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다큐 – KBS <데뷔의 순간>
1. 최근 방송을 장악한 가장 큰 트렌드 중 하나는 ‘노래’ 관련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트로트, 가요, 국악, 클래식 등 온갖 장르의 노래가 다양하게 혼종되어 무대에 올라오고 수많은 사람들이 경쟁하면서 ‘노래’는 사람들의 관심을 장악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트로트’ 붐은 놀랄만한 영향력을 보이고 있다. 트로트는 한동안 한국에서 노래의 중심이었지만 70년대를 지나면서 약간은 시대에 뒤진 ‘뽕짝’으로 저평가되었다. 하지만 한 종편 방송에서 기획한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이 트로트에 대한 전국민적 관심을 불러 일으켰고 새로운 신인 가수뿐 아니라 기존의 트로트 가수들에 대한 인식을 제고시켰다. 요즘은 오히려 지나치다 할 정도로 트로트가 방송 곳곳에서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트로트 뿐 아니라 다양한 노래에 대한 공연과 오디션이 지속되고 있다. 양과 질에서 압도적인 이러한 경향은 우리가 ‘노래’에 대해 갖고 있는 절대적인 애정과 관심을 증명한다. 최근 KBS에서 제작한 가요 관련 다큐 <데뷔의 순간>도 현재의 유행에 적극적인 반향을 통해 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다큐의 주제가 노래의 변화를 이끌었던 중심적인 인물의 데뷔의 순간을 중점적으로 다룸으로써 가요가 변화하는 변곡점에 대한 생생한 기억을 전달하고 있다.
2. 다큐의 1부가 ‘트로트’를 중심으로 다루었다면, 2부는 서양음악의 영향을 받은 60-70년대 젊은이들의 음악이 대상이고, 3부는 80년대 조용필을 중심으로 다양한 개성을 가진 가수들의 활약을 다루고 있다. 4부의 주제는 90년대 이후 일명 ‘신인류’라 불렸던 가수들의 집단적 등장이다. 그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진 가수들은 60년대 후반 통기타와 함께 등장한 젊은이들과 80년대 조용필을 중심으로 특별한 매력을 지닌 가수들이었다.
3. 60-70년대 새로운 음악의 중심에는 비판적이고 특이한 매력을 지녔던 한대수가 있었고, 세시봉을 통해 데뷔하여 독창적이고 개성적인 음악을 만들어낸 송창식과 이장희가 있었다. 다큐는 전주없이 강렬하게 돌입하는 한대수의 <물 좀 주소>의 특별함에 주목하였고, 팝송 번안가요을 중심으로 노래하던 송창식의 변신을 보여준 <피리부는 사나이>의 등장 배경을 알려주었다. 악보도 제대로 못 본다고 조롱받던 이장희가 이미 완성된 음악을 부르는 것이 아닌 동료 뮤지션들과 협업적인 방법으로 음악을 만들었던 새로운 시도를 조망하기도 한다. 이들의 작업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였다. 또한 오로지 개인적인 작업을 통해 1집의 음반을 만들었지만 발매 금지로 인해 대학가에서 전설이 된 김민기의 개성에 주목하기도 한다. 김민기가 한동안 노동자로서 살았던 경험은 나중에 집단적이고 생생한 <공장의 불빛>과 같은 노래극을 시도하는 배경이 되기도 하였다.
4. 다큐는 조용필의 특별한 노래를 공개한다. 조용필이 입대 전 오아시스 레코드 사에서 녹음한 <망각>이라는 노래다. 풋풋하고 매력적인 조용필의 특징이 살아있는 노래였다. 하지만 입대로 인해 이 노래를 비롯한 데뷔 음반은 묻혀졌고, 후일 제대 후 조용필은 1976년 <돌아와요 부산항에>로 일약 가요계의 중심으로 들어서게 된다. 하지만 1976년 이후 강행된 독재 정부의 문화탄압 정책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대마초 파동’은 가요계의 대표적인 가수들을 사라지게 했고 조용필 또한 한동안 활동할 수 없게 되었다. 조용필의 다시 등장한 것은 대마초 가수들에 해금이 풀린 후 발표한 <창밖의 여자(1980)>였다. 이 노래의 발표 후 80년대는 조용필의 시대가 되었다.
5. 70-80년대는 조용필이 중심이었지만, 또 다른 움직임도 있었다. 대마초 파동 때 등장한 <대학가요제(1977)>였다. 조금은 미숙하지만 새로운 매력을 지닌 대학생 가수들의 등장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고, 밴드 활동의 활성화를 가져왔다. 대학에서 활동한 수많은 밴드들이 가요계에 데뷔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주류 음악과는 별개로 김현식이나 전인권과 같은 언더 그라운드 가수들의 영향력도 커져갔다. 소극장에서 이루어진 이들의 밴드 활동은 억압적인 군사 정부에 대한 반항적인 분위기와 어울려 젊은이들의 관심을 고조시켰다. 유재하는 클래식적인 색깔로 가요의 질적인 향상을 가져온 인물로 기억된다. 조용필의 ‘위대한 탄생’이라는 밴드에 참여하기도 했던 유재하의 <사랑하기에>는 사실 조용필의 음반에 먼저 수록되었다. 하지만 이때에는 다른 조용필의 노래가 주목받았기 때문에 <사랑하기에>는 관심에서 멀어졌다. <사랑하기에>는 1987년 유재하의 본인의 앨범에 수록되면서 진정한 사랑을 받게 된다. 노래의 운명은 알 수 없다. 같은 노래라도 어느 시기에, 어떤 가수가 불렀을 때, 또는 어떤 리듬으로 편곡되었을 때, 전혀 다른 운명과 만나게 되는 것이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도 처음 발표때는 주목받지 못했지만, 편곡자 안치행에 의해 ‘고고리듬’으로 편집되었을 때 전혀 다른 반향을 이끌었던 것이다.
6. 노래에 얽힌 뒷이야기를 듣는 것은 흥미롭다. 특히 가요계의 전환을 가져온 대표적인 가수들의 데뷔 또는 주요 음반에 관한 이야기는 특별한 흥미를 불러 일으켰다. 노래는 그 자체가 주는 선율과 리듬의 매력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노래의 에피소드를 알게 될 때, 감동의 깊이가 더 커진다. 신중현의 <아름다운 우리강산>이 박정희 제안을 거절한 후 권력의 압박에 저항하기 위한 하나의 몸짓으로 이해할 수 있듯이, 송창식의 <피리부는 사나이>가 한국적인 노래를 만들기 위한 고뇌 끝에 나온 노래였듯이, 조용필의 <창 밖의 여자>가 대마초 해금 후, 급박하지만 절실한 상황 속에서 만들어진 노래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그 노래에 대한 진실을 발견하게 되고 노래의 탄생이 갖는 의미를 함께 할 수 있는 것이다.
첫댓글 사회적 변화에 따른 가요의 흐름, 시대의 아픔과 삶의 희노애락을 펼쳐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