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방문하는 저명 인사들이 꼭 찾는 명소 한국가구박물관이다.
한국가구박물관은 1995년에 성북동에 한옥을 지으며 시작되었다.
2500여 평에 주생활 문화를 알 수 있는 한옥 10채(궁채, 중정, 사대붓집, 곳간채...)와
지하에 상설전시 박물관에 보유하고 있는 많은 것들 중
한국 목제 가구 500여 점이 상설 전시되어있다.
최소 120년 이상 된 가구들이라고 한다.
전시된 가구와 한옥의 모습은 18세기 조선 후기의 모습을 담고 있다.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기 위해 15년이 걸렸다고 전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영화배우 브래드 피트,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와
G20 정상들까지 식사를 즐기고 차를 마시며 한국의 멋을 즐긴 곳,
서울 성북동에 자리한 한국가구박물관(관장 정미숙)이다
인터넷 예약을 해야만 방문할 수 있는 한국가구박물관 관람객 대기실이다.
예약 시간 전에 찾은 방문객들이 대기하는 곳에 비치하여 놓은 응접세트다.
이 박물관 이름은 1993년 개관 당시 이어령 문화부장관이 한국가구박물관으로 명명했다고 한다.
고 신영복 교수의 친필로 알려졌다. 가구박물관이라는 이름 때문에 관람객들이 오해를 많이 한다.
한국인의 의ㆍ식ㆍ주 중 집과 가구가 어떤 모습의 문화로 나타났는지 보여주는 컨텐츠형 민속박물관이
더 어울리는 한국가구박물관이다.
예약 시간 오후 3시 굳게 닫혔던 대문이 드디어 활짝 열렸다.
이 대문은 단순한 문이 아니라 그 자체가 완벽한 한 채의 한옥이다.
그 대문이 있는 공간은 대문채로 불리우는 멋진 한옥다.
대문의 크기와 모양에서 신라인들의 철학과 수학을 읽을 수 있다.
한국가구박물관 관람은 한옥에서 시작된다.
대문이 열리면서 안으로 들어서면 왼쪽으로 바로 궁채 궁집을 만난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처음 만나는 한옥 궁채 궁집이다.
왕자나 공주가 결혼하면 궁궐 밖에 지어주는 궁집 궁가(宮家)이다.
1970년대 창경궁 일부가 헐릴 때 가져온 기둥과 기와를 살려서 재건축한 건물이다.
실제 그 문양과 섬세함이 남다르다.
보통 한옥의 지붕 끝 부분을 둥근 장식으로 막는 ‘막새기와’를 볼 수 있다.
궁궐에서 사용한 막새기와에는 용 문양이 섬세하게 장식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기와는 암키가 U자형으로 누워있고 위에 올라앉은 기와는 수키. 암수가 짝이 되고,
앞에 보이는 동그란 기와가 수키인데 앞이 막혀있어서 수막새. 내려와서 장식이 되어진 기와는 막새기와다.
막새기와 안에 용이 그려져 있는데 실제 창경궁 근정전에 올려졌던 기와이다.
창경궁이 (동물)원으로 바뀔 때 나라에서 궁 건물을 뜯어 팔았는데
정관장 시댁에서 가져올 수 있는 재료들은 가져다가 이 궁집 건물을 지을 때 써서 부분적으로 살아있게 된 것이다.
전통의 궁집의 내부로 한국을 방문한 귀빈들이 식시와 차를 즐긴 공간이다.
이 내부는 지은지 40년 되는 한옥의 멋을 한껏 살렸고 가구에서 역시 전통문화를 잘 배어난다.
한국가구박물관은 우리네 전통 목가구를 테마로 한다.
이 내부는 지은지 40년 되는 한옥의 멋을 한껏 살렸고 가구에서 역시 전통문화를 잘 배어난다.
한국가구박물관옛 목가구를 수집하고 보존하며 전시하는 일을 하는 특수 박물관이다.
우리나라 목가구는 서양의 원목 가구와는 다르다.
치장이 화려하기보다는 자연의 멋을 살리는 데 주력한다.
색감으로 포장하기보다는 나무결을 무늬 그 자체로 활용한다.
나무가 가진 고유한 색깔 또한 침범하지 않는다. 사계절이 있어 나무의 결과 나이테 또한 또렷하다.
정원을 설계할 때 자연을 빌려오듯 자연의 몸체를 빌려 가구를 만들지만 이 또한 가능하면 자연에 순응하려는 특징이다.
대문을 통과해서 박물관으로 들어오는 길 옆은 아름다운 정원이 조성되어 있다.
궁집과 대문 채 사이 넓은 잔디 밭 한켠에 자리한 아담한 정자이다.
그저 나무는 나무이고 잔디는 잔디이고 사람도 단지 사람일 뿐이다.
그 공간에 정자가 들어서면서 나무와 잔디 그리고 인간을 연결하는 인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있는 한국가구박물관 궁채와 행랑채 모습이다.
궁채는 창경궁 기와와 순정효황후의 수유리 사저의 목재 등을 활용해 지었다고 한다.
실내에서 창을 통해 바깥 정원의 경치를 끌어다 보는 맛은 대단하다.
창 아래는 실로암으로 연꽃과 상록수가 배치된 자연미를 자랑하는 연못이다.
실로암 샘의 물은 온천수를 끌어올렸다고 전한다.
건물 안쪽 뜰은 또 하나의 아름다운 정원이다. 그 중정에 놓여진 십장생 문양의 굴뚝이 눈에 든다.
서울 마포에 있었던 명성왕후 사촌오라버니의 곳간 채를 옮겨온 한옥이다.
안으로 들어가는 데 만나는 不老門이다. 창덕궁 후원에 설치한 不老門을 이곳에 재현한 것이다.
안에 밖으로 나갈 때 만나는 불로문이다. 이때는 한글로 불로문이라고 써 넣었다.
계단 아래 널직한 돌판을 들어세워 대문사이 공간에 끼어 넣으면 문의 막음장치로 제격이다.
남산과 서울성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기막힌 전망을 갖고 있는 사대부 집이다.
조선의 마지막 왕인 순종의 비 순정효황후가 궁을 나와서 살던 사가를 복원한 것이다.
조금은 슬픈 역사를 간직한 집이지만 이곳처럼 아름다운 한옥은 또 없다는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외출이 자유롭지 않았던 옛 사대부가에서는 정경부인의 방을 가장 좋은 자리에 배치했다.
조선의 마지막 왕비 순정효황후가 혼자되었을 때 잠시 사가로 쓰던 한옥이다.
한옥은 자주 이사를 다니게 되는데 이 한옥은 마지막 수유리에 있었다.
원래 이 한옥은 H자 두개가 겹쳐진 한자로 王(임금왕)자 형태였으나 옮겨올 때
앞뒤 대청을 뺀 나머지를 겹 ㄴ 자로 옮겨와 붙인 형태다.
오른편 사랑채와 왼편의 안채가 한데 합쳐진 독특한 한옥이다.
한옥은 본래 못이나 본드칠을 하지 않기 때문에 떼었다 붙였다가 가능하다.
조선시대에 한옥이 신분에 따라 규격화가 되어 있었다.
사대부는 전체 40평을 못 넘었기에 이 집은 딱 39평으로 지어진 집이다.
한옥 사대부의 한 칸은 2.4m, 궁은 3m, 민가는 1.8m이다.
사대부의 한 칸 2.4m중 양쪽 기둥을 뺀 나머지를 창 4쪽으로 나누면
창 한 칸이 55cm, 창에 맞게 가구를 짜기 때문에
집도, 가구도 모두 건축적으로 규격화 되어 있었다.
실제 이곳 사대부 집방 안에서 바라다 본 전망이다.
한폭의 동양화를 옮겨 그려놓은 듯한 그림이다.
서울 성곽과 남산의 능선이 리드미컬하게 교차한다.
직선의 사양문화가 아니라 곡선의 한국 자연과 조화를 기가 막히게 이루고 있다.
정갈한 안마당이다.
풀이나 나무를 심지 않은 전형적인 마당이다.
뾰얗게 그리고 말끔하게 그 마당에 마사토를 깔았다.
배수기능이 뛰어나고 조명과 복사열 등이 탁월한 마사토이다.
사각사각 밟고 지나는 소리는 외부 침입자를 경계하게 하는 세콤기능까지 한다.
우리가 먹는 감나무로 만든 가구. 감나무는 약하지만 무늬가 아름다워 무늬목이라고 한다.
먹이 든 감나무를 반을 베어 불에 한번 그을려 주면 산이 솟은 모양이라던가,
문갑의 얼룩 무늬, 한자로는 人사람인자 처럼 보이는 그림 같은 무늬를 가구에 대칭으로 붙여주어 장식으로 쓰인다.
옛날 사대부는 남녀유별이 뚜렸하여 공간이 구별되어 있었고 그래서 제일 좋은 경관은 안방으로 정경부인을 배려하고,
영감은 정자나 사랑으로 나왔다.
경복궁 자경전 십장생 굴뚝을 재현한 것이다.
굴뚝 위에 연가 7개가 앉아 있다. 이 굴뚝을 지나는 방이 7개라는 뜻이다.
꽃담이다.
궁궐이나 사대부 집에서 볼 수 있는 꽃담이다.
이 집안을 안밖에서 노리는 악기(惡氣) 사특한 무리로부터 지키려는 것이다.
바깥 큰 마름모는 고기를 구울 때 이용한 석쇠모양에서 갖어왔다고 한다.
불로 몸에 해로운 것들을 정리하듯 바깥에서 공격하는 악기를 걸러내라는 석쇠문양이다.
안쪽 마름모는 거북이 모양이라고 한다. 거북이는 오복의 상징이다.
이 집안에 늘 오복이 가득하고 그 오복을 석쇠모양의 바깥 마름모가 굳게 지켜내겠다는 뜻이다.
전라도 송광사의 요사채를 본 뜬 부억채와 마포에서 헐리던 창고를 옮겨온 광창이다.
부억 채 지붕에 솟아난 굴뚝이 다른 건물의 굴뚝과 큰 차이를 보인다.
규모도 크고, 투박해 보이지만 디자인도 다채롭고 2층의 지붕까지 설치되어 건축 공학적이다.
양 옆의 창문의 모습을 보면 왼쪽은 둥글둥글하게, 오른쪽은 사각으로 전형적인 디자인이다.
이 창문은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광창이다. 빛도 들어오고 공기순환 역할도 도왔던 부엌 창문이다.
왼쪽 둥근창 앞에는 둥근 물확이나 절구로, 오른쪽 사각창 앞에는 사각우물로 주제를 맞춰 전시하고 있다.
서울 성북동 소재 주한 외교사절들에게는 진작에 소문이 나서 해외에서 오히려 더 유명하다.
미국의 CNN 방송은 서울에서 제일 아름다운 박물관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정미숙 관장은 근대화 바람에 휩쓸려 사라져가는 한국의 문화 유산을 보존하겠다는 마음에
1965년 고3 때부터 한국의 전통 목가구등을 수집했다. 40여년 동안 2,500여점의 컬렉션을 확보해 이를 박물관으로 꾸몄다.
시댁과 사업을 하는 부군의 도움으로 1995년부터 15년에 걸쳐 10채의 한옥으로 된 박물관을 조성해 오늘에 이르렀다.
아직도 미완으로 ‘성락원 물길 살리기’등 성북동의 문화유산 보존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정 관장은 고(故) 정일형ㆍ이태영 박사의 막내딸로, 정대철 새정치연합 상임고문의 동생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