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자원봉사활동을 다녀와서
-시간이 머무는 땅 불교의 나라 ‘라오스’-
위무량(32世)
❋.라오스
하나의 지구촌 아래
헤아릴 수 없는 종족의 삶
끝없는 적자생존의 경쟁 속에
열강의 틈바구니 내륙에서
외세의 억압에 굴레를 쓰고
투쟁과 대립으로 몸부림쳤던
오십여 소수민족
하나 된 독립 국가를 이루고
애환의 역사를 메콩강에 흘리며
쉴 틈 없는 외풍의 노크에
문은 열었지만 유유자적한 불교의 나라
시간이 머무는 땅 라오스.
❋.‘라오스’는?
이번 ‘라오스’봉사 활동은 광주광역시 자원봉사센터에서 행하는 제2기 해외봉사단 일원으로 참가했다.
난, 나름대로 여러 봉사단체에 가입하여 자원봉사 활동을 시작해온지가 10여년이 넘었지만, 해외에 나가 자원봉사를 해보긴 이번이 처음이다.
봉사활동에 임하게 되면서 ‘라오스’ 약사(略史)를 개략적으로 살펴본바. 라오스의 공식적인 국가 명칭은 ‘라오인민 민주주의 공화국(Lao People's Democratic Republic)’이지만 간단히 ‘라오스(Laos)’라고 부른다고 한다. 라오스는 수많은 종족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크게 4개의 종족으로 구분하고 다시 4개의 종족을 세부적으로 49종족으로 구분하고 있다.
‘라오스’는 프랑스 식민지배하에서 1949년 7월 19일 독립했다. 그러나 실지는 당시 국방, 외교, 재정권 등을 프랑스가 행사해 왔었기 때문에 형식적인 독립을 했고, 사실상 1953년 10월 23일에야, 프랑스 라오스 조약에 의해 완전 독립을 달성했다고 한다.
동쪽으로는 ‘중국과 베트남’에 둘러져 있고, 서쪽으로는 ‘태국과 미얀마’ 그리고 남쪽으로는 ‘캄보디아’와 접해있어, 지정학적으로 인근 국가와 사이가 좋게 작용할 수만 없는 여건인 것이다. 태국과는 ‘메콩강’을 사이에 두고 있어 태국 문화가 깊게 물이 들어있다고 한다.
❋.봉사활동에 임하면서
이번 우리 봉사단의 자원봉사활동지역은, 2014년도에 광주광역시 자원봉사센터서 제1차로 처음실시 했던 라오스의 ‘나몬느아’ 마을이다.
이 마을을 찾아가려면 항공기로 인천공항에서 ‘라오스’ 수도인 ‘비엔티안(Vientiane)’까지 약 5시간이 소요되며, 비엔티안에서 봉사활동 지역이소재한 ‘방비앵(Vang Vieng)’까지 버스로 약 4시간이 소요된다. 그리고 다시 산간 숲길을 30~40여분을 가야한다.
내 눈 안에 들어온 라오스의 땅은 온통 황토 흙이었다. 비엔티안에서 방비엥까지는 약 4시간이 소요되었다. 버스가 약 2시간가량 달리는 거리는 들판의 연속이었고, 2시간 이후부터 달려간 길은 산간 길의 연속이었다.
이 나라는 ‘열대성 몬순’기후로 1년이 3계절이다. 이제부터 건기로 접어들면서 비가 많이 오지 않아선지 도로변 푸나무는 황토분진(黃土粉塵)으로 도장(塗裝)을 해둔 것처럼 마치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상수리나무가 짙은 단풍으로 물들어있는 모양을 하고 있었다.
방비엥에서 이 마을까지는 승객이 이용할 버스가 없다. 라오스에서 버스라고 해봐야 1톤 트럭에 포장을 씌워 군용 트럭처럼 앉을 자리를 만들어 탈수 있는 것과, 오토바이를 개조하여 만든 ‘톡톡’이란 것이 있었다. 하지만 이 마을을 오가는 데는 그마져 없으며 고작 오토바이와 자전거가 주민들의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봉사활동을 할 현지 마을에 숙박 시설이 없어 우리 봉사단원들은 방비엥에 숙소를 정해두고, 여행사 측에서 제공한 2대의 봉고버스에 회원들이 분승하여 봉사활동 마을 왕복해야했다. ‘나몬느아’마을로 들어가는 큰 도로와 분기점부터는 산간 계곡 숲길로 도로가 파이고 노면이 고르지 못해 시속 20㎞ 이상 달릴 수 없으며 파인도로를 차량이 피해서 가야하는 지극히 열악한 도로였다.
마치 임산물(林産物)을 반출할 때 임시 개설한 임도(林道)나, 긴급 개설한 군사작전(軍事作戰)도로의 느낌을 받았다.
❋이 마을의 형성과 현황은?
이 마을은 라오스가 독립하기 이전에 산속에 흩어져 살던 ‘몽족’을 지금으로부터 37년 전인 1978년에 이곳에 정착시킨 마을이라고 한다. 규모는 180여세대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주민 총 1,220명(여자 705명, 남자515명)이었다. 이들 중에서 35세 이하의 청년층이 150여명에 불과했다. 그리고 이들의 평균 수명은 대략 60~70이며 여자가 더 장수한다고 한다. 이 마을의 주생산물은 벼농사와 고무나무 재배로 주식은 쌀이라고 한다.
마을에는 초등학교 1개교가 있으며 규모는 6개 반으로 150여명이었다.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주로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이용하여 방비엥으로 진학하고 있었으며, 6~7명의 대학생들이 비엔티안으로 유학중이었다.
그리고 이 마을을 지키는 직업군인이 5~6명 상주하고 경비를 한다지만, 별로 하는 일 없이 앉아 놀며 시간을 보네는 것이 고작이었다. 군인 지원제로 지원연령은 18세부터28세이며 복무기간 24개월이라고 한다.
라오스가 불교국가라 하지만 이 마을의 ‘몽족’들에게는 불교는 물론 특정한 종교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고 무속신앙(샤머니즘)이 고작이었다.
청소년들이 혼인(婚姻)전에 연애는 마음대로 할 수 있고, 혼인연령은 12세부터 20세라고 한다. 혼인식은 처음 남자 집에서 ‘바시(샤머니즘에의 한 굿)’를 하고 또 한 번은 여자 집에서 바시를 한 것으로 혼례가 완전히 이뤄진다고 한다.
장례는 매장문화로 망자(亡者)를 위한 의식행사를 보름간(15일) 집에서 행하며, 공동묘지에 매장하되, 묘의 봉우리를 아주 작게 한다고 한다. 이러한 모든 행사는 마치 우리나라서 옛날에 행해왔던, ‘두례와 계’의 형식으로 상부상조의 정신이 행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마을에서의 봉사활동은?
이 마을에서 외국인이 봉사활동을 맨 처음 시작한 사람은 우리 대한민국 사람으로 유네스코에 근무했던 ‘이선재’씨였다고 한다. 이 사람은 현재도 라오스 어느 오지마을에서 봉사활동 중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마을에 본격적인 봉사활동은 2012년도부터 전개되었으며, 우리나라 ‘한국국제협력단(‘KOICA)’에서 태양열 발전을 시설하여 산골짜기에서 내려오는 천연수를 급수탑으로 끌어 올려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급수시설을 해주었다고 한다.
이어서 ‘충남대학교’ 학생들이 컴퓨터실을 만들어 컴퓨터와 영어를 가르쳤으며, 2013년도에는 ‘전남대학교’ 봉사단 학생들이 마을회관 건립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뒤를 이어 2014년도에는 ‘광주광역시 자원봉사센터’에서 주관한 봉사단이 자금(資金)의 지원과 함께 회관의 골격과 지붕공사를 마무리 지어 주었다고 한다.
우리 자원봉사단이 현지 마을에 들어가기 직전에 경기도 ‘성남시 봉사단체’에서 회관 외벽 도색작업을 하고 돌아갔었다.
현재는, ‘부산대학교 이태웅(통계학)’ 학생과 ‘창원대학교 성룡(역사와 시회복지)’ 학생이 휴학을 하고 ‘국민은행’으로부터 숙식비 지원을 받으며 컴퓨터와 영어를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우리 봉사단원들은 구슬땀을 흘리며 회관건립 공사를 마무리 짓고, 벼 베기 일손 돕기를 끝냈다. 그리고 학습봉사, 위생교육, 미니올림픽, 바자회를 하고 마을 잔치를 열었다.
학습봉사활동으로 한글 가르치기, 그림그리기, 점토공예, 종이접기 등을 했으며, 보건 위생 봉사활동으로는 상보 만들기, 양치질하기, 손 씻기, 휴지 줍기 및 분리수거하기 등을 했다.
그리고 ‘부채춤’, ‘너양 나양(너랑 나랑)’, ‘아리랑’ 등의 전통춤과, ‘내 나이가 어때서’, ‘강남스타일’ 등의 노래 가락에 맞추어 춤으로 우리의 끼와 재능을 마음껏 보여주었고, 그들은 이에 감탄을 하고 자기네 전통춤으로 답례를 해 주었다. 이렇게 끼와 재능을 펼치고 나서 미니 올림픽을 실시했다.
미니올림픽은 과거 우리나라 초등학생들의 운동회 때와 같이, 운동장 하늘엔 만국기로 수를 놓고, 학생들은 청․백군으로 나누어 머리띠를 두르고 경기를 실시했다.
모든 봉사활동을 끝내고, 한국에서 출국 전에 후원 받아온 물품으로 바자회를 열었다. 바자회물건은 순식간에 불티나듯 팔렸고, 판매한 현금을 전액 마을에 후원금으로 전달함으로써, 나몬느아 마을에서 봉사활동은 모두 끝이 났다.
봉사활동을 마치고 마을 주민들과 석별의 환송식을 가졌다. 환송의식은 진지했다. 맨 먼저 이 마을의 수장이 우리 봉사단원들과 헤어지게 됨을 애석해 하면서 자기네들의 고유어로 몇 분간 통역 없이 주문을 외어주었다.
이 의식의 ‘클라이맥스’로 떠나는 우리들에게 건강하고 행복하며 영원히 잊지 말아 달라는 뜻으로 하얀 실을 팔뚝에 매듭을 지어 묶어주는 것으로 모든 의식을 끝냈다.
❋.봉사활동 마치고
‘라오스’와 우리나라의 시간차는 라오스가 2시간이 늦다.
라오스에 가기 전부터 마음속으로 걱정이 된 것은 음식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일 뿐이었다. 이젠 음용수와 음식이 세계화 되어 있어, 마시고 먹는데 조금도 불편이 없었다. 그리고 음식으로 인하여 탈이 난 봉사단원도 아무도 없었다.
나는 이번 봉사활동에 몸으로 때우는 일은 따라서 했지만, 특별한 재능기부와 후원을 하지 못해서 매우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무탈하게 건강한 모습으로 귀환했음을 더없는 보람으로 생각하고 있다.
끝으로 이번 6박 8일(2015. 11. 5-11. 12)의 해외 봉사활동계획을 주도면밀히 구상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추진하고, 봉사자들의 건강과 안전에 최선을 다해 봉사단일행이 무사히 귀환할 수 있도록 힘써 주신 광주광역시 자원봉사센터 관계자 분들께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
종보 제24호에서(다음에 계속)