육용 비디오 테입을 보았다. 난 허리가 아파 죽겠고, 은채는 하두 졸려서 소리가 `웡~웡~~`하고 들린댄다. 도저히 못견디겠다. 세 편을 보고 강사님이 안계신 틈을 타 내일 다시 온다하고 도망갔다.
아~! 햇살이다! 햇살이 이렇게 좋은지 새삼 깨달았다.
담날 못다본 두편을 마저 봤다. 그리고 풀에서 연습을 했다.
우리가 들어온 이후로 날씨가 계속 안좋다. 원래 지금은 비가 안올 시기라는데 오히려 비가 안온 날이 손꼽힌다. 밤마다 장대비가 온다. 우리가 비를 몰고왔나? 비가 오구하니 풀에 들어가 있는 것도 춥다.
내가 다이빙 자격증을 따려고 맘먹은 이유는 이렇다.
남들은 체험 다이빙을 한 경험을 못잊어서 자격증을 따게 된다고 한다. 난 사실 물이 무섭다. 난 친구들에게 말한다. “난 전생에 논개였나봐...”
체험 다이빙도 내겐 공포 그 자체였다. 아마 그런 실감나는 공포를 알았다면 못했을 것이다. 의미있을 것 같은 일을 찾다가 어떨결에 하게 된 것이다.
한 번에 들어가지를 못하고 중간까지 내려갔다가 물 밖으로 다시 올라왔다. 숨이 턱하고 막히는 것이 꼭 죽을 것 같다. 물 밖으로 나와서 숨을 가다듬었다. 오기가 발동한다. `나만 못들어가고 있잖아! 바보같이...!`
이렇게 시작한 체험 다이빙이었다. 사실 물 속에서 눈을 감고 있었던 시간이 상당했던 것 같다. 지금 그 때의 사진을 보니 진짜 바보같다...
난 살아있는 것들은 다 좋아한다. 심지어는 쥐와 뱀과 같은 파충류들도 내겐 다 귀엽다.
그래서 바닷속 생물들도 경외의 대상이다. 이런걸 언제 만져보겠는가?
근데, 체험 다이빙에선 전혀 만져보질 못했다. 내 몸을 건사하지도 못하여 뭐좀 볼려구 하면 잡아끌고... 만져볼려고 하면 잡아끌고...... 끌려갈 수 밖에... ...
그래서 내가 직접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보고, 만져볼 수 있게끔 자격증을 따기로 했다.
그리고 아까웠다. 어딜 여행가든지 항상 바다의 겉과 땅 위만 보면 반밖에 못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항상 못보고 말았던 그 반을 보고싶다...
추운 와중에 숙소로 돌아가면 샤워를 해야되고, 물은 당연히 찬물밖에 안나오니 은채가 먼저 감기에 걸렸다. 코감기란다. 매일 침대 옆 테이블엔 휴지가 산더미처럼 쌓인다. 메이드에게 미안하다. 그리고 난 은채의 코풀 휴지를 대느라 매일 앞집 가게로 달려가 `토일렛 페이퍼!`를 외친다.
은채의 감기로 인해 제한 수역 교육을 마치는데 며칠 걸렸다.
드디어 본격적인 실전 다이빙이다. 좀 심란하다.
은채는 감기가 낫지않았는데도 마냥 좋은가보다. 전생에 바다표범이었나보다.
첫 다이빙은 앙골 포인트였다. 이퀄라이징이 잘 안된다. 귀가 찢어지는줄 알았다. 귀에서 간간히 `삐~익`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부력조절이 안된다. 계속 허부적거려 대부분 잡아줘야했다. 시야는 날이 안좋은 관계로 그저그랬다.
다음날은 코랄 가든을 갔다. 입수시 마스크를 누르는 것을 까먹었다. 엄청난 양의 물이 벌컥벌컥! 떠오르자마자 저 깊은 곳으로부터 우~~웩!!!
다행히 귀는 안아프다. 이번엔 몸이 자꾸 위로 뜬다. 꼭 죽은 붕어같다... 웨이트 벨트는 6kg짜리였다. 시야는 어제보단 낫다.
오늘은 두 깡이다. 밥을 먹구 다시 장비를 세팅했다. 또 들어갈 생각에 소화가 안된다.
장비를 메고 방카가 있는데까지 걸어가는 길은 내겐 너무나도 멀었다. 내 몸무게의 반이 넘어가는 장비는 밥을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리를 후달리게했다.
어제 갔던 앙골을 갔다. 입수할 때부터 난 헬기 소리가 내내 났다. 혹 귀에 이상이..?
무섭다..... 몸은 이번엔 자꾸 가라앉는다. 중성부력을 유지하고 다녀야하는데 바닥에 붙어다닌다. 웨이트는 어제와똑같으니까 내가 부력조절을 못하는거다. 은채는 역시 바다표범같다. 물 속에서만큼은 진짜 날쌔다. 난...? 계속 무릎 꿇는다..... 남들은 물고기처럼 다니는데 난 반은 기어다닌다. 나중에 알고보니 물 속에서 들렸던 그 헬기 소리는 귀의 이상이 아니라 방카의 엔진소리였단다. 다행이다.
며칠 뒤, 마지막 오픈워터 트레이닝을 프라이데이스 락에서 했다. 날씨가 너무 심란해서 며칠 쉬었던 것이다. 물 속에서 몇 가지 시험을 봤다. 그동안 익힌 기술을 테스트했다. 그럭저럭 모두 통과! 내가 모른는새 그동안의 많은 발전이 있었나보다. 은채도 자꾸 가라앉는 엉덩이를 극복했다. 누런 콧물를 대롱대롱 매달고 연습한 보람이었다. 드러버라!
다음날 필기시험을 봤다. 은채는 수능시험 이후의 최대의 스트레스란다. 쯧쯧쯔...
책은 한 권씩 받은지가 일주일이 넘었건만 왠지 봐서는 안될거 같았다. 강의 내용을 열심히 들어서, 또 모의 테스트도 잘해서 괜찮을거 같았다.
그치만 이따 5시에 시험 보기로 햇는데 오늘은 공부를 해야지... ...
방 안은 어두워서 망고레이로 갔다. 그린망고 쉐이크를 파는 몇 안되는 가게 중의 하나다.
근데 이게 왠일인가? 계산하는 문제들은 기억이 가물가물하고 책장을 넘길수록 새로웠다. 머리를 싸매고 후회하며 머리가 지끈거리도록 공부했다.
은채는 걱정도 안되는지 콜콜 잘도 잔다. 팔뚝 크기만한 도마뱀이 나무에 있길래 신기해서 깨웠더니, 자긴 인도네시아 살 때 지겹도록 봤다면서 이거 때문에 깨웠냐며 도리어 화를 낸다.
드디어 시간이 되어 시험을 보구, 결과는 합격이었다. 치사하게 테이블까지 따로해서 본 시험이었다. 기분이 홀가분하다. 하~! 이 맛 때문에 공부를 하는거다! 시험지를 자랑스레 펼치고 기념찰영도 했다.
그날 저녁 `두 명의 다이버 걸 탄생`을 축하하는 뒷풀이가 있었다.
아주아주 징~하게 마셨다. 하!하!하!
열흘만에 딴 첫 다이빙 자격증이라서 더욱 애착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