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하천
#당진 수달
#산전수전
#어울림 여성회
밤새 바람이 분다. 가만 가만 불지 않고 세차게 불어댄다. 빗줄기가 간절한 초목들은 바람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며 몸을 낮추고 깊숙이 비를 마신다.
오늘은 당진하천에서 생태수업이 있는 날이다. 하천은 어떤 모습일까? 아침이 되자 바람살이 잔잔해 진다. 당진하천에 제법 많은 물이 흐르고 있다.
도시에서 직장생활에 몸과 맘이 지쳐갈 즈음 홍성 고향집에 내려왔다 결혼을 했다. 고향에서의 안식도 잠시잠깐, 사업하는 남편을 따라 다시금 도시생활이 시작되었다. 산과 시내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아닌, 빌딩숲에서 불어오는 무미건조한 바람을 맞으며 결혼생활이 시작됐다. 편리한 생활에 몸은 적응되어 갔지만 가끔씩 올라오는 지금거림은 찰진 밥에 섞인 뉘처럼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비가 그치자 바람에 묻혔던 하천의 소리들이 살아난다. 빗물에 쓸려 누웠던 고마리, 환삼덩굴, 갈대, 달뿌리풀, 쑥, 소리쟁이, 개망초들이 구름사이로 비치는 햇살에 몸을 말린다. 가뭄에 내린 단비에 흠뻑 젖은 몸을 파닥 파닥 일으키며 강인한 생명력을 자랑한다. 꽃을 피워 후손을 지켜내기 위한 본능 같은 몸짓이리라. 갈대와 달뿌리풀도 늦여름부터 하나 둘 소리 없이 꽃을 피우며 묵묵히 제 할일을 하고 있다.
IMF 여파로 사업이 여의치 않자 남편은 고향을 찾았다. 막달이 다 된 몸으로 두 아이와 함께 마주쳐야 하는 삶은 녹록치 않았다. 아이들과 함께 놀이공원 한번 가는 것조차 여의치 않았다. 이럴 즈음, 어릴 때 맘껏 뛰어 놀던 고향의 산과 하천을 생각했고, 인근의 산과 하천을 찾았다. 산길을 오르내리고 하천변을 따라 걸으며 아이들과 웃고 떠들다보면, 저절로 마음이 맑아졌다. 생활에 쫓기는 삶이었지만 우리는 짬짬이 산과 하천을 찾았다.
봄이 오면 식물들은 노오란 싹을 틔우며 치열한 속도 경쟁을 시작한다. 하천식물인 갈대와 달뿌리풀, 고마리, 부레옥잠, 물배추가 먼저 잎을 벌리면 가시박, 개망초, 환삼덩굴은 그들에게 치어 맘껏 자라지 못한다. 갈대와 달뿌리풀은 뿌리가 땅속 깊이 투습 공을 형성해 물속의 인이나 질소를 흡수해서 하천의 필터 역할을 한다. 고마리, 부레옥잠, 물배추, 하천변에 자라는 버드나무도 하천생태에 없어서는 안 되는 식물들이다.
올해는 기상관측 이래 최대의 가뭄이라고 하더니, 당진 하천 식물들도 물 부족으로 속도 경쟁에서 밀린 모습을 보인다. 물 없이도 잘 자라는 쑥, 환삼덩굴, 가시박, 개망초들이 우위를 선점해 세력을 뻗고 있었다. 당진하천에 더불어 사는 수많은 생명들의 삶도 치열하긴 마찬가지다.
봄이면 아이들과 함께 쑥을 뜯고 냉이를 캐러 산과 들을 돌아다녔다. 여름이면 손과 입이 새까매지도록 오디를 따먹었다. 가을엔 산으로 밤을 주우러 다니고, 겨울엔 언덕에서 눈썰매를 타며 아이들은 단단하게 커갔다. 고향에서 나고 자란 세월만큼의 시간을 보내며, 나와 아이들은 당진사람으로 뿌리를 내렸다.
언젠가부터 당진에 개발바람이 불면서 아이들과 함께 추억을 쌓았던 장소들이 하나둘 파헤쳐지고 아파트와 상가로 변해갔다. 아이들의 고향, 아이들을 품어주던 산과 하천의 모습은 빠르게 변해갔고, 나와 아이들은 고장 난 나침판처럼 길을 잃었다.
하천의 물길은 거짓말을 안 한다. 하천의 생태는 우리 몸의 동맥, 정맥과도 같은 역할을 하며 많은 생명들을 품고 흐른다. 당진하천 곳곳에서 정비라는 이유로 구불구불하던 하천을 깎아 내는 모습을 보며 태곳적부터 형성된 물길의 지형적 특성이 바뀌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산을 돌아 내려오며 모아진 물들이 흙을 치면서, 패이고 패인 유역들이 만들어낸 엄청난 크기의 물그릇들. 몇 천 년을 내려오면서 이렇게 만들어낸 물길들이 토사를 실어 나르며 배후 습지가 형성되고, 이렇게 형성된 배후 습지는 하천식물과 곤충 생물들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보금자리다.
나와 아이들의 공간도 중장비들이 난립해 공사가 진행되었고 도로가 넓어지며 차량 통행이 많아졌다. 아이들이 밖에서 놀다 늦어지는 날엔 맘을 졸이며 아이들을 찾아 나서기에 바빴다. 세월의 흐름속에 시나브로 인공지능 시대가 도래 했고, 아이들은 자연이 내어준 놀잇감보다 컴퓨터와 스마트폰 게임에 열중인 시대가 되었다.
물길이 굽어지는 공간에서 길이 막혔다. 어쩔 줄 몰라 당황하던 우리들의 눈에 징검다리가 보였다. 일행을 이끌어 주던 선생님이 먼저 손을 내어주셨다. 서로 손을 잡고 잡아주다 보니 온기가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해지는 사이 징검다리를 건넜다.
어릴 때 장마에 불어난 개천을 친구들과 건널 때면 물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서로 고사리 같은 손을 잡고 물에 잠긴 징검다리를 디딤돌 삼아 함께 개천을 건넜다. 혼자선 건너기 힘든 개천의 물살도 함께 뭉치면 수월하게 견뎌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올해 봄부터 생태 동아리 '산전수전'에서 당진하천 생태 조사를 이어가고 있다. 표본팀, 기록팀, 사진팀으로 역할을 분담해 당진하천 상류와 하류구간을 찾아 생태를 조사한다. 호랑거미, 파리매, 방울 실잠자리, 물속 수초에 알을 낳는 검은등실잠자리, 꽃등애, 물자라, 말조개, 우렁이, 재첩, 다슬기, 주홍부전나비, 호랑나비, 노랑나비, 흰나비, 밀잠자리, 고추잠자리 등 정말 수많은 생물들을 만났다.
당진하천 상류에 멸종 위기종 수달이 산다는 소식에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 없던 우리는, 당진시의 깃대종을 수달로 하자며 흥분했다. 잠시잠깐 길을 잃고 헤매던 나에게 올해 만난 당진하천은 소중하고 귀한 깨달음의 화두를 던져줬다.
하천은 항상 우리 곁에 있다. 우리가 매일 바라보는 하천의 모습은 시나브로 우리의 삶속에 자리한다. 인간 편리 위주로 하천변에 콘크리트로 보행로를 만들고 하천림 대신 전봇대를 세운다면 더 많은 편리를 추구하려는 욕심에 본질을 잃어버린 모습으로 악취만 풍기는 하천을 만나게 되는게 아닐까? 어릴 적 만났던 하천이 우리에게 베풀어 주던 치유의 힘을 우리가 기억하고 우리의 아이들과 하천 생물들에게 하천을 돌려준다면 서서히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 갈 것이다.
각박한 현실에 자연으로 나가는 걸 꿈꾸기 힘든 사람들이 많다. 가까이에서 눈만 뜨면 아이들과 산책하며 뛰어 놀 수 있는 자연하천을 누릴 수 있을 때, 그들 역시 삶의 여유를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급박하게 흘러가는 인공지능시대에 삶의 조급함을 잠재울 수 있는 역할을 하는 것이 하천이라고 생각한다.
바다와 강을 오가는 담수와 해수 생태계가 어우러져 형성된 것이 당진 하천이다. 원주민들과 이주민들, 외국인 근로자등 다양한 사람들이 당진하천 주변에서 어우렁 더우렁 삶을 꾸리며 살아가고 있다. 산이 넉넉함으로 나를 지켜주는 고향과 같다면, 물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지혜롭게 변화된 모습으로 생명을 이어가는 우리의 삶과 같다.
당진시에서 시를 대표하는 동식물의 종인 깃대종이 논의 중이라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수달이 맘껏 편히 살 수 있는 당진천이 라면 우리 아이들이 만날 당진천은 머지않아 가재잡고 물장구치는 공간으로 탈바꿈 할 수 있지 않을까? 당진하천 하류에서도 수달이 맘껏 살 수 있는 환경을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 있도록 ‘산전수전’이 징검다리 역할을 해야겠다. 그런 날을 꿈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